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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 경질과 미국의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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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이 아프간 최고 사령관 맥크리스털 장군을 경질했습니다.
롤링스톤 기사 파문이 일자마자 이틀 만에 말 그대로 전광석화처럼 이뤄진 경질입니다.(장군의 거취를 논의하는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그를 추천했던 게이츠 국방장관만이 잔류 의견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후문입니다)

맥크리스털 장군이 격주 음악전문지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과 부통령 그리고 국가안보회의의 핵심 인사들을 모욕한 언사가 문제였습니다. 오바마는 8분에 걸친 백악관 로즈가든 연설에서 맥크리스털 장군 경질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맥크리스털 장군의 언급은 사령관이 준수해야 할 기준을 지키지 못한 것이고, 이는 미국 민주주의 시스템의 핵심인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훼손한 것입니다. 또한 아프간에서의 전쟁 수행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함께 일하는데 필요한 신뢰를 무너뜨렸습니다“

핵심은 문민통제입니다.
롤링스톤 기사에 인용된 맥크리스털 장군의 말 가운데 대통령을 비롯한 안보 핵심 참모들과 정책적 견해차를 드러내는 언급은 없었습니다. 한국전쟁 때 트루먼의 정책에 반기를 들었던 맥아더 장군이 그랬던 것처럼
아프간 전쟁에 대한 오바마의 정책에 맥크리스털 장군이 항명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문민통제를 훼손한 것이 경질의 이윱니다.

대통령과 부통령을 모욕하고, 협력해서 일하라고 대통령이 보낸 문민인사들인 아프간 대사와 아프간 특사를 조롱하고 무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대통령을 무시했고 이는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거스른 것으로 본 듯 합니다.

대통령을 독하게 몰아붙이던 공화당까지 대통령의 사령관 경질 결정을 지지했습니다. 그 어떤 전쟁영웅도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고 자리에 남지 못했습니다. 외형적으로 미국은 문민통제의 전통을 이어갔습니다.

롤링스톤 기사 파문에서 경질까지 과정만 보면 깔끔하게 정돈된 미국정치의 저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질 결정을 내린 대통령이나 이를 받아들이는 장군,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언론과 정치권 태도 등 뭐 하나 시비걸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사태의 본질은 맥크리스털 장군의 경질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맥크리스털 장군의 기사 파문은 9년에 걸친 아프간 전쟁이라는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에 대한 미국인들의 고민과 좌절을 고스란히 드러내 버렸습니다.

미국의 아프간 전쟁 전략의 핵심은 경질된 맥크리스털 장군이 입안했고, 오바마 대통령이 이를 승인함으로써 진행됐습니다. 맥크리스털 장군은 지난해 이미 항명 논란을 일으키면서 오바마에게 미군의 아프간 추가 파병을 압박했고 결국 뜻을 이뤄냈습니다. 오는 8월이면 3만 명의 추가 파병이 완료됩니다.

압도적인 전력으로 알 카에다에 테러 거점을 제공하고있는 탈레반을 격퇴하고 탈레반이 물러간 자리를 아프간 카르자이 정부 공권력이 대체해 아프간을 안정화 시킨다는 것이 전략의 핵심입니다.

이러한 맥크리스털의 전략은 그러나 군사작전에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추가 파병의 물리적 지원을 받은 맥크리스털은 지난 봄 탈레반의 극렬 저항 지역인 마자르 지역에 대규모 공세를 취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마자르에서 탈레반을 격퇴시키고 아프간 정부가 이 지역을 통제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마자르 공세는 미군에게 전쟁 발발 후 최악의 인명 피해라는 대가를 요구했고 아프간 정부는 이 지역 통제를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의 아프간 전쟁 성패를 결정지을 작전으로 알려진 6월 칸다하르 대공세를(오바마 대통령은 군 관련 연설 때 마다 이 작전을 언급하곤 합니다) 차일 피일 미루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프간 정부를 강화시키고 보안군을 훈련시켜 내년 7월부터 예정된 미군의 철수시작 전 아프간을 안정시킨다는 정책도 그 효용성을 의심받고 있습니다. 부패와 선거부정으로 얼룩진 카르자이 정권은 미국의 신임을 받지 못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한계 때문에 미국은 카르자이와 협력하고 있습니다. 이 전략의 연장선에서 맥크리스털은 카르자이 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고 이 과정에서 카르자이 정부의 부패를 문제삼는 에켄버리 아프간 대사,홀부룩 특사와 문제를 일으키며 반목해 왔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는 12월까지 아프간 전쟁 전반을 평가한다고 했습니다. 그 평가 결과에 따라 향후 아프간 전쟁에 대한 전략을 새로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미국의 아프간전 성패를 따지기는 이른 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상황만 본다면

*지상전 상황은 악화되고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프간 내 폭력 상황은 호전되지 않고 증가하고 있다
*부패로 인해 아프간 정부의 역할이 의심받고 있다
*워싱턴 등 미국내 비판이 점증하고 있다
*아프간에 파병한 동맹국들은 기회만 있으면 발을 빼고 싶어한다.
등으로 아프간 상황을 요약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시점에 맥크리스털 장군의 롤링스톤 인터뷰 사태가 터졌습니다.

전황을 뻔히 알고 있는 오바마로서는 이를 계기로 상황을 반전시키거나 최소한 호전시킬 모멘텀이 필요했을 터였고 맥크리스털 장군의 경질은 문민통제라는 그럴싸한 담론의 외피를 입히기는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조처로 읽힙니다.

이라크전이 부시의 전쟁이었다면 아프간전은 부시가 시작했지만 오바마의 전쟁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오바마는 대통령 선거戰부터 이라크전에 반대했지만 아프간전은 대 테러전 차원에서 수행해야 한다고 말해왔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아프간전은 절대 베트남전의 전철을
밟지않을 것이라고 장담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점 점 베트남 전의 악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베트남에서 프랑스가 패퇴했고 미국이 쫒겨나고 마지막에 중국이 물러났던 것처럼 제국의 무덤이라는 아프간에서 알렉산더가 그랬고 제국주의 시대 영국이 그랬고 백 만명의 아프간 인을 희생시킨 구 소련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도 제국의 무덤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 아닐까는 악몽이 미국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번 맥크리스털 장군의 경질을 몰고온 롤링스톤 기사중에 필자에게 눈에 띄는 한 대목이 있었습니다. 맥크리스털 장군의 언급이 아닌 그의 핵심 참모 빌 메이빌 소장의 언급입니다

“이 전쟁은 이길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승리할 것이란 맛도 냄새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어요.
이 전쟁은 논란으로 끝날게 분명합니다“

전쟁이 한창인 최전선에서 그 전쟁의 전략과 전술을 짜고있는 미군 장성이 할 말은 분명 아니겠지만 최일선에서 느끼는 장군의 좌절이 바로 아프가니스탄 전을 보는 미국인들의 좌절로 느껴지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