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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집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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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영국 역시 순탄하고 행복한 외국 생활을 위해서는 첫째 집을 잘 구해야 한다. 스스로 집 때문에 된통 고생을 한 경험이 있기에 몇가지 적어본다.

영국의 집들은 크게 House와 Flat으로 나뉜다.
하우스는 detached(단독주택)와 semi-detached(두 채가 벽을 사이에 두고 붙어있는 집), 그리고 집 대 여섯채가 붙어있는 terraced house가 있다. Town house라는 형태도 있는데 대개 3층짜리 집이다.

반면 영국식 아파트 형태를 Flat이라고 부르는데, 한국 같은 아파트는 보기 어렵고 3, 4층짜리 연립주택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특히 Flat의 경우에는 옆집 또는 위, 아래층 집과의 소음 문제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나의 경우 처음 6개월 동안 플랫에 거주했는데, 뜻밖의 예상치 못한 소음 문제로 인해 꽤 스트레스를 겪어야 했다.

처음 영국에 와서 1주일 정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B&B’(bed & Breakfast. 숙소와 아침 식사를 주는 제공하는 영국만의 특이한 민박 호텔로 영국 전역에 어디든지 널려있다)에 머물면서 월세집을 구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봤다. House 형태를 몇 채 구경했으나 시내와 대학교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망설이다가 결국 Cardiff 해안가에 자리잡은 Flat을 골라 입주했다. 작고 비좁은 B&B에서 가족이 지내다보니 어떻게 해서든 빨리 집을 구해 나가고 싶은 마음이 앞선 터였다.

그 Flat을 처음 구경했을 때는 새로 단장한 깨끗한 집이란 점이 우선 마음에 들었다. 3층짜리 Flat이었는데 우리 집은 중간 2층이었다. 그런데 입주 첫날 밤, 잠을 자는데 위층 집에서 사람이 걸어다니는 발소리가 천장을 타고 끊임없이 들려왔다. 위층 사람이 틀어놓은 오디오 소리도 마치 우리가 옆방에 틀어놓은 것인양 시끄럽게 들려왔다. 윗층 사람이 소리를 너무 크게 틀어놓았겠지, 생각하면서 첫날이니 참고 지내자고 아내와 아이들을 설득했다. 우리 가족 모두 잠을 설치면서 밤을 샜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도 소음은 여전했고, 윗층에 올라가 항의를 했다. 하지만 그 윗층 남자 왈 “나 혼자 산다. 음악 소리를 그렇게 크게 틀어놓은 적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옆집에 사는 젊은 부부였다. 그 집 남편은 팔짱만 끼고 있고, 여자가 눈을 치뜨면서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너희 아이들 때문에 살 수가 없다. 제발 조용히 좀 시켜라.” 신사의 나라라는 영국에서 그토록 다른 사람한테 화를 내면서 말하는 건 그 뒤로도 본적이 없다. 큰일이다 싶었다.

그 때서야 깨달았다. 이 집은 애초부터 벽과 천장이 나무로 돼 있어서 위층, 아래층, 옆집이고 할 것없이 소음 문제가 심각하구나! 아무리 조심시켜도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뛰고 소리 지르는 우리 아이들의 입을 틀어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긴장 속의 나날이 지속됐다. 정말이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산책 나갔다가 우리 집 앞길에서 만난, 바로 아래층에 사는 영국 젊은 남자도 나를 힐끔 보더니 한마디 던졌다. “당신 집 아이들이 뛰는 소리 때문에 못살겠다.” 사실 이 Flat은 혼자 사는 사람이나 아이들이 없는 부부 단둘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스트레스는 며칠 뒤에 받은 편지 한 장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우리 집 편지함에 꽂혀 있는 letter는 이렇게 적고 있었다. “당신 집에 ‘overflow’ 문제가 있으니 조속한 시일 안에 이 문제를 해결 해달라.” 편지를 보낸 사람의 이름만 달랑 적혀있을 뿐, 연락처도 없고 도대체 어디서 보낸 것인지 도통 짐작이 가지 않는 짧은 문장의 편지였다. ‘과잉’이라니 무엇이 넘쳐흐른다는 것일까? 우리 집 수돗물이 넘쳐 흐르는 것도 아닌데,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고민을 너무 많이 한 탓일까? 혹시 여기서 말하는 overflow가 바로 우리 집 아이들이 뛰는 소음 문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건 아닐까? 영국 사람들이 비유적인 표현을 곧잘 한다지 않는가.

다음날 주변에 사는 한국인들과 만났을 때 이 얘기를 들려줬더니 어떤 사람이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한테 이 사태를 해석했다. 그 사람 얘긴즉슨, 그런 상황에서 영국인 이웃 사람이 letter를 보냈다면 사태가 심각한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는 “불편을 꾹 참다가 더 이상 못 견디고 공식적으로 항의를 하는 것이니 문제가 커지고 있다. 상황이 더 악화되면 이웃사람들이 ‘이 가족을 이 집에서 추방해달라’는 내용의 연서명을 받아서 해당 주택을 관리하는 업체에 정식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올 것이 왔구나, 골치아픈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며칠 뒤 또 다시 편지가 날아왔다. 우리가 사는 주택단지를 관리하는 회사에서 보낸 편지였다. 그제서야 안 것이지만, ‘overflow’는 우리 집 바깥 벽면에 설치된 수도배관에서 물이 약간씩 새어나오고 있으니 고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라에 놀란 가슴 솥두껑 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아무튼 소음 문제는 여전했고, 결국 월세 계약기간 6개월을 다 채우지 못하고 다른 집을 구해야 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영국의 월세는 최소 계약기간이 6개월이다. 한번 계약을 맺으면 임차인은 6개월 계약이든 1년 계약이든 계약기간 동안의 집세를 반드시 내야할 의무가 발생한다. 집에 문제가 있거나 마음이 바뀌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 해도 6개월, 혹은 1년을 채워야 한다. 바꿔 말하면, 1년 동안 영국에 연수 나왔다고 해서 덜컹 ‘1년 월세 계약서’를 작성하면 낭패 볼 위험이 있다. 실제로 이곳으로 연수를 왔다가 처음에 1년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나중에 자기가 원하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못가고 그대로 눌러 살다간 사례도 있다. 결국 6개월 계약서를 쓰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론 6개월 계약을 맺었다 해도 계약기간 만료 한 두달 전에 통보하면 월세 기간을 6개월 더 쉽게 연장할 수도 있다.

참고로 영국의 주택에는 재산세 명목의 세금(연간 세금액은 두달치 월세 정도 됨)이 붙는데, 집의 시장가격에 따라 세금의 크기도 달라진다. 혼자 사는 단독가구라면 세금액을 50% 정도 깎아주고, 풀타임 학생이라면 세금을 면제해준다. 이 때는 학교당국으로부터 세금면제 확인서를 받아 제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