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보기

‘실수 연발’ 미국 정착기-1

by

미국에 도착한 뒤 정착을 하는 과정에서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역시 부모님 말씀 잘 들을걸… 소싯적 영어 공부 더 열심히 했으면 이런 X고생 좀 덜 했을 텐데…’였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이런 저런 시행착오가 영어실력 부족에서 오는 사소한 실수에서 시작해 결과는 아주 엉뚱하게 흘러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인가 아버지인가를 따지기 전에 망신을 당할 실수는 피해가는 게 상책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수십 년을 살던 곳을 떠나 전혀 다른 곳에서 삶을 살아가는데 실수 하나 없다는 게 오히려 비정상이겠지요. 하지만 초반 실수가 반복되면 수치심이 쌓이고 정착에 대한 자신감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수록 부부간에 다툼도 잦아지고 아이들과의 관계도 어색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나중에는 다 즐거운 추억이 된다고는 하지만 말입니다.

사실 정착에 대한 연수준비와 정착에 대한 정보는 조금만 검색을 하시면 방대한 분량을 충분히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솔직히 저는 아직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만큼 이곳 사정에 통달한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연수를 준비하시는 분들께 무슨 이야기를 전해드릴까 하다가 제가 겪은 실수 몇 가지 알려드리면 편하게 보시면서 나름 그 안에서 필요한 정보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정확하고 유익한 이야기들은 차후에 좀 더 익숙해지면 전해드리겠습니다.

1. “단돈 70달러에 3인용 소파를 배달까지 해준다?”

처음 도착하면 돈이 솔솔하게 나갑니다. 아니 “귀국하기 전에 길거리에 나 앉는거 아냐?” 할 만큼 날마다 뭉텅 뭉텅 돈이 나갑니다. 아무리 무빙을 받고 싼 집을 계약하고 딜을 해서 저렴한 자동차를 구해도 생각지 못했던 지출이 생기고 결국 계획보다 생활비를 올려 잡아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생활비 규모에 대한 스트레스는 결국 싸고 저렴한 물건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집, 자동차, 가구 이 3가지가 아무래도 가장 큰 지출을 요하게 되죠. 이게 마무리되면 휴대폰, TV 시청료와 전기료, 수도요금 등 각종 유틸리티 비용이 빠져나갑니다. 요즘 기름 값도 많이 올라서 여행을 자주 다니는 연수자들의 특성상 기름 값도 무시 못 합니다. 그리고 9월 아이들 개학이 다가오게 되면 튜터비와 애프터 스쿨 비용 등 교육비가 추가되면서 눈물의 피날레를 장식합니다. 매 항목에서 추가 지출이 생기다보면 생활비는 두 배 가까이 올려 잡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수퍼마켓이나 관광지에서 기껏 2달러짜리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이 미워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하튼 정착 첫 주에 저와 집사람 역시 싼 물건을 구해야 한다는 강박에 근처 쇼핑몰을 두루 두루 돌아다니면서 가격 비교를 했습니다. 당장 소파가 급했는데 괜찮아 보인다 싶으면 300~400달러, 좋으면 1000달러를 훌쩍 넘습니다. 마트에서 소위 ‘대학 자취생용’으로 파는 소파베드나 간이 소파도 200달러 가까이 합니다. 벼룩시장을 통하면 100달러 이하에도 좋은 물건이 나온다고 하는데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그런 물건 구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던 중 갑자기 집사람이 환호를 지르면 물건 하나 건졌다고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 쇼핑몰에 그럴 듯한 소파가 떡하니 올라와 있는데 72.99달러에 배달까지 해준다는 겁니다. 와보시면 알겠지만 소파가격도 가격이지만 이 동네 배달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보통 배보다 배꼽이 더 커서 대부분 직접 날라야 합니다. 미국 집집마다 벤이나 트럭이 한 대씩 있는 큰 이유가 바로 쇼핑 때문입니다. 매장들도 가끔 프로모션을 할 때면 ‘무료배달’을 꼭 내세울 만큼 배달비용 부담이 큽니다. 그런데 배달까지 무료로 해준다니 앞뒤 안 가리고 질렀습니다. 그리고 소파를 사면 어디에 놓을까 행복한 고민을 시작했죠. 그로부터 사흘 뒤 황당한 일을 겪게 되네요. 아래 사진은 쇼핑몰 사이트 캡처입니다.

깔끔한 천 소파 옆에 72.99$가 찍혀있고 그 아래 잘 보시면 작은 글자로 ‘Ship free’라고 체크 돼 있죠. 중요한건 제 영어 실력이 여기까지였다는 겁니다. 아시는 분은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아이템 제목을 좀 더 찬찬히 읽어 봤으면 피할 수 있는 실수였습니다.

결과부터 말씀 드리면 사흘 뒤 받은 물건은 소파가 아닌 ‘소파 커버’였습니다. 택배직원이 조그만 박스 하나 내려놓고 가는데 “이게 소파야 혹시 조립식인가?”하면서 뜯어봤는데 예쁜 소파커버가 차곡 차곡 개어진 상태로 놓여 있더만요. 위 사진에서 소파 뒤에 붙은 Slipstretch가 천으로 만든 소파커버라는데 제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그냥 눈에 와서 박힌 건 Sofa와 72.99$, 그리고 Ship free가 요 세가지가 다였던 거죠. ‘너무 싼거 아냐?’라는 생각이 슬쩍 들기도 했건만 ‘혹시 매진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더 앞서 신속히 결제한 겁니다. 반품하려니 그것도 일이죠. 안 되는 영어로 메일 보내고 반품 배송방법 결정하고 20달러인가 배달비용 내라고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내고(사실 이것도 내가 직접 부치면 절약할 수 있었는데…) 집사람과 서로 네 잘못이네 하면서 얼굴 붉히고.

제가 이 이야기를 먼저 와 있던 변호사 한분께 했더니 웃으시면서 “여기 와서 한 1000달러 정도는 수업료다 생각하세요. 이래저래 억울하게 헛돈 쓰는데 영어가 딸려서 그냥 손해 보는 경우 많아요”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속으로 ‘음 사법고시 붙은 사람도 영어 때문에 실수 한다는데…이 정도 실수는 괜찮네^^’하며 자위했습니다. 지금 저의 집 거실에는 중고로 산 80달러짜리 쓸 만한 소파가 잘 놓여 있습니다.

2. “Please wipe your feet.”

미국에 처음 도착한 뒤 친척 분 집에서 이주일 정도 머물렀습니다. 중산층 주택단지에 위치한 2층집이었는데 미국 사람들 보면서 느낀 게 집에 대한 애정이 매우 강하다는 겁니다. 주말에 남자들은 대부분 집수리나 청소를 합니다. 집에 대한 애정일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흉가’되기 십상입니다. 워낙 토양이 좋고 적당히 비가 오는지라 풀과 나무가 겁나게 자랍니다. 한 이틀 놔두면 풀들이 자라나 모양이 흉해지기 시작하니까요. 그리고 미국 집들 대부분 담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겉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 나름 표시되지 않은 자기들끼리 암묵적인 경계가 있습니다. 저 나무부터는 우리 집, 저 풀숲부터는 너희 집, 그런 식입니다. 자세히 보면 경계를 사이로 묘하게 풀 높이도 다르고 나무를 손질하는 스타일도 다른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풀 높이가 다르다는 건 부지런히 잔디를 깎은 집의 풀 높이가 좀 더 균일하고 예쁘고 그렇지 않은 집은 들쑥날쑥 한데다 잡초도 많다는 겁니다. 잔디에 뿌리는 약품도 종류가 제각각입니다. 제초제, 벌레 제거용, 심지어는 두더지 퇴치용까지 있습니다. 나무도 가지 손질을 안 하면 이리저리 자라나서 잘못하면 허리케인이나 폭풍이 불 때 옆집 위로 넘어져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답니다. 그래서 서로 서로 알아서 민폐 안 끼치게 주의하며 미리미리 가지치기 하며 삽니다. 알게 모르게 이런 게 서로의 이웃을 평가하는 척도가 돼 집 관리 제대로 안하면 능력 없고 예의 없는 사람으로 찍히게 된답니다.

이후 아파트로 이사한 뒤에도 주택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집을 예쁘게 꾸미려는 미국인들을 많이 보게 됐습니다. 특히 저희 집 앞에 미국인 중년 여성이 사시는데 이 분이 좀 깐깐합니다. 뭐라 하시는 건 아니지만 인상도 좀 차가우시고 그다지 살가운 느낌이 드는 분은 아닙니다. 약간 결벽증도 있으신지 현관 발판 청소를 거의 매일 하시는데 진공청소기를 들고 나와 박박 문지르십니다. 집의 위치는 대강 아래와 같은 구조입니다.

발판 청소 며칠 거르면 상당히 지저분해집니다. 풀 조각이랑 각종 먼지들이 붙어버리기 때문이지요. 저희 집은 집안 청소는 자주하지만 상대적으로 발판 청소는 잘 안하는 편인데다 앞집이 늘 깨끗하게 치우니 좀 대비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머릿속에는 ‘현관 더럽다고 욕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내심 하면서도 귀찮아서 잘 안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잠시 외출했다 집에 돌아오니 집사람이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자기가 오늘 현관 발판청소 깨끗이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근심스러운 표정이냐고 물었더니 앞집 아주머니가 자기 집 현관 앞에 메모를 하나 붙여놨더랍니다. 필기체로 날려 써서 뭔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wipe가 있고 feet이 있고 한 거 보니 우리 집 발판 더러우니 좀 닦으라는 경고인거 같아 식겁해서 하루 종일 닦고 청소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우리 집 현관이 아니라 자기 집 앞에 붙여 놓았냐고 물었더니 “아마 우리 집에 직접 붙이며 우리가 기분 나빠 할까봐 나름 배려한 거 아니겠느냐”는 그럴 듯한 해석을 내놓는 겁니다. 말이 된다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현관 위에 거미줄은 키가 안 닿아서 못 없앴으니 나보러 떼어내라고 부탁하는 겁니다. 더운 여름날 삐질 삐질 땀 흘리며 열심히 없앴습니다. 저도 슬쩍 앞집에 붙어 있는 메모를 읽어 봤더니 뭐 집사람 말이 맞는 거 같아 열심히 닦았습니다. 사실 좀 기분이 나쁘기도 해서 청소 싸악 한 다음에 그 메모 밑에 “당신 말대로 청소 다했고 당신 집 위에 붙은 거미줄까지 내가 다 치웠다”라는 답 글을 달아 놓을까도 생각했습니다.

청소 다했더니 중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돌아 왔길래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앞으로 발판 깨끗이 다루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런데 딸아이가 집 밖으로 나가 메모를 읽고 오더니 엄마 아빠 영어 실력 알겠다며 박장대소를 치는 겁니다. 즉 메모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보시니까 뭔 말인지 아시겠죠. “발 닦고 들어오시거나 신발은 벗어 주세요.”라는 방문객들에 대한 안내문입니다. 미국 사람들 카펫 생활이어서 가끔 방문객들이 신발을 신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배달 왔거나 수리공이 왔을 경우 대부분 신을 벗지 않고 들어옵니다. 그런데 의외로 미국 사람들도 이렇게 신발 신고 집에 들어오는 거 상당히 꺼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좀 센스 있는 배달원들은 비닐커버를 가지고 다니면서 집에 들어올 때 신발에 씌우고 들어옵니다.

여하튼 결론은 앞 집 아주머니가 이런 방문객들에 대해 신발을 닦으라고 한 건데 집사람은 발판을 늘 마음에 걸린 채 살고 있던 지라 wipe하고 feet이라는 단어를 본 순간 “발판 좀 닦고 살아라”라는 메모로 지레 짐작 해버린 거죠. 저 역시 집사람 말 듣고 그 메모를 읽으니 “그런 뜻이 맞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문지른 거구요…

얼핏 보면 쉬워 보이시죠? “저것도 모르냐” 라고 비웃으셔도 할 말 없지만 그게 그렇지 않답니다. 여기서 실제로 살다보면 영어를 필기체로 휙 쓰면 쉬운 영어도 그게 한눈에 딱 들어오긴 어렵습니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관공서에서 서류 작성할 때나 은행, 고지서 서류 처리할 때 나중에 보면 이걸 왜 몰랐지 하는 쉬운 영어가 현장에선 바로 눈에 들어오지 않아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잦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국에서 영어는 좀 할 필요가 있네요.^^ 다음에도 실소를 금치 못할 실수 몇 가지 전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