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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북경일기 5(눈오는날 북경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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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눈이 북경의 교통을 시험하다”

지난주말(12월8일) 북경청년보(北京靑年報) 1면톱 기사제목입니다. 서울도 큰눈이 내리면

어김없이 교통대란이 일어나니 특별한 기사도 아닙니다.그러나 우연히 전날 저녁 시내에서 약속이 있었던터라 북경의 교통문화의 일단을 현장에서 볼수 있었습니다.

이날 눈은 오후 2시부터 오후 5시까지 3시간 정도 내렸습니다. 그러나 눈발은 그리 세차지 않아 적설량은 1센티미터 정도였을 겁니다. 서울 같으면 거리 곳곳에 염화칼슘 뿌렸을 것이고 그다지 큰 교통난은 없었을 정도의 적설량이었습니다.

그러나 북경시정부의 접근방식은 우리와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오후 2시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북경-상하이,북경-천진등 주요고속도로와 북경외곽으로 빠지는 국도등 5개 주요외곽간선도로를 폐쇄한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물론 도로관련법령상 일정량이상의 적설량이 예상되면 무조건 주요간선도로를 봉쇄하도록 돼 있기때문입니다. 도로 제설작업을 하고 그래도 폭설이 내릴경우 폐쇄하는 한국의 대설대책과 다른 부분입니다. 이것은 사소한 차이같지만 사실은 중국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대목입니다. 다시말하면 중국인들은 문제해결방법으로 극단적조치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면에는 관련규정이 버티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과 정치적사건이나 무역마찰등이 생기면 극단적해결방법을 먼저 제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 아니면 안된다 이런식입니다. 절충은 나중일입니다.

그럼 다시 눈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눈이 쌓이기도 전에 외곽도로 봉쇄부터 했으니 차량들은 자연히 북경시내로 몰려들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때문에 북경시내는 오후 2시를 전후해 곳곳에서 교통마비현상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교통난을 더욱 가중시킨 원인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북경을 여행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시내 중심가나 대로변을 제외하곤 사거리에 신호등이 별로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직진신호만 있고 좌회전신호가 없는게 태반입니다. 여기에다 자전거와 보행자가 편의대로 대로를 활보합니다. 한마디로 스스로 알아서 좌회전하고 건너가라는 식입니다. 규정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에겐 이같은 교통문화는 언뜻 모순(矛盾)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깊은뜻이 담겨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모든 규정이 실사구시에 부합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이는 등소평 (鄧小平) 의 흑묘백묘 (黑猫白猫)론에 기인합니다.

때문에 거리차량도 많지 않은데 좌회전 우회전 신호를 만들필요가 없다는 논리죠.

어쨋든 이같은 교통현실 때문에 이날 북경의 교통은 사상최악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저는 이날 북경중심가에서 친구들과 저녁약속이 있었습니다. 오후 6시 약속이라 5시에 택시를 타려고 거리로 나갔습니다.그러나 평소 수십대씩 줄지어 승객을 기다리고 있던 택시는 단 한대로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시내교통이 어떤 상황인지 알수가 없었죠. 30분을 기다려도 택시를 잡을수 없어 중심가로 나가는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10여분후 버스는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에 들어섰고 이후 6시간동안 전 버스안에서 금요일저녁을 즐겨야 했습니다. 물론 약속장소엔 근접도 못했고 탑승한 버스종점에서 내려 다시 같은 버스를 타고 귀가해야 했습니다. 그나마 6시간만에 귀가할 수 있었던 것은 집을 2키로정도 앞두고 차에서 내려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집까지 걸어오면서 사거리를 지나치며 다시한번 놀랐습니다.사거리 반대편 도로는 훵하니 뚫려 있는데 사거리에서 차들이 서로 엉켜 양보를 안하다 보니 이쪽 저쪽 모두 차가 움직이질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서울의 사거리 교통문화와 똑같던지….

다른게 있다면 외곽지역 사거리에는 좌회전신호가 없다보니 직진차량과 반대편 좌회전 차량이 엉킬수 밖에 없었다는 거죠. 굳이 좌회전 신호를 줄 필요가 없다는 중국식 교통문화가 낳은 최악의 교통대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날 정작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북경시민들의 놀랄만한 인내심(?)이었습니다. 사거리에서 차가 뒤엉켜 수시간을 꼼짝 못하는데도 서로 삿대질하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수 없었습니다.

비좁은 버스안에서도 불평소리 한마디를 듣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면 웃기에 바빴습니다. 이래서 중국은 한편으로 무시하고 폄하하다가도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