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보기

아포스티유(apostille)

by

귀국을 일주일 앞두고 갑자기 발등에 불똥이 떨어졌습니다. 초,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한국 학교로 전학시켜야 하는데 미국 학교 기록에 대해 ‘아포스티유(apostille)’ 확인서라는 것을 받아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미국 학교 성적증명서와 재학증명서를 주미 한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인증 받아야 국내 학교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대사관에서 이런 업무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급해졌습니다. 일주일 정도 시간 있으니 대사관에 하루 가서 하면 되겠거니 생각하고 아이들 성적표와 재학증명서만 발급받아놓고 기다리다가 날벼락을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설상가상, 아포스티유 인증을 받는데는 일주일 시간으로 부족하고 본인에게만 발급해주기 때문에 귀국하면 아포스티유 인증을 받을 길이 없다는 말에 더 급해졌습니다. 귀국 뒷정리를 하려면 수 십 가지 자질구레한 일들을 챙기기에도 하루 하루가 부족한데 최소한 10일 이상이 필요하다는 일이 불거졌으니 막막했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아내와 인터넷을 뒤지고 여기저기 비숫한 처지에 있을만한 사람들에게 수소문하며 아포스티유 인증을 어떻게 받는지 취재해 봤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준비해야 하는 서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고 절차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모두 말이 달랐습니다. 아포스티유 인증을 받았다는 사람은 이미 귀국하고 없어서 물어볼 수도 없었습니다.

일단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아포스티유란

“협약에 따라 문서의 관인이나 서명을 대조하여 진위를 확인하고 발급하는 것을 가리켜 아포스티유라고 한다. 외국에서 발행한 문서를 인정받기 위해, 문서를 국외에서 사용하기 위해 확인을 받는 것을 아포스티유 확인이라 한다. 아포스티유가 부착된 공문서는 아포스티유 협약 가입국에서 공문서로서 효력을 갖게 된다.“

라고 돼 있을 뿐 더 이상 현실적인 도움은 되지 못했습니다. 또 아포스티유 확인서 발급을 대행해준다는 업체들 광고가 더 헷갈리게 했습니다.

여기에다 큰 아이가 다니던 학교 직원들까지 속을 썩게 만들었습니다. 이메일로 분명히 성적증명서(transcript)와 재학증명서(proof of enrollment)를 발급해달라고 교감에게 요청했는데 막상 집에 와서 봉인된 봉투를 뜯어보니 성적증명서와 재학증명서는 없고 입학 당시 제출했던 한국 서류들만 잔뜩 넣어놓았던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다시 학교에 찾아가 요청한 대로 다시 발급해달라고 했지만 엉뚱하게 “봉인된 봉투를 왜 뜯었느냐?”, “이런 서류를 우리는 발급해줄 수 없다”, “방학 중이라 12시면 업무가 끝나는데 지금 11시 반이라 바빠서 못해주겠다.” “내 일이 아니니 나에게 묻지 말아달라”는 둥 이 사람들이 학교 직원 맞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도 안되는 말들을 늘어놓는데 어이가 없었습니다. 아내가 다른 학교에서 발급받은 서류들을 보여주며 다그치자 할 말이 없었던지 다음 날 9시에 다시 오라고 해서 겨우 서류를 챙길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하루를 까먹었습니다.

은행에서 먼저 공증인 인증을 받아가야 한다고 해서 은행들을 찾았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주거래 은행인 BOA(Bank of America)를 찾아갔지만 서류에 직접 사인한 사람을 데리고 오면 공증을 해주겠다는 둥 어이가 없게 만들었습니다. 한국 사람이면 말이 좀 통할까 싶어 애난데일에 한국인 직원들이 여럿 있는 BOA 지점에 가서 한국인 직원과도 상담했지만 “자기들도 이런 건 잘 모르겠다.” “인증 도장을 찍을 수 있는 별도의 양식을 가져와라” 는 둥 별로 도와줄 마음이 없어보였습니다. 이번에는 아예 계좌는 없지만 한국계 은행을 찾아갔습니다. 상담은 친절하게 해주었지만 여기에서도 명확한 답은 얻을 수 없었습니다.

은행들을 돌아다니다가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아내와 아포스티유 인증을 가지고 걱정스럽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을 한 아주머니가 듣고 우리에게 물어왔습니다. 자기도 한국에 아이를 보내야 하는 데 어떻게 하는 거냐고 하시는 데 대답해줄 말이 없었습니다. 답답한 심정에 법률사무소에도 전화해서 도움을 받을까 했지만 오히려 상대편에서 꼬치꼬치 물어보며 우리한테 정보를 캐내려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결국 결론은 ‘맨땅에 헤딩’이었습니다. 이제 여기저기 물어보는 것을 그치고 본격적으로 자체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자체 조사가 늦어진 것은 영어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습니다. 법률적인 내용을 영어로 복잡하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부담이 지레 커서 미뤘던 것입니다. 이렇게 변죽만 울리다가 먼저 아포스티유 인증을 해준다는 버지니아 주정부 사무실을 인터넷에서 찾아 전화를 했습니다. 담당자가 성적표와 재학증명서에 반드시 학교 관계자의 사인을 받아오고 주 정부가 인가한 공증인(notary public)의 공증을 받아오면 아포스티유 확인서를 발급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담당자로부터 직접 말을 들었지만 어떤 이들은 여권을 보자고 하거나, 거주 증명을 보여달라거나 해서 거절당해 다시 돌아갔다는 등등 이야기들도 있어서 마음을 편치 못하게 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공증업무(notary service)를 하는 곳을 찾았더니 은행 외에 UPS가 있었습니다. UPS도 모든 사무실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공증업무를 하는 UPS 사무실이 따로 있었습니다. 무료로 해준다는 은행 공증을 포기하고 UPS에 갔습니다. 은행에서 덴 경험 때문에 이곳에서도 추가 서류를 요구하지 않을까 했는데 군말없이 다 알아서 공증을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UPS 직원이 원본에 도장을 찍으면 손상된다면서 더 큰 사이즈의 복사용지로 카피한 후 사본에 원본 대조 도장과 공증인을 찍어주면서 이거면 된다고 했습니다. UPS 공증은 건당 5달러씩이었습니다.


br>
재학증명서에 대한 공증인(notary public)의 공증 견본
(아래 오른쪽이 원본 대조필, 왼쪽이 공증 도장, 재학증명서 내용은 가렸음)

이렇게 간단한 것을…, 허탈했습니다. 은행들은 왜 그렇게 이것저것 따지고 이유대며 해주지 않았을까요? 무료라서? 귀찮으니까?
UPS에서 공증인이 인증한 서류를 가지고 차로 1시간 40분 정도 걸려 리치몬드의 주 정부 사무실을 찾아갔습니다. 이 건물은 정면에 Supreme Court of Appeal이라고 쓰여 있으며 뒤편으로 돌아가면 입구가 나오고 검색대를 통과하면 1층 오른쪽에 아포스티유 인증을 해주는 Authentication Office가 있습니다. 이곳에 찾아갔을 때는 기다리는 사람이 없었고 신청서를 작성한 뒤 15분만에 아포스티유 확인서를 가지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알고 보면 참 쉬운데 이걸 알기까지가 이렇게 힘들고 어려웠나 싶었습니다. 가는 날까지 당하는구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br>
Secretary of the Commonwealth’s Office Autentication Division
1111 East Broad St. 1stFl
Richmond, Virginia 23219

문제는 많은 한국 학생들이 미국 학교를 다니다 돌아가지만 아포스티유 제도에 대해 정확히 모르고 있다가 나처럼 허둥대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미 한국대사관 홈페이지에서 퍼온 설명을 거의 그대로 인용해보면 아포스티유는 ‘외국 공문서에 대한 인증의 요구를 폐지하는 협약’으로 이미 2007년 7월 14일 발표되어 시행되고 있는 제도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외국 공문서를 확인하는 절차를 간소화한 것입니다. 이 협약 이전에는 출생이나 사망, 혼인증명서, 특허증, 판결문, 각종 허가증서, 학교 성적증명서, 재학증명서, 졸업증서 등 미국에서 생산된 문서가 한국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미국 공증인의 공증 외에 주 정부의 확인에다 미 국무부와 우리나라 공관의 영사확인까지 받아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이 협약에 가입함으로써 이 모든 절차가 생략되고 주 정부나 국무부의 아포스티유 확인서 한 장으로 해결된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문서도 공증을 받아 아포스티유 인증을 받으면 미국에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아포스티유는 결국 문서 확인절차를 쉽게 하자는 것인데 모르니 어렵고 복잡하게 느낀 것입니다.


br>
아포스티유(apostille) 확인서

우리나라 초등학교의 경우 미국 초등학교에서의 기록에 대해 아포스티유를 요구하지 않는 곳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대학 등에서는 반드시 요구합니다. 아포스티유 확인서가 없으면 성적증명서나 재학증명서, 졸업증명서가 한국에서 공식 문서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기초적 사실도 알지 못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이번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포스티유 확인서는 우편을 통해 받을 수 있는데 이 때는 서류와 신청서, 반송용 봉투, 수수료 등을 보내고 확인서를 받는데까지 10일 이상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빨리 끝내려면 주 정부 사무실까지 차로 여러 시간 걸려 다녀와야 하는데 미리 준비하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은 학교로부터 성적증명서와 재학증명서 등 서류를 받을 때 반드시 서명이나 씰(Seal)이 있는 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학교들에 따라서는 가끔 서명이나 씰(Seal)이 없이 단순히 서류 원본을 복사만 해서 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는 반드시 담당자의 서명을 요구해야 합니다. 담당자 서명이 없으면 혹시 공증인이 이를 모르고 공증해주었더라도 아포스티유 확인서가 발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포스티유 신청서류가 한번 거부당하면 다시 우편으로 10여 일 이상 더 걸리든지 다시 주 정부 사무실을 다녀와야 하는 고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전혀 몰랐던 아포스티유 확인서가 이렇게 중요한 지는 이번 경험을 통해 실감했습니다. 하마터면 한국에 돌아가서 아이들을 학교에 입학시키지 못할 수도 있었으니까요. 앞선 장황한 설명이 복잡하게 느껴질까 마지막 정리하고 맺겠습니다.

>>

1. 학교에서 성적증명서, 재학증명서, 졸업증명서 등을 발급받는다. 이 때 반드시 담당자사의 서명을 확인한다.
2. 주 정부가 인정한 공증인(notary public)의 공증을 받는다. 공증은 주 거래 은행이나 UPS 사무소 등
3. 주 정부의 Authentication Office를 직접 찾아가거나 우편을 통해 발급 신청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