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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생활 꼼꼼히 준비하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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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바로 옆에 있는 메릴랜드 대학에서 연수중인 동아일보 윤희상 차장입니다. 제가 1986년12월에 입사했으니까 기자생활 만 14년을 향하여 가고 있는 셈입니다.

제가 앞으로 올리는 글들은 삶의 의미와 방향에 대하여 벌써 몇년 째 고민하고 있을 저와 비슷한 연배(30대 후반 이상)의 언론사 동지 기자 여러 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사실 큰 뜻을 품고 언론사의 문을 두드린 뒤 한창 일하는 재미에 빠져 있을 젊은 후배 분들께는 현실감이 떨어지는 얘기일 것입니다.

그래도 한번 쯤 건성으로라도 읽어 두시면 반드시 보탬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

1980년대에 한국의 언론사에 들어오신 동료 선배 여러 분. 그 때 한국의 기자였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하늘이 내린 기회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1987년 온 나라가 민주화의 열망으로 들끓었을 때 최루탄이 많이 터지는 방향으로만 달려가면서 매운 눈물을 한없이 흘리면서도 ‘현장’에서 우리의 삶을 던졌습니다.

더 이상 독재정권이 발붙일 수 없게 됐을 때, 이제는 신문사나 방송사나 ‘상업성’경쟁이 우리를 짓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신문은 증면경쟁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야말로 휴일없는 강행군이 계속됐던 기억이 누구나 있습니다.

1-2년 더 지나면서 이제 외부에서의 송고는 무겁디 무거운 노트북 컴퓨터가 대신하게 됐습니다. 2벌식 한글타자를 익히면서 자장면 내기 ‘베네치아’게임도 자주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인터넷이란 괴물이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저는 이 대목부터 신문(또는 방송)기자들 사이에 세대의 벽이 아주 커졌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들은 “인터넷도 전혀 못하고 영어도 *도 못하는게 쪼기는 왜 저렇게 쪼는지…”했을테고, 저의 동료 또는 선배들은 “인터넷 저까짓 거 하나도 안해도 우리 정년 때까지 밥먹고 사는 데 전혀 지장없어! 영어공부는 해서 어딨다 써?”라고 호기를 부렸던 기억이 있습죠.

그러고 나서 뭐가 왔습니까. IMF가 왔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동료들이 떠났습니다. 지금도 그 분들 만나면 뭐라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도 어렵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죠.

지금 제가 학적을 둔 메릴랜드대학에는 몇가지 유명한 전공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커뮤니케이션(PR 포함)은 미국 랭킹 1위(US News and World Report 선정)입니다.

이 곳에는 저하고 종씨이고 항렬로는 할아버지 뻘이 되는 신문사후배가 있습니다. 석사과정 3학차(3학기째)인데 이 친구는 1998년 5월에 회사를 그만 두고 1년간 집에서 공부하면서 유학준비를 한 뒤 작년 8월에 이 곳에 왔습니다. 이 후배와는 같은 부서에서도 일한 적이 있고 아주 친했었기 때문에 지금도 형제처럼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같이 까먹고 있죠.

우리 모두 그렇지 않습니까? 영어가 독해는 되는데 빌어먹을 들리질 않고, 말을 할려면 목구멍에 걸려서 나오질 않는 것이 문제란 말입니다. 이 후배가 그랬습니다. 미얀마에 가서 아웅산 수지를 인터뷰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알아들은 말이 얼마 되지 않았죠. 1면톱 스트레이트는 써 놓았는데 일문일답을 송고하는데 애를 먹었죠…(솔직히 말하면 나머지 살 붙이는 것은 안에서 했죠, 아마)

이 후배는 정말 외국인이 전화를 해 오면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그러나 이 후배는 지금 박사과정 학생에게도 순서가 잘 돌아가지 않는 ‘강의조교(Teaching Assistant)’를 하고 있습니다. 납부금 전액 면제에다 다달이 1000달러(약 110만원)정도의 생활비가 나오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가족 3명에게 모두 최상급 의료보험을 사준다는 겁니다.(잘 아시겠지만 의료보험은 보통 한달에 수백달러를 내야 평균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의료보험 없이 운에 맡기고 버티고 있습니다.)

이 후배가 딱 2년이 지난 지금 학급당 미국 학생들 22명씩을 앉혀 놓고 화요일과 목요일 오전 오후에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후배처럼 집중적으로 영어공부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방법이 있겠죠.

저는 어떤 정도 수준이냐구요? 마, 2년전에는 이 후배보다 영어를 듣고 말하기는 한 세배 정도 잘했습니다. 지금은요. 이 후배가 100점이면 한 88점 되는 거 같습니다.(그래도 수업시간에 숙제 내주는 거 안 빼먹고 알아듣고, 또 부러진 영어지만 발표도 아주 잘하는 학생입니다.)



그래서 제가 겪은 바에 비추어 영어공부 다시 하기를 권해 드리는 바입니다. 우리는 바쁩니다. 술먹고 집에 늦게 들어가서 이튿날 겨우 깨어나서 회사나 출입처에 나가기 바쁩니다. 저도 술을 너무 자주 먹었고, 심지어는 서울에서 치른 토플시험 두 번 가운데 한번은 전날 술을 잔뜩 먹고 가서 치렀습니다. 그날 B 연필로 답안지에 칠하는데 자꾸만 손이 헛나가서 혼났습니다.

지난 두달여 동안 이곳에서 먹은 술은 모두 해봐야 과거 제가 마시던 양의 하루분에 해당합니다. 결국 술은 끊은 셈입니다. 이제는 날이 저물 무렵에 한잔 생각보다는 따끈따끈한 밥이 더 그립습니다.

각설하고 “다시 시작할 때” 염두에 두실 것만 몇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우리는 독해는 된다 말입니다. 그러므로 토플책 두꺼운 거(얇은 것도 마찬가지) 사면 백전백패입니다. 영문법 다 잊어먹은 거 같아도 한 세번 분량의 실제 토플 문제 풀어보면 신기할 정도로 ‘복기’됩니다. 책상 앞에 정색하고 앉아서 토플 책 두꺼운 거 꺼내놓고 공부하기는 후배들 보기에도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독해와 영문법을 복기하는 의미에서 영어소설책을 권합니다. 근데 이 책을 선택할 때 무조건 유명한 거 고르면 효과가 덜합니다.

우리가 아주 재밌게 본 비디오 있잖아요.저의 경우 영어소설 여러 권을 샀지만 실제로 읽어본 거는 거의 없어요.정말입니다. 저는 그 영화, ‘펠리칸 브리프’가 좋아서 그걸 읽었고, 주라기 공원도 좋아서 그걸 선택했습니다.

영화로 여러 번 봐서 스토리는 머리 속에 훤합니다. 따라서 읽다보면 단어 막 몰라도 읽어가는데 별 지장없습니다. 읽다가 자꾸만 나타나는데 뜻을 모르는 단어 있습니다. 한 세번쯤 나타나면 그 때 사전을 찾으십시오.

두번째, 영영사전을 쓰십시오.교보문고에 가면 영영사전 좋은 거 많이 나와 있습니다. “Longman English Language and Culture”사전은 제 기억에 4만원(우리 하루 저녁 맥주값)정도 합니다. 이 사전은 미국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좋은 종이에 인쇄도 아주 선명해서 한 번 사면 아주 아끼게 됩니다. 이 사전은 정말 평이하고 쉬운 영어로 표현해 놓았기 때문에 단 한 백개쯤 찾다보면 금방 우리 체질에 맞습니다.

또 “The COBUILD Series, English Dictionary”도 정말 좋은 사전입니다. 이 사전은 단어마다 쓰임새에 맞는 예문으로만 돼 있어서 그 뜻을 유추하게 돼 있습니다. 불과 몇가지 문장유형으로 돼 있기 때문에 우리같이 얼른 말이 잘 안나오는 사람들에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러진 영어일망정 비슷하게)말을 내뱉을 수 있는 실력을 길러줍니다.

셋째,AFKN이나 CNN을 틀어놓고 하루에 10분씩만이라도 투자하십시오. 아마 이 항목이 가장 여러 동료 선배 여러분의 뒷골을 땡기게 할 것입니다.저도 압니다. 그게 잘 안되거든요. 그지만 어쩝니까. 공부를 안하실 생각이시라면 제 글을 여기까지 따라오면서 읽지도 않으셨을 테니까 전 상관 안합니다. 그냥 틀어놓고 그림만 보십시오. 그래도 공부가 됩니다. 억지로 머리에 쥐나게 하지말고 그림만 보면서 어떤 내용인지 유추하는 훈련만이라도 시작하십시오.

지금 시각이 밤12시반(한국시각 낮1시반)을 넘긴 관계로 이만 씁니다.다음 번에는 정말 수강료 싸고 실력 있는 학원과 선생님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다른 학원에서 제소할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 글 올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니까 괜찮을 겁니다) 제가 아는 한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영어를 잘 가르치는 한국사람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몸 편하게 미국 와서 개기면서 장황하게 떠든 저를 용서하십시오.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