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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날 수 없는 아마존의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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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날 수 없는 아마존의 위력

거의 매일 홀푸즈 마켓에서 장을 보고, 사흘에 한 번 꼴로 아마존 온라인 스토어에서 각종 생필품을 주문한다. 집 근처에 대형서점 ‘반스 앤 노블’이 있는데도, 오프라인 서점에 가고 싶을 땐 굳이 버스 타고 ‘아마존 북스’를 간다. 셀렉션이 너무 재밌기 때문이다. 홀푸즈도 아마존이 인수했으니, 미국에 연수 온 뒤 나는 거의 매일 아마존과 접하는 셈이다.

여기에 아마존이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제작 중이라 OTT 시장에서도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와 경쟁이 심해질 것 같다. 아마존에서 벗어나 일주일은 견딜 수 있을까? 글로벌 2억명이 넘는 ‘프라임’ 유료회원을 플랫폼으로 삼아 모든 종류의 온 오프라인 소비(식료품, 생활용품, 가전, 패션, 제약 등) 시장과 엔터테인먼트로 영역을 넓히는 아마존의 위력에 놀랄 뿐이다.

● 아마존 당일배송

아마존의 가장 큰 강점은 배송 경쟁력이다. 누가 미국 오면 쿠팡 로켓배송이 그리워질 거라고 했던가. 한 번은 아마존에서 새벽 2시쯤 책을 주문한 뒤 자고 일어났더니 이미 책이 와 있었다. ‘아마존 프라임’이라는 유료 회원이 되면 25달러 이상 구매 시 당일 배송이 무료다. 빠른 상품은 주문 후 5시간 안에 배송해 준다. 크리스마스나 할로윈, 밸런타인스 데이처럼 특별한 날이 아니면 그런대로 빠른 배송 상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사진 1: 오후 1시 10분 현재, 오늘 밤 10시 전까지 배송 받을 수 있는 어린이 기침약

프라임 월 회비가 무려 14.99달러나 되지만 배송비 공짜나 할인 혜택 때문에 가입해도 본전은 뽑게 된다. 원래 12.99달러였다가 올해 2월, 4년 만에 첫 회원비 인상을 단행했다. 유료 회원 수 2억명으로 단순 계산해보면 연간 회원비 매출만 약 360억 달러(43조6000억 원)인 셈이다. 작년 이들의 공짜 배송 건수만 60억 건이 넘는다.

이 큰 나라에서 어떻게 이렇게 배송이 빠를 수 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mini-fulfilment’ 센터 덕분이라고 한다. 연수 중인 워싱턴DC 지역을 포함해 뉴욕, 시카고,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애틀랜타 등 주요 메트로폴리탄 지역에 작은 물류 창고(기존 창고의 10분의 1 수준)를 촘촘히 세우고 데이터 분석을 통해 당일배송 요구가 많은 상품을 미리 쟁여 놓는 것이다. 현재 미국 90여 개 메트로폴리탄 지역에서 당일배송이 가능하다.

아마존 당일배송은 월마트, 타깃 같은 전통 유통업체와의 경쟁 때문에 도입됐다. 월마트나 타깃은 아마존에게 밀리니 자기들의 오프라인 매장을 거점 배송창고로 활용해 당일배송이나 오더 픽업에 힘을 싣고 있다. 이에 아마존도 오프라인 매장을 인수하거나 작은 창고를 마구 지어 2019년, 당일배송 서비스를 선보인 것이다.

타깃이나 월마트의 디지털 전략도 눈에 띄게 편해지고 있긴 하다. 이들의 강점은 ‘오더 픽업’.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한, 두시간 후에 매장에 가서 픽업하는 서비스다. 미국 마트가 워낙 크다 보니 오더 픽업 오더도 시간 절약에 도움이 된다. 니만 마커스, 삭스 피프스 애비뉴같은 럭셔리 백화점들도 이런 서비스를 늘리는 추세다. 커브사이드 픽업 주차장에 차를 잠깐 대고 전화하면 점원이 와서 트렁크에 넣어준다. 삭스는 뉴욕 맨해튼 내에서는 당일 배송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서비스는 자주 이용하진 않게 된다. 한번 N 백화점에서 오더픽업으로 주문한 뒤, 백화점 문 앞에서 전화했더니 점원이 쇼핑백을 들고 나타나 트렁크에 넣어줬다. 별로 비싸지 않은 신발이었는데도 참 고맙구나 하고 집에 와서 보니… 신발이 왼발 한 짝만 들어 있었다. 오른 짝도 내놓으라고 항의하고, 매장에 가고, 점원이 한 짝 찾으러 다니고…… 이러니 저러니 아직 까진 아마존이 제일 편하다.

사진2. 아파트에 설치된 아마존 배송 사물함. 배송이 오면 물건 찾아 가라고 문자가 오고, 문자에 적힌 코드를 입력하면 사물함이 열린다. 지하철역 근처나 아마존 자체 오프라인 매장에도 설치돼 있어서 지정 사물함으로 배송 받을 수 있다.

● 이래서 홀푸즈를 인수했구나

‘최애’ 마켓 홀푸즈에 갈 때마다 아마존의 심리스한 온라인-오프라인 병행 전략에 놀라곤 한다. 이게 쉬어 보여도 한국 몇몇 유통업체들이 도입에 어려움을 호소했던 기억이 난다. 홀푸즈는 아마존의 오프라인 서비스 장소이자 치열한 그로서리 2시간 배송의 거점이란 생각이 들었다.

첫째, 아마존 프라임 할인 혜택을 홀푸즈에서도 누릴 수 있다. 추가 세일 10%에 나도 모르게 장바구니에 추가하게 된다. 계산할 때, 아마존 앱을 열고 ‘in store코드’를 찍으면 알아서 프라임 멤버로 할인해준다. 아마존 자체 매장(아마존 프레쉬, 아마존 북스, 아마존 4star 등)에서는 아마존 앱으로 결제도 된다.

둘째, 아마존 앱을 통해 홀푸즈 온라인 장보기가 가능하고, 배송을 원하면2시간 내로 가능하다. (아마존 프레쉬로도 2시간 신선 배송이 된다.) 오프라인 홀푸즈 매장에서 물건을 사도 그간 내가 뭘 샀는지 아마존 앱에 차곡차곡 쌓여 온라인 주문도 편하다. 무엇보다 검색이 잘 된다. 처음에는 앱 디자인이 마켓컬리나 SSG보다 별로라고 생각했으나 키워드를 개떡같이 입력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딱 필요한 것을 찾아주어 팬이 됐다.

셋째, 아마존에서 구입한 물건을 홀푸즈로 반납하고 환불할 수 있다. 솔직히 박스에 넣고 포장하기 귀찮아서 환불을 포기할 때가 많지 않나? 택배 박스가 없어도 홀푸즈 고객센터에 갖다 주면 환불 끝이다. 영어 섞을 일도 없이 아마존 앱 환불 코드 보여주면 알아서 해준다.

사진 3: 프라임 회원 추가 세일 상품은 급 장바구니행.

프라임 회원 혜택도 주고, 날로 치열해지는 그로서리 배송 시장도 장악하고, 기존 홀푸즈 주 고객인 중산층 소비자 데이터도 확보하고. 여기에 아마존 환불 센터로도 활용까지. 아마존이 다 계획이 있어 홀푸즈를 인수했구나 싶었다.

아마존은 꾸준히 오프라인 영역을 넓힐 예정이다. 연내 로스 앤젤레스에 첫 패션 오프라인 스토어 ‘아마존 스타일’을 연다. 머신러닝 알고리즘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스타일을 찾아주고, 온-오프 연계 전략으로 편의성을 높일 전망이다.

기존 미국 옷가게는 소비자가 옷을 픽업해서 피팅 룸 직원한테 ‘저 3벌 입어볼 거에요’ 그러면 3번 번호판을 준다. 그러다 사이즈가 안 맞으면 다시 매대 쪽으로 가거나 직원을 불러야 한다. 하지만 아마존의 옷가게에서는 아마존 앱을 통해 피팅룸으로 옷을 ‘주문’할 수 있다고 한다. 그냥 피팅룸에 죽치고 앉아서 온라인으로 옷을 주문하면 직원이 옷을 계속 가져오는 것이다. (영어 쓸 일이 점점 더 사라짐) 또 올해 뉴욕에서는 ‘아마존 고’에서 스타벅스 앱으로 커피 픽업이 가능해진다.

● 리뷰가 다한다

소소하지만 리뷰도 아마존의 강력한 무기 중 하나다. 작년에 아이가 감기에 걸렸을 때, 미국 약이 생소해 뭘 먹여야 할까 고민이었다. 솔직히 약을 온라인으로 사는 것도 생소했는데, 수천 수만 명 추천까지 볼 수 있어서 너무 편했다.

아마존 자체 오프라인 매장도 리뷰 파워를 활용한 점이 흥미롭다. 아마존 북스에 가면 ‘워싱턴 DC에서 많이 주문한 책 best 10’, ‘리뷰 90%가 5점인 책’ 이런 식으로 진열해 놔 가는 재미가 있다. 온라인 사용자 경험을 오프라인으로 옮겨 놓아 셀렉션이 재밌는데다 가격도 온라인과 같아서 죽치고 앉아 있기에 딱 좋다.

다만 서점은 어떻게 해도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구매하지 않는지, 이익이 나지 않아 문을 닫아버렸다. DC 조지타운점도 3월에 문을 닫아 너무 아쉽다.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4-star 스토어(리뷰 4점 이상 제품만 모아 놓은 곳)는 늘리는 추세라고 한다.

사진4: 아마존 서점. 리뷰와 판매 데이터로 진열해 보는 재미가 있다.

새로운 서비스도 계속해서 늘어난다.

지난 겨울 아이 부츠 살 때 이용해 본 ‘일단 입어봐& 신어봐’ 서비스는 패션 시장을 장악하려는 야심이 느껴진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결제하지 않아도 신발이나 옷을 주문할 수 있다. 마음에 들면 그때 결제하고, 아니면 그대로 돌려보내게 돼 있다.

병원 처방약을 온라인으로 주문해 배송 받을 수 있는 ‘Amazon Pharmacy’도 눈에 띈다. 보통 미국 처방약은 병원에서 처방전을 CVS 같은 드럭스토어로 보내면 환자가 약국에서 픽업해야 한다. 이것도 편하긴 한데, 문제는 좀 복잡하고 덜 대중적인 약은 픽업할 수 있는 약국이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귀찮게 먼 약국을 찾아 가느니 집으로 총알 배송 받으면 얼마나 편하겠나? 약을 다 먹고 계속 아파서 더 처방받고 싶으면 온라인을 통해 연장하면 된다. 기존 약국도 자기들이 병원에 연락해 처방전 내놓으라고 할 수 있지만 ARS전화로 해야 하는 것으로 안다.

아이 학교에서도 ‘아마존이 미국 소비의 중심 플랫폼이구나’를 종종 느낀다. 미국 선생님들은 크리스마스 앞두고 30~50달러 수준의 기프트 카드 선물을 받는다. 선생님의 백화점 선호도를 모를 때는 아마존 기프트 카드가 국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