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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은 대형 사고보다 잔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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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수를 오면 자연 많은 여행을 합니다. 그래서 못해도 일 년이 지나면 2만 마일,
3만2천 킬로미터 정도를 달리게 됩니다. 물론 많으면 3만 마일을 훌쩍 넘기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거의 매달 장거리 여행을 뛰게 되는데 확률적으로 사고의 위험성도 커지
는 게 당연합니다. 물론 대부분 연수생들이 안전에 최우선을 두기 때문에 충돌이나
인명사고 등 안전사고의 확률은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소한 차량 고장으로 골탕을
먹는 일은 거의 누구나 한번은 경험하게 됩니다. 가장 많은 경우가 타이어 펑크와 배
터리 방전, 앞 유리에 돌이 튀는 경우, 그리고 가장 큰 피(?)를 보는 게 교통위반입니
다. 교통위반은 경찰에 걸리면 기본 5백 달러는 깨진다고 보면 됩니다. 이중에서도
특히 타이어 펑크는 아무리 새 타이어를 갈거나 조심해도 불가항력적으로 사고를 당하
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로 길에 떨어진 쇳조각이나 나사못을 밟는 경우인데 상당히 많
은 비지팅들이 이런 낭패를 경험합니다. 이게 뭐 조심한다고 피해갈 수 있는 게 아니
어서 정말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사고입니다. 제 주변에 친하게 지낸 사람들은 거의
모두 이런 식의 타이어 펑크를 경험했습니다.
 
얼마 전 캐나다 록키를 여행하고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워낙 먼
곳이라 항공편으로 날아가서 렌터카를 빌렸습니다. 사실 비지팅들이 타는 차량이 아무
리 관리를 잘해도 노후된 차량이 많아 잔고장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렌터카
가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새 차이니까요. 그런데 이 믿었던 렌터카로
참 곤란한 경험을 했습니다.


밴프 지역의 산길을 운전하는데 갑자기 타이어 경고등이 들어오더군요. 내려 봤더니
오른쪽 뒷 타이어가 완전히 내려앉은 겁니다. 인적도 드문 산길이고 특히 곰이 많은
지역이어서 오도 가도 못 하게 된 상황이 참 당황스러웠습니다. 실제로 길을 가다 차
도에 옆에서 어슬렁거리는 곰을 서너 마리 보고 난 이후라 더욱 겁이 났습니다.


시간도 저녁이어서 곧 해도 질 텐데 말입니다. 견인차를 부를까 했지만 그것도 막상
닥치니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산길이라 내 위치를 잘 모르는데다 캐나다여서 제가 소
유한 트리플A 견인 서비스가 될지도 의문이었고 또 짧은 영어로 설명하기도 뭐하다
싶어 과감히 트렁크를 열어 스페어 타이어를 꺼냈습니다. 생전 처음 다뤄보는 스페어
타이어인데 급하니 대강 되더군요. 잭으로 차를 올리고 나사를 풀러 펑크 난 바퀴를
내린 뒤 오토바이 바퀴만한 스페어 타이어를 장착하고 60킬로미터 이하로 고속도로를
기다시피 운전하며 30분이면 올 거리를 2시간 걸려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하면 됩니다.                   캐나다 산길에 이런 애들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금요일 저녁이어서 제가 묵은 숙소 근처의 타이어 가게들이 이미 다 문을
닫은 데다 심지어 주말이 지나 월요일에야 문을 연다는 안내판을 붙여 놓은 곳도 있었습
니다. 바쁜 일정에 사흘이나 허비할 순 없어서 호텔 프런트에 부탁했더니 옆 도시의 타
이어 숖을 소개시켜줬습니다. 다행히 토요일에도 영업을 한다 하더군요. 됐다 싶어 일단
피곤한 몸을 뉘고 푹 잤는데 실제 지옥은 그제야 시작됐다는 걸 꿈에도 몰랐죠.


다음날 다시 엉금엉금 기어 옆 도시로 가서 타이어 가게를 찾았습니다. 우리나라 대형
마트만한 점포에 타이어가 가득히 들어차 있는데 보기만 해도 뿌듯했습니다. 가벼운 걸
음으로 점원에게 가서 타이어 펑크를 때우거나 교체하겠다고 했는데, 세상에나 토요일
이어서 타이어 판매만 되고 교체는 기술자가 없어서 안 된다는 겁니다. 눈앞이 깜깜해
졌습니다.
 
그런데 궁하면 통한다고 점원이 근처에 중고 타이어가게가 있는데 거기는 기술자들이 많아
수리를 할 수 있을 거라 하더군요. 또 엉금엉금 기어 근처 점포로 갔습니다. 기술자들이
득실득실 하고 당장에도 수리를 할 수 있다는 말에 얼굴이 화악 펴졌습니다. 중고 타이어
가격은 40달러 밖에 안한다고 하니 돈 걱정도 덜었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이도 잠시,
교체를 부탁했는데 점원이 창고를 한참을 뒤져보고 오더니 같은 사이즈의 타이어가 없다는
겁니다. 차는 평범한 세단이었는데 바퀴가 광폭 타이어로 돼 있어 자기 가게에는 같은 모델
이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다시 눈앞이 깜깜해졌습니다. 내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더니 점원이 “네가 먼저 들렀던
큰 매점에서 타이어를 사와라. 그러면 내가 고쳐줄게”하더군요. 속으로 ‘어이구 기특한
친구’라고 생각하면서 땡큐를 연발한 뒤 다시 엉금엉금 기어 먼저 들렀던 타이어 가게를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타이어 모델을 적어주고 타이어만 사가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찾아봐 주겠다고 했습니다. 설마 그 큰 타이어 가게에 내 차 타이어가 없겠냐 싶어 기다렸
는데 점원 얼굴 표정이 점점 더 갸우뚱 해지는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재고가 하나도 없다
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타이어 모델이 정말 드문 것이라 주말에는 구하기 힘들도 월요일에
특별 주문을 할 수 있으니 그때 다시 오라는 말과 함께요. 그 가게가 체인점 형태여서 옆
도시의 다른 체인점에는 없냐고 물었더니 전산으로 검색한 결과 사방 3백 킬로미터 이내
체인점에는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대답을 줬습니다. 정말 망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가며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월요일에는 열 댓 시간 거리인 뱅쿠버까지 가서 크루즈 쉽을 타기로 예약해 놓고 수천
달러 여비도 다 지불해 놓은 상태였는데 꼼짝없이 거리에 주저앉아 돈만 날리게 된 상황이
됐습니다. 눈물까지 나려고 하는데 나이가 지긋한 점원 한 분이 다가오더니 자기가 도와주겠
다고 하는 겁니다. 가장 가까운 도시가 캘거리였는데 전화번호부를 들고 오더니 캘거리 타이
어 가게에 모두 전화를 돌리더군요.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아무도 그런 타이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거였습니다. 아니 내가 페라리를 몰고 온 것도 아니고, 롤스로이스를 몰고 온
것도 아닌 그저 소나타급의 평범한 승용차를 몰고 왔는데 타이어를 구할 수 없다니 정말 미
치고 펄떡 뛰겠더군요. 너무 지치고 실망해서 이젠 여행이고 뭐고 돈이고 뭐고 다 포기한다고
생각한 순간 통화를 하던 나이든 그 점원이 얼굴이 밝아지는 거였습니다. 내게 꼭 같은 모델
은 아니지만 호환이 가능한 모델을 가지고 있는 타이어가게를 발견했다는 거였습니다. 가격은
무려 3백 달러. 순간 기절할 뻔 했는데 생각해 보니 3천 달러라도 내고 사야 될 상황이어서
당장 사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타이어는 팔겠지만 교체서비스는 예
약이 꽉 찬 상태여서 월요일에나 가능하다는 겁니다.


‘이런 망할’ 정말 욕이 치밀어 오르는데 이런 상황을 전해들은 점원이 다음날인 일요일
기술자를 한명 불러내서 교체해 줄 테니 오늘만 일단 버티라고 제안을 하더군요. 정말 그
점원 얼굴이 부처님과 예수님을 반반씩 섞어 놓은 듯이 보였습니다. 사실 그날 이동하지
못하면 예약해 놓은 호텔 값을 날려야 하는 상황이고 머무른 곳에서 호텔을 또 잡아야 하는
처지여서 돈이 상당히 많이 깨지게 됐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 스페어
타이어를 단 차를 엉금엉금 몰면서 두 시간 반을 달려 캘거리로 갔습니다. 백 킬로미터가
넘게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50~60킬로미터로 기어가니 주변의 차들은 전부다 딱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더군요.


여하튼 어떻게 어떻게 도착해서 타이어를 샀습니다. 이미 해는 중천을 지나 저물어가고 있었
습니다. 그래서 일단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호텔로 돌아갔는데 시골길에서 정말 허름한 타이
어가게를 발견했습니다. 혹시나 싶어 내 사정을 말하고 타이어를 교체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당장 교체해주겠다는 겁니다. 일이 풀리기 시작하니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새 타이
어를 달고 돌아가다 보니 그 나이든 점원 얼굴이 떠오르는 겁니다. 타이어를 교체했으니 다시
그 가게를 갈 이유가 없었지만 일부러 다시 들러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내
가 살면서 곤란에 빠진 캐나다인을 발견한다면 꼭 당신의 이름을 걸고 도와주겠다는 약속도
하고 왔습니다.


타이어 값 3백 달러, 예약을 어긴 호텔 비 백 달러, 또 다른 호텔을 잡은 비용 2백 달러가
공중에 날아갔지만 이름도 모를 외국인을 이리 도와주는 사람을 만난 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경험이라 자위하면서 여행길에 다시 올랐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루를 더 묶었더니 다음
날 날씨가 더없이 화창해 더욱 좋은 경치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저희가 떠난 이틀
뒤 폭우가 내려 캘거리와 밴프는 물에 잠겼다고 합니다. 여행객들도 모두 고립돼 며칠간을
붙잡혀 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저는 나름 운이 좋았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경험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건 여행 중 자동차가 퍼지면 정말 어렵다는 설명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자칫 산간 오지나 미국 서부 사막에서 일을 당할 경우 별거 아닌 고장에 목숨
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정말 북미 오지 지역은 길은 나 있지만 사방
100킬로미터 안에 주유소 하나 없는 지역도 다반사입니다. 그래서 꼭 스페어 타이어를 교체
하는 방법을 숙지하십시오. 견인차 부르는 것도 생각만큼 쉽지는 않습니다. 해까지 지면은
어두운 고속도로 차들이 쌩쌩 달리는데서 자기 위치를 영어로 설명하는 거 어렵습니다.


일단 스페어 타이어를 달고 어디든 안전한 장소까지 이동한 뒤 해결하는 게 더 현명합니다.
또 세단차량은 트렁크 바닥에 스페어 타이어가 있지만 밴이나 몇몇 SUV는 어디에 있는지
정말 찾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전에 스페어 타이어와 교체장비의 위치와 사용법을
꼭 익히십시오. 먼저 언급했듯이 확률적으로 타이어 사고는 한번은 경험한다고 생각해야 할
듯 합니다. 그리고 렌터카 빌리실 때도 타이어 모델 체크하는 게 좋습니다. 견인서비스를
제공하는 트리플A 서비스도 꼭 가입하세요. 가입하면 호텔 등 할인혜택도 많아 금방 본전
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