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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어느날 “왜 남자끼리 뽀뽀해요?”라고 물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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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어느 날 “왜 남자끼리 뽀뽀해요?”라고 물으면

미국에서는 얼마 전 인기 시트콤 ‘윌 앤드 그레이스'(Will & Grace)가 종영했다. 이 시트콤은 원래 1998년 미국 NBC방송에서 처음 방영된 이후 2006년 8번째 시즌을 끝으로 종영했지만 11년 만인 2017년 시즌 9로 돌아왔다가 시즌 11을 마지막으로 최근 막을 내렸다. 미국 시트콤 사상 최초로 동성애자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며 성소수자 이슈를 부담스럽지 않게 다뤄 화제를 모은 이 작품은 2001~2005년 미국의 18~49세 시청자 사이에서 가장 인기를 끈 시트콤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사진)윌 앤드 그레이스'(Will & Grace) NBC 홈페이지 캡처

내가 처음 이 시트콤을 접한 것은 대학 4학년이던 2000년 여름방학을 맞아 당시 로드아일랜드 주의 한 대학에 방문 연구원으로 계시던 아버지를 방문했을 때였다. 잘생긴 변호사인 동성애자 윌 트루먼과 그의 대학 동창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그레이스 애들러가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룸메이트로 지내며 각자의 삶을 일구고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이 에피소드마다 유쾌하게 펼쳐졌다.

뭐든 할 수 있을 줄 알았던 20대 초반의 나는 세련되게 차려입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뉴욕 도심의 일터로 향하는 전문직 주인공들의 삶을 부러워하면서 훗날 킬힐을 신고 당당하게 맨해튼을 활보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나에게 그 시트콤이 특히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삶의 고비마다 서로에게 든든한 기둥이 돼주는 두 친구의 순수한 우정이었다. 남녀 간에도 그렇게 완전한 우정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자신의 삶과 사랑에 최선을 다하는 주인공 윌의 모습은 왠지 정겹고 친근했고 그동안 내 주위에서 성소수자를 만날 기회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갖고 있던 막연한 거부감을 걷어내는 데에도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실제로 2012년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은 한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윌 앤드 그레이스’를 언급하면서 역대 누구보다 성소수자에 대한 미국 대중의 인식을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1994년 후반 내가 미국을 떠날 때만 해도 성소수자 문제를 대하는 미국 사회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온 이후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드러낸 이는 없었다. 간혹 드라마나 시트콤에서 스치듯 동성애에 관한 언급이 있기는 했어도 당시 성소수자 문제는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주제였고 그래서 선생님이나 친구 누구와도 그런 주제로 편안하게 대화를 나눠본 기억도 없다.

그러다 내가 9학년에 재학 중이던 어느 날 존경하던 지리학 선생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잘생기고 깔끔한 흑인 남성이셨는데 평소 그리 다정다감한 분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따뜻한 말을 건넬 줄 아는 속 깊은 분이셨다. 그때 나는 한창 학습 의지를 불태우던 시절이어서 매일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했고 덕분에 성적도, 선생님과의 관계도 좋았다. 언제부터인가 선생님이 며칠씩 자리를 비우시더니 어느 날 아침 갑자기 교장 선생님이 교내 방송을 통해 ‘미스터 보이드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전했다. 매일 만나던 선생님이 돌아가신다는 건 상상도 못 했던 일이어서 충격이 컸다. 며칠 뒤 학생들 사이에서 선생님이 동성애자였고 에이즈를 앓고 있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진위를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나에게는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죽음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그 시절 나에게 동성애란 그저 지옥에 떨어져야 하는 무서운 죄였고 에이즈는 그런 죄인들이 이 세상에서 받는 가혹한 형벌일 뿐이었다. 내가 존경했던 선생님이 동성애라는 끔찍한 죄를 저지르고 지옥에 떨어져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힘들었다. 충격이 어느 정도 가시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매일 아침 선생님 코앞에 앉아 수업을 들었는데 혹시 선생님이 나에게 침을 튀기지는 않았는지, 선생님께 제출했다가 돌려받은 과제물에 병균이 묻어있었던 것은 아닌지….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울 만큼 어리석고 한심하지만, 그때의 나는 지옥에 떨어졌을 선생님의 운명에 마음 아파하면서 혹시 선생님에게 병이 옮지는 않았을까 쓸데없는 걱정에 밤새 뒤척였다. 지금의 내가 네이버나 구글도 없던, 인터넷 시대 이전 그때의 나를 위로해줄 수 있다면 누구든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행운이고 그래서 그 상대가 동성이든 이성이든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그러니 선생님 걱정에 너무 힘들어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줄 것 같다.

2019년 여름, 연수생으로 다시 미국 땅을 밟게 된 나는 예전 그때의 나보다는 세상을 더 많이 알고, 더 열린 마음도 갖게 됐으니 놀랄 일도 없을 줄 알았다. 그렇지만 20여년이라는 세월은 아마도 너무 길었나 보다. 미국은 그새 또 많이 변해있었다. 요즘 나는 즐겨보는 시트콤에서 동성 출연자들이 서로 아무렇지도 않게 키스하고 아이들도 언제든 볼 수 있는 대낮에 재탕 삼탕 반복되는 초콜릿 광고에서 여성 출연자가 또 다른 여성에게 초콜릿을 건네며 품에 안기는 모습을 볼 때마다 혼자 괜히 민망하고 부담스럽다.

보수적인 미국 남부 소도시의 상황은 좀 다를지 모르겠지만 워싱턴 DC의 거리나 내가 사는 동네 인근 대형 쇼핑몰을 거닐다 보면 다정하게 손을 잡거나 애정 표현에 스스럼없는 동성 커플들을 종종 보게 되는 데 그럴 때면 지금도 난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동성애자인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 주 사우스벤드 시장이 나름대로 선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미국 사회의 이런 달라진 분위기도 한몫을 했을 것 같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미국에서 첫 여성 대통령보다 성소수자 대통령이 먼저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가족과 미국으로 연수를 오게 된다면 어느 날 아이가 뜬금없이 “미국에선 왜 남자들끼리 손잡고 뽀뽀하고 그래요?”라고 물을 때 “응, 그건 말이야”라며 엄마, 아빠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성소수자에 대해, 다양성에 관해 설명해줄 준비가 돼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지금도 그럴 준비가 안 된 나는 아이가 없어서 다행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