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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오기 전 알아두면 좋은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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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생활도 어느덧
10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다. 복귀일이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면서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악몽으로 가위에 눌리는 날도 잦아지고 있다. 극심한 스모그, 전무한 시민의식, 살인적 물가 탓에 도저히 정 붙이기 어려울 것 같던 베이징 생활이지만, 그것이 일터로 돌아가는 것보다 백 배, 천 배 낫다는 평범한 진리를 가슴 아리도록 되새기는 5월이다.

돌이켜보면 정착 초기에 시간 허비가 많았다. 베이징 생활에 대한 제대로 된 안내서나 지침 같은 게 없어 헤맨 탓이다. 차기 연수자들은 이런 시행착오를 최소화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지난 10개월간 이곳에 살면서 느끼고 체득한 몇 가지를 생각나는 대로 소개한다.

어디에 살 것인가

베이징에서 주거지역을 고르는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다. 대개의 경우, 이 문제는 결국 왕징(望京)에 살 것이냐, 말 것이냐로 귀결된다 


사진 1.
베이징 왕징의 대표적 한인 아파트촌인 대서양 단지 전경.

왕징의 장점은 중국어 한마디 못해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을 만큼 한국인을 위한 생활 편의시설이 완비돼 있다는 점이다. 정말이지 서울 웬만한 동네보다 사는 게 편하다. 삼겹살에서 게장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한국 음식을 맛볼 수 있으며, 구멍가게에서조차 전화 한 통으로 물건을 배달시킬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한국인이 살기에 편하다는 말을 뒤집으면 중국을 배우러 온 이들에겐 그다지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베이징대, 칭화대, 런민대 등 주요 대학 밀집지역인 중관춘(中关村), 우다오커우(五道口)에서 꽤 멀다. 대중교통 이용시 왕징에서 1시간~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왕징이 아니라면 가장 유력한 대안은 대학가인 우다오커우 일대다. 역시 최대 강점은 학교와의 접근성이 좋다는 점이다. 또 왕징보다 불편하긴 하지만 웬만한 편의시설이 다 갖춰져 있고, 세계 각국의 유학생들이 살고 있어 좀 더 글로벌한 학원가 분위기다. 물론 단점도 있는데 가장 유의할 점은 주거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왕징에 비해 아파트는 훨씬 낡았는데, 월세는 비슷하거나 오히려 10~20% 비싼 경우도 있다. 또 동네가 작아 왕징처럼 다채로운 맛도 덜하다. 왕징보다 공항에서 먼 것도 다소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왕징이냐 우다오커우냐를 결정하는 최대 요인은 자녀의 교육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한국국제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경우 답은 무조건 왕징이다. 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야 한다면 역시 왕징에 사는 편이 낫다. 우다오커우에는 한국식 유치원이 없기 때문이다. 왕징에는 한국 유치원이 여러 곳(10곳 내외) 있으며, 한국 교육부의 감독을 받는 한국국제학교 병설유치원도 있다. 미국·영국·캐나다 등 외국계 국제학교의 경우는 통학버스 노선을 살펴 주거지역을 선정해야 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아래 한겨레 박영률 차장의 글(‘베이징에 자리잡기 국제학교와 집구하기)을 참고하면 된다






사진 2. 푸드코트 식으로 운영되는 중국런민대학의 학생식당. 가격은 저렴하고 창구마다 각기 다른 음식을 제공한다.

동반 가족이 없을 경우엔 학교 기숙사에 사는 게 여러모로 합리적이다
.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의 대학교들은 거의 모든 재학생(런민대의 경우 90% 이상)에게 기숙사를 제공하기 때문에 기숙사 얻기가 수월하다. 기숙사 생활의 최대 장점은 베이징 생활의 가장 큰 부담인 주거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 필자가 재학 중인 런민대의 경우 2인실은 매달 1000위안(164000), 1인실은 2400위안(394000) 수준이다. 왕징의 방 두 개짜리 집 월세의 10~20% 수준이다. 또한 식비도 크게 절약할 수 있다. 중국 대학들은 수만 명의 재학생들이 먹고사는 하나의 큰 마을과도 같아서 매우 많은 식당을 운영한다. 대부분의 식당에서 아침은 5위안(800) 안팎, 점심·저녁은 10위안(1600) 안팎이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식당마다 푸드코트 식으로 중국 전역의 대표적인 요리를 거의 다 취급하고 있어 매끼 골라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휴대전화 문제

중국에 살면서 우리나라 이동통신사들이 얼마나 견고한 카르텔을 형성해 폭리를 취하는지 새삼 깨닫고 있다. 중국에선 다양한 종류의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이 가능한데, 잘만 고르면 한국에서 한 달치 통신비로 1년을 사용할 수 있다.

중국에
1년 체류하는 연수자들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것은 선불 유심칩이다. 필자가 쓰고 있는 것은 중국 이통사 롄퉁(联通) 상품인데 350위안(우리 돈 약 57500)1년을 쓸 수 있다. 매달 통화는 240, 데이터 사용은 300MB까지 할 수 있는 상품이다. 사용량을 초과하면 정해진 요율에 따라 요금을 후불하면 된다. 하지만 보통 반도 못 쓴다. 데이터 용량이 작아 보이지만, 집에서는 070 인터넷전화 공유기를 통해 와이파이를 쓸 수 있고, 학교에서도 초저가(5위안에 10GB) 와이파이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끔 여행지 등에서 지도 보고 여행 정보 찾을 때 아니면 데이터 쓸 일이 별로 없다.

개통 절차도 무척 간단하다. 동네 아무 이동통신 대리점이나 신문 가판대 등에 가서 맘에 드는 요금제의 유심칩을 사 한국에서 쓰던 스마트폰에 꽂으면 그걸로 끝이다. 신분증이고 뭐고 필요없다. 개인이든, 법인이든 반드시 누군가의 명의가 있어야 휴대폰 개통이 가능한 한국에 비하면 매우 간단하고 유연하다. 물론 중국에서도 본인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할 수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를 느낀 적이 없다.

공기오염 대처법

베이징의 공기오염은 상상 이상이다. 필자의 경우 10개월간 베이징에서 생활하는 동안 살인적 스모그로 인해 중도 귀국을 고민한 게 몇 차례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오염이 어느 정도로 악성인지는 아래 한겨레 박영률 차장의 글(‘명불허전 북경의 스모그)에 대략 언급돼 있으므로 부연하지 않겠다.

따라서 호흡기가 약하거나 공기의 질에 예민한 사람은 베이징에 오는 걸 자제하는 게 마땅하다. 특히 사랑스러운 자녀의 건강과 미래를 생각한다면 베이징 생활은 도저히 추천하기 어렵다. 건강한 사람도 베이징에 1년 살면 수명이 몇 년씩 단축된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징에 와야 한다면 반드시 취해야 할 조치들이 있다. 우선 베이징의 시간별 공기오염도(AQI·대기오염질량지수)를 알려주는 사이트를 즐겨찾기 해놓은 뒤 수시로 확인한다.

미국대사관에서 제공하는 것(http://www.stateair.net/web/post/1/1.html)과 중국 사이트
(http://www.cnpm25.cn/city/beijing.html)를 모두 참고하는 게 좋다. 미국 것은 미국 대사관 근처의 공기 질만 측정하는 반면, 중국 사이트는 베이징 내 10여개 지점의 공기 오염도를 측정해 종합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미국 사이트의 오염 수치가 중국 사이트보다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미국 대사관 부근이 상습 공기오염 지대인 탓이다. 두 사이트를 참고하면 공기오염 수준을 보다 객관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둘째, 성능 좋은 공기청정기를 최대한 빨리 구입한다. 오염이 심한 날은 야외 활동이 불가능하므로 실내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런 날은 자녀의 등교도 자제하고 가정교육으로 대체하는 게 좋다. 다행히 왕징의 경우 모든 생필품은 전화 한 통으로 주문이 가능해 며칠간 실내에만 머무는 게 그리 어렵진 않다. 바로 이때 필요한 것이 공기청정기다. 베이징에선 중고 공기청정기 거래가 활발한 편이다. 베이징 주재 한국인들이 상당수 가입해 활동하는 양대 인터넷 커뮤니티 북유모’(http://cafe.daum.net/studentinbejing) 또는 북키맘’(http://cafe.naver.com/bjkidsandmami)을 검색하면 된다. 혹은 부동산에서도 각종 중고제품을 거래하니 집을 계약할 때 부동산 측에 문의할 수 있다. 공기청정기의 생명은 필터이므로, 되도록 필터 교체 시기가 최근인 제품을 구입한다. 필터가 오래됐다면 구입과 동시에 필터 교체 서비스를 알아본다. 이처럼 중고 제품을 구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여건이 허락한다면 아예 한국에서 공수해오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요즘은 전통적인 공기청정기보다 가습효과를 가미한 에어워셔제품이 각광받는 추세.


사진 3. 방진 마스크는 베이징 생활의 필수품이다. 사진은 고정끈을 뒤통수와 목덜미에 거는 3M9210 모델이다.

셋째, 좋은 방진 마스크를 넉넉히 사둔다. 공기오염이 심각해도 부득이 외출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물론 방진 마스크라고 선전하는 대다수 제품의 효과가 실제론 미미한 게 사실이다. 그나마 3M 제품의 성능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3M 제품 중에서도 고정끈을 귀에 거는 것보다는 뒤통수와 목덜미에 각각 거는 제품의 방진 효과가 우수하다고 한다. 필자가 사용하는 것은 모델번호가 ‘9210’ 또는 ‘9322K’3M 제품으로, 원래 산업현장에서 쓰이는 것이지만 중국에선 일상생활용으로 판매된다. 개당 가격은 20위안(3300)이다. 1회용이지만 3~4일 정도는 사용 가능하다. 성능이 우수한 방진 마스크는 왕징에서 구하기 쉽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이동통신 대리점, 서점 등에서도 판매한다.  


사진 4. 베이징 톈안먼 광장 동측에 위치한 중국국가박물관. 엄격한 관리로 공기 질이 좋다.

넷째, 박물관을 활용한다. 베이징에 실제 살아보면 공기오염 수치가 200 안팎인 날이 가장 많다. 서울 기준에서 보면 야외활동 불가에 해당하지만, 베이징에선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다. 마스크를 착용하면 일정 시간 야외 활동도 가능하다. 만약 주말이라면 집에만 있기는 뭔가 아쉬운데 이럴 때는 박물관에 가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박물관들은 보통 전시물의 변질, 변형, 훼손 등을 막기 위해 온도, 습도는 물론 공기의 질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국가박물관(무료)이나 수도박물관(무료)과 같은 1급 박물관의 공기 질은 매우 우수하다. 특히 국가박물관은 여러 번 방문할 가치가 있다. 규모가 워낙 방대하고 역사적 의미가 큰 전시물들이 많아 하루 만에 모든 전시물을 관람하기는 애당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