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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LPGA를 주름잡는 한국 여전사들…배워야 할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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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주간 미국 여자 프로골프 대회가 내가 연수를 받고 있는 캘리포니아에서 열렸다. 기아클래식
은 집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캘리포니아 남부 휴양도시인 Carlsbad에서, 그 다음 대회인 ANA
INSPIRATION은 LA에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세계적인 휴양 도시 팜스프링스 인근 Rancho
Mirage에서 치러진 것이다.


두 대회 모두 한국 여자 선수들 간의 잔치로 끝났다. LPGA 기아 클래식은 3라운드 선두였던 이미
림 선수를 비롯해 허미정, 전인지, 박성현, 유소연 선수가 4라운드에서 집안 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이미림 선수가 압도적인 스코어 차이로 우승을 차지했고 올 시즌 첫 번째 메이저 대회인 ANA
INSPIRATION 에서는 유소연 선수가 연장 접전 끝에서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렉시 톰슨 선수를
제치고 자신의 두 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가져갔다. 물론 렉시 톰슨이 희대의 대실수를 범하는 바람
에 얻은 행운이기도 했다.
   
골프 팬인 나는 내가 사는 동네 인근에서 벌어지는 두 대회를 모두 가서 보고 싶었지만 사정상
기아 클래식 대회 마지막 날 갤러리로 참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기아 클래식 4라운드 갤러
리의 절반 이상은 모두 한국 사람들이었다. 오랜만에 한국 선수들이 대거 상위권에 랭크돼 있었는
데다 이미림 선수와 허미정, 유소연, 전인지 선수가 2-3타 차이로 우승을 다투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갤러리들의 한국 선수들에 대한 응원은 경기장 전체를 지배할 정도였다. 이미림, 허미정, 유소연,
전인지, 박인비 등 한국 선수들을 계속 따라 다니는 갤러리들이 매 홀마다 적극적인 응원을 보내줬
고 마지막 18홀에서 기다리고 있던 많은 한국 갤러리들도 경기를 끝내고 나오는 한국 선수들에게
일일이 열렬한 환호를 보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장소만 미국이었지 한국 선수들은 스폰서를 비롯
해 거의 홈그라운드에서 경기를 하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경기를 마친 크리스티 커와 모 마틴 등 일부 미국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에 대한 환호가 미국 갤러
리들보다 훨씬 소리도 크고 열렬한 응원을 펼쳐줘 부담이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한국의 일부 열혈 갤러리들은 경기장 안으로까지 몰래 들어가 가까이서 보려다가 경기장 요원들에
게 제지를 받는 등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경기 전체에 지장을 줄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18홀 주변에 모여 있던 한국 갤러리들의 가장 큰 목적은 경기를 마치고 나오는 한국 선수들에게
싸인을 받고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미래의 LPGA 투어 프로를 꿈꾸는 어린 학생들부터 주부 팬들,
아재(삼촌)팬들, 심지어 한국에서 11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멀리서 오는 걸 자처한 팬클럽까지
부류도 다양했다. 일찍 경기를 끝내고 나온 박인비, 유소연, 김세영 프로 등 미국에서 2년 이상
투어를 경험한 선수들은 팬들에게 싸인과 사진 촬영 시간을 허락했다. 준우승을 차지한 유소연
프로를 제외하고는 10위권에 머문 다소 아쉬운 성적이었지만 팬들과‘오토그래프(Autograph)’존
에서  머물렀다.


그런데 경험이 얼마 안 되거나 나이가 어린 일부 선수들은 좋은 성적을 올렸는데도 불구하고 팬들
의 싸인 요청을 외면하고 자리를 황급히 떠나 버렸다. 특히 박성현 프로는 올해 데뷔한 신인인데
도 팜스프링스에서 일정이 있다며 몇 시간 넘게 기다린 팬들을 뒤로 한 채 자리를 떴다. 정말 일정
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경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시간 약속을 잡는다는 건 불가능한 얘기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전날까지 선두권이었는데 만약 우승을 했다면 그 때도 일정이 있어서
가야 한다며 우승 세리모니에 불참했을까?


박성현 프로는 올해 데뷔한 신인으로 한국 팬들은 물론 미국 팬들에게도 관심이 높은 선수 중 하나
다. 박프로의 장타 때문에 그녀를 알아보는 외국 팬들도 꽤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을, 몇
시간 동안 박프로의 등장만을 기다리던 팬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고 떠났다. 전인지 프로도 마
지막 홀 실수 때문에 10위권으로 떨어져 기분이 상해서인지 팬들과 1분도 함께 하지 않고 가버렸다.
마지막까지 우승을 다투던 허미정 프로는 꽤 고참 인데도 팬들을 외면한 채 자리를 떴다. 이들은
정녕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순간의 기분 때문에 실수를 한 것일까? 이들이 누구 때문에 선수 생활
을 할 수 있고 스폰서를 받을 수 있고 많은 상금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 여자 프로골퍼들의 매너와 관련한 에피소드는 한국에 있을 때부터 여기저기
서 많이 들려오는 얘기이긴 해서 그리 놀랍지는 않다고 하는 팬들도 꽤 있을 것 이다. 라운딩이
끝나고 나면 “시간이 없어서요” “오늘 못 쳐서요” 하는 핑계를 대며 팬들을 외면하는 경우가 허다
하다고 한다. 너무 어이없는 일이다. 팬들이 수 만명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수십명
인데 이들에게 싸인해 주고 사진 찍어 주는게 얼마나 걸린단 말인가? 못 쳐서 싸인을 해주기 싫
다는 얘기는 듣는 사람의 귀를 의심하게 만든다. 어떻게 매일 잘 칠 수 있나? 못 치면 팬이 없다
는 얘긴가?     


외국 선수들과 비교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문화적 차이나 매너가 몸에 배인 사회 등 다양한 이유
가 있기 때문에) 비교를 안 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미국에 진출한지 이미 수십년이 넘
었기 때문에 몰라서 못한다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먼저 Kim Kaufman 선수 얘기를 해볼려고 한다. 이 선수는 이 날 성적이 신통치 않아 리더보드에
한 번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런데도 경기가 끝나고 나서 팬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밝은 모습
으로 사진을 다 찍어주고 경기장을 떠났다. 미국의 자존심 가운데 한 명인 Mo Martin 선수는 팬
들과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고 라운딩에 관한 얘기도 나누고 난 뒤에도 한참을 ‘Autograph Zone’
을 떠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팬들이 한 명이라도 더 올까봐 스스로 펜을 들고 서 있었다. 세계
적인 선수인데도 권위나 으스대는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Gerina Piller도 한 명 한 명 눈을 맞
추며 싸인을 해주고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어주는 서비스를 아끼지 않았다. 미녀 Alison Lee도
모델 같은 자태를 뽐내며 팬들이 그만할 때까지 펜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미국에서 가장 팬이 많은 미녀 골퍼 Lexi Thompson의 매너는 팬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팬들과 별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면서 매니저가 빨리 가자고 재촉을 하는데도 여유있게 농담
다 받아주고 싸인해 주고 사진 다 찍어주고 천천히 자리를 떠났다. 아시아계 선수인 Ariya
Jutanugarn과 Mika Miyazato 선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양의 매너를 마치 다 배운 선수처럼
밝은 표정으로 웃으면서 팬들을 대했다. 자국 팬들에게는 특히나 더 밝게 대하면서 인사를 했다.



앨리슨(Alison Lee), 렉시 톰슨(Lexi Thompson), 아리야 주타누간(Ariya Jutanugarn)과 함께 


프로는 기본 중의 기본, 가장 중요한 기본이 ‘Fan First’라는 점을 우리 선수들은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할 것이다. 미국 다른 종목을 봐도 더하면 더했지 팬에 대한 매너는 우리가 볼 때는
도를 넘는 수준이다. NBA와 NFL은 한참 작전 지시를 내려야 할 중간 휴식 시간에도 감독들이
생방송 인터뷰를 한다. 특히 전반전에 실수를 많이 했거나 뜻대로 풀리지 않아 경기를 리드 당
하고 있는 팀의 감독에게 “왜 그랬냐?” “왜 그 선수를 기용하지 않았냐?” “작전의 문제가
있지 않냐?” 같은 기분을 상하게 할 질문을 하는 데도 일일이 다 대답을 한다. 그리고 나서
작전 시간을 위해 선수들에게 달려 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메이저리그 야구는 더 한다.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중간에 덕아웃에 있는 선수나 감독과 인터
뷰를 한다.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일부 거만한 선수들의 비매너를 종종
기사에 오르기도 하지만 글자 그대로 일부 일 뿐이고 나머지 대부분의 프로 선수들은 자신들
이 누구 덕분에 밥 먹고 사는지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높은 연봉을 실제로
주는 팬들에 대한 태도가 너무나도 친절할 수 밖에 없다.
  
한국 여자프로 골퍼들의 실력은 세계 최정상급 수준이지만 그에 따르지 못하는 매너를 보면서
참 속상했다. 하지만 난 선수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은 제대로 교육을 못 받았고 교육
을 받을 만한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운동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친구나 학교
와 격리돼 오로지 운동만 했다. 이들을 가르치는 코치들도 운동만 잘하는 기술만 전수했지
전인교육 같은 건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인 건 다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엘리트 체육의 한계
이자 문제점이다. 미국 운동 선수들은 남들과 똑같이 학교 생활을 하고 심지어 높은 평점을
요구 받는다. 당신이 학교를 대표하기 때문에 공부도 잘해야 된다는 이유라고 한다.


너무 부럽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우리가 해야할 일은 선수들에게 운동 잘 하는 기술만 가르
칠게 아니라 매너 교육 같은 전인교육도 함께 해야 한다. 학교 때 못하면 매니지먼트 소속사
에서라도 가르쳐야 한다. 그것도 계속 반복해서 가르쳐야 한다. 한국 프로선수들이 밝은 모습
으로 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