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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리의 사계-6(미국 초등학교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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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미국의 미주리주에 있는 콜럼비아란 작은 시에 있는 UMC(University of Missouri, Columbia)에서 1년예정으로 연수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생긴 일과 겪은 일을 몇차례에 나누어 전해드리겠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거나 궁금한 일이 있으신 분들은 메일을 보내주십시오. 최대한 도와 드리겠습니다.

한겨레 신문 곽윤섭 KwakY@missouri.edu





기자들이 해외로 연수생활을 가게 되면 주변에서 하는 덕담이 몇가지 있습니다.

” 좋겠다. 잘 놀고 와라. 골프나 실컷 치고 오면 되겠네”

” 영어라도 확실히 배우고 와라”

” 어른들이야 그렇다 치고 애는 영어 금방 배운다니까 참 좋은 기회다”

등이 그 덕담중의 몇가지 예입니다.

제가 여기로 떠나 올때도 그런 종류의 덕담을 여러번 듣고 왔습니다.

그러나 이건 말 그대로 덕담으로 하는 소리일 뿐이고 현실은 다릅니다.

우선 대개의 경우 생활비가 많이 들어서 여행 많이 다니며 “잘 놀고 오기”가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습니다.

영어의 경우 한국에서 영어를 많이 배우고 온 사람들은 여기서도 금방 잘 하게 되겠죠. 그렇지 않은 저같은 경우엔 아주 힘든 일입니다. 주변에서 온통 영어만 들리는 것은 사실이고그런 여건이 영어를 배우기엔 좋은 조건임에 틀림없지만 머리가 굳어서 잘 들리질 않네요. 이제 두달 반이 지났는데도 여전합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낯을 가리지 않고 대체로 부끄럼을 덜 타는 탓으로 어려움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어른들은 자기가 결정한 일이고 뭔가 할 일이 있어서 외국으로 온 것이므로 한번 두 번 더 물어보고 어떻게든 학교생활은 꾸려갈 수 있습니다. 부끄러울 이유는 없죠. 영어를 못하는게 잘못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아이들의 경우엔 이야기가 좀 달라집니다.

일단 콜럼비아엔 정규 한인학교가 없습니다. 한인의 숫자가 많지 않으므로 한인 아이들만으로 초등학교를 만들기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의무교육제도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므로 어떻게든 학교는 보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결국 아무 대안없이 미국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보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온 아이들이 많다면 학교측에서도 한국말을 잘하는 선생님을 따로 두어 애들 수업을 관리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경우 한반에 한 명정도(많아야 두 명)의 한인 아이들이 있으니까요.

결국 미국아이들과 같은 여건에서 수업을 받아야 하는데 이게 잘 될까요?

물론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교사가 있어서 하루 한 시간정도 돌봐 준다고는 합니다. ESL교사도 한국인은 아니죠. 갑자기 하루 아침에 영어로만 수업을 하는 교실에 갇히게 되는 아이들은 기가 막힐 것입니다. 영어, 수학, 과학, 미술, 체육 등 모든 수업을 영어로만 한다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가 될 것이 뻔합니다. 어른들의 욕심으로야 “저렇게 하면 금방 영어가 늘꺼야. ” 라고 하지만 그것은 말그대로 어른들의 욕심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10년넘게 영어를 배워온 어른들은 말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해도 읽을 줄은 알고 문장을 만들어서 급하고 요긴한 대화는 할 줄이야 알죠. 어른들은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 그런 상황에 닥치는 것은 아니라서 준비가 되어 있는 편이죠. 그러나 아이들은 부모의 선택에 따라 교육환경이 바뀌게 되어 당황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사실은 스쿨버스(당연히 미국인이 운전을 하죠. 게다가 타는 아이들도 거의 미국인이죠)를 타는 아침 8시 2분부터 집에 와서 내리는 오후 4시 10분까지 영어의 감옥에 갇히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잔인한 노릇입니까?

그러다 보니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처음 미국학교에 다니게 되면 수업시간에 울기 일쑤라고 합니다. 한국보다 교사수가 많다고는 하지만 한국아이 한명만 붙들고 신경을 쓰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선생님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애들은 하루종일 책상에 기대어 잔다고 합니다. 말이 들리지 않고 옆에 말을 붙일 만한 애들도 없으니 뭘 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떤 애는 왼 종일 한마디도 않고 있다가 오후에 부모가 데리러 오자 펑펑 울음을 터뜨려 보는이를 안타깝게 했다고도 합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조금씩 적응이 되면 차츰 나아지는 애들도 있고 그렇지 않아서 몇 달씩 우울증에 시달리는 아이들도 있답니다. 결국 1년내내 고생만 실컷하고 영어를 배우기는커녕 병만 안고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는 군요.



어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처음에 고생이 되더라도 결국 영어를 잘하게 될거야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특히 저학년의 경우 아이들 마음고생이 심각한 수준이 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다양한 반응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요즘 애들은 조숙한 경향이 있어서 영어가 자신의 장래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스스로를 적응시키는 수도 있답니다. 어느정도는 나이가 든 학생들의 이야기죠.





학교가 개학한지 이제 한달 보름을 넘긴 우리 딸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 딸은 한국에서 4학년 1학기를 다니다 왔는데 여기선 다시 3학년에 넣기로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적응을 쉽게 하라는 배려였고 이 학교 교장선생의 의견도 비슷했습니다. “영어를 전혀 못한다면 4학년은 힘들 것 같다. 굳이 원한다면 4학년에 넣을 수도 있긴 한데…”

어차피 영어를 제외한 교과 과정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수학, 과학은 한국보다 한참 진도가 늦어서 아주 쉬운 것을 배우고 있더군요. 한국에 돌아갈때를 생각하면 집에서 따로 4학년 2학기와 5학년 1학기진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첨 학교에 보내기 전에 부모가 같이 학교를 둘러보는 날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예비소집과는 다르죠? 초등학교 입학생들이야 그런게 있지만 그 뒤론 그런게 없으니까. 그런데 여긴

신학기가 되면 모든 학년의 부모들에게 학교에 와서 미리 둘러보게하는 행사가 있더군요.



교실도 둘러보고 애들에게 학교를 익숙하게 하는 기회가 된다고 합니다. 미국은 학기가 가을에 시작되니 이번에 그런 행사가 있었습니다. 선생님과 인사도 나누고 궁금한게 있음 이것저것 알아볼 수도 있답니다. 우리 애를 데리고 담임선생님과 상견례를 했습니다. 영어를 전혀 못한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좀 걱정스런 표정을 짓긴 했지만 “잘 해보죠” 라고 넘기더군요.

그리고 마침내 처음 혼자 등교하는날이 왔습니다. 스쿨버스에 태워 보낼까 아님 첫날이니 데려다 줄까 고민하다 어차피 적응해야 할 일이니 그냥 타고가라고 보냈습니다. 다행히 가까운 옆집에 한국에서 온 기자가족이 한 명 더있고 그집 아이도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어 마음이 좀 놓이긴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동네 입구까지 버스가 오므로 거기까지 배웅을 했습니다.



너무 걱정스런 표정으로 배웅하면 애가 더 겁을 먹을까봐 심드렁하게 “갔다와라”하고 돌아왔습니다. 하루종일 이런 저런 걱정이 많았습니다.

집으로 전화가 걸려오지나 않을까(학교에서) 공연히 신경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이윽고 4시가 넘어가자 떠들썩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소리가 나더군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재미있었니?” -여러가지를 함축해서 물어 본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심이 양식이던데?”부모의 걱정을 일축하는 답변이 튀어 나왔습니다.그러고 보니 너무도 당연히 학교 급식은 양식입니다. 학교에서 보내온 급식 식단을 보니 피자, 비스켓, 삶은 감자, 파스타, 햄버거, 그리고 저로선 처음듣는 이상한 이름의 음식들이 있더군요. 다 양식이죠.



그 뒤로 한달하고 보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중간에 또 학교에 갈 기회가 있어서 담임선생님과 이야기를 잠깐 나누었는데 역시 학교생활이 그리 순탄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잘 집중하지 않는다. 얼굴을 쳐다보지 않으려 한다” 는 등의 증상을 말하더군요. 충분히 짐작하고 있던 일이라서 크게 놀라거나 하진 않았지만 가슴이 아팠습니다.

하루종일 영어만 들려오는 교실에서 집중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딸아이 역시 힘든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달리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애를 붙들고 뭐랄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나름대로 적응해볼려고 노력하는 눈치가 역력한데…

요즘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친구들도 조금씩 사귀는 눈치고 어느정도 간단한 의사소통은 되는 눈치더군요. 그래서 그냥 두고 보기로 했습니다.





반면에 오자 마자 미국학교에 바로 적응했다는 아이들도 있긴 하더군요. ‘학교가 너무 좋다’ ‘선생님이 친절하고 애들도 다 신사적이다’ 등의 이유가 있다네요. 충분히 그럴 수도 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이곳의 초등학교에 대해서 몇가지 적어 볼까 합니다.

미국의 초등학교 교육환경과 방식은 우리가 배울 것이 많습니다.

단적인 예만 들자면 스쿨버스에 대한 보호조치입니다.어떤 상황에서든지 스쿨버스가 정지한 상태에서 아이들을 태우거나 내리게 하거나(혹은 아이들을 기다리더라도) 하는 일이 있다면 주변 차선의 모든 다른 차들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어야 합니다. 반대편 차선도 마찬가지고요. 이것은 모든 주의 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버스에 아이를 태운 부모들로서는 정말 안심이 되는 장면입니다. 아이가 길을 건너 버스를 타는 상황이라고 보면 너무도 당연히 반대편 차선의 다른 차들도 정지한채 기다려야죠. 그냥 지나가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가장 센 벌금과 벌점이 떨어집니다. 스쿨버스의 운전수는 주변 차들이 법규를 무시하면 차량번호를 적게 되어 있습니다.

아침시간에 주택가의 골목에서 스쿨버스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으면 일순간 차량정체가 생깁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얌전히 기다립니다.

한국에선 학교에 가는 아이들의 안전이 너무 등한시 되고 있습니다. 스쿨버스가 보편적이지 않다해도 초등학교앞에서 길을 건너는 것도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국에도 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법보다 앞서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안전에 관한 미국인들의 배려가 몸과 마음에 깊숙이 심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선 너무나 법이 안 지켜집니다. 여기서도 어떤 법은 잘 안지켜지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온 미국인이 공감하는 법은 꼭 지켜집니다. 아이들에 관한 배려, 유원지(주립공원, 국립공원뿐만 아니라 동네의 작은 물가에서도)주변의 환경보호등은 철저합니다. 법령과 단속은 한국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입니다.

학교의 교과과정은 논외로 치고 학교생활에 대해서도 평등교육을 중요시 합니다. 학기초가 시작되기전에 학용품품목이 적힌 리스트를 들고 장을 보러 갔습니다. 크레용, 연필, 지우개, 공책등 한 20여가지 품목을 사는데 좋고 나쁜 것의 차이가 거의 없더군요. 어떤 것은 엄격히 종류가(특정회사의 것이란 뜻이 아닌) 정해져 있었습니다. 결국 돈이 없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나 부자집 아이들이나 거의 비슷한 학용품으로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이죠. 적어도 학교안에서 학용품가지고 애들끼리 위화감을 느낄 일은 없겠더군요. 아이들 생일에 관해서도 학교에선 세심한 당부의 글을 보내주더군요. 학교로 생일선물을 보내지 마라, 다른 친구들에게 한 턱 낼 준비물이나 음식등도 보내지 마라, 그래도 꼭 꽃다발이라도 보내고 싶다면 수업이 끝난 뒤 교무실에서 아이한테만 직접 전해라 등의 규정이 있더군요.

물론 한국에서도 그렇지 않은 교실과 학교가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 생일이 되면 부모들은 좀 부담스러워 하곤 했습니다. 학교에 먹을 것을 들려 보내 반아이들에게 돌린다든지…. 따로 모아 파티를 한다든지…

여기선 아예 생일 때문에 아이들이 서로 부러워하고 고민할 일을 원천 봉쇄하더군요. 우리 딸이 얼마전에 생일을 맞이했죠. 아무것도 들려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날 학교에서 올 때 보니 “Happy Birthday”라고 적혀있고 케이크 그림이 그려진 리본을 하나 들고 오더군요.

“학교에서 주던데요?”

집에서 따로 파티를 하든, 안하든 그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순전히 자녀들의 외국어 교육만을 목적으로 외국으로 가는 일은 심각하게 고려할 일인 듯 합니다. 외국어에 목숨을 걸고 “너 하나만이라도 영어를 잘 해야 한다”며 조기유학을 시키는 것은 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물론 한국에서 영어를 너무 받드는 풍조가 시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겠죠. 한국에선 거의 모든 시험에서 영어의 비중이 너무 큽니다. 영어와 관계없는 업무를 하게되는 회사의 입사시험에서도, 국가고시에서도 영어를 강조합니다. 영어가 국가경쟁력과 바로 연결되는 듯한 생각은 바뀌어 져야 할 것 같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의 초등학교 교과과정에 있는 영어수업은 옛날에 저 또래의 사람들이 배우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문법을 강조하지 않고 있지는 않다는 군요.

우리 딸의 이야기입니다.

“미국에 오니까 오히려 단어 공부를 시키네요?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단어를 쭉 적어주고 열흘정도 안에 외우라고 하네요. 한국에 있을 때 학교에선 그냥 회화만 배웠는데…”

물론 미국애들이야 회화는 다 되고 오히려 철자법이 약하니까 그런 모양입니다.

어제 우리 딸아이 학교에서 칠판에 적어준(외우라고) 단어들입니다. 이렇게 한 열흘 적어주고 받아쓰기 시험을 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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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건 한번 시험을 치루고 난 단어들인데 복습하라고 적어준 단어들입니다.



they—–there—–their—–much—–even—–every—–found



그리고 일주일에 하나씩 보너스 단어(좀 어려운 것으로)를 더 적어 줍니다.





그 단어 수준도 우리 딸 보기엔 “열흘씩이나 걸려 외울 것은 아니”랍니다.

그러나 그 단어를 회화에 활용하는 것이 관건이고 결국 한국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수업시간에 영어회화(듣기와 말하기)를 중심으로 가르친다면 어느정도 말은 할 수 있을 것이라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 또한 현행 대학입시의 영어문제가 상당히 개선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되겠죠?





(제 글은 인터넷 한겨레의 뉴스메일 http://newsmail.hani.co.kr에서 사진과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