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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슈미트부터 스티글리츠까지, 소통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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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인공지능)가 저널리스트의 일을 빼앗기에는 아직 넘어야할 단계가 많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겁니다.”


알파고로 한창 AI의 현실화를 알린 장본인인 에릭 슈미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상당히 의외였습니다.
저널리스트의 일은 복잡한 판단을 요하는 인간 지성의 내적 영역에 해당하는 일이고, AI는 정보의
수집과 Summary 같이 현재 구글이 이미 구현해내고 있는 외적영역에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습니다. 물론 저널리즘스쿨 학생들 앞에서 ‘AI와 저널리즘’이란 주제로 한 강연이었
으니 어느 정도는 립서비스 성격이 있었을 겁니다.


1시간 정도의 짧은 강연이었고 청중이 대부분 학생이었던 만큼 좀 느슨했지만 그래도 구글 지주사
회장 에릭 슈미트는 구글이 AI기술개발에서 세웠던 원칙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첫째는 모든
사람들, 부자든 빈자든 어느 계층이건 접근 가능한(accessible) 기술이 돼야한다는 것, 그리고
둘째는 군사적용도로 개발하거나 그런 용도로 전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 세 번째는 이 기술을 자신
들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었습니다. 세 번째 조건 관련해서는 영화 속의 Super
Evil이나 미치광이 과학자들 사례까지 곁들이는 가벼운 농담도 했습니다.



에릭 슈미트는 또 앞으로 AI의 발전 방향과 관련해서도 설명했습니다. 앞으로 AI는 알파고 같이
특정 게임이나 아니면 번역, 운전 등의 특정 기능을 하는 좁은(narrow)AI가 아니라 일반적
(general) AI를 향해 투자와 개발의 방향이 이어질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이 일반 AI 개발은 그러
나 역시 몇 단계의 넘어야할 해결과제가 있다며 그 한 사례로 인간들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여러
가지 간단한 판단기준들을 AI가 활용하게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을 보고 히
스테릭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사람에게는 지극히 쉬운일이지만 Computer가 그것을 처리하게 하려면
수천가지 사례를 축적해 DB화해야 한다며 이런 ‘사소한’ 판단기준들이 인간에게는 너무나 많은
만큼 아주 힘들고 지난한 과정이 될 거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사실 이쪽 업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상식적인 얘기겠지만 초보자의 흥미는 적절히 채워준
시간이었습니다. 끝나고 나서 긴 질문할 실력은 어차피 안 되니 다른 참가자와 함께  간단히 “알파
고와 이세돌 혹은 다른 한국인 기사와의 재대결 계획은 있냐”고 물었더니 “이미 얘기되고 있는 줄
안다”는 답변을 듣기도 했습니다.


이채로웠던 것은 에릭 슈미트 같은 거물의 강연회가 열린 방식이었습니다. 대략 한 1주일 전쯤에야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 몇 개가 교내에 붙여지고 저널리즘스쿨의 홈피 이벤트 메뉴에 다른 행사들과
마찬가지로 작게 올라있던 게 홍보의 전부였습니다. 물론 참가등록을 하려하니 신청이 다 차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실제 강연장에 가보니 몇 자리도 많아 바로 들어갔고 100명 정도의
청중이 모인 의외로 ‘작은’ 강연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널리즘스쿨이나 비즈니스스쿨에선 거의 매일 업계의 주요 인사들이 참여하는 강연이
열리고 있습니다. 작년 가을학기 이후만 해도 코피 아난 전 유엔총장, 뉴욕타임즈 마크 톰슨 사장,
NBC 메인뉴스 앵커 레스터 홀트 등의 강연이 이어졌습니다. 물론 아무리 거물들이라고 해도 한 두
시간 남짓의 강연에서 그들의 있는 현장의 주요문제와 해결책을 정리해주지는 못했습니다. 제 이해
력이 딸린 탓도 있겠지만 현재 업계의 주요문제를 간략히 소개하거나 현재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자
신의 견해를 밝히는 정도의 평면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학생들 입장에서
는 교과서에 나오는 사례의 주인공들이 실제 어떤 생각과 경험을 갖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실제 질
문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점에서 가치는 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는 만큼 더 얻어갈
수 있다고 할까요? 더구나 개별적인 강연 하나하나는 지식적 가치가 작더라도 이런 대화의 자리가
항상 있다는 것이 학생들에게는 항상 사회적 관심을 깨우는 자극제가 될 수 있어 보였습니다.



지난 2월 컬럼비아대의 극장에서 있었던 ‘99 Home’라는 영화 상영회도 그런 한 사례입니다. 이
영화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발생이후 미국에서 최대 8백만 가구가 은행들에 의해 집을 차압당하
고 쫓겨났던 사태를 다루고 있습니다. 금융위기는 은행들의 탐욕과 실수로 벌어졌는데 정작 자산
의 거품이 빠지자 은행들은 담보로 잡았던 집을 빼앗아 손해를 줄였고 모기지대출을 이용한 대다
수 미국소시민들만 나락으로 떨어진 사건입니다. 제목 ‘99Homes’는 언제나 이익을 독점하는
1퍼센트의 상위권 부자들과 나머지 99퍼센트의 대조적 상황을 비유하는데 이 ‘1퍼센트와 99퍼센트’
의 비유는 원래는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가 미국의 심화되는 불평등을 지적하기 위해 쓰면서 유명
해졌습니다.


그런데 이 행사는 아주 적절하게도 영화 상영에 이어 이 영화의 감독과 스티글리츠 교수의 대담
으로 펼쳐졌습니다. 영화감독인 라민 바흐러니도 컬럼비아대 영화과 교수이고 스티글리츠도 컬럼
비아대의 교수이다보니 가능했던 행사이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감독은 스티글리츠의 저서를 읽고
영감을 얻어 주택 차압이 한참 벌어지던 플로리다로 가서 현장조사를 해서 각본을 잡게 됐다는 사
연을 얘기하며 스티글리츠에게 감사를 표시했습니다. 스티글리츠도 자신의 학술적인 성과가 이렇게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로 나온 것에 만족해 하며 미국의 경제구조가 어떻게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고 정부도 이 구조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자신의 지론을 다시 한 번 청중들에게 설명했습니다.


청중들도 영화학과와 경제학과 학생들이 두루 섞였고 지역주민들도 참여해 영화와 대담을 경청했
습니다. 심지어는 ‘혁명가 클럽’이라는 학생 써클 회원들도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질의응답
시간에 스티글리츠에게 미국의 불평등을 혁파하기 위한 자신들의 방안에 동조를 구하는 아주 장황
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고 행사가 끝나고는 청중들에게 자신들의 급진적 주장을 담은 유인물을 배포
하기도 했습니다. 잠시 제가 겪었던 90년대 한국 대학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기도 했습
니다.


비즈니스스쿨과 저널리즘스쿨이 제공하는 현업인의 강연이나 미국의 사회문제를 다룬 대담이나
방향은 다르지만 대학이 학생들에게 사회를 보는 다양한 관점과 토론의 기회를 다양하게 제공하는
노력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해진 강의 외에도 학생들의 지성을 채울 다양한 채널을 주는 것이
고 조금 확대해서 본다면 사회의 다원성을 키우는 대학의 역할이라고 볼 수도 있어 보였습니다.
외부인이자 언어적 장벽 때문에 제대로 동화되진 못했지만 이런 분위기를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었
던 것은 저에게도 의미가 컸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