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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을 위한 런던 정착 안내서 – 휴대전화 및 계좌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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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집 구하기부터 안내했지만, 만약 누군가 집을 구하지 않은 채로 런던에 온다면,
즉 그래도 내눈으로 집을 봐야겠다는 정신으로 단기 숙소에 머물며 뷰잉하는 걸 선택한다면,
그분들께 권할 게 있다. 집 구하기만큼 서둘러야 할 것이 있다. 휴대전화 개통과 계좌 개설이다.



휴대전화 개통은 상대적으로 쉽다. 장기 거주자들은 2년 약정, 페이 먼슬리(pay monthly) 등을
선호하겠지만 1년짜리 연수자들로선 페이 애즈 유고(pay as you go) 즉 선충전 방식이 만만하다.
개통도 간편하고 쓰는 요금을 따져보면 큰 차이가 안 나기 때문이다. 런던 물가가 살인적이라
해도 한국보다 싼 것 중 하나가 통신비용이다(물론 통신의 질은 논외로 하고. 한국 같은 IT 천국
은 세상에 없다). 유학생들이 많이 쓰는 기프가프(giffgaff) 통신사의 경우 12파운드짜리 구디백
(요금제의 일종)으로 한달간 문자 무제한 인터넷 무제한 전화 250분 사용 가능하다(최근 고지된
바에 따르면 혜택이 조금 달라질 것이란다. 정확한 요금제는 각사 인터넷 페이지 참조).
나도 기프가프를 쓰는데 런던 시내에선 3G가 다 터지고 외곽에 가야 가끔 끊김 현상이 발생하는
정도다(단, 지하철에선 전화도 인터넷도 안된다. 한국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한국에서 쓰던 전화기이건, 영국용으로 준비한 전화기이건(재단에서 지원해준 LG G플렉스 전화기
를 아주 잘 쓰고 있다. 휘어진 형태가 이채로와서 현지인들이 자주 어디 제품이냐고 물어본다는!!)
영국에선 현지 심카드를 써야 한다. 보다폰, 기프가프, 쓰리(3) 등 주요 통신사들은 미리 신청하면
영국 내 주소로 무료 심카드를 배송해준다. 내 경우 출국 며칠전 기프가프 홈페이지에 신청했더니
도착날 런던 집에 배송돼 있었다. 한국 심카드를 빼고 이걸로 갈아끼운 뒤 안내대로 절차를 거치면
영국 전화번호가 생긴다. 주소와 전화번호, 영국 생활의 첫걸음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게 계좌 개설이다. 영국 계좌가 꼭 필요한가. 재단지원금이야 한국 내
계좌로 받아도 될 것이다. 하나비바카드 등 해외 인출이 가능한 체크카드가 있으면 아무 ATM에서나
파운드를 뽑아 쓸 수 있다. 비자나 마스터 등 신용카드가 웬만한 데선 통하니까 현지 계좌 없이
1년 버티긴 일도 아니다. 그런데 영국계좌가 유용한 것은 영국식 체크 카드 즉 데빗 카드(debit
card)를 이용하면 많은 것이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선 오프라인이건 온라인이건 결제방식에서 데빗 카드냐 나머지냐로 나뉘는 때가 많다.
나머지에는 현금과 신용카드가 포함되는데 황당하게도 현금보다 데빗 카드 이용시 할인이 될 때가
많다. 내 경우 테이트모던 뮤지움에 가서 연간 회원에 가입하는데 데빗 카드는 62파운드 현금 및
신용카드는 69파운드란다. 7파운드 무려 1만2천원 상당의 차이가 났다. 저가항공 결제나 뮤지컬
등 공연예매 때도 데빗 카드가 할인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국에서 현금 내면 깎아주는
시스템에 익숙하던 터라 처음엔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신용화된 현금을 투명하게
유도하는 이 시스템이 더 합리적인 듯하다. 적어도 체크카드 이용을 유도하는 정책이란 게 연말정산
때 푼돈 몇푼 더 돌려주는 식의 한국보단 말이다.



영국 계좌개설이 어렵다는 경고를 하도 많이 들어서인지 불과 일주일만에(!) 데빗카드를 쥐었을 땐
‘별것 아닌데’ 싶었다. 물론 은행에 두어번 찾아가는 수고는 들였어야 하지만. 연수자들은 대개
학교에 신분을 등록한 상태이므로 학교가 레터만 내주면 주거래 은행 에서(나같은 경우 SOAS 건물
맞은편의 HSBC) 손쉽게 계좌를 틀 수 있다. 그러므로 일단 런던에 도착하면 학교에 ID카드를 신청
하면서 은행 레터도 부탁할 일이다.



한국계좌와 첫 송금거래 땐 시간을 넉넉히 잡는 게 좋다. 내 경우 처음 한국계좌에서 HSBC계좌로
이체한 2천 파운드가 무려 12일 지나서야 내 수중에 들어왔다. 중간에 뱅크 홀리데이 같은 변수가
있긴 했지만 실시간 계좌거래가 일반화된 요즘 상식으론 믿기 힘든 일처리다. 이 때문에 한국의
우리은행에도 여러번 전화하고 HSBC에도 몇차례 찾아갔지만 양쪽 다 ‘에러코드는 없으니 기다려
보자’는 답 뿐이었다. 중계은행(릴레이 은행)에서 지연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내놨지만 결국
의문을 풀 순 없었다. 이밖에도 인터넷 뱅킹 오류 등 다양한 변수가 있을 수 있으니 첫 송금은
여유 있게 해야 한다. 이후론 순조롭게 잘 이어졌다.



계좌 개설부터 첫 송금까지 넉넉 잡고 한 달을 예상한다면, 처음 런던에 올 때 파운드를 상당액
환전해 오는 것도 요령이다. 런던 집들은 집세 자체는 주세(p/w)로 계산하면서 받을 땐 월 단위로
끊어 받는 경우가 많은데 첫달치 선월세와 이만큼의 보증금, 그리고 한달치 생활비를 생각해야
한다. 나는 1존 핌리코(pimlico)역에 고시원 같은 방을 플랏 셰어(flat share)하면서 월 630파운드
에 계약했는데, 보증금 300파운드까지 내고 이런저런 세간살이를 장만하다 보니 환전해온
2000파운드가 한 달도 못돼 동이 났다(신용카드 사용 별도). 그나마 데빗 카드를 빨리 발급 받아서
첫 이체를 서두른 게 도움이 됐다.
 
다시 말하지만 현금과 신용카드만으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다. 그래도 데빗 카드가 있으면
씀씀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다 불필요한 동전이 쌓이는 걸 방지할 수 있다. 또 대부분 마트에선
계산원에게 돈 내는 줄과 기계로 직접 계산하는 줄이 나뉘는데 후자가 더 빨리 진행되고 이 때
현금보단 데빗 카드로 계산하는 게 간편하다.



쓰고보니 해외 체류 경험자들에겐 다 아는 상식 같은 내용이다. 그래도 혹시 나같이 ‘해외 물
먹고 사는 게 처음’인 초보 생활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구구절절 썼다. 참, 영국에서 물은
생수를 사먹어야 한다. 파리를 비롯, 대부분 유럽 도시들처럼 런던 역시 오래된 수도관으로 공급
하는지라 물에 석회가 그득하다. 브리타 등 정수기를 통해 걸러먹기도 하지만, 생수가 그리 비싸지
않아서 사마실 만하다. 밥 짓고 국 끓이는 것도 생수로 했다.



다음번에는 각종 문화생활 (저렴하게) 즐기기를 소개하겠다. 런던은 그야말로 문화로 넘쳐나는 곳
이고 한국과 비교해서 각종 티켓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그래도 제값 주고 보기 부담스러운 공연
들이 많다. ‘싼 게 비지떡’이라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정리해서
알려드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