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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리의 사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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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미국의 미주리주에 있는 콜럼비아란 작은 시에 있는 UMC(University of Missouri, Columbia)에서 1년예정으로 연수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생긴 일과 겪은 일을 몇차례에 나누어 전해드리겠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거나 궁금한 일이 있으신 분들은 메일을 보내주십시오. 최대한 도와 드리겠습니다.

한겨레 신문 곽윤섭 KwakY@missouri.edu



제글을 보시는 분들은 아시계시겠지만 미국현지의 정보만을 따로 담지는 못했습니다. 워낙 글쓰는 버릇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같이 풀어나가는 것이라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구체적인 정보만을 원하시면 메일을…





연수를 오기 위해 제대로 준비를 한 것은 3년쯤 된 것 같습니다. 준비를 한다고해서 매일 같이 뭘 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수시로 재충전의 필요성을 스스로에게 강조하고 있었던 것이 준비의 대부분입니다. 가야할 나라를 결정하고 학교나 과목을 결정하는 것은 나중의 일입니다. 가끔 영어 공부를 하긴 했습니다. 특정상품을 소개하는 듯 해서 찜찜하지만 ‘영어공부 하지마라’ 란 테이프가 있더군요. 물론 꼭 그 교재가 최고란 뜻은 전혀 아닙니다. 다만 그 학습법은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였습니다. 반복해서 하루에 한 시간정도 테이프를 들었습니다. 글로 쓰여진 교재는 없는 것이 낫고 우리말로 번역된 것은 당연히 안 보는게 좋습니다. 옛날 교과서에 나왔던 양주동 박사가 했다는 학습법이 있지 않습니까? [독서백편의자현] 이라고. 백번을 읽으면 저절로 뜻이 통한다 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영어를 모르는 초등학생이라면 백번을 읽어도 뜻을 모르겠지요. 그러나 양주동박사께서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란 것 쯤은 이해를 하시겠지요. 어느 정도 영어를 아시는 분. 그러니까 중,고교에서 수업시간에 영어를 배웠고 나중에라도 영어를 배워보겠다고 회화교재를 한번이라도 손을 대본 사람이라면 통하는 방법입니다.

백번이면 들릴 것입니다. 들리면 외워지고 그렇다면 말을 할 수 있게됩니다. 그렇다고 이것만 해서 하루아침에 능숙하게 말을 할 순 없죠. 저는 두달가량 아침 저녁 출근시간에 일산과 서울을 오가는 버스안에서 테이프를 들었습니다. 결과는….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습니다. 백번을 다 못채웠지만 솔직히 테이프를 듣다가 많이 졸았던 탓이 큰 것 같습니다.

어쨌든 조금 공부를 하고서 토익시험을 봤습니다. 1년전에 시험을 봤을 점수와 비교해서 어느정도 올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이런 것입니다.

1. 내가 특정 테이프를 들어서 갑자기 영어듣기 실력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

2. 어떤 테이프든 두달가량 매일 공부를 하면 늘기 마련이다.

3. 매일 CNN을 고정적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시간적 여건이 된다면 이게 더 좋을 지도 모릅니다. 시사영어가 풍부하니까요. 그렇지만 시간이 좀 더 걸릴 수도)

저의 경우엔 매일 같은 프로그램을 볼 여건이 되지 않았고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은 정말 새빨간 거짓말이죠. 자기가 노력을 안해서 그렇지 할려고만 들면 왜 시간이 없겠어요?

저의 토익 점수는 절대로 공개할 수 없습니다. 대학을 졸업한지 벌써 십수년이 되었고 직장다니느라고 바빴다는 것은 핑계밖에 안되니까.

중요한 것은 점수가 조금 올랐고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만족스러웠다는 것입니다. 단 이 방법은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어느정도 수준에 있는 사람이면 이런 방식으론 점수가 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학을 막 졸업한 사람들은 토익, 토플점수가 상당한 수준에 있을 것이고 제가 했던 방법은 필요가 없죠. 물론 전 점수가 낮으니까 어느정도 통했던 것입니다.

“하니까 되는구나” 사실 무엇보다고 이 말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어쨌든 저의 경우엔 우선 한겨레신문사안에서 먼저 절차를 밟아 연수를 지원했고 외부 재단에 지원할 수 있는 회사의 결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택할 수 있게된 LG상남언론재단에 해외연수지원서를 제출했고 소정의 선발과정을 거쳐 1년간의 연수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10명의 기자들이 각자의 연수주제를 들고 미국, 중국, 영국등지로 떠나왔습니다. 아직 임지로 떠나지 않은 분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1년씩 각자의 생활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무엇을 하게 될지는 이제부터 차츰 보여드릴 것입니다. 벌써 시작한 것도 있고 할 예정으로 있는 것도 있습니다. (처음 글을 쓴 시점이 8월초였습니다-필자)



7월 하순에 일가족이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인천공항을 떠났습니다. 해외로 유람삼아 가는 분들이야 무거운 짐이라도 가뿐하게 들고 길을 떠나겠지만 저로서는 짧지않은 1년을 위해서

꽤나 많은 짐(예를 들자면 철별로 입을 옷, 신발, 먹을 것들)을 이고 지고 나선 길이 간단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달랑 숟가락과 몇일동안 갈아입을 속옷만 가져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현지에서 모든 것을 구입할 순 없답니다. 거기 물가가 어떤지, 또 한국에서 파는 것을 거기서도 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인터넷으로 많은 정보를 입수해서 어느정도 현지사정을 알고는 있었지만 미국도 주마다 사정이 다르고 또 같은 주안에서도 동네마다 형편이 다르므로 완벽한 준비를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쉬운 예를 들자면 L.A의 경우 거의 모든 것이 한국과 비슷할 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대규모의 한인타운이 있으므로 거의 한국에서 사는 것처럼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물론 거기 사는 분들도 또 아쉬워하는 대목이 있긴 하겠지요.

어쨌든 이민가방으로 6개정도를 가득채우고 또 가벼운 옷가지는 손가방으로 만들어 서너 개씩 들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떠나오기 한달전에 우체국에서 7개의 대형상자를 부친 것을 빼고도 말입니다.

경비를 아끼기 위해서 직항편을 타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직항편이란 것은 없습니다.

제가 있는 이곳 콜럼비아엔 큰 공항이 없습니다. 가장 가까운 공항이 세인트루이스에 있는데 콜럼비아에선 두시간 걸리는 곳입니다. 그런데 인천에서 세인트루이스로 바로 오는 비행기가 없답니다. 우리나라 항공사든 미국항공사든 마찬가지입니다. L.A나 애틀란타, 시카고등지에서 갈아탈 수 밖에 없더군요. 그러므로 비싼 항공편은 한번 갈아 타는 것이고 좀 싼 것은 두 번 갈아 타는 차이가 있더군요. 그래서 당연히 두 번 갈아 타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델타항공을 이용해야 했는데 L.A에서 내려 갈아타고 애틀란타에서 내려 갈아타고 세인트루이스로 오는 코스입니다. 19시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싸다는데 어쩔 수 없지” 란 것이 우리 가족의 생각이었습니다.

L.A까진 잘 도착하더군요. 델타편이었지만 대한항공과 코드쉐어를 하게 된 비행기표라 대한항공의 비행기를 타고 왔죠. 덕분에 우리나라 승무원들의 서비스를 받는 것과 마일리지를 올리게 된 혜택을 받았죠. “후후 이득 봤다” ‘프린세스 메이커’ 란 CD게임을 즐겨하는 우리 딸의 표현입니다.

L.A공항에서 이민국의 입국심사를 받았습니다. 가방을 다 뒤질지도 모른다는 인터넷의 정보를 떠올리고 조금 긴장했지만 대충 통과했습니다. 다 뒤진다고 해서 법에 걸릴 만한 것은 없었으니 문제는 없었지만 일일이 짐을 푼다는 것은 귀찮은 일이죠. 애틀란타로 가는 델타항공편을 찾았습니다. 승무원뿐만이 아니라 비행기의 안내방송이나 설명서, 기내식메뉴까지

모두 미국식이었습니다. 사실 별다른 문제만 없다면 기내방송은 몰라도 되는 것들입니다.

벨트를 매라. 이상기류로 흔들리고 있으니 자리에 앉아있도록 해라. 담배는 무조건 안된다.

등의 상식적 안내 또는 오늘 날씨는 이러이러하며 몇시간 걸릴 예정이다. Thank you. 이런

말들이 나오게 되어 있죠.

현지 시간으로 밤 8시에 도착해야 9시에 아틀랜타를 출발 세인트루이스로 가는 비행기를타게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비행기가 아틀랜타공항에 내리질 못하고 있었습니다. 기내방송이 몇 번이나 나오고 있었는데 거의 들리진 않았지만 곧 내릴 것이라는 이야기정도는 알아듣고 있었는데… 결국 현지 기상악화로 내리질 못하고 가까운 내쉬빌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것도 밤 10시에. 그제사 이리 저리 물어보고 알아보니 기름이 떨어질 때까지 애틀란타 상공을 선회하다 포기하고 근처 공항으로 왔다는 군요. 급유를 하고 다시 이륙, 밤 12시가 넘어서 애틀란타에 도착했습니다. 세인트루이스로 갈 비행기는 없더군요. 이럴 경우,

한국이라면 어떻게 합니까? 당연히 따져야죠. 따질려고 갔더니 세상에 연착한 비행기들이 한두대가 아닌지라 수백명이 안내 카운터앞에 줄을 서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델타직원을 붙들고 표를 보여주고 물어보았는데 다행히도 줄을 서지않게 하고 먼저 수속을 해주더군요. 지금도 그게 왜 가능했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습니다. 내일 아침 첫 비행기를 타라, 시간이 늦었으니 호텔로 가고 싶다면 반액으로 할인해주는 티켓을 주겠다. 천재지변이므로 손해배상을 해줄순 없다. 짐을 찾을 필요는 없다. 자동으로 내일 비행기로 연결된다. 대충 이정도만 알아들었습니다. 자세한 약관을 읽어보진 않았습니다. 호텔로 가려다 시간을 보니 7시간 정도만 기다리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공항 로비의 의자에서 우리 가족은 밤을 새기로 했습니다. 화장실로 가서 세수를 하고 옷가지를 꺼내서 딸을 덮어주고 꼬박 밤을 새웠죠.

공항안이라서 안전에 문제가 있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잠에 빠질 만한 분위기는 아니더군요. 비행기가 제대로 연결되었으면 밤 11시에 세인트루이스에 도착해 새벽 1시면 콜럼비아에 도착했을 것이고 잠자리에 들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시차적응을 위해 애틀란타 로 가는 동안 잠을 자지않고 버티고 있었는데…

결국 세인트루이스공항에 비행기가 내릴 때까지 무려 36시간을 비행기와 공항안에서만 지낸

셈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먼 곳을 가도 24시간을 넘지는 않는데… 앞으로의 1년이 결코 순탄치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글은 인터넷 한겨레의 뉴스메일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