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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일기4(북경대가 좋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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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대-청화대는 다르다



저는 중국, 그 중에서도 북경에서 연수하려는 기자들에게 북경대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중국에 와서 보면 금방 알겠지만, 북경대-청화대 두 개 대학과 나머지 대학들의 격차는 상당합니다. 중국 사람들과 대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일단 두 개 대학을 먼저 언급한 뒤, 나머지 대학을 이야기합니다. 북경대, 청화대와 나머지 대학은 격이 틀리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서점에 가봐도 ‘북경대 명강의’ ‘청화대 명강의’ ‘북경대 캠퍼스’ ‘청화대 캠퍼스’ 등 북경대와 청화대 자체를 소재와 삼은 책이 족히 20종 이상은 출판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를 잇는 인민대학 관련된 책만 해도 한 두 권을 찾기 힘듭니다. 나머지 대학과 관련된 책은 출판돼 있을 가능성이 물론 있습니다만, 저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2002년 말쯤으로 기억됩니다. 중국의 한 신문에서 아주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왕푸징(천안문 부근의 번화가) 서점에서 그 해 북경대, 청화대 주요 학과의 수석 입학생들이 공동 저술한 ‘나는 이렇게 북경대와 청화대에 입학했다’는 책 사인회를 가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들은 사인회에 앞서 강연도 했는데, 그 강연에 중고등학생 자녀들을 데리고 온 학부모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 못지 않는 중국의 명문대 열풍을 엿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북경대와 청화대의 위상을 알 수도 있습니다.



너무나 개방적인, 그래서 가짜도 판치는…



그럼 왜 기자들의 연수기관으로 청화대가 아니라 북경대가 좋으냐?

청화대는 기본적으로 공대 중심의 대학입니다. 물론 신문방송관련 학과, 경제,경영관련 학과가 있고, 최근 문과 관련 학과를 추가로 개설하는 추세라고 합니다만, 역시 공대 중심의 대학입니다. 그러나 북경대는 전통적인 문과 중심의 대학입니다. 법-경제-역사-정치-신문방송-사회학-철학-국제정치 등 문과 계통 학과들과 물리-생물-화학 등 자연과학 분야의 학과들이 주를 이룹니다.



두 학교의 교풍도 상당히 다릅니다. 북경대는 개방적이고 사교적이나, 청와대는 상대적으로 폐쇄적이고 비사교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많은 중국 사람들이 이런 총평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청화대에서 유학하는 한국 유학생도 스스로 이렇게 평하더군요. 북경대의 개방적인 교풍은 북경대의 역사와 관련 있습니다. 중국 근대 교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채원배 총장은 북경대를 명실상부한 중국 제일의 대학으로 기틀을 갖추게 만든 인물입니다. 그는 우수한 인재이면 학위가 있건 없건, 심지어 정규 교육과정을 받은 적 없는 사람일지라도 가리지 않고 북경대학 교수나 학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교육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북경대 학생이 아니더라도 수업에 참여하는 걸 허락했습니다. 그가 만들어놓은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북경대 학생 기숙사에 북경대 학생이 아닌 다른 대학 학생이 들어와 살고 있는 예가 적지 않습니다. 대학생이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이 북경대 기숙사에 살면서 북경대의 특정 전공 강의를 집중적으로 듣고 마치 북경대 특정 과의 학생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북경대 인터넷 게시판에는 진짜 북경대 학생이 이들을 대상으로 기숙사 방을 세놓겠다는 광고도 버젓이 뜹니다. 우리 같으면 ‘가짜 대학생’이다 뭐다 해서 난리가 나겠지만, 북경대학은 이런 사실을 잘 알면서 관여하지 않습니다. 한 북경대 대학원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북경대 학생이 아니면서 북경대에서 학부-대학원 과정까지 충실히 강의를 듣고 유명 학자가 된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학교 분위기이다 보니, 조금의 적극성만 가지면 학교 내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늘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런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원보다 더 공원 같은 캠퍼스



무엇보다 북경대의 장점으로 빼놓을 수 없는 건 아름다운 캠퍼스입니다. 중국의 대학 캠퍼스 개념은 한국과 완전히 다릅니다. 중국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단위(單位)’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걸 알 수 있는데, ‘단위’는 하나의 생활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게 학교가 될 수도 있고, 회사가 될 수도 있고, 연구소, 국가 기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단위’는 소속 구성원들과 구성원 가족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습니다. 북경대를 예로 들면 학교 캠퍼스 안에 학생 기숙사, 교수와 교직원들의 집, 식당, 옷가게, 과일가게, 슈퍼마켓, 자전거포, 목욕탕, 이발소, 병원, 옷 수선점, 심지어 호텔까지 들어와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학교 안에서 의식주 모든 생활을 다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죠.



북경대학은 캠퍼스 자체가 아름다운 공원입니다. 북경대학은 캠퍼스 안에 명대(明代)부터 청대(淸代)에 걸쳐 조성된 여러 개의 중국 전통 정원을 품고 있습니다. 명나라 때 유명한 화가인 미완종(米萬鍾)이 만든 정원인 샤오위엔(勺園), 청 건륭제 때의 간신 허션이 만든 수춘위엔(漱春園), 청 도광제의 여섯째 아들인 공친왕이 만들었던 랑룬위엔(朗潤園) 등등이 모두 북경대학 캠퍼스가 품고 있는 중국 전통 정원들입니다. 이런 정원들이 북경대 캠퍼스 북쪽을 전부 차지하고 있는데, 북경대는 이곳을 학교 시설물을 건설하는 등으로 개발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부 원로 교수들의 오래된 숙소들만 띄엄띄엄 자리잡고 있을 뿐입니다.



달밤에 체조하는 북경대생



캠퍼스 안, 또는 캠퍼스 바로 인근에서 대부분의 교직원, 학생들이 살고 있고, 캠퍼스 자체가 아름다운 공원이기 때문에 캠퍼스의 밤 풍경은 한국의 대학과는 사뭇 차이가 큽니다. 밤 8시가 넘어서면 교정 곳곳에서 ‘달밤에 체조하는’ 북경대생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달리기하는 학생, 농구하는 학생이 밤이 되면 쏟아져 나오고, 특히 태극권을 비롯해서 중국 전통무술을 연마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달밤에 체조하는 모습이죠. 또 밤에는 캠퍼스 내 도로를 오가는 차량 수가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에 도로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기는 학생들이 부쩍 늘어납니다. 인라인스케이트는 요즘 중국 학생들에게 최고의 인기 종목입니다. 식당이나 슈퍼마켓, 강의실 안에까지 인라인스케이트를 신고 들어오는 학생들이 적지 않습니다.



북경대 서쪽 인공호수인 웨이밍후(未名湖) 주변은 밤이 되면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들로 넘쳐 납니다. 인공호수라고 하지만 그 넓이를 보면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호수 한 편에 작은 섬마저 있을 정도니까요. 그 호수 주변 우거진 숲속 곳곳의 벤치나 돌 위에 앉은 쌍쌍의 연인들이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에 아랑곳 않고 끌어 안고 또 때로는 입 맞추고 있습니다. 때론 좀 과하다 싶은 모습도 눈에 띄긴 하지만 거의가 한도(?)를 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호변을 산책하면서 그들 때문에 눈 찌푸린 기억은 없었습니다.



전 사스 때문에 가족들을 먼저 들여보내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거처를 학교 안 기숙사로 옮기고 난 뒤 북경대 캠퍼스의 밤의 정취를 만끽한 것에서 위안을 삼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북경대 캠퍼스의 밤은 환상입니다. 전 기숙사로 거처를 옮기고 난 뒤는 거의 매일 밤 웨이밍후변을 산책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