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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포드 리포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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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아래 부자동네 팔로알토



몇 년전 이 곳 지역신문 1면에 흑인노숙자가 개와 함께 쓰레기통안을 뒤지는 사진이 실렸습니다. 신문을 본 독자들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이튿날 신문사에는 개가 불쌍하다며 데려가 키우겠다는 전화가 잇따르고 일부는 돈까지 보냈는데 노숙자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지역신문기자 출신 프리랜서인 교수로부터 듣고 저는 어안이 벙벙하더군요. 도대체 어떻게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는 걸까요. “노숙자는 자기 책임이지만 개가 무슨 죄가 있냐는게 미국 사람들의 생각”이랍니다. 가난은 사회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라는 것이죠. 미국내에서 빈부격차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지만 여론이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이 같은 인식이 바닥에 깔려있기 때문일겁니다. 이상한 이야기로 서두를 꺼낸 것은 스탠포드대학이 위치한 팔로알토라는 조그만 도시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곳에서 자동차로 약 50분-1시간정도 떨어진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 살기 좋은 곳으로 손꼽히지만 거리 곳곳에서 구걸하는 노숙자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팔로알토와 인근에서는 노숙자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노숙자도 감히 범접하기 힘들 정도로 부자동네이기 때문입니다.

몇 년전만 해도 팔로알토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팔로알토의 명성이 미국내에서 자자합니다. 두가지 때문이지요. 하나는 실리콘밸리이고 또 하나는 엄청난 집값때문입니다. 얼마전 미국내 집값과 집세조사에서 팔로알토를 중심으로(정확히 이야기하면 스탠포드대학을 중심으로) 맨로파크, 에서톤지역이 뉴욕 맨해턴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더군요. 이 곳 집값이 어느정도냐 하면, 우리나라로 따지면 13평정도 되는 방 하나짜리 집의 월세가 1,600달러(약 200만원), 방 두개짜리는 2,000달러가 훌쩍 넘고 방 3개짜리는 2,600-3,000달러입니다. 정말 평범한 방 3개짜리 집이 (물론 위치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100만달러(13억원)정도 합니다. 땅값이 이렇게 비싸다보니 주유소의 기름값에서부터 모든 것이 비쌉니다. 저는 학교내 기숙사에서 사는데 이 곳도 기혼자 기숙사 방 1개짜리가 월 900달러가 넘습니다. 그래도 학교바깥보다는 훨씬 싼 편이지요. 교내 대학원생을 위한 기숙사가 부족해서 매년 5월 추첨을 하는데 합격률이 평균 50%선이어서 이 곳 대학원생들은 매년 한차례씩 가슴을 졸여야 합니다. 떨어지면 눈물을 머금고 학교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물론 학교밖에서 살아도 학교측에서 집세 일부를 보조해주는데 불편한 게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학교측도 고민입니다. 우선 유능한 교수들을 데려오는데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집값보조를 하지 않으면 교수들이 오려고 하질 않거든요. 대학측이 그래서 교내에 교수 숙소를 비롯해 건물을 더 짓겠다는 계획을 2년전에 발표했습니다. 지역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지역환경을 악화시킨다며 강력히 반대하는 바람에 1년6개월간의 긴 협상끝에 겨우 계획중 일부만 시행키로 결정이 나 올 연말부터 공사에 착공한다는군요. 팔로알토는 인구가 6만1,000여명에 가구 평균소득이 10만달러가 넘습니다. 시 소유 공원만 36개에 지역전체의 3분의 1이 공원이거나 녹지입니다. 이 정도만 이야기해도 이 지역의 그림이 그려질 겁니다.



* 실리콘밸리



팔로알토가 이렇게 벼락부자가 된 데는 실리콘밸리붐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스탠포드대학 졸업생들이 차고를 빌려서 시작한 벤처들이 성공하면서 이 곳에 실리콘밸리가 형성되고 집수요가 늘어나면서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거죠. 실리콘밸리에 대해서는 이미 한국에서도 많이 소개됐으니까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듯이 실리콘밸리에도 밸리(계곡)가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연상하듯이 벤처회사들이 몰려있는 공단도 아닙니다. 미국서부해안을 따라 나 있는 101번 도로와 이 지역의 간선도로인 82번 도로(일명 엘 까미노 리얼-스페인어로 “도로”라는 뜻)가 팔로알토에서부터 마운튼뷰, 서니베일, 산호세까지 나란히 달리는데 두 도로 사이에 우리도 잘 아는 야후, 구글, 휴렛페커드 등 수 많은 벤처 회사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들 회사들이 우리나라 삼성이나 현대처럼 쉽게 눈에 띠는 것도 아닙니다. 대체로 2, 3층에 불과한데다 숲속에 숨어있는게 보통이어서 신경을 쓰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입니다.

미국경제를, 아니 전세계 경제를 선도하던 실리콘밸리붐의 거품이 빠지면서 이지역도 최근 서서히 그 여파를 느낄 수 있습니다. 가장 쉽게 그 영향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스탠포드대학의 MBA스쿨입니다. Job Fair가 눈에 띠게 줄어드는 거죠. MBA스쿨에 다니는 한국학생 한명도 이 곳에서 취직을 하려고 생각했다가 최근 불황의 여파로 취업하기가 힘들 것같다며 홍콩쪽의 투자자문회사로 눈을 돌리더군요. 아무리 그래도 미국인의 경우 MBA나 Law School, 제가 다니는 저널리즘 프로그램 등 전문직업학교를 졸업하면 학교의 명성이 있기 때문에 취업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지난해 가을학기 스탠포드대학 등록 외국인학생을 국적별로 분석하면 중국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한국, 캐나다, 인도순입니다. 물론 해마다 다르지만 중국은 항상 가장 많고 한국은 90년대 중반까지 5위 아팎이었는데 최근 순위가 올랐습니다. 한국학생은 300명정도 되는데 대부분 공대쪽 전공자들입니다. 한국학생이 박사과정을 마치고 이곳에 있는 회사에 취업을 하면 초봉이 얼마정도 될 까요. 경력여부와 협상능력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연봉이 10만달러(1억3,000만원) 안팎입니다. 엄청나게 받는 것같죠. 그러나 이미 이야기한대로 이 곳은 물가가 워낙 비싼데다가 세금도 만만치 않아서 순수히 저축할 수 있는 돈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게 이 곳에 취업한 학생들의 공통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학생들이 졸업후 이곳에서 취업을 하려고 합니다. 왜냐구요. 살기 좋죠, 그런데다 이 곳 벤처기업에 모두 합쳐 5년만 근무하면 영주권 자격을 받게 되죠, 실리콘밸리 경력을 쌓고 한국에 돌아가면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으니까요.



* 미국..신비의 나라



제가 6회에 걸쳐 연수기를 쓰면서 “미국은 이렇다, 미국은 저렇다”라는 말을 가능한 쓰지 않으려 굉장히 노력했습니다. 제가 미국을 잘 모를 뿐만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가 일반화하기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대선에서 저는(저희 교수도) 미국의 대통령 선거법이 각 주마다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미국은 주마다 법과 제도, 관습, 분위기가 다 다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가장 큰 주입니다. 면적만 남북한 합친 것과 비슷하고 경제규모로도 세계 6위입니다. 캘리포니아내에서도 북 캘리포니아(샌프란시스코, 새클란맨토 등)는 남 캘리포니아(로스앤젤레스, 샌디아고)와 분위기가 완전히 틀립니다. 주내에서도 분위기가 틀린데 미국 전체는 한마디로 이야기하기가 힘들지요. 게다가 형법, 민법 등 대부분의 법이 주마다 다르니까 미국을 한마디로 일반화한다는 건 오해의 소지가 많습니다.

상당수 미국 사람들도 자기 동네외에는 잘 모릅니다. 미국이 세계 유일의 강대국이지만 미국학생들의 외교지식수준이 선진국중 최하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한번은 제 클라스메이트가 저 보고 “내가 어디서 읽었는데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colony)라고 하던데 사실이냐”고 물어서 제가 기겁을 했습니다.

미국이 지방자치가 발달된 것은 당연합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용어가 바로 “local”입니다.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local” 또는 “community”라는 말이 나오면 이 이야기는 좋다는 의미구나 라고 판단하면거의 틀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역이라고 하면 지역감정의 악몽이 연상되는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팔로알토 시의회 회의에 여러 차례 갔는데 중요 사안은 그곳에서 거의 결정되고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주민들의 참여도 활발합니다. 공화당 정부가 들어서면 지방분권이 더욱 강화되긴 하지만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교육, 치안 등 중요 사안중 상당 부분이 시, 군, 주 의회에서 결정됩니다. 최근 캘리포니아가 전기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는데 이 것도 따지고 보면 전기가 중앙정부 사업이 아니라 각 주에서 알아서 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위에서 이야기 한 미국의 특성은 모두 미국이 엄청나게 큰 나라라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연수기에서 미국인들의 자연스러운 토론문화가 미국의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풍부한 자원도 미국의 힘중의 하나겠지요. 그러나 엄청난 규모의 시장이 개인주의 문화와 연결되면서 세계 최고로 우뚝 설 수 있었던 힘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경우 가수가 앨범을 냈는데 전 가구가 앨범을 한 장씩 샀다고 가정합시다. 모두 950만장(95년기준)정도 팔릴 겁니다. 미국의 경우 전가구가 한 장씩 산다면 1억200만장(95년기준)이 팔립니다. 가수가 벌 수 있는 돈으로 따지면 엄청난 차이죠. 게다가 미국은 전세계를 시장으로 하니까 돈이 되는 곳에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그만큼 상품의 질이 보장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힘이 무엇이고 약점은 무엇일까. 제가 미국에 와서 잊지 않고 반복하는 질문입니다만 답을 찾기에는 시기상조일겁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미국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복잡한 사회라는 점입니다. 그동안 두서없는 저의 연수기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