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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기자가 쓰는 텍사스 연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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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갈 것인가.
연수지는 당연히 스포츠의 천국인 미국으로 정했습니다.그러나 그 넓디 넓은 미국에서 어디를 선택해야 할지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습니다.그래서 꺼낸 것이 ’10년전의 일기’였습니다.

10년전 저는 LA 다저스에서 인턴십을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그때 구단을 따라서 미국전역을 출장다닌 적도 있고,마이너리그팀을 전전하면서 중소도시도 꽤 많이 섭렵했습니다. 그때의 기억과 경험을 살려 선택한 곳이 텍사스입니다.이번 연수자 가운데도 저 밖에 없고, 역대 연수자들도 선택하신 분들이 거의 없었던 곳입니다.

텍사스는 한국출신으로 가장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두명의 스포츠 스타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스포츠에 관심이 없더라도 그 이름은 다 아시는 박찬호,최경주가 그 주인공들이구요, 텍사스 우먼스 유니버스티(남녀공학인데 오래전에 여대로 출발해서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에는 학문적으로도 국내 스포츠계에 손꼽히는 한국인 교수분이 계십니다.(성함은 굳이 밝히지 않겠습니다)

그런 이유로 텍사스는 2004년 스포츠기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적합한 연수지라는 판단이 섰습니다.텍사스 레인저스를 출입하면서 현지 기자들,구단관계자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거기서 비롯되는 스포츠저널리즘의 스타일을 공부하고, 그 교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야구와 골프의 두 거목들을 만나 친분을 쌓을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있는 연수가 될 것임에 분명할테니까요.

*집 구하기와 정착
그래서 집은 댈러스 공항에서 20분 거리의 캐럴튼이라는 도시에 정했습니다. 캐럴튼에서 학교가 있는 덴턴까지는 북쪽으로 약 25분,텍사스 레인저스의 홈구장 알링턴 아메리퀘스트 볼파크까지는 남쪽으로 약 35분이 걸립니다. 중간지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아파트는 떠나기 약 2주전에 현지 보증인을 내세워서 미리 얻었습니다.페이퍼웍이 좀 있었지만 팩스로 충분히 해결됐습니다.살지 않으면서 2주치 집세를 먼저 낸 셈이었지만 그래도 미리 집을 얻어 놓는게 도착해서 소요되는 시간을 줄일 수 도 있다는 판단에 그렇게 했습니다.

다들 그러셨겠지만 초반에 고삐를 당겨 정착에 소요되는 시간을 최소화 하려고 했습니다만 그래도 2주는 금방 지나갔습니다.텅빈 집에 살기위한 도구를 갖춘 다는 것, 쉽지 않았습니다.우선 도착 이튿날 아침 전화신청을 했습니다. 전화는 반나절이면 개통을 시켜주더군요.(전 그렇게 못했는데 전화 수화기 하나 갖고 오시면 편합니다) 그리고 TV와 가구(침대,소파,식탁)를 구했습니다.전화가 연결된 뒤 길이 하나씩 열렸습니다.전화로 케이블TV와 인터넷을 신청하고 아파트관리인게 부탁해서 전화번호부 책을 얻었습니다.전화번호부를 뒤져 아이들 학교와 유치원등을 알아보고 그 다음날 운전면허 필기시험보고 전기구좌를 개설했습니다.운전면허시험 필기를 붙고 나면 운전허가증 같은 걸 주는데 그걸 가지면 면허증이 없어도 차를 살 수 있더군요. 그리고 다음날 은행구좌개설,휴대폰 개통하고 집안 일이 어느정도 마무리 된 다음 차를 샀습니다.차를 산 다음 그 차로 다시 면허시험장에 가서 실기를 봤습니다.면허증은 실기시험 끝나고 약 2주뒤에 집으로 배달되더군요. 미국은 면허증이 신분증이니까 그 동안 사진이 있는 신분증을 요구할때마다 꺼내들었던 여권을 옷장에 집어 넣었습니다.

미국에서 인터넷 신청할 때 버라이즌,SBC는 사람이 오질 않고 소포로 모뎀을 보내주면 자기가 알아서 설치해야 합니다.그리고 컴캐스트 케이블은 전화선을 통한 것이 아니고 케이블 모뎀이니까 어쩔 수 없이 사람이 직접 와서 해줍니다. 저는 TV와 인터넷 모두 컴캐스트로 쓰고 있습니다.케이블이라서 조금 더 빠르고, 사람이 직접와서 해주니까 번거롭지 않고 확실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조금 더 비싸다는게 단점입니다.

*도서관활용
쏟아지는 언론매체를 가능한한 많이 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궁리하다가 생각해 낸게 도서관입니다. 인터넷에 게재되는 언론사 컨텐츠와 종이신문에 나오는 컨텐츠는 또 다릅니다.편집도 다르고 그 맛도 다릅니다.주요신문을 모두 다 구독할 수도 없고,인터넷으로는 한계가 있고…잡지도 봐야 하고 해서 주위의 조언을 듣고 시립도서관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도서관은 집에서 10분거리에 있었고, 매일 쏟아지는 신문을 친절히 챙겨주고 있었습니다. 스포츠관련 잡지도 물론이구요. 도서관에 가서는 특별한 신분증 제시 없이 모든 책을 열람 할 수 있고 가지고 나오려면(빌리려면) 카드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카드 만들기는 운전면허증을 제시하고 집 주소와 인적사항을 적으면 됐습니다.물론 모두 무료구요.

카드를 만들고 나면 책은 2주간,비디오와 오디오 관련 물품은 일주일간 무료로 빌릴 수 있습니다.아이들 동화책이나 영화 비디오,DVD를 빌려다보는데 아주 유용합니다.제가 다니는 캐럴튼 시립도서관에는 한국소설책과 영화,DVD도 꽤 있습니다.

*크레덴셜 신청과 발급
미국에서 스포츠관련 현장 경험을 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것이 취재허가증(미디어 크리덴셜)입니다. 저도 이 곳에 도착하자마자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에 시즌 크리덴셜(시즌 내내 출입을 보장해주는 취재 허가증)을 신청했지만 시즌이 3분의2나 지났다는 이유로 거절 당했습니다.그래서 할 수 없이 하루 취재가 가능한 데일리크리덴셜을 그때 그때 신청해서 두달을 다녔습니다.데일리 크리덴셜도 시즌 크리덴셜하고 똑 같이 프레스룸,덕아웃,클럽하우스 다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취재허가증 신청은 구단의 미디어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나는 한국 어느 신문사의 무슨 기자인데, 며칠날 벌어지는 어느팀과 어느팀의 경기를 취재하고 싶다정도를 쓰고, 회사의 로고가 들어간 헤드레터에 서명을 해서 팩스로 보내면 됩니다.간혹 사진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메일로 보내주면 됩니다.
신청한 뒤 당일 확인전화를 하면 “주차는 어떻게 할 거냐,주차요원에게 주차증을 맡겨놓겠다”며 친절하게 안내해줍니다.미디어 크리덴셜은 경기장에 도착해서 미디어 엔터런스에 가면 픽업할 수 있습니다.명함을 주고 나 누구누구다 하면 그들이 찾아서 줍니다.혹 나중에 오시는 분들 가운데 야구나 농구,골프 등 스포츠경기를 보러가실 경우 돈을 절약하고 취재기자인척 연기할 자신이 계신분은 미디어크리덴셜을 신청해서 가시길 추천합니다. 가족들과 함께 입장권을 사서 가더라도 주차를 운동장과 가까운 편리한 곳에,무료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스타플레이어를 직접 만나볼 수도 있습니다.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꼭 주의하실점은 미디어 관계자는 절대로 선수로부터 사인을 받거나 기념사진을 찍지 않습니다.금지되어 있습니다.크리덴셜 하단에 ‘No Autograph’라고 명시돼 있습니다.철저히 취재에만 신경을 써야 한다는 거죠.

*야구장에서의 취재
레인저스 야구장은 미국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아름답습니다.경기는 저녁 7시5분에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취재기자들은 야구장에 오후 3시쯤이면 도착합니다.프레스룸은 홈플레이트 뒤편 관중석 3층에 있는데 구장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갑니다. 그 엘리베이터에는 층수 버튼을 눌러주는 노인 한분이 있는데(미국에서 돌아다니다 보면 실버인력들이 정말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야구장도 예외는 아닙니다) 처음보는 기자들에게 꼭 한마디 한다고 합니다.엘리베이터 안에 TV모니터가 하나 있는데 그 TV 수상기를 가리키면서 “이게 누가 사준 TV인줄 아느냐,바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사준거다”라고 자랑하는거죠.부시가 레인저스 구단주였을 때 사준거라나요.
야구장에 도착해서 프레스룸에 가방을 갖다 놓은 뒤 운동장에 내려가 선수,코치,감독 등을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은 한국야구장과 다를 바 없습니다.그러다가 감독이 그날의 주요사항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라커룸에서 경기시작 45분전까지 자신이 원하는 선수를 인터뷰할 수 있습니다.선수들은 라커룸에서 수건만 걸친채 다니기도 하는데, 벗은 몸을 보여줘도 자신이 있어 그런지(?) 부끄러워 하질 않습니다.

6시30분쯤 프레스룸에 올라오면 저녁식사를 하고 경기를 봅니다.레인저스 기자식당은 8달러를 받는데 음식은 다른 메이저리그 구장에 비해 썩 좋지 않습니다. 대신 핫도그는 팁 1달러를 주면 주방 아주머니가 그냥 주시고,나초와 아이스크림,팝콘,음료수 등 은 그냥 갖다 먹을 수 있습니다.

경기중에는 구단 홍보담당자가 마이크로 궁금한 점에 대해 장내 방송을 해줍니다.다친 선수는 얼마나 다쳤는지,바뀐 투수의 기록이 어떻게 되는지,기억할 만한 기록이 나오면 그게 왜 알려질만한 기록이 되는지에 대해서요.이런 부분은 국내 야구장과 취재 관행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국서 만난 스포츠스타들

-박찬호
7월중순에 도착했을 때 박찬호선수는 마이너리그에서 재활중이었습니다. 그를 보기 위해서는 오클라호마,뉴올리언즈 등 텍사스 인근의 다른 주로 찾아가야 했습니다. 오클라호마 두번,뉴올리언즈 한번을 다녀왔습니다.오클라호마는 자동차로 세시간 반 정도 거리였지만 뉴올리언즈는 자동차로 편도 여덟시간의 만만찮은 거리였습니다.
부상에서 회복해서 컨디션을 찾아가고 있던 박선수와 오클라호마에서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모처럼 경기 내용도 좋았고, 자신감도 되찾은 듯 했습니다.차분하고,잘 정리된 인상을 받았습니다.오클라호마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였고 마이너리그 경기였는데도 꽤 많은 교민들이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 응원을 와주셨습니다.그리고 꼬불꼬불 찾아간 한국식당에서 만난 교민들은 열정적인 성원을 보내주셨고, 인심좋은 식당주인 아저씨는 그날 밥값을 받지 않으셨습니다.박선수가 이러시면 안된다며 돈을 내려했지만 끝내 받지 않으시더군요.
박선수는 시즌이 끝나고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 진행하는 연구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때도 소탈하고, 친절한 태도로 다른 학생들과 어울려서 좋은 인상을 남겼습니다.소프트볼 여자선수들,그리고 대부분의 미국학생들은 박선수를 알아보더군요.
박선수는 그때 재활을 거쳐 시즌 막판 2승을 거뒀고 구위도 살아났습니다.내년에 더 좋은 모습을 보여 주길 기대해봅니다.

-한희원
LPGA는 텍사스에 오지 않았습니다.너무 더워서 그런지 LPGA 대회는 텍사스를 비켜가더군요.그러다가 9월 둘째주에 바로 윗동네 오클라호마에서 대회가 열렸습니다. 저는 스포츠기자를 15년했지만 골프담당은 한 적이 없습니다.그래도 보는건 즐기죠.그 대회에는 애니카 소렌스탐을 비롯해서 굵직한 여자 골프스타는 다 모였습니다.마침 평소에 친분이 있던 한희원선수도 참가했습니다.
한희원선수를 만나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투어선수로서의 고충과 미국에서 뛰는 한국선수로서의 애환 등을 담담하게 들었습니다.스물여섯살의 여자선수로서 생각보다 굉장히 성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한희원선수가 기자들에 대한 불만을 말할때는 얼굴이 뜨겁기도 했습니다.골프는 특히 매너가 중요한 스포츠라서 경기장에서 지켜야 할 예의가 많은데,(취재기자로서도) 그 부분에서 선수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행동이 가끔 있었다고 하더군요.
프로골퍼를 만났는데 밥만 먹고 애환만 들었을까요.물론 아닙니다.간단한 원포인트 레슨이 있었는데요, 저같은 왕초보들에게는 힘을 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며 특히 손목의 힘을 빼야 한다면 간단한 운동 방법을 일러주었습니다.
한희원선수 저와 만난 대회에서는 탑10에 드는데 만족했지만 곧바로 그 다음주에 벌어진 대회에서 우승을 했서 서로 전화통화를 하며 기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만수
야구팬치고 이만수라는 이름 석자를 모르면 거짓말이죠. 한국프로야구 1호안타,1호홈런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현재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불펜코치로 있습니다. 지난 9월6일에 마침 화이트삭스가 텍사스에 원정 경기차 왔고,그때 경기가 끝난 뒤 박찬호선수의 집에 함께 모여서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만수코치는 선수로서 현역때 “야구장하고 집,교회밖에 모른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는데 지금도 여전했습니다.한국을 떠난지 7년이 지났지만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진지한 자세는 하나도 변한게 없었습니다. 이만수코치는 내년에도 화이트삭스팀과 재계약을 해서 미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계속할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그러나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다짐을 했습니다.그도 조국을 떠나 있지만 조국을 그리워하는 한 사람이었습니다.미국에서 지내다 보면 ‘나라’라는 개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때가 있는데 이만수코치와 그 부분에 대해서 깊은 대화를 나눴습니다.우리가 우리 아들, 딸들에게 물려줘야 할 내 나라, 내 땅에 대해서 말이죠.

주제도 그렇고 너무 스포츠와 관련된 글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맨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스포츠기자로서 나중에 오실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방향을 그렇게 잡았습니다.
미국에서 지내려면, 또 지내는 동안 스포츠는 가장 공통적인 대화 주제라는 걸 많이 느끼실 겁니다.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면 체육시간에 대한 개념이 한국학교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도 느끼실 겁니다.이들에게 체육,스포츠는 신체단련만을 위하거나 다른 과목을 공부하기 위해 체력을 키우고 스트레스를 푸는, 그런 시간이 아닙니다. 스포츠를 통해서 팀웍을 배우고,남을 배려하는 법을 배우고 전체가 잘 되기 위해서 나를 어떻게 희생해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스포츠를 통해 길러진 그 정신은 어른이 되어서도 사회 곳곳에 반영돼 조직을 지탱하는 밑거름이 됩니다.미국은 프로스포츠의 천국이기도 하지만 스포츠의 기본이 가장 발달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저는 스포츠기자로서 오랜만에 선발됐지만 앞으로 LG 상남언론재단에서 선발하는 해외연수자에 스포츠기자가 꼭 포함되기를 바랍니다.그래서 재단을 통해 기회를 얻은 기자들이 훗날 스포츠팬십과 페어플레이를 사회전역에 씨부리는데 한 몫을 해주기를.저도 그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