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영국 정착 – 자동차 구입, 생활 물가, 그리고 미술관
– 자동차 구입과 되팔기
런던은 비싸긴 해도 대중교통이 잘 돼 있는 편이어서 런던 시내를 중심으로 생활한다면 자동차가 없어도 생활은 가능하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정부에서조차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피하라고 권고하고 있는 상황에선 자동차가 더욱 필요해졌다. 대중교통이 좋다고는 해도 한국 정도는 아니고, 가까운 교외나 한두 시간 정도의 거리를 이동할 때는 차가 없으면 다니기 어려워서 자동차의 효용성이 의외로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의 도로들은 상당히 좁은 편이어서 소형차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경제적이고 성능이 좋은 소형차들이 인기가 있는 편이다. 영국의 기름값도 코로나 유행으로 기름값이 떨어지기 이전에는 환율로 따지면 싼 곳이 대개 리터 당 2천원이 넘는 수준이어서 한국에 비해 결코 싸지 않다. 특히 교통범칙금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도로표지판이 워낙 작고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데다 차선도 지워진 경우가 많아서 우회전이나 좌회전이 안 되는 곳에서 회전을 하거나 희미한 실선인 버스차선으로 들어가기라도 하면 집으로 우편물이 날아온다. 기본 130 파운드, 20만원짜리 티켓이다. 좌회전 혹은 우회전 한 번에 이런 티켓을 받고 나면 며칠 간은 식욕이 떨어질 정도다. 우편물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무리 조심해도 한 번 당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피해나가기 어렵다.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기한 내에 내면 절반으로 깎아준다. 한국처럼 차선이나 표지판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조심해도 사소한 실수가 곳곳의 숨은 CCTV에 찍혀 동영상 증거로 제시된다. 영국, 특히 런던은 전 세계에서 CCTV가 가장 많은 도시이다.
중고 자동차를 구입할 때는 새 차를 살 때와는 달리 물건을 구입할 때 내야 하는 20%의 부가가치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중고차 거래 절차도 간단한 편이다. 영국에서는 자동차 등록번호만 입력하면 자동차 모델이며(타이어 크기 등 세세한 내용까지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다) MOT라고 하는 연례 정비 내역, 이전 소유자는 몇 명이었는지 등의 정보를 곧바로 얻을 수 있다. 자동차 등록번호만 입력하면 어지간한 차량 정보는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한 개인간의 거래도 활발하다. Gumtree라고 하는 개인 간 중고 물품을 거래하는 사이트에서 차를 골라 살 수도 있고, 최대의 중고 자동차 거래 사이트인 Autotrader에서는 제법 정확한 정보를 가진 차들을 쉽게 검색할 수 있다. 하지만 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면 함부로 개인으로부터 차를 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사이트에서는 개인 거래뿐 아니라 중고차 업체들도 들어와 있다. 돈을 좀 더 주더라도 중고차 업체를 통하면 어느 정도의 품질 보장을 해주니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업자들보다는 개인들이 거래하는 믿을만한 차량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그래서 최초의 차량 구입 시점부터의 전체 기간의 정비 이력이 있으면 같은 차라고 하더라도 가격은 좀 더 올라간다.
차를 팔 때도 위의 사이트들이 유용하다. 원래는 여름철이면 영국에 들어오고 나가는 한국인들이 제법 있기 때문에 영국의 한국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차를 사고 팔 수가 있지만 지금은 특수한 상황이어서 차를 내놓는 사람들은 많지만 사는 사람들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나도 사진을 찍고 차량에 대한 설명을 써서 Gumtree에 올려뒀다. 이도 저도 신경쓰기 싫다면, 인터넷을 이용한 판매도 있다. Webuyanycar.com 이라는 사이트에 등록번호를 입력하고, 요구하는 차량의 부위별 사진들을 올려두면 대략의 견적을 내준다. 물론 이 견적은 최대 가격을 말하는 것이고 이후 실제로 차량을 검수하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차량 가격을 조정하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 방법이 이런저런 신경을 안 써도 돼서 편리하다고 추천하는 사람들도 많다.
차량을 구입했으면 다름엔 자동차 보험이 문제다. 대단히 비싼 차를 사지 않는다면 자칫 보험료로 많게는 차값의 1/3 정도를 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특히 한인들이 재 판매하는 자동차보험의 경우가 그렇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검색을 하자. 인터넷 다이렉트 자동차 보험들의 가격을 비교해서 견적을 보고 난 뒤, 조건을 입력하고 필요한 옵션을 넣으면 된다. 예컨대 긴급출동 서비스를 유럽에서도 받는 조건을 추가하면 보험료가 올라가는 식이다. 인터넷으로 가입한 보험이라고 하더라도 평판을 갖춘, 규모가 있는 회사들이라면 비상시 보험 처리하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고, 이 경우에는 한국에서 내는 수준의 보험료 정도를 지불하고 가입할 수 있다.
– 물가와 생활 그리고 런던의 미술관
매달 집세 외에 카운슬 택스(council tax)라는 것이 있다. 주민세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지역과 등급에 따라 다르게 산정되는데 1년치를 10번에 나눠서 내는 방식이다. 내가 살던 집의 경우, 런던의 머튼 카운슬이라는 지역의 D 밴드에 속했고, 1년 카운슬 택스가 300만원이 좀 안 되는 수준이었다.
겨울이 긴 영국에서 난방비는 예기치 않은 요금 폭탄이 될 수 있다. 가을부터 영국은 해가 짧아지고 비가 많이 내리는 으스스한 날씨가 봄까지 계속된다. 집 안이 바깥보다 춥다는 선험자들의 말이 실감난다. 게다가 낡고 오래된 집들이 많다 보니 단열도 잘 안 되는데다, 집 안에 설치된 라지에이터 같은 것을 틀어도 난방 효과는 크지 않다. 실내라고 해서 얇은 옷을 입고 겨울을 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춥다고 난방을 마구 했다가 실제로 월세에 육박하는 놀라운 요금 고지서를 받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긴 겨울을 전기장판이나 온풍기 따위를 이용해 나야 하기 때문에 난방을 상당부분 전기에 의존해야 한다. 하지만 전기 공급자들이 민영화 돼있는 만큼 공급자끼리의 가격 경쟁도 있기는 하다. 역시 보험료처럼 가격 비교를 해서 적절한 공급자를 찾을 수 있는데 공급자에 따라 많게는 30% 이상 전기요금 차이가 나기도 한다. 집을 구할 때는 그래서 반드시 집의 단열 등급을 확인해야 한다. 단열 등급은 집주인이 제시해야 하는 필수 정보이기도 하다. 자칫 월세를 조금 아끼려고 단열 등급이 너무 낮은 집을 선택하게 되면, 난방비는 난방비대로 쓰고도 춥고 긴 서글픈 겨울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
물건을 구입할 때 영국의 부가가치세는 20%인데, 아이들의 옷에는 세금이 붙지 않는다. 영국의 학교는 교복을 입는다. 회색 바지에 흰 셔츠. 그리고 남색 스웨터에 검은 운동화와 같은 드레스 코드만 맞춘다면 어디에서 옷을 사든지 상관 없는 식이다. 교복은 테스코나 세인즈버리 같은 대형마트에서 판다. M&S(막스 앤 스펜서)에서 파는 교복이 그나마 비싼 편이고 내구성이 좋은데 바지와 셔츠, 스웨터 등 1년 동안 입을 교복을 사는데 1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이 든다. 이처럼 영국에서 어린아이들의 필수품들은 저렴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보육과 교육에 대한 사회 전반의 태도와 관련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아이들의 안경을 맞추기 위해 안경점을 찾았더니, 이 비용이 한국에 비해 역시 서너 배 이상 높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안경을 맞추는 경우, 최초 1번은 NHS 예산이 지원된다고 했다. 예산 부족에 허덕이는 NHS 에서 아이들의 안경 값을 지원해 준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동네 GP에서 진료를 받을 때에도, 어른들은 예약이 쉽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아프다고 하면 당일로 예약을 잡아주기도 했다.
런던에는 영국 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테이트 모던 같은 세계적으로 손 꼽히는 미술관들이 즐비하다. 여기에 하이드 파크 부근 켄싱턴 지역에는 자연사 박물관, 과학 박물관,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 등이 모여있다. 처음엔 입장료가 모두 무료라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무료지만 기부는 적극 환영이다. 재정 문제로 80년대부터 미술관 입장료를 받던 보수당의 정책은 2001년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입장료 전면 폐지로 바뀌었다. 이런 미술관들의 운영비는 정부 재정과 펀딩으로 충당한다. 모든 사람들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평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간결하고 명료한 원칙 때문이다. 런던의 미술관과 박물관에서는 그래서 나이와 인종, 빈부를 초월한 전 세계의 시민들이 문화재와 미술품을 감상한다. 영국과 같은 자본주의의 원조 국가에서 재정문제로 위기에 봉착하긴 했지만 무상 의료의 원칙과 더불어 ‘무상 예술’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예술은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가 향유해야 할 권리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테이트 모던’을 가기 위해 런던을 온다는 사람들이 있을 만큼 유명한 현대 미술관인 ‘테이트 모던’의 미술품 전시는 2층부터 시작된다. 2층의 첫 번 째 전시관부터 시작해 작품을 감상하는 동선이다.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전시관 입구에는 ‘아티스트와 사회’라는 타이틀이 달려 있다. 사회성 짙은 미술 작품들, 사회의 모습을 비판하거나 반영한 사회 참여적 미술품들로 테이트 모던의 전시가 시작되는 것이다. 예술과 문화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가 이런 데에서도 드러난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