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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일기3(집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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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오코냐 야윈촌이냐 왕징이냐?



중국에서 집을 구할 때는 여러모로 신경 써야 할 게 많습니다. 우선 연수 기관과 거리를 따져야 할 것이고, 주변 여건도 살펴야 할 것입니다. 한국과 다른 임대 계약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저는 집 구하는 과정에서, 또 집을 나오는 과정에서 뼈아픈 경험을 했습니다. 금전적인 손실도 컸습니다. 저와 같은 실수를 줄이려면 사전에 면밀히 따지고 조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북경에 연수 오시는 분들이 주로 선택하는 거주 지역은 대학이 밀집해 있는 북경의 서북지역인 우다오코(五道口)와 한국 교민촌이라 할 수 있는 왕징(望京), 그리고 야윈춘(亞運村) 등입니다. 우다오코 지역은 주변에 북경대와 청화대, 어언문화대, 지질대, 임업대, 과기대 등 각종 대학들이 밀집해 있는 북경 서북쪽에 있습니다. 대학교 외에 유명한 중국어 학원 2~3개도 이 지역에 모여 있습니다. 근처 대학을 연수기관으로 선택한 사람의 경우 이곳에 집을 얻으면 자전거를 타고 손쉽게 오갈 수 있습니다. 교통비가 적게 들거나 거의 들지 않고, 언제든지 쉽게 연수기관까지 오갈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죠. 이런 점 때문에 우다오코는 한국 유학생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습니다. 자연히 근처에는 한국 식당과 술집들이 많으며, 한국 식료품도 쉽게 구할 수 있죠. 유학생 외에 가족 단위로 생활하는 교민도 적지 않습니다. 근처에 한국 유치원도 두 곳 있습니다. 저도 둘째를 우다오코의 한 한국 유치원에 보냈습니다. 그러나 우다오코는 한국 유학생들이 많다 보니, 일부 유학생들이 어긋한 행동들을 가끔씩 목격해야 하는 불쾌함은 감수해야 합니다.



왕징은 사실상 한국의 일부를 옮겨놓은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중국말을 전혀 못해도 크게 불편함 없이 생활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유학생보다는 주로 사업차 중국에 있는 사람들이 많으며 기업 주재원들도 적지 않습니다. 우다오코는 주로 유학생을 겨냥한 한국 상점들이 많지만 이곳은 가족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시설들이 많습니다. 어린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놀이방도 있고, 유치원도 있습니다. 북경의 한국국제학교에서 셔틀버스도 이 지역에 운행합니다. 우다오코보다는 훨씬 더 한국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점이라면 주변에서 연수기관으로 선택할 만한 곳은 사회과학원 정도를 꼽을 수 있고, 다른 유명 대학은 없다는 점입니다. 사회과학원까지는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습니다. 왕징은 북경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서북쪽에 밀집해 있는 대학으로 가려면 북경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가야 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러시아워시간에 학교를 오가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교통이 좀 불편한 편입니다. 북경은 천안문을 중심으로 주요 도로가 동심원처럼 뚫려 있습니다. 동심원 자체가 도시고속도로 역할을 합니다. 북경에서는 이를 1환, 2환 등 ‘환’이라고 부르는데, 5환까지는 도로가 거의 완비된 상태이며, 6환도 부분적으로 뚫려 있습니다. 왕징은 4환에서 외곽으로 빠져야 하는데, 왕징으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2~3개에 불과하고, 그나마 도로가 좁습니다. 그래서 러시아워시간이 되면 극심한 체증을 빚습니다.



야윈춘은 제가 살았던 동네입니다. 왕징과 대학촌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북경 당국이 북경아시안게임 당시 선수촌으로 개발한 동네 일대를 야윈춘이라 일컫습니다. 주변에 가까운 유명 대학은 경제무역대학 정도를 꼽을 수 있습니다. 대학촌까지는 이른 아침 택시를 타면 20분 정도, 출퇴근 시간에 버스를 타면 1시간 정도 걸립니다. 야윈촌에 사는 유학생 수는 극히 소수인 것 같습니다. 기업 주재원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만 왕징에 비할 바는 못됩니다. 우다오코와 왕징에 비해서는 교민들 수가 훨씬 적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녀가 있는 분은 근처에 한국 유치원이나 학교는 없고,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합니다.



제 경험상 집을 구할 때 가장 우선 고려할 것은 연수기관과의 거리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함께 연수한 언론계 선배 중에 왕징에 집을 구하고 북경 서북쪽에 있는 인민대학을 다닌 분이 계신데, 오가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학교를 자주 가지 않게 되더라더군요. 북경의 교통비는 장난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물가에 비해 교통비는 상당히 비싼 편입니다. 택시 기본요금은 10위엔(160원 가량)이고, 차종에 따라 1㎞당 1.2위엔, 1.6위엔, 2위엔씩 올라갑니다. 제가 살았던 야윈춘에서 북경대학까지는 이른 아침에 1.2위엔씩 올라가는 택시를 탈 경우 20~21위엔, 평상시에 탈 경우에는 24위엔 정도 나왔습니다. 1.6위엔씩 올라가는 택시는 이른 아침에도 24~25위엔이 나왔습니다. 왕징에서는 1.2위엔 택시를 타더라도 아마 30위엔 이상 나올 겁니다. 이 정도 되는 돈을 매일 왕복한다고 하면 적지 않은 부담입니다. 그래서 함께 연수했던 분들이 처음에는 주로 택시를 이용하다가 나중에는 주요 교통수단을 버스로 바꾸더군요. 저 역시 아침에는 끝까지 택시를 이용했지만, 집으로 돌아올 때는 버스로 바꾸었습니다. 교통비 부담을 떠나 거리가 너무 멀면 연수기관까지 오가는 불편 때문에 후회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저는 야윈촌에 집을 구했지만, 왜 학교에 조금 더 가까운 곳에 구하지 않았나 후회했습니다.



거금 1만5000위엔을 날리다



저는 처음 중국에 와서 야윈춘이라는 지역을 먼저 정한 뒤 집을 구하러 돌아다녔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후회했지만요. 나름대로 여러 집을 보기 위해 부동산중개업소 직원 1명과 사흘에 걸쳐 열 대엿 개 집을 돌아다녔을 겁니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하고 4000위엔을 주고 계약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지역은 한국 유치원 셔틀버스가 다니지 않는 지역이었습니다. 야윈촌 일대는 셔틀버스가 다닌다고 들었는데, 제가 계약한 아파트 지역은 최근까지 셔틀버스가 다니다가 중단됐다는 겁니다. 아마 근처에 유치원에 다니던 원생이 있다가 이사를 갔거나 귀국한 모양이었습니다. 유치원 셔틀버스 운행 여부를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았다가 부득이하게 계약을 취소하고 계약금만 날렸습니다.



그 뒤 새로 구한 집이 월세 5500위엔 짜리 집이었습니다. 계약 조건은 두 달치 월세에 해당하는 1만1000원을 보증금으로 미리 지불한 뒤, 매 2개월마다 두 달치 월세를 한꺼번에 내는 조건이었습니다. 계약 기간은 1년이었죠. 부동산 중개업소에서는 4쪽 짜리 계약서를 준비해왔는데, 부끄럽지만 당시 내 중국어 실력은 그 계약서를 해독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족 부동산 중개업소 직원으로부터 계약서의 주요 내용을 설명 듣고 계약을 맺었습니다.



문제는 사스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가족이 먼저 귀국하면서 저는 계약기간 1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4월 말 기숙사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않았기 때문에 보증금 1만1000원을 돌려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처럼 사전에 미리 통보하면 될 줄 알고 집을 나오기 20여일 전에 주인에게 나간다고 알렸습니다. 더구나 계약할 당시 귀국이 계약기간 이전에 미리 방을 빼고 장기 여행할 것을 감안해 보증금을 앞당겨서 돌려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었고, 주인도 흔쾌히 ‘그러마’ 하고 답한 것을 이번 경우에 적용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죠. 그러나 보증금을 돌려달라는 제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계약서상에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할 경우 보증금을 돌려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던 겁니다. 계약할 당시 구두도 주고받은 말은 아무런 효력이 없었습니다. 또 한국처럼 사전 통보 여부와 관계없이 계약기간을 채우지 않으면 보증금을 돌려 받을 수 없는 것이 이곳 관행이라는 것입니다.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이 물러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선족 중개업소 직원을 너무 믿었던 문제도 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유학생이거나 연수생들이 일반적으로 구하는 아파트 계약조건은 보증금으로 한 달치 월세면 되는데, 저는 두 달치 월세를 보증금으로 걸었던 겁니다. 중개업소들은 처음 계약을 맺을 때 집 주인 입장에 서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월세 2000위엔 가량 하는 집은 중개 수수료를 집 주인과 세입자가 절반씩 부담하지만, 5000위엔 가량 하는 집은 중개 수수료를 집 주인만 부담합니다. 중개 수수료는 보통 한 달치 월세에 해당하는 금액인 것으로 압니다. 그러니, 중개업자는 수수료를 지급하는 집 주인의 입장에 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집을 구할 당시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죠.



저처럼 중국 물정에 어두운 분이 중국에서 임대 계약을 맺을 때, 임대 보증금은 반드시 한 달 치로 하는 것을 끝까지 관철하고, 월세를 지급하는 방식은 가장 좋기로는 매월 지급하는 방식, 아니면 2개월치씩 지급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나이 어린 한국 유학생이 월세 6개월치를 한꺼번에 지급한 뒤, 사스 때문에 귀국할 때 그 6개월치를 몽땅 날리는 경우도 봤습니다. 또 계약할 때는 주변에 중국어를 잘 하고, 계약서 내용도 충분히 해독할 수 있는 지인을 데리고 가서 계약서 내용을 충분히 파악한 다음 서명하는 게 좋을 겁니다. 특히 사소한 내용이라도 구두로 주고받지 말고 반드시 계약서 상에 기입해 문서로 남겨야 합니다. 또 임대 계약을 할 때 침대, TV, 냉장고, 세탁기 등 각종 가전-가구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구비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한국에서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올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가전-가구를 요구하면 임대료는 조금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