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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포드 리포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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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스탠포드는 학기제가 아니라 1년 3쿼터(가을, 겨울 봄)로 구성되는데 쿼터는 정확히 10주씩입니다. 학기제와 달리 10주밖에 안되니까 수업이 시작되면 마치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정신이 없습니다.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지만 수업 첫시간에 수업개요(Syllabus)를 나눠주는데 이 걸 보면 수업의 성격을 대충 알 수 있습니다 실라버스에는 강의의 목적이 무엇이고 매주 어떤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교과서와 숙제는 무엇이고 학점은 어떻게 산출한다는 것을 아주 상세하게 알려주고 실제로 거의 100% 실라버스에 나온 대로 진행합니다. 그러니까 학생들은 쿼터가 시작되면 대충 수업을 순례하면서 실라버스만 받고 자세히 읽어본 뒤에 무슨 수업을 들을 것인가를 결정합니다. 첫 주간을 그래서 쇼핑주간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첫회에서 잠깐 언급한대로 수업은 대부분 토론식으로 진행됩니다. 물론 이공계처럼 학생수가 많은 곳은 토론식 수업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저희처럼 13명밖에 안되는 곳은 100% 토론식입니다. 교수가 말하는 시간은 모두 합쳐서 전체 수업시간의 30%도 안될 겁니다. 우리처럼 학생을 지목해서 말하라고 강제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질문하고 자기생각을 말하고, 그러다 보면 토론이 됩니다. 형편없는 이야기를 한다고 교수가 면박을 주는 경우는 저는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Good point” “Good question” 은 교수들이 하는 기본적인 말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 같은 분위기가 너무 어색하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어떻게 학생들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기 의견을 피력할 수 있을까? 저널리즘 코스에는 취재 및 기사작성 과목이 필수로 3개 쿼터동안 4과목을 들어야 합니다. 그 중 하나는 학생들이 자기관심에 맞는 분야를 정해서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과목입니다. 이 과목을 담당하는 교수는 인종문제 보도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경험이 있는 프리랜서 기자인데 학생들이 제출한 기사 중 몇 개를 골라서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비평을 하게 합니다. 우리 같으면 자기 과 친구가 쓴 글에 대해서 왈가왈부한다는 게 쉽겠습니까. 그런데 이 친구들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렇다고 혹평을 하는 게 아니라, 예의를 갖춰가면서 기사에 의문이 나는 점, 고치는 게 좋다고 생각되는 부분, 잘 썼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솔직하게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 기사를 쓴 당사자가 자기 의견을 피력하고 교수도 가끔씩 끼어 들어서 자기 의견을 이야기 하지만 그렇다고 학생들이 교수의견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도 아닙니다. 학생들이 교수의 평가에 이의를 제기하고 교수가 또 자기 입장을 옹호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어떤 때는 토론이 끝없이 이어져서 수업시간 2시간이 부족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제가 보기에는 정말 경이로운 풍경이죠.

규모가 크다고 예외는 아닙니다. 언론철학(Media Ethics)과목은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함께 듣는 수업인데 학생수가 50명정도 됩니다. 문과 과목으로는 큰 편이지요. 담당 교수인 테드 글라서(저널리즘 코스 학과장)도 수업시간의 절반은 토론으로 이끌려고 생각했지만 학생수가 많아서 될지 모르겠다고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수업내용도 언론의 객관성(Objectivity), 취재원과 익명보장약속(Confidentiality), 언론인의 잠입취재방법(Undercover Reporting), 언론의 사회적 책임(Social Accountability) 등 저널리즘 대학원생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학부생들에게는 그야말로 무료한 주제들입니다. 그런데 왠 걸요. 일단 수업이 시작되자 학생들이 자기 먼저 이야기하겠다고 서로 손을 드는 바람에 교수가 정리하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어떤 때는 학생이 손을 들고 있는데도 교수가 시키질 않더군요. 계속 학생들에게 발언기회를 주었다가는 수업진도를 맞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국가로 우뚝 설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수없이 많은 이유를 꼽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여기서 느낀 제 짧은 소견으로는 토론을 장려하는 미국의 교육풍토가 만들어내는 비판력과 창조력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가지 더 부러운 것은 스탠포드의 인터넷 활용입니다. 모든 수업은 기본적으로 사이트를 만들도록 돼 있으며(물론 안만드는 교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교수들이 강의 일정과 과제물, 공고 등을 게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강의자료들도 판권저촉이 안되는 범위내에서 띄워놓고 학생들이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강의 내용을 녹음해서 미디어플레이어나 리얼플레이어로 제공하는 교수도 있습니다. (정치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는 Shanto Iynger교수가 이번 학기부터 시작하는데 한번 들어가 보십시오. 강의내용은 4월8일쯤부터면 들을 수 있을 겁니다. http://pcl.stanford.edu/teaching/) 한국에서도 스탠포드 교수의 강의 내용을 인터넷을 통해 들을 수 있는 거죠.



*교수



스탠포드에는 모두 1,671명이 강의를 하는데 이중 테뉴어(Tenure)를 받은 교수는 933명(56%)입니다. 노벨상 수상자가 15명에 퓰리처상 수상자가 5명 등 스타 교수들이 즐비합니다. 최근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 콘돌레자 라이스도 스탠포드대학 정치학과 교수입니다. 제가 보기에 스탠포드교수중 상당수는 “가학성”이 있는 듯 합니다. 다시 말해 학생들을 무지하게 괴롭힙니다. 물론 공부로 괴롭히는 거죠. 그리고 굉장히 기뻐합니다. 한번은 지도교수를 찾아가서 “너무 과제가 많아서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더니 “자네가 별로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하다고 말하면 내가 놀라겠지만 힘들다고 하니 너무 기쁘다. 내 의도가 맞아떨어진 거니까”라고 대답하더군요. 할말이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스탠포드에서 교수노릇하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교수들은 학생면담시간(Office Hour)을 일주일에 최소한 두차례이상 정해놓는데 이 시간에는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학생들이 수시로 찾아와서 강의내용 등에 대해서 질문하고 상의하는데 친절하게 도와줍니다. 저도 이 시간을 철저히 이용했습니다. 예컨데 앞으로 3주내에 페이퍼를 써오라는 숙제를 내면 매주 교수에게 찾아가서 페이퍼내용을 보여주고 코멘트를 받습니다. 교수와 진행상황을 상의하고 보충하라는대로 보충해서 나중에 제출하는 거죠. 이게 잘못된 게 아닙니다. 숙제의 목적은 학생들을 평가하는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학생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교수들이 적극적으로 숙제를 도와줍니다. 물론 답을 가르쳐주지는 않지만요. 페이퍼나 중간고사 학기말고사 시험지는 반드시 코멘트와 함께 점수를 매겨서 학생들에게 돌려줍니다. 수업마지막 시간에는 학생들이 교수강의에 대해 폭넓게 평가하고 평가내용은 대학본부와 담당 학장, 담당교수에게 전달됩니다. 학생평가가 교수의 신분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학생들의 평가가 공통적으로 나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특히 테뉴어를 못 받은 교수들에게는 치명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수업이 토론식으로 진행되고 학생들이 수시로 질문을 하기 때문에 교수들이 수업준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잘못했다가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망신을 당할 수도 있고 나중에 평가가 엉망으로 나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테뉴어 이야기를 조금 더 하겠습니다. 스탠포드교수들중 절반정도는 테뉴어 아직 못받은 사람들입니다. 테뉴어의 기준은 논문의 수와 질, 학계에서의 유명도, 강의능력 등으로 재단이사회(Board of Trustees)에서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탠포드 교수로 계약을 하면 5년마다 한번씩 테뉴어심사를 받게 되는데 강의능력보다는 논문과 펀드가 테뉴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교수가 외부에서 연구프로젝트나 기여금을 얼마나 가지고 왔느냐는거죠. 연구프로젝트를 가져오면 그 중 상당액은 오버헤드비용이라고 해서 학교에 내야 하니까 학교로서는 수입이 많아지는 겁니다. 지난해 말 새 총장으로 취임한 헤네시총장(공대 교수)은 야후로부터 1억달러(우리돈으로 1,300억원)를 끌어오기도 했습니다. 헤네시총장은 취임사에서 스탠포드대학 학부생 지원 강화방안으로 10억달러를 모금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최근의 경제침체에도 불구하고 벌써 그 중 절반정도 모았다고 하니 상당한 능력이지요.

테뉴어에는 논문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스탠포드대학에서 테뉴어를 받을 수 없는 이유중 하나가 “책을 한 권(성경)밖에 안썼기 때문”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습니다. 교수들은 4년마다 안식년으로 한 쿼터를 쉴 수 있는데 보통 봄 쿼터에 쉬는 걸로 정해서 여름방학까지 6개월정도를 쉬면서 논문이나 책을 씁니다.

정확한 내용은 공개가 되지 않지만 스탠포드교수들의 급여는 다른 대학보다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부근 집값이 워낙 비싸서 왠만한 급여로는 생활이 안되고 좋은 교수들을 끌어올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학교에서 캠퍼스내 숙소를 싼값에 제공하거나 외부에서 사는 교수들에게는 집값을 보조해줍니다.



다음회에는 스탠포드 학생들과 제 과친구들을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