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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포드 리포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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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포드대학의 규모



해외연수기 첫 회에서 약간 언급했지만 스탠포드대학은 11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명문사립대학(흔히 Ivy League라고 부르죠) 중 하나입니다. 지난해 대학예산이 1조7,7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2조원이 넘었습니다. 서울대의 98년 예산이 2,200억원 수준이었으니까 스탠포드의 규모를 대충이나마 가늠할 수 있을 겁니다. 예산의 40% 가량은 인건비 등으로 지출되지만 매년 도서관 장서구입에만 1,500만달러를 쓰고 장서규모도 7백만권이 넘습니다. 학교 메인 도서관인 그린도서관은 정말 호텔수준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쾌적하고 고급스럽습니다.

스탠포드대학은 땅부자입니다. 금싸라기 같은 팔로 알토지역의 한가운데 캠퍼스넓이만 3,300헥타아르가 넘습니다. 교내 건물이 678개이고 도로연장 73킬로미터에 조그만 댐 3개와 호수, 그리고 2만5,000그루가 넘는 나무가 학교를 뒤덮고 있습니다. 미국 캠퍼스중에서도 아름답기로는 손꼽히는 곳입니다. 학교내 후버타워에서 내려다 보면 캠퍼스 풍경이 정말 장관입니다.

캠퍼스밖에도 연구센터와 쇼핑센터까지 소유하고 있죠. 교내에서는 무료 셔틀버스나 자전거, 스케이트보드, 롤러브레이드 등 다양한 이동수단이 있는데 학생들은 자전거를 많이 이용합니다.

학교생활 중 한가지 특이한 것은 캠퍼스내에서는 바깥보다 모든 것이 비싸다는 겁니다. 책방에서 파는 책이나 사무용품, 식당 등 모두가 바깥보다 비쌉니다. 학교내에서 이용하는 편의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라는 것같습니다. 교내 복사집에서 한장 복사하는데(물론 자기가 해야합니다) 5센트하는데 도서관내에 있는 복사기는 장 당 10센트합니다. 다른 것은 귀찮더라도 대출해서 교내 복사집까지 가지고 가서 복사라도 할 수 있지만 연감 등은 도서관밖으로 갖고 나갈 수가 없으니 할 수 없이 도서관에서 비싼 돈 물어가면서 해야죠. 다른 미국대학에서 온 한국학생들 이야기로는 스탠포드뿐만 아니라 다른 미국대학도 대부분 마찬가지라고 하더군요. 미국에서는 대학생이라고 봐주는 일은 절대 없는 것 같아요.



* 스탠포드, 제인, 그리고 스탠포드 주니어



스탠포드대학의 정식명칭은 “Leland Stanford Jr.University” 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설립자 Leland Stanford와 부인 Jane Stanford가 아들을 기려 만든 학교입니다. 스탠포드는 뉴욕출신의 변호사였다고 합니다. 알바니대학 법대를 졸업한뒤 위스컨신주 포트 워싱턴에서 개업했습니다. 거기서 부인 제인과 결혼을 했구요. 부인 제인도 뉴욕출신으로 당시 기준으로는 굉장히 진보적이고 지성적인 여성이었습니다. 제인은 나중에 남편이 죽은뒤 스탠포드대학의 기틀을 잡는데 커다란 역할을 합니다. 스탠포드는 변호사로 상당히 성공했는데 1852년 사무실이 불이 나자 모두 정리하고 캘리포니아의 주도인 새크라맨토에서 사업을 하고 있던 형제들과 합류했습니다. 당시 캘리포니아는 골드러시로 북적거렸는데 금캐는데 필요한 장비를 팔아서 크게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금캐는 사람보다 청바지나 곡괭이를 파는 게 훨씬 돈벌이가 됐던거죠.

스탠포드는 정치활동도 활발하게 벌여 캘리포니아주 공화당 창당에 적극 참여하고 결국 1859년 주지사에 당선되고 1885년에는 상원의원으로 진출합니다. 사업과 정치에서 성공한 스탠포드는 팔로알토에 땅을 사서 농장을 만들었는데 이 곳이 바로 스탠포드대학의 터가 됩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스탠포드대학을 농장(Farm)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스탠포드 부부의 고민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1868년 스탠포드의 나이 마흔넷에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의 이름이 바로 스탠포드 주니어입니다. 뒤늦게 얻은 아들이니 얼마나 사랑스러웠겠습니다. 주니어는 특히 팔로알토 농장에 머무르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주니어는 특히 어머니 제인을 따라 예술품을 모으러 유럽을 드나들면서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예술품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1884년 부모와 함께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장티푸스에 걸려 이 세상에 태어난지16년을 못채우고 3월13일 사망합니다. 제인의 예술품사랑은 각별해서 스탠포드대학에는 로댕박물관을 비롯해 박물관 등이 있어 관광코스로도 인기가 높습니다.



*농장이 대학으로



뒤늦게 얻은 외아들을 졸지에 잃은 스탠포드 부부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겠죠. 미국으로 돌아온 스탠포드 부부는 하버드대 당시 총장을 만나 아들을 기리는 방안을 상의하는데 대학을 설립하는데 땅이외에 최소한 500만달러가 든다는 말을 듣고 고심하다가 결심을 하게 되죠.

이들의 생각은 처음부터 파격적이었나 봅니다. 실용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는데 당시 대부분의 대학이 종교적 색채를 띠고 문화적 전통에 치중했던 상황에 비추어 상당히 개혁적인 생각이었죠. 게다가 제인은 남녀평등에 대해 상당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1885년 28명의 재단이사회가 구성돼 학교이념 등을 마무리짓고 1887년 5월14일 죽은 아들의 생일을 기념해 300여명의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학교의 주춧돌(스탠포드이 상징중 하나인 Sandstone)을 놓게 됩니다. 학교의 주요건물은 빨간색 기와지붕에 누런색 Sandstone으로 짓는 것이 오랜 전통입니다. 1891년 스탠포드는 당시 인디아나대학의 젊은 어류학자였던 David Starr Jordan박사(당시 40세)를 초대 총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조던은 이후 22년동안 스탠포드 총장으로 역임하면서 스탠포드의 방향을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891년 10월1일 학생 559명과 교수 15명으로 스탠포드대학은 문을 열게됩니다. 나중에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허버트 후버도 지리학과 학생이었습니다.

제인은 남편을 내조만 하다가 남편이 1893년 남편 스탠포드가 사망하자 극심한 상실감에 사로잡힙니다. 남편을 기리기 위한 건물을 짓기로 했는데 그게 바로 후버타워와 함께 스탠포드의 상징과 같은 Memorial Church입니다. 스탠포드가 숨진지 10년만인 1903년 1월25일 Memorial Church가 문을 연날, 제인은 “나의 마음은 이 학교에 있지만 나의 영혼은 이 곳에 머물 것(While my whole heart is in this University, my soul is in that church)”이라며 남편을 기렸습니다.

교회는 교회이지만 이 곳은 사실 종교적인 편향은 전혀 없고 결혼식장(스탠포드 학생이나 졸업생에 한해 무료로 빌려줌)이나 각종 세미나장소로 사용됩니다. 물론 학교관광의 필수코스이기도 합니다.

제인은 Memorial Church가 완공되자 학교를 재단이사회에 기증하고 손을 뗍니다. 2년후인 1905년 2월28일 하와이 휴양중 76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숨지는데 아직도 그녀가 음독자살했다는 설이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스탠포드 가족의 유해는 교내 설립자 가족관에 안치돼 있습니다.

스탠포드의 운영은 30명으로 구성된(총장포함) 재단이사회에서 최종 결정하는데 설립자의 가족이나 친척은 한명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립대학이지만 그야말로 사회에 환원된 것입니다. 스탠포드 부부가 당초 기대했던 대로 사랑하는 아들의 이름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널리 알려지는 것같습니다.



다음회에는 스탠포드대학이 위치한 팔로알토와 실리콘밸리, 미국사회 등에 대해서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