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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큐스리포트5(영어못하는 한국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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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 포트 – 5> 영어 못하는 한국학생



시라큐즈대학 전체 학생 수의 3%가 외국인 학생들이다. 가장 많은 것이 인도학생으로 462명, 한국이 377명으로 2위, 중국이 282명으로 3위다. 일본은 115명으로 6위에 올라와 있다. (2001년 대학자료) 인도 학생들의 영어 발음은 외국인인 우리들이 알아듣기는 참 힘들다. 그러나 그들은 영어로 의사 소통을 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수업시간에 질문을 많이 하는 학생들이 이들 인도인들이다. 중국 학생들의 영어도 훌륭하다. 사람에 따라 독특한 중국식 발음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한국 학생들보다 말하는 영어는 나은 편이다. 그 외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서 온 학생들에게도 영어는 그다지 문제되지 않는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한국 학생들의 영어다. 그나마 한국 학생들이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이 일본 학생들이지만 이곳 대학에는 일본인들의 숫자가 많지 않다. 원래 수업 시간에 발표 안 하기로 유명한 한국 학생들이 영어에 대한 열등감 마저 느끼고 있으니 적극적인 수업 참여는 지극히 힘들다. 물론 여기서 자라난 교민들이나,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낸 한국 학생들은 예외다. 우리 나라에서 멀쩡히 대학을 졸업했거나, 학부 과정을 미국에서 끝내고 석사 과정에 와 있는 학생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시라큐즈대학의 한 입학 담당자가 한국 학생들은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을 뽑겠다고 말을 했을까.



이제 막 끝낸 봄 학기에 나는 Survey of Telecommunication and Information Policy를 들었다. 이 과목은 2번의 리포트와 1번의 Panel Debate로 학점을 매겼다. 그 중 Panel Debate는 최근 이슈가 되고있는 텔레커뮤니케이션 정책을 놓고 다섯 명의 패널이 role play를 하는 것이다. 자기가 맡은 인물, 단체의 입장이 되어서 그 정책을 지지하고, 혹은 상대를 공격하면서 이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를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얼마나 논리적으로 설명하면서 참관자들을 설득해 나가는가 하는 것이다. 약 1시간에 걸쳐 토의가 진행되고, 토론 중 수시로 교수가 패널들의 허점을 공격해 들어온다. 그리고 학생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이 Panel Debate는 주 1회, 3시간 수업 중 1시간 이상을 차지하며, 이 과목 학점의 40%를 결정한다. 내가 속한 패널이 논쟁을 벌여야 하는 전날밤은 정말이지 잠이 제대로 오지 않았다. 준비한 문장을 외어서 될 일이 아니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상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에 대해 영어로 반박을 해야 한다. 나와 같은 팀인 한국남학생이 당일 오전 수업에 1시간이나 늦게 왔다. 평소 무척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인지라, 왜 늦었는지를 물었더니, 오후 Panel Debate 수업이 너무 걱정 되어 아침에 먹은 것을 다 토하고 왔단다. 키 183 센티의 그 덩치가 그렇게 겁을 먹고 있다니 영어 앞에는 장사가 없다.



일상생활 속에서 하는 영어는 그다지 어려울 게 없다. 우리가 살면서 필요한 얘기들이야 뻔한 것 아닌가. 하지만 수업 시간에 하는 영어는 듣기도 말하기도 어렵다. 잘 알고 있는 분야의 강의는 다소 듣는 것을 놓치더라도 그 맥락을 파악하는데 별 무리가 없지만, 생소한 분야에 대한 강의는 가끔씩 내가 어디에 있는지 방향을 잃고 있을 때가 많다. 이런 날은 교수 눈을 맞추면 안 된다. 언제 또 질문을 해댈지 모르니 말이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때는 영어 잘 한다고 했는데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다.



그런데 나를 따라 이곳에 와 있는 초등학교 4학년 우리 아들의 경우를 한번 보자.



한국에 있을 때 동네 영어 학원을 왔다 갔다 하긴 했지만, 그건 남들이 다 가니까 따라 간 것이지 한번도 집에 와서 숙제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오죽 공부를 안 했으면, 미국 오기 몇 달 전에 아예 그마저 끊어버렸을까. 남들은 가서 덜 고생하게 개인 교습을 시킨다, 집중 학습을 시킨다고 하던데. 가서 답답하면 저도 하겠지 하는 배짱을 부려 본 것이다. 이곳으로 연수 온지 9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 아이는 학교나, 식당, 슈퍼에서 영어로 말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 물론 활용하는 단어의 수는 한정적이지만, 그 단어들로 쉬운 영어를 구사한다. 그러나 막힘이 없다. 그러고 보면 미국에 와서 내 영어는 그다지 는 것 같지 않은데(사실 그래도 좀 나아졌다) 우리 아이의 영어는 엄청 달라졌다. 아이가 영어를 하는 방식은 나와 많이 다르다.



아이와 내 영어의 차이점을 비교해보면,



첫째, 나는 머리 속에서 문장을 만들어 말한다. 아이는 그냥 말이 쏟아진다.



나는 수업시간에 교수의 질문에 답을 할 때 꼭 한 템포씩 느리다. 물론 대답을 제대로 하기 위해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영어로 들은 것을 우리말로 요약해서 이해하고, 다시 적절한 우리말 답변을 영어로 번역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꼭 한 박자가 늦어진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면, 교수가 나를 특정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공통적으로 질문을 던졌을 때 나는 한번도 처음에 대답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영어로 문장을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꼭 다른 아이 두셋이 먼저 대답을 하고, 나는 그 후에야 대답을 할 수 있게 된다. 어떤 경우는 내가 대답을 정리하고 있는 동안에 벌써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이의 수업 시간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나랑 달리 질문에 대해 곧장 대답이 튀어나왔다. 생각이 곧장 영어로 연결되는 것이다. 시간이 걸린다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것이지 나처럼 영어를 정리하기 때문은 아니다.



둘째, 점잖은 체면에 나는 남의 말투, 억양을 흉내 내지 못한다. 아이는 TV 만화 속의 주인공, 광고 모델들의 대사를 그대로 따라 외우고 수시로 이를 적절하게 활용한다.



모든 TV 프로그램들이 caption (영어자막) 서비스를 하고 있기에 TV를 볼 때는 잘 알아듣기 힘든 문장들, 재미있는 표현들을 이것을 보면서 익히고 있다. 눈으로 보면서 소리를 듣는 셈이다. 이와 달리 아이는 상황 속에서 반복해 들으면서 그 문장의 뜻을 알게 된다. 나는 글을 보면서 암기하는 방식이라면, 아이는 소리를 들으면서 모방하고 있다.



셋째, 나는 영어 단어 하나 하나의 우리 말 뜻을 memorize 하고있다. 아이는 영어 단어의 우리말 뜻을 understand한다.



예를 들어, 어젯밤에 있던 동화책에 rein이란 단어가 나왔다. 아이 수준에는 어려운 단어인 것 같아 책을 다 읽은 다음에 그 뜻을 물어봤다. 내 머리 속으로는 ‘고삐’라는 답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그런데 아이는 ‘말의 머리에 채우는 뭐 그런 것’이라고 답한다. 고삐라는 단어가 어려운 탓일 수도 있지만, 다른 예를 보더라도 아이의 경우, 영어 단어에 대한 우리말의 정확한 뜻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문장 전체 속에서 그 단어가 이해되어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영어 문장을 만들 때, 필요한 우리 말에 맞는 영어를 찾아 끼워 맞추기를 한다면, 아이는 그냥 문맥 속에서 단어들이 연결되어 자연스레 달려 나오는 것이다.



넷째, 나는 실수할까 조심하고, 정확한 문장을 만든 후 말한다. 우리 아이는 말하면서 잘못된 부분은 고쳐나간다.



우리 교수는 내가 영어 때문에 힘들어 한다는 것을 잘 모른다. 내가 얘기를 해도, “No, your English is very good” 이란다. 하긴 말할 때면, 정확한 전치사, 복수, 단수, 시제 딱딱 맞으니 교수도 그리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또 리포트는 오죽 잘 써야 말이지. 이게 다 내가 영어를 입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눈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교수가 무슨 말 하고 있는지를 몰라 눈도 제대로 못 맞춘다는 속사정을 교수는 모르고 있다. 우리 아이는 누가 질문을 하면 일단 말이 먼저 시작된다. 하면서 틀린 단어, 틀린 표현들을 고쳐나간다. 내가 머리 속에서 하는 작업들이 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만 10세 이전에 외국어를 배우면 모국어를 배우는 방식으로 그 언어를 습득하게 된다고 한 언어 학자의 얘기가 바로 이런 것인가 보다. 아이가 영어 하는 방식을 보고있으면, 갈수록 내 영어는 한계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며칠 전 아이의 ELS 담당교사에게 수업 참관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그 교사는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했다. 하루에 한시간씩, 같은 반 아이들이 reading과 writing을 하는 시간에 우리 아이는 작년 같은 시기에 대만에서 온 4, 5학년 자매와 함께 셋이서 ELS수업을 받는다. 내가 간 날의 주제는 ‘fossil’. 사진이 많이 들어있는 책과 예쁜 그림책 두 종류를 보면서 이날 아이들이 생각 한 것은 fiction과 non-fiction 의 차이, 화석의 특징, 화석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등이었다. 교사는 계속 질문만 던지고, 아이들은 이에 대해 막힘 없이 생각들을 늘어놓았다. 그럼 교사는 “Great”, “Excellent”, “Wonderful”을 연발하면서 마지막에 정리만 해준다. 그날은 꽤 어려운 단어 ‘extinct’가 교사의 입에서 몇 번 나왔다. 교사도 그 단어의 뜻을 특별히 정리해주지 않았지만, 아이들도 오가는 이야기들 속에서 그것이 ‘disappeared’와 유사한 뜻임을 이해하고 있었다. 난 역시 습관적으로 ‘멸종한’ 이라고 속으로 그 뜻을 새기고 있었다. 헤어지면서 내가 교사에게 말했다. “I want to be your student.”



이 바쁜 엄마가 아들의 영어 교육을 위해 해준 것이라곤 이 세가지 밖에 없다.

1. 한국인들이 없는 곳에 집 구하기

2. 도서관에서 책 빌려주기(녹음 테이프가 함께 있는 책들)

3. TV 만화 마음껏 보여주기

(정말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