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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연수기2- 연구소에선 뭘 연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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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두렁 정기라도 받은 듯이 아주 쉽게 해외연수 비행기에 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다. 결과가 그렇게 보일 뿐이지 두드리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문이 열리지는 않았으리라.

>>> 연구소 초청장 <<<

2001년 초 가을쯤이었나. 독일 건축가를 나는 인터뷰하게 됐다. 그는 독일 통일이 탄생시킨 행운아 중의 한 사람이었다. 영국 설계회사에 근무하다가 독일 통일이 되자 베를린에 설계회사를 스스로 차렸다. 일거리가 많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는 10년 만에 손꼽히는 건축 설계회사를 키웠다. 돈도 벌었다. 한국도 언젠가 통일이 이뤄지면 리모델링 수요가 있을 것으로 내다본 그는 한국시장 탐색차 서울을 방문했었다.

그 회사에 근무하면서 그를 안내했던 한국인에게 베를린에서 리모델링을 배워볼 수 있겠냐고 부탁했다. 며칠 후 그는 베를린공대 산하 리모델링연구소(IEMB)를 나에게 소개해주고 연락 가능한 연구원의 이메일 주소도 건네줬다.

IEMB에 편지를 썼다. 나는 누구고 재단지원을 받아 1년 일정으로 연수를 해보고 싶은데 받아줄 수 있겠느냐는 요지로 편지를 보냈다. 연수 목적을 더 구체화해달라는 이메일이 왔다. 영어로 2장(A4) 정도 써서 보냈다.

수 차례 편지가 오고 간지 약 5개월 만에 공식 초청장이 날아왔다. 개인 강의는 없다, 당신을 위해 독일어를 조금 했으면 좋겠다, 등 5가지 조건을 연구소는 내걸었다. 모두 수용 가능한 것들이었다.

연구소로 출근한지 얼마간은 힘들었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게 이런 심정일까. 정기적인 강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런 주제를 파고 들어보라고 조언을 받을 수도 없었다.

독일어 책자를 잡기 시작했지만 공학 지식부족으로 갈증만 더했다. 다행스럽게도 베를린공대 산하 이웃 연구소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을 소개 받아 토론을 통해 주제를 좁혀 갔다.

건강 주택 및 에너지 절감형 주택이 내 관심 분야로 자리잡았다. 1년 연수기간 중에 이치를 다 알 수는 없다. 다만 그 개념을 내 방식대로 전개해나갈 요령은 손에 넣었다.

>>> 연구소 장단점 <<<

내가 관심 있는 분야만 집중 할 수 있는 게 연구소 연수의 장점으로 우선 꼽을 수 있다. 과제 받아서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니 능동적이란 느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제를 빨리 잡아야 한다. 주제를 잡지 못하면 집중하기 어렵다. 주제를 잡으면 가지를 뻗기가 훨씬 수월하게 여겨졌다.

연구소에선 내가 알아서 하는 것이다. 질문에 답을 해주기는 하지만 바쁜 동료 연구원들이 일일이 나를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꾸준하게 토론할 수 있는 파트너(현지인이든 한국인이든)를 만나면 원하는 정보를 찾지 못하거나 엉뚱한 곳에서 맴돌 가능성은 줄어 들 것이란 생각이다. 안내를 받으면 히말라야를 오르는데 유리한 이치와 비슷하다.

>>> 독일내 연구소 연수 가능성 <<<

장담은 못하지만 이렇게 시도해보면 어떨까,하고 생각하는 방법이 있다. 먼저 관심 있는 주제를 정한다. 구체적일수록 유리할 것이다.

주제를 정하면 주제와 관련해 독일과 끈이 있는 기업 또는 인물을 추려본다. 그리고 기업 또는 인물로부터 주제에 맞는 연구소를 소개 받아 편지를 써 보는 일이다. 독일에선 환경 부패방지 에너지 노사관계 분야 연구소의 문을 노크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다.

미국 대학에 입학 허가를 얻을 때도 마찬가지 이겠지만 독일내 연구소에 초청을 받고 싶을 때도 시간 여유를 넉넉히 갖는 게 좋다. 내 마음만 급하지 상대는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연수 허가 가능성이나 소요 시간이 미국 대학과 비슷하다면 굳이 독일을 포함한 유럽대륙으로 떠날 필요가 있냐는 회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렇다고 선택의 기회를 스스로 닫아 버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