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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의 양심위에 소비자의 권익? 쇼핑천국 미국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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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캐롤라이나(NC)로 연수온 타사의 기자 가족과 저녁식사를 같이 할 때였다. 후배기자 애가 우리 큰 애(5살)와 나이가 같아 자주 어울리는 편이다. 식사 후 편하게 술 한잔 할 심산으로 오전에 샀던 레고 장난감을 던져줬다. 한참 두 애가 낑낑대고 있는데, 레고는 부속품 하나만 없어지면 ‘말짱꽝’이라고 후배가 말했다. 펼쳐놓고 노는 모양새를 보니 부품을 잃어버리지 않는 게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샘이 많은 3살 딸애도 하나라도 더 만져 볼려고 계속 칭얼대고 있었다. 20불 상당의 레고 부속품이 300여개인데, 그 중 200여 개 이상이 조그만 나사만한 크기다.

그 때 와이프가 내 신경을 건드렸다.
“애 아빠는 창의력이 부족한지, 한국에서도 애 장난감 조립에 성공 해 본적이 없다”

막 먹기 시작한 술에 그 처럼 미련을 버려본 기억이 없다. 애랑 함께 30분 이상을 레고조립에 매달렸다. 어느새 시들해진 애는 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데, 나는 눈에 불을 켜고 레고조립에 집중했다.(처음 해 보는데 은근히 재미있었다) 그런데, 설명서의 40단계 중 30단계에 들어섰는데, 조그만 부품 하나가 안보였다. 그동안 들인 시간만큼 찾았는데도 직경 0.2mm에 길이 3cm쯤 되는 부품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해 본 사람은 중도에 그만 두는게 얼마나 허무하고 찝찝한지 안다. 심지어 그림을 보고 그 부품을 하나 깎아볼 생각까지 했다.

그러다가 든 생각이…”이 것을 한번 교환해 달라고 해볼까?”
애초에 그 부품이 없었을 확률 1%, 애들이 카페트위에서 뿌려놓고 놀다가 잃었버렸을 확률 99%.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칙에 비춰 미국 유통점의 특징은 변심 반품을 포함해 교환 등 소비자 요구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는 것이 생각났다.

다음날 근처에서 일을 본 후 장난감 전문점 토이저러스에 반 완성단계 자동차와 나머지 부품을 비닐주머니에 담아 찾아갔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망설였지만, 그 장남감에 쏟은 노력의 허망함과 유통점이 어떻게 나올지 등의 호기심이 내 양심의 가책을 잠재우고 등을 떠밀었다. 기다리면서 머리속으로 계속 작문을 했다. “처음부터 그 부품이 없었다.” 고 하는 건 너무 뻔뻔스럽고…”애들이 가지고 놀다보니 부품을 잃어버렸다. 무슨 방법이 있냐?” 이 건 스스로 잘못을 시인하는 꼴이고..”부품이 없다. 우리가 잘못했을 수도 있지만, 애초에 부품하나가 없었을 확률도 있다”는 문장으로 교환의 변(辨)을 삼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무엇을 도와줄까 묻던 직원은 장남간 꾸러미를 올려놓고 부품하나가 없어졌다고 하자, “영수증 있냐, 교환을 원하느냐 반품을 원하느냐?”고 얼굴에 웃음을 가득담고 응대했다. 기다리면서 영작문을 했던 내가 괜히 뻘쭘해졌다. 그래서 안해도 될 말을 해버렸다.

“애초에 부품이 없을 가능성은 희박하고, 내 잘못일 확률이 더 높다”

하지만, 그 종업원의 말이 가관이다.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라. 너 잘못이 아니다. 제조사들이 자주 부품을 빠트리곤 한다. 교환하러 오게 한 것에 대해 정말 미안하다.”

제품을 쉽게 교환해준 것은 물론 덤으로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죄의식’까지 말끔히씻어준 것이다. 이런 서비스에 가만 있을 내가 아니다. 애가 칭얼대기에 즉석에서 장난감 하나 더 사 줬다.

<변심반품 부추기는 미국 유통점>

어느 순간부터 와이프가 영수증을 꼼꼼히 챙기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안 쓰던 가계부라도 쓰려나 기특하게 생각했더니, 싫증나면 바꿀려는 속셈이란 것을 금새 알게 됐다.
와이프가 어느날 미국 도착후 50달러 주고 산 운동화 영수증을 찾아 달라고 했다. 한달이 넘도록 신은 운동화 윗부분이 헤져서 바꿀려고 한단다. “넌 양심도 없냐”고 핀잔을 줄 뻔했다. 다행히 영수증이 없었다.
계속 미련을 버리지 않던 와이프는 어느날 우연히 그 쇼핑센터를 지나는데, 잠시 기다려달라 하더니 말릴새도 없이 쏜살같이 뛰어 들어갔다. 5분후에 만면 웃음기를 머금고 나타났다. 종업원이 너무 미안해하더라는 말과 함께.

와이프의 반품행각은 갈수록 대담해지고 진화를 거듭해갔다.
큰 아이 가을 운동화 한켤레 산다고 하더니, 어느날 운동화 4켤레가 신발장에 쌓여 있었다. “무슨 운동화를 한꺼번에 4켤레씩 사냐?”고 했더니… 3개는 곧 반품을 할 것이란다. 실제로 2주 정도 후에 반품을 했다.
미국은 큼직한 쇼핑몰들이 흩어져 있다. 어떤 곳은 너무 멀어서 하자가 있어도 반품을 포기하는경우도 있다. 통상 그 점포의 클리어렌스세일(clearance sale)품목을 사다보니, 같은 브랜드 점포에 가도 교환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그렇게 오래 고르고 고르는데, 반품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

“기름값이 아깝다”고 번번이 거절하자, 와이프는 집근처 쇼핑몰에서 일부 제품을 척척 바꾸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한달이나 입은 큰아이 폴로 셔츠의 단추부분이 헤지자(와이프는 제품 하자라고 주장함), 다른 쇼핑몰의 폴로매장에서 한 사이즈 큰 제품으로 교환하는 재주를 발휘했다. “그 사이 애 덩치가 커져 좀 작았는데 잘 됐다”면서…

그러면서 반품 노하우도 전수해줬다. 아들 셔츠(한달전 다른 쇼핑몰 클리어런스세일에서 14달러에 구입한 제품)교환에는 매장직원도 난감한 표정을 짓더란다. 그 때 와이프가 좀 불쌍한 표정으로 헤진 부분을 가리키면서 “ Is this my fault?” 했더니, 외려 미안해 하면서 바로 바꿔주더란다.

한 연수기자의 반품도 한국에서는 드문 사례다. 그가 클리어렌스 세일에서 하이브리드 골프채를하나 샀단다. 막상 필드에서 시타를 해보니, 샤프트 강도가 자신과 맞지 않았지만 이미 포장 벗겨 뒷땅도 치고 해서 별 수 없이 캐디백에 넣고 다녔다. 한달쯤 지나 같은 SHOP에 들렀더니 더 좋은 제품이 클리어렌스 세일품목에 끼여 있었다. 욕심이 났지만 또 사기는 엄두가 나지 않아, 그러한 사정을 직원에게 얘기했더니 과거에 산 제품을 가져오라고 했단다. 설마하고 뒷땅쳐서 기스가 많이 난 제품을 들고 갔는데, 두 제품간 가격차이만큼 더 받고 군말없이 교환해줬다.
이 밖에 고국의 유통점에서는 서로 얼굴을 붉힐만한 교환성공사례를 일일이 거론하자면 입만 아프다.

<반품 악용에도 눈감는 서비스 경쟁?>

실제로 있었던 사례다. 한 지인이 인터넷쇼핑몰인 아마존에서 캠핑용 버너를 하나 구입해 한달 반 가까이 구입해 썼는데,,가스밸브 부분이 망가졌다. 제품의 구조적인 문제를 충분히 지적할 만 했다.
아마존에 들어가 보상규정을 찬찬히 뜯어 봤더니, 환불(refund)을 위한 반품기한은 한달로 한정됐다. 또 인터넷쇼핑몰을 통한 교환은 절차가 다소 까다롭다. 다른 주에 있는 아마존 물류창고로 제품을 반송해야 하고, 귀책사유에 따라 운송비가 본인 부담이 될 확률이 높다. 또 품목에 따라 제품의 교환조건 및 기간이 일일이 명시돼 있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월마트 코스트코 등 오프라인 유통업체와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그렇다면 월마트 등에서 같은 모델을 산후 아마존에 산 고장난 제품을 반품하면 어떻게 될까.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지인은 월마트에서 별 어려움없이 제품을 교환하는데 성공했다. 모든 제품을 이 처럼 바꾸는게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다. 월마트가 아마존의 반품창구역할을 자청할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사안을 갖고 반품의 귀재인 와이프와 얘기를 나눴다. 이 건 약간 사기에 가깝다는게 내 의견이고, 와이프는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도 나쁠 것은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
어짜피 제조업체를 호령하는 월마트는 손해보지 않고 제품을 바꿀 것이고, 제조업체도 그러한 구조적 문제점을 파악하는게 좋은게 아니냐는 논리였다. 유통 산업등을 두루 거친 경제신문 기자보다도 더 ‘인사이트(insight)’가 있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두 유통거인의 격돌, 미국 소비자 노날까?>

전 세계 제조업체를 쥐고 흔드는 미국 유통업계의 올해 가장 큰 화두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대표하는 월마트와 아마존간 전쟁이다. 지난해까지 상부상조하던 두 유통거인은 이제는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경쟁자로 서로를 정조준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월마트가 먼저 이빨을 드러냈다. 지난 9월부터 미국 전역의 4000개 매장에서 아마존을 부활시킨 히트상품 ‘킨들’의 전면철수를 단행한 것이다. 킨들의 업그레이드 모델이 단순히 전자책 기능을 넘어서 쇼핑툴(tool)로써 영역을 확장한게 월마트 선공의 기폭제가 됐다고 뉴욕타임즈는 보도했다. 하지만, 둘간 격돌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영역의 접점이 무서운 속도로 팽창한데다, 니치마켓터에 불과했던 아마존이 오프라인 영역을 잠식해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회원이 월마트 등 오프라인 매장을 둘러본후 찍은 상품을 할인해주는 프로모션을 전개하면서 이미 월마트 등을 자극했다.

또 아마존의 지속적인 성장세는 월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지난해 아마존의 매출은 $ 48billion으로 월마트($419 billion)의 10분의 1 수준을 넘어섰다.

월마트는 온라인 비즈니스모델의 핵심을 공략하면서 아마존을 향한 포문을 열었다. 10월초부터 시작하고 있는 당일배송(same day delivery) 서비스가 그것이다. 월마트는 워싱턴 교외에서 시작한 서비스지역을 점차 늘리고, 대상품목도 장난감에서 식료품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두 유통거인의 전쟁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반품 환불 서비스가 더 확대될 게 뻔하다. 또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할 기상천외한 프로모션도 등장할 것이다. 이게 소비자 권익확대로만 작용할런지는 의문이다. 쇼핑천국 미국에서 단지 2달여 살았는데, 고국에서는 안사도 되는(아니 안샀을) 물건을 하나둘씩 사 들이고 있는 나를 발견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