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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통신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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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는 사실 중국인들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는 날입니다.

기독교나 천주교인이 매우 적은 중국에서 성탄절은 서방인들이 즐기는 요란한 기념일일 뿐, 중국인들에게는 아무런 날도 아닙니다. 집에서 하루 쉴 수 있는 휴일도 아니며 따라서 언론 매체도 성탄 관련 뉴스를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중국당국이 밝힌 기독교, 천주교 신자 수는 약 1,8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4% 안팎에 불과하니 이같은 사정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국의 공식적인 반응과는 달리, 시내 번화가에 나가보면 흥겨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상당히 많습니다. 백화점, 쇼핑센터, 서점, 패스트푸드점, 선물가게 등등… 중국도 개혁개방이 본격화되면서 해마다 성탄절을 즐기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베이징의 경우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왕푸징(王府井)과 시단(西單) 등 중심가에는 많은 젊은이와 가족들이 몰려나와 백화점과 쇼핑센터 등이 마련한 성탄 행사에 참여하고 다양한 구경거리를 즐겼습니다.



성탄절은 역시 자본주의의 본고장인 서방이 원조인 만큼 풍성하고 매력적인 상품, 아이디어가 발랄한 상혼과 더불어 축제 분위기가 배가되는 듯합니다. 날로 세련됨을 더해가는 중국의 쇼핑공간에는 어김없이 성탄 용품 특별매장이 설치돼 있고 판촉을 위해 동원된 여러 명의 산타가 고객을 유혹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신나게 울려대는 캐롤이 빠져있어 좀 심심하고 밋밋하다는 점이지요.



이런 성탄절 밤에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터졌습니다.

12월 25일 오후 9시 35분 중국 중부 허난성(河南省)의 고도(古都)인 뤄양(洛陽)시의 한 백화점(東都商厦)에서 초대형 화재가 발생해 무려 309명이 사망한 것입니다.

희생자들은 모두 질식해 숨졌는데, 대부분 4층의 나이트 클럽(歌舞廳)에서 열린 성탄절 행사에 참가한 젊은이들이었고 2, 3층에서 일하던 인부들도 함께 희생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유사한 사고가 나지만, 이번 참사는 몇 가지 후진적인 원인이 복합된 인재(人災)였습니다. 이 나이트클럽은 개인이 임대해 무허가로 경영하고 있었고 비상구나 대피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습니다. 불이 난 곳은 이 나이트 클럽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건물 지하였습니다.

지하의 연기가 통로를 타고 순식간에 4층까지 올라오자 손님으로 가득찬 나이트 클럽이 연기에 휩싸이며 아수라장으로 돌변한 것입니다. 이가운데 운좋게 대피해 목숨을 건진 손님은 60여명에 불과했습니다.



조사 결과 화재는 당시 건물 지하에서 인부 4명이 용접일을 하다 불똥이 가구와 옷가지에 옮겨붙으며 확산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용접공들은 불을 끄려고 했으나 실패하자 달아났습니다.

이번 사고는 긴급대피 시설 미비와 안전 불감증, 안전규정 위반 등이 부른 후진국형 사고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나이트클럽은 성탄절 행사를 위해 무료 입장을 허용해 참석자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성탄 행사가 화재의 원인일 수는 없지만 아무튼 이번 참사는 중국인들에게 크리스마스의 비극적인 기억으로 남게 됐습니다.



필자는 낙양 화재에 대한 중국언론의 보도를 지켜보며 우리와 사뭇 다른 중국의 한 단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밤 9시 35분 화재 발생, 0시 45분 완전 진화.

가장 먼저 뉴스를 외부로 타전한 것은 소후(Sohu.com)를 비롯한 인터넷 매체로 불이 꺼진 뒤 새벽 2, 3시 쯤부터 기사를 내기 시작했고 오전에는 희생자 수의 증가, 중국당국의 대응 등과 같은 비교적 상세한 속보를 전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대략 우리나라 매체의 대응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와 다른 점을 살펴보면 우선 조간신문에 아무런 기사가 실리지 않은 것이 눈에 띱니다. 신문 만의 얘기라면 조간 마감시간이 빨라서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원인은 시간 상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방송 뉴스에서도 이 화재기사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방송사들의 중계차가 분초를 다퉈 화재현장으로 달려가고 드라마 방영 도중이라도 긴급뉴스를 편성해 관련 속보를 보도하고 화재 현장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어 취재에 열을 올렸을 것입니다.



중국의 언론 상황을 다소나마 이해하고 있는 필자는 그래서 저녁뉴스를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중국 CCTV의 7시 뉴스는 우리의 9시 뉴스와 유사한 종합뉴스인데 그 시간에는 중국의 대다수 채널이 이 뉴스를 그대로 내보냅니다.

그러나 30분 동안 진행된 7시 뉴스에서도 洛陽의 화재 기사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이미 긴급 편성된 뉴스속보로 몇 차례 처리한 뒤 9시 뉴스에서도 톱 아이템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해 집중보도했을 것이 틀림없는 대형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매체를 제외한 중국의 신문과 방송은 필자가 아는 한 26일 하루종일 이 뉴스를 전혀 다루지 않았습니다.

중국 언론이 국익을 최우선시한다는 것은 대충 알고 있었지만 이런 대형사건이 보도되지 않을 수도 있을까 하는 물음표를 크게 그려볼 수 밖에 없는 하루였습니다.



다음날인 27일 조간에서는 1면에 사진을 싣고 2면에 기사를 다룬 비교적 상세한 사건 보도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기사 구성은 대략 우리의 사건사고 기사와 비슷했지만 다만 “안전 불감증과 무사안일한 감독태도가 人災를 불렀다”는 식으로 정부당국를 비판하는 기사를 찾아볼 수 없는 점이 크게 달랐습니다.

이날 방송 뉴스는 학교수업 때문에 자세히 살펴볼 수 없었으나 전해들은 바로는 기자 리포트로 자세히 보도하지 않고 앵커가 읽는 단신 기사로 아주 짧게 처리됐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대형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치열한 취재경쟁 속에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보도가 혹시 사고의 순조로운 대처와 문제해결에 혹 누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점을 우려해온 필자는 이번에는 거꾸로 중국 언론의 이같은 보도 태도가 화재의 책임을 호도하고 사고의 파문을 잠재워 향후 유사한 사고의 재발을 막는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보지 않을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