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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생을 위한 웰빙 식단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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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듀크대의 담당 지도교수 주선으로 연수생들이 함께 저녁식사를 할 때였다. 한참 후 타사의 후배 기자가 “손 선배! 살 빠졌어요? 전혀 몰라보겠어요..”라고 말해 억장이 무너졌다. 연수생들은 살이 많이 빠진다. 같이 연수중인 한 선배는 “얼굴이 새까맣게 타는 이유는 너무나 잘 알겠는데, 10kg이상 살이 빠지는 이유는 도저히 모르겠다”고 푸념을 했다.

근데, 난 정확이 알겠다. 연수생들이 왜 살이 빠지는지를…
먹는 게 한없이 부실해서다. 고국의 그 많던 술자리의 폭식을 떠올려 보라. 살 빠질 틈이 있겠는가. 미국에서는 다르다. 가족여행을 위해 한 손에 운전대, 한 손에 맥도날드 햄버거를 씹으면서 10시간씩 운전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 호사스런(?) 골프를 치면서도 도중에 핫도그 하나 사먹지 않고, 집에 가서 라면에 식은 밥 말아먹기가 일쑤다. 몇 달러 아낄려는 게 아니라, 제 돈내고 사 먹어본 기억이 많지 않아서다.(이 말에 오해 없기를…)

또, 여럿이 모여서 치는데 더치페이를 하는 것도 어색하고, 미국의 캐주얼한 골프문화에 적응이 안돼서 그냥 쫄쫄 굶고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이런 문화를 지양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초콜릿 바나나 등을 챙겨가 틈틈이 챙겨먹고, 중간에 클럽하우스에서 햄버거라도 하나 먹고 하자고 바람을 잡는 편이다. 이런 노력으로 난 살이 빠지지 않았다. 살 빠졌다는 말에 그날 밤 저울에 올라갔더니, 입국 당시체중에서 100g이 줄었을 뿐이다. 얼굴이 까매져서 살이 빠져 보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군살이 빠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입성을 비롯해 외모가 후진국 형으로 변해가는 것은 사양하고 싶다. 머리 스타일은 물론 옷 차림새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상태에서 얼굴이 까맣게 타면서 살까지 빠지니 나를 포함해 상당수가 동남아 사람과 전혀 구별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와이프의 얘기다.

미국에 와서 잘 한 것을 하나 꼽으라면 지난 추석 때 명절을 제대로 쇤 것이다. 추석명절을 그냥 보낼 수 없어 한인마트에 송편을 사러 간 게 발단이 됐다. 매년 송편을 내놓던 그 마트는 재고걱정으로 올해는 팔지 않기로 했단다. 내친김에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 마트에서 쌀가루를 팔았다. 와이프는 “한국에서도 안 만들던 송편을 미국까지 와서 만들어야 하냐”고 투덜댔지만, 그렇게 싫은 기색이 아니었다. 도예를 전공했던 와이프에게 송편반죽은 찰흙에 비하면 식은죽 먹기 아니냐며 추켜세운데다, 무엇보다 애들이 송편 반죽을 하고 놀 것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근처 후배가족에게 송편 만들러 오라고 하면서 일이 커졌다. 송편만으론 성이 차지 않아 나물 몇가지 무치고, 전까지 부치니 제대로 추석상이 차려졌다. 음식을 직접 만들고, 함께 나눠 먹는 게 이렇게 뿌듯한 일인 줄 처음 알았다.(실제로 모든 음식 만들기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송편 찔때 눌러 붙지 않도록 인근 공원을 뒤져 솔가지도 꺾어왔다.)

한국음식도 이제 세계화 반열에 들었는지, 한국음식은 물론 식재료를 구하는 게 어렵지 않다. 한인마트도 흔하고, 중국인이 운영하는 동양마트에도 한식 식재료가 넘쳐난다. 월마트도 최근들어 신라면을 팔기 시작했다. 조금만 신경쓰면 한국 먹거리를 얼마든지 챙겨먹을 수 있다는 얘기다.

내가 좋아하는 한 선배는 먹는 것을 너무 밝히는 것 아니냐는 타박에 정색하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네가 지금 거른 한끼는 영원히 챙겨 먹을 수 없다”고… 연수생들이 금과옥조로 삼을 만한 말이다.

난 살뜰한 모친 덕에 각종 김치류와 젓갈류 등으로 한국에서보다 더 ‘입 호강’을 하고 있다. 미국 입국 때에는 화물칸에 싣는 짐 8개중 4개가 김치와 젓갈 등 각종 반찬류 였을 정도다. 얼마전 모친과 통화하다 김치가 동이 났다고 했더니, 금새 항공편으로 부쳐왔다. 나중에 짐을 부친 여동생에게 알아보니, 항공 택배비와 포장비 등 명목으로 비용만 40만원 이상이 들었단다. 이제 한국에 갈 때 까지는 김치를 끊을 생각이다.

한국에서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어본 기억이 없다. 술을 좋아해 와인 안주 삼아 먹던 시늉을 했지, 스테이크의 참 맛을 몰랐었다. 처음 미국 마트에 가서 장을 보면서 손바닥 2배 두께의 스테이크용 고기가 무척 싸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에 지내는 동안 또래 애들에 비해 왜소해 보이는 아들녀석에게 송아지 2마리 정도의 분량은 먹일 생각을 하니 흥이 났다. 하지만, 집에 가서 후라이팬에 구우니, 고기 맛이 형편 없었다. 처음엔 고기를 잘 못 산 줄 알고, 유기농만 취급하는 곳에서 비싸게 사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와이프는 한달 쯤 지나자 자신만의 레시피를 고안해냈다. 스테이크가 먹고 싶을 때마다 “당신이 만든 스테이크가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 보다 낫다”고 기름칠을 하곤 한다. 빈말이 아니다.

와이프의 레시피를 공개하자면 허브(로즈마리나 바질 등 마트에서 판다), 후추, 마늘 다진 것 등을올리브 오일과 혼합한 후 스테이크용 고기 양쪽에 골고루 발라 한 30분 정도 잰다. 그 다음 아주 센 불에 후라이팬을 예열한 후 고기가 겉이 약간 타도록 익힌다. 이는 고기의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후 미국 아파트 등에 빌트인으로 갖춰져 있는 오븐에 화씨 350도에 맞춘 후 15분 정도 구우면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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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가 자신만의 레시피로 구워낸 스테이크

7~8불짜리 와인과 함께 먹던 스테이크는 맛은 한국에 돌아가도 자주 생각날 것이다. 입맛이 까다로운 아들녀석도 이 스테이크는 넙죽넙죽 잘도 받아 먹는다.

스테이크에 점차 맛을 들이면서 직접 구워볼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레이트 스모키마운틴으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다. 산속 운치 있는 곳에 위치한 통나무집에서 2박 3일을 보냈는데, 직접 고기를 구울 기회가 생겼다. 스모키마운틴 자락에 있는 브리슨(Bryson)시티로 찬거리를 사러 갔다가 휴대용 그릴을 클리어렌스 세일로 20달러에 구입하면서다. 미국에는 공원과 휴게소는 말할 것도 없고, 아파트 단지 내에도 그릴이 설치돼 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이용한 후 닦지를 않아 기름때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난 도저히 그 그릴에 고기를 구워먹을 용기가 안난다.(물론 미국 현지인들은 그 곳에 잘도 고기를 구워 먹는다.)

그릴에 고기를 구울려면 차콜에 불을 붙일 줄 알아야 한다. 몇 번 해보면 익숙해진다. 차콜을 피라미드 방식으로 쌓은 후(차콜은 서로의 열기로 연소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게 바로 차콜이다) 휘발성분의 액체를 부어 불을 붙이고, 까만 차콜이 회색으로 변할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리면 된다. 좀 비싸긴 하지만 휘발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라이터로 붙이는 차콜도 있다.

차콜이 회색으로 변하면 바닥에 골고루 펼쳐 고기를 구우면 된다. 저 정도 화력에 고기가 익을까 싶지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고기를 너무 자주 뒤집지 말아야 하고, 어느 정도 익으면 그릴 뚜껑을 덮어 차콜의 연기에 쬐어 주는 것도 고기향을 배가시키는 요령이다. 다만, 차콜에는 돼지고기를 굽는 것은 적당하지 않은 것 같다. 돼지고기 기름이 흐르면 불이 붙어 고기가 그을려 지고, 그 기름이 차콜을 적시는 바람에 불씨가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고기를 굽고 난 후 차콜의 잔열에 감자 옥수수 등을 구워먹는 것도 별미다. 아들 딸이 차콜에 구운 감자 옥수수 등을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은 연수생활의 하이라이트가 될 장면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연수생들은 대부분 여행을 숙제처럼 한다. 나중에 후회가 남을까 봐서다. 그렇다 보니 도로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시간적 이유로, 혹은 경제적 이유로 햄버거를 입에 달고 살 수 밖에 없다. 난 햄버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와이프와 애들은 햄버거도 마다하지 않는 눈치지만, 가급적이면 밥을 먹으려고 노력한다.

미국 여행을 하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 바로 ‘휴게소(rest area)’이다. 미국 고속도로를 달리다 식사와 휴식을 취하려면 출구(exit)를 나가거나, 휴게소를 찾아야 한다. Exit마다 맥도날드 KFC 등 패스트푸드점이 넘쳐난다. 하지만, 내가 미국 도로 여행의 최고 인프라 꼽는 것은 바로 ‘Rest area’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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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고속도로에 있는 휴게소(Rest area) 전경

이 곳은 패스트푸드점 등 상업적인 시설은 한 개도 없다. 음료수를 뽑아 먹을 수 있는 벤딩 머신이 전부다. 화장실도 깨끗하고, 벤치와 그릴(마찬가지로 더럽다)을 갖춰 취사는 물론 휴식을 취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난 이 곳을 무척 애용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 밥을 한 후 밥통을 통째로 차에 싣고 가는 것도 Rest area가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캐롤라이나 머틀비치에서 놀다 호텔에서 밥통에 밥을 하고, 락앤락 용기에 카레라이스를 담아 바로 출발했다. 휴게소에서 한끼는 해결하자는 속셈에서다. 처음에는 휴게소에 비치된 식탁과 벤치를 차지한 후 차 트렁크의 밥통에서 밥을 덜어다 ‘교양’있게 먹었다. 나중에는 이마저 귀찮아 밥통 채 테이블에 올려놓고 게걸스럽게 퍼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는 버너와 코펠을 이용해 끓여먹는 라면도 별미다. 햇반을 데워 김치를 곁들여 라면국물에 말아 먹으면 햄버거 등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한끼 식사가 된다.,

패스트푸드에 물리고, 여행 중 여유를 찾고 싶다면 ‘크래커 배럴(Cracker Barrel)’이란 식당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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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커 배럴’의 입간판

컨추리풍 식당으로 미국인들도 좋아해 줄을 서서 대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이웨이 출구(exit) 전의 간판을 확인하고 찾아가면 된다. 이 식당은 미국의 토속인형 등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함께 붙어 있어서 간단한 아이쇼핑도 즐길 수 있다. 메뉴는 요일에 따라 ‘그날의 메뉴’가 있으며, 스테이크와 각종 샐러드, 스튜, 햄버거 등이 있었던것으로 기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