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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시 생활 즐기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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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월 22일부터 25일까지 Chicago Sheraton Hotel에서 진행된 아시아학회(Association for Asian Studies)의 연례회의(The 53rd Annual Meeting)를 참관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평소의 관심분야와 직접 관련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미국에서의 아시아 관련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이번 회의가 연간 학회활동을 종합정리해 발표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을 것 같아 찾아갔습니다.

대체적으로 academic한 분위기 때문에 생소한 점이 있기는 했으나 미국에서의 아시아 학회, 그 중에서도 한국관련 study의 일단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연수기간동안 연수자들의 관심분야와 관련된 학회 회의나 세미나등은 한두번쯤은 참관할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학회를 보면서 미국에서의 한국학분야가 아직 미국학계에 착근한 것 같지 않았고-그런 점에서 가능성이 더 많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학회에 참가하는 국내외 학자들도 충분한 실력을 못갖췄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국관련 session에 참석하는 미국학자들도 한국을 잘 아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한국학 관련 meeting들이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우리 학자들의 세계화가 덜 됐기때문인지, 한국에 대한 관심이 낮아서인지 함께 생각해볼 일인 듯 했습니다.



●…이번 연례회의에서 개최된 session은 모두 220개로 각 session은 2시간씩으로 4-5명의 패널이 발표하고 토론자의 비평, 일반 참석자들의 질문순으로 진행됐습니다. 회의 참가자들은 워낙 많은 분야별 session이 열렸기 때문에 자신의 전공이나 관심분야의 session에만 참석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학회는 또 동료학자나 대학원생들이 오래간만에 만나서 회포를 푸는 기회로도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이번 회의에서는 단연 중국관련 session이 규모면에서 다른 국가를 압도해 전체의 30%가 넘는 86개의 session이 개최됐습니다. 일본이 그 뒤를 이어 49개였고 한국관련 session은 14개로 마치 Asian Game의 금메달 숫자를 보는 듯 했습니다.

한국관련 회의중 최근의 국내정세와 관련된 session은 외환위기이후의 우리나라 금융개혁문제를 다룬 ‘The Political Economy of South Korean Economic Reform in the Wake of the Financial Crisis’ , 한국과 대만 신정부의 경제운용문제를 다룬 ‘Continuity and Change in the Political Economics of East Asia’s New Democracies: Korea and Taiwan’, 그리고 북한 탈북자 문제를 토론한 ‘Life in Crisis: North Korean Refugees in China’ 가 있었습니다.

또한 special event로 Research Council on Korean Reunification, roundtable: “After the Korean Summit”라는 주제하의 session이 개최돼 남북정상회담 및 최근의 한미정상회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등을 소재로 한 토론이 진행됐습니다.

이들 session에서는 우리나라의 금융개혁과 함께 남북문제에 대한 논문들이 주로 발표됐는데 특히 미국의 George W. Bush 대통령의 등장으로 남북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가 긍정적일지, 아니면 부정적으로 작용할지는 학자들마다 견해가 엇갈렸습니다.

‘After the Korean Summit’ session에서는 특히 최근 한미정상회담에서 김대중대통령과 한국정부가 Bush대통령을 설득시켜 대북포용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려다가 사전준비미흡과 상대방에 대한 잘못된 평가로 인해 실패로 돌아감으로써 향후 대북관계에 차질을 빚게됐다는 비판도 함께 제기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국관련 session 참가자중에는 80년대 전두환 정부의 간담을 서늘하게했던 ‘부천서 성고문사건’의 주인공인 권인숙씨가 있어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Women, subjectivity, and the Political-Economy of Gender in Colonial and Post-colonial Korea’ session에 참석한 권씨는 한국의 민주화과정에서의 여성운동가들의 역할을 중심으로 여성운동을 평가하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현재 Harvard University에서 포스닥과정을 밟고 있다고 밝힌 권씨는 지난 94년 도미해서 지난해 Clark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가을학기부터 University of South Florida 여성학과에서 강의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근황을 설명했습니다. 슬하에는 아들 하나를 두고있다고 했습니다.

성고문사건당시 법원에서 권씨를 취재한 적이 있다고 밝히자 권씨는 반가움을 표시하면서도 그 사건의 꼬리표가 붙어 다니는 것에 대해 다소 부담스러워 하는 듯 했습니다.

어쨌든 어제의 학생운동가가 이제 학자로 변신해 당당하게 미국사회에 정착하는 것을 보고 흐뭇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편 남북한의 학자들이 참석해 과거 남북한에서 금기시됐던 문학작품에 대한 평가작업을 시도하려던 “The Ideological and Methodological Shift in Literary and Its Impact in North and South Korea” session은 요약문까지 나온 상태에서 취소돼 아쉬움을 더해주었습니다.



●…공식 비공식적인 session이외에 학회기간동안에는 각국의 비디오 상영과 서적판매행사들이 있어서 찾아봤습니다.

한국관련 비디오로는 위안부 문제를 다룬 ” Silence Broken-Korean Comfort Women”, 우리나라를 여행한 미국학생을 통해 한국의 역사와 언어, 가족생활, 문화등을 소개한 “Geography and Society : Tune in Korea”, 3세때 미국가정에 입양된 한국의 젊은이가 한국의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시도에서 스스로 제작한 ” Passing Through”등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이같은 documentary가 의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한국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는 노력이 아쉬웠다는 느낌입니다.

종종 경험하는 것이지만 여전히 많은 미국인들은 물론 다수의 international student들도 Korea라고 하면 Korean War를 알 정도고 또한 south인지 north인지에 더 관심을 둘 정도입니다.

비디오중에는 인도의 간디일생을 다룬 “Mahatma Gandhi : The Great Soul lives”와 미국의 유명기자였던 Edgar Snow의 부인이자 자신도 journalist로 활동했던 Helen Foster Snow의 활동상을 그린 “Helen Foster Snow : Witness to the Revolution”이 있어서 무료한 시간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서적 전시 판매장에서도 중국의 위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전체 booth들 가운데 70%이상을 점령한 중국인들은 언어 문화 역사 교육 다방면에 관한 논문과 서적들을 판매하고 있었고 역시 일본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학과 관련된, 또는 한국의 오늘을 소개하는 booth는 없었고 국제교류재단에서 booth 한 군데를 구해서 재단의 활동을 알리는 정도였습니다. 반면에 미국에서 북한과 교류하는 회사에서도 booth 한 곳을 차지하고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관련된 서적을 비롯해 북한 관광안내책자와 지도까지 판매하고 있어 지나는 외국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