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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대신 수염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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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외모로 풍기는 이미지라는 게 있습니다. 제 경우 깔끔한 도회지적 이미지를 가졌다고 할까요.^^! 하지만 외모와 달리 속내는 아주아주 시골 촌놈입니다. 시골에서 태어났고, 흔히들 말하는 어릴적 냇가에서 친구들과 멱감고, 가재와 우렁이를 잡으면서 자랐습니다.

어릴 적엔 집 마당이 꽤나 넓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동물을 좋아하셔서 개도 한번에 2-3마리씩 키웠던 적도 있었던 것 같고, 닭도 키우고, 오리도 키우고, 마당에서 꿀벌을 기르기도 했습니다. 어머님은 키우던 닭과 오리를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직접 잡아서 맛있는 백숙을 만들어 주시곤 했습니다. 아으 다롱디리, 상상해 보시길…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에 올라왔을 때, 동아리 선배들이 하던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그 당시 대학 신입생으로 동기들과 미팅도 하고 디스코텍도 다니고 할 때였습니다. 선배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 여학생 처음 만나면 아무 말도 하지말고 ‘예,아니오’로만 말해라. 그러면 여학생들이 너를 귀하게 자란 서울 남자로 알텐데, 네가 입을 열면, 그 순간 다 도망간다!“

아마도 심한 사투리 때문에 낭패당할 수 있다는 경고였을 겁니다.

아, 그런 저의 평소 모습은 이렇습니다! 짜잔!

사람들은 외모 때문에 득을 보기도 하고,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제 경우 예쁜 아내를 만난게 득 가운데 하나라면, 사람들이 제 겉모습만 보고 도회지적 이미지로만 저를 오해하는게 손해 가운데 하나라면 하날까요.^^! 아내도 그 때문에 사기결혼을 당했다고 가끔 농담을 하곤 하는데, 그래도 실보다는 득이 많은가보다 합니다…쩝!

사설이 길었습니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작정하고 수염을 길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내가 회사 일 때문에 저보다 두달 남짓 늦게 미국에 왔는데, 그 사이에 수염을 길렀습니다. 혼자 있다보니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 매일 면도하기도 귀찮더군요. 처음엔 며칠 기르다 자를 생각이었는데, 어디까지 자랄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두달여동안 작정하고 수염을 길러봤습니다. 주변의 친한 동료 연수생들조차 “왜 그러느냐, 와이프가 보면 가만 두겠냐”며 말리더군요.

어떻습니까? 제가 원래 몸에 털이 없는 편인데도, 두달 가까이 길렀더니 제법 무성하게 자라더라구요. 어떤 분은 수염을 기른 제 모습을 보고 ‘산악인’같다는 말도 하더군요. ‘산악인’이라!

수염을 기르는 동안 서울에 있던 아내에게는 수염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기왕이면 미국에 도착할 때 공항에서 ‘짜잔’하고 깜짝 선물로 안겨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차에 지난해 11월 10일, 마침내 아내가 미국에 왔습니다.

“뭐라고 할까?” 공항에서 아내를 기다리면서 반응이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8살된 딸아이의 반응도 궁금했구요. 한시간쯤 기다렸을까, 드디어 아내가 저만큼 모습을 내보였습니다. 저를 보고 활짝 웃던 아내의 얼굴!

하지만 ‘혹시나’했는데 ‘역시나’였습니다. 웃는 얼굴도 잠시, 불과 0.2초만에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지더군요. 그러면서 첫마디가 “왜 쓸데없는 짓을 했어. 집에 가면 당장 깎아”라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옆에 있던 딸아이는 아빠 얼굴이 무척이나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도, 화난 엄마 눈치 때문에 어쩔줄 몰라했습니다.

집에 오는 내내 시무룩하게 있던 아내의 표정을 보면서,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괜한 자책감까지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부부라고, 집에 오자 아내가 분위기를 풀어주더군요. 그러면서 수염을 깎기 전에 함께 기념 촬영도 했습니다.

네번째 사진 뒤에 보이는 분은, 평생 길러보고팠던 수염을 사위가 대신 길러줬다며 멋지게 제 편을 들어주신 장인어른이십니다. 수염이 꽤 길다보니 두달여 동안 길렀던 수염을 깎는 것도 힘들더군요. 면도하는 데만도 한창 걸렸던 것 같습니다. 또 면도를 하고 나니 홀가분하기는 했습니다만, 오히려 면도한 모습이 낯설기조차 했습니다. 특히나 언제 다시 수염을 길러볼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에 자꾸 거울을 보게 되더라구요.


얼마 전에 찍은 딸아이가 찍어준 사진입니다. 다시 되찾은 제 모습입니다.

평소처럼 매일 면도를 하게된 지도 벌써 두달여가 지났습니다. 지금도 수염을 깍다가 문뜩문뜩 지난해 가을이 떠오릅니다. 지난 가을 두달여동안 길렀던 ‘수염’은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다시 생각해보니 두달여 동안의 수염 기르기는 바로 ‘자유’ 그것이었습니다.
비록 아내가 없던 ‘공백’기간 때문에 수염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만, 꽉 짜여졌던 일상에서 벗어나, 아무런 눈치도 보지않고 마음껏 해보고 싶은데로 해봤던 ‘자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