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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포드에서 5) 돈 밝히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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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의 농담을 들어보면 상대방을 깎아내리지 것으로 통쾌해하는 우리의 농담법과 궤가 좀 다릅니다. 우회적으로 말하거나 다른 비유를 들곤 하죠.

일단 이들의 화법과 이면의 의식에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깔려 있습니다. 학교안에서의 토론을 들어보면 모든 질문과 대답이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의미 부여를 해주고 난 뒤 이어집니다. 이런 신사도는 정작 뒤이어 반박에 들어갈 자신의 의견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주는 묘수이기도 합니다. 보통 미국인들의 대화도 신사적입니다. 또 정말 자신의 이해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주는 것 아닌 다음에야 왠만하면 상대방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러나 돈이 걸린 문제에 직면하면 180% 돌변합니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전형이고 인간의 본능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 뿐이라고 넘어가려해도 이들의 태도는 그것으로 슬쩍 지나치기엔 상당히 물질 만능주의의 냄새가 짙을 때가 있습니다.



스탠포드의 교수들은 여느 교수들과 마찬가지로 지적인 자극을 환영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학생들과 토론하면서 자신이 준비하고 배우는 것을 즐기고 저작활동도 활발히 하죠.그런데

business에 골몰하는 학풍이 이들을 돈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합니다. 스탠포드는 서울보다도 큰 학교 주변의 땅을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라며 모두 사들일 정도로 엄청난 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의 성격은 물론 훌륭한 교수와 뛰어난 학생들을 스카우트하는 긍정적인 면도 가져왔지만 학교 재정을 위해서 교수들의 tenure 조건으로 학문의 실적보다는 프로젝트 규모와 성사횟수를 내거는 황금 지상주의의 관행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어쩔 수 없이 교수들이 따라가는 상황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학문보다는 돈에 더 친숙해지는 분위기가 자연스러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수자나 학생들을 보면서 이들을 자신에게 돌아올 돈이나 명성의 가치로 환산하는 계산법이 대화속에서 느껴지는 교수를 발견할 때면 그날 하루는 착잡합니다.

실물경제에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라(저와 친한 미국인 여기자입니다.), 미국 sales women은 정말 친절하더라. 내가 들어가서 사이즈가 안 맞으니까 3명이 달려들어서 물건을 찾아주더라구..”

제 이야기를 들은 사라는 쓴 웃음을 한번 짓더니 “자기 이름을 기억해달라고 얘기하지는 않던?”이라고 되묻더군요. 아, 그랬습니다. 그 중에 가장 나이가 들어보이는 여성은 자기 이름까지 이야기하면서 잠깐 식사하고 올 동안 제가 가야 한다면 “Julie가 봐줬다”고 front desk에 이야기해달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왜 그러죠? 전에도 그랬습니다. 다른 가게에서도

제가 계산을 하려니까 누가 저를 care해 줬냐고 묻더군요. 물건 고르는 것도 지쳤는데 질문까지 받는 제 심사도 편한 것은 아니어서 “그게 왜 중요합니까?”라고 반문했더니 정말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저는 왜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연이은 이들 sales woman들의 행태가 궁금해졌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돌봐준 고객들의 구입 액수에서 일정 비율의 commission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담당한 고객이 많이 사면 살수록 자신에게 떨어지는 과외 돈이 늘어나는 것이지요. 회사, 매출 늘어 좋고, 당사자, 보너스 받아 좋고, 고객, 서비스 잘 받아 좋고,누이

좋고 매부 좋을 일입니다. 특히 어쩌다 큰 손을 지니신 중동 등 아시아권 관광객들을 잘 만나서 거액의 물건을 사게라도 하는 날이면 그야말로 횡재입니다. 특히 이곳의 옷값은 일본이나 한국의 절반 이하여서 두 나라 관광객들은 한번 왔다하면 솔솔치 않게 사 가기 때문에

이들에게 아시아 손님들은 의미가 각별합니다. 그래서 동양여성으로 보이는 제게도 이들이 친절, 아니, 집착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런 매장의 saleswoman들이 솔직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전혀 돈과 관계 없는 일로 승강이 할 때…이들은 당장이라도 얼굴을 할퀼 듯한 사나운 모습입니다. 물건을 return할 때, 이들은 안색이 질립니다. 전에 물건을 사게 했던 담당이 “돈을 되돌려 받으셨으니 이제 이 매장의 다른 물건은 마음에 안 드시냐”고 이것저것 들어보이며 문 밖에까지 따라나오면 차라리 안쓰럽습니다. 처음의 그 친절을 한국식 잔정으로 오해한 제가 잘못이었습니다.

이렇게 돈으로 효율성을 추구하지만 그 원칙이 미래를 우려하게 만드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분리수거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음식쓰레기든 냅킨이든 쓰레기통은 하나입니다. 중학교때 미국의 쓰레기 분리수거의 엄격함을 보여준 르포를 보면서 감탄을 넘어 경외감마저 갖고 있던 제가 배신감을 느꼈을 정도였으니까 말입니다. 물론 종이나 플라스틱에 대한 재활용은 자발적인 참여아래 이뤄지고 있지만 쓰레기에 물이 차면 그 아파트 몇 동 몇 호까지 추적해 벌금을 물리는 자원 부족한 우리의 눈물겨운 단속과 비교가 됩니다.

“그래, 자원 많고…, 복받은 나라인게 죄지” 라고 그저 씁쓰레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패스트 푸드 점이나 식당에서 모든 음식과 종이를 함께 버무려 버리는 것은 일일이 음식을 걷어내고 닦아내는 인력 하나를 고용하는 원가보다 비용이 싸기 때문이라는 딱 떨어진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걱정할 처지는 아니지만 자원의 유한함에서 자유로울 나라는 지구상에 하나도 없다는 사실때문에…. 몇 백년뒤 그들의 후대가 자꾸 머리에 떠올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