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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학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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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 D.C.로 연수 온지 벌써 7개월째입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요즈음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미국 학교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미국 나이로 13살, 10살, 3살 세 아들을 각각 7학년, 4학년, 그리고 preschool에 보내다 보니 이곳 학교 실정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통해 알게 된 개인적 경험만을 간략하게 소개하려 합니다.

지금 살고 있는 버지니아주 패어팩스는 워싱턴 D.C.의 배후도시로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공립학교 시스템과 높은 교육수준, 교육열로 유명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느낀 미국 학교의 장점을 꼽으라면 이방인의 눈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시설입니다. 넒은 부지에 모두 단층 건물입니다. 초중고등학교를 가릴 것 없이 넓은 학사와 운동장, 체육관, 주차장이 널찍널찍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한눈에도 시원합니다. 넓은 공간이 주는 여유에다 운동장은 잔디밭이어서 더할 나위 없습니다.

또 매일 수 백대의 스쿨버스가 새벽부터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들 순서로 학교까지 태워가고 끝나면 집 앞까지 데려다 줍니다. 스쿨버스가 학생들을 태우거나 내려줄 때는 뒤따르는 모든 차들이 멈춰야 하고 도로에 중앙분리대가 없을 경우에는 반대편 차로의 차들까지 멈춥니다. 멈추지 않고 지나가는 차에 대해서는 스쿨버스 운전자가 차량 번호를 적어 경찰에 신고합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인데 안전의식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선생님들이 대단히 헌신적일 뿐 아니라 친절하고 학생들에게 거의 화를 내지 않습니다. 할로윈은 물론이고 음악회와 나라별 장기자랑, 체육행사 등 각종 행사가 자주 열리고 선생님들은 행사 준비와 관리 감독 뿐 아니라 직접 몸을 사리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행사에 참여합니다. 박봉에도 수업 하랴 아이들 챙기랴 행사 준비하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아무리 아이들이 무례하게 굴어도 거의 화를 내지 않으며 체벌은 상상도 못할 분위기입니다. 거기다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비교육적인 언행을 할 경우에는 아이들은 이를 고발할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돼 있습니다. 또 학부모와의 상담에서는 인종을 가리지 않고 대단히 친절하고 자세하게 학생에 대해 이야기 해줍니다. 그것도 한 분이 아닌 관련 선생님 두 세 분 정도가 마치 자기 자녀 이야기 하듯 대단히 열성적으로 상담해주는 데 인상적이었습니다.

학교 수업은 선생님들이 교실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대학처럼 학생들이 과목별로 교실을 찾아다닙니다. 교과 내용이나 수업은 아이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적극 유도하는 방향으로 이뤄집니다. 못하더라도 칭찬해주고 사소한 것이라도 잘 하는 게 있으면 크게 칭찬해주기 때문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교육이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아래 내용이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개인적으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한국 교육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예찬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미국의 초중등교육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상당히 뒤쳐져 있고 이는 미국 교육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이야기입니다. 앞서 열거한 장점들을 보면 얼핏 이해가 안갈 듯 하지만 개인적으로 한국식 교육 환경에서 자란 저로서는 미국 학교를 보면서 걱정스러운 점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학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극히 일부 학교를 제외하고 미국 학교 수업은 한국 학교 수업에 비해 난이도가 현저히 떨어집니다. 가장 비교가 쉬운 수학을 간단히 예로 들어보면 한국에서 초등학교 3학년 때 배우는 내용을 제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4학년 때 배웁니다. 제 아이는 여기 4학년 아이들에게 한국 3학년 문제 주면 풀지 못할거라고 이야기합니다. 중학교도 거의 마찬가지인데 다만 Algebra나 Geometry 등에서는 한국보다 앞서 배우는 경우도 있지만 깊이 있게 들어가지는 않고 개념만 알려주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또 시험 역시 어렵게 내지 않기 때문에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중고등학교에서도 기본 연산만 잘해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여기는 수학이 아니라 산수라고 말하는 경우도 봤습니다. 이 때문에 다시 돌아가야 하는 한국 학부모들은 거의 예외없이 집에서 아이들에게 한국 수학을 따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학교에서는 수업 중간에 쉬는 시간이 없습니다. 학교 마칠 때까지 아이들은 수업 끝나면 다음 수업이 있는 교실 찾아서 뛰다시피 다녀야 합니다. 어떤 분이 이야기하기를 아이들이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못하도록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여기에서는 아주 사소한 문제로도 소송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학교든 선생님들이든 소송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거기에다 여기 미국 중고등학교들은 히스패닉계 학생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학교들에서 히스패닉계 학생들은 기피대상 영순위입니다.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과 베트남, 인도 등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있지만 히스패닉 학생들의 수업 방해는 여기 선생님들도 거의 포기한 상태인 듯 합니다. 또 끼리끼리 뭉쳐 다니면서 다른 학생들에게 시비 걸고 문제들을 많이 일으키지만 학교에서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상황입니다. 여러 사람에게 물어봤지만 히스패닉계 학생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고 하더군요.

또 미국 학교는 겨울 방학 1주일 남짓, 여름 방학 3개월로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의 불균형이 심합니다. 이는 과거 농사짓던 시절 아이들이 농사일 도우라고 만들어 놓은 제도라는데 여러 곳에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는 많지만 바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워낙 큰 나라다 보니 제도 하나 바꾸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 아이들은 툭하면 학교에 가지 않거나 휴교령이 내려집니다. 아이가 아픈 기미만 보여도 학교에 절대 보내지 않습니다. 겨울에는 눈만 조금 내려도 휴교령이 내려지거나 2시간 늦게 갑니다. 늦게 가도 끝나는 시간은 같습니다. 지난 2월에는 눈이 아주 조금, 말 그대로 바닥에 깔릴 정도만 내렸는데 패어팩스 카운티 관내 모든 학교들에 휴교령이 내렸습니다. 도로에는 차들이 씽씽 다니고 얼마 안있어 눈들이 많이 녹았는데도 학교는 쉬었습니다. 이런 정도인데 눈이 쌓일만큼 내리면 2,3일 학교 안가는 것은 보통이고 1월에는 눈 많이 내렸다고 또 선생님들이 성적 내야한다고 해서 1주일 동안 학교가 쉬었습니다. 아이들이 처음엔 아주 좋아하더니 나중에는 지루해져서 학교 가고 싶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수업일수는 한국과 비슷하지만 공부는 언제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현상 역시 앞서 말한 소송과 관련이 있습니다.

급식은 너무 형편없습니다. 주로 피자가 나오는데 아이들이 처음엔 피자 먹는다고 좋아하다가 지금은 학교에서 주는 피자를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냉동피자를 가열해서 주는데 내용물이 빈약하고 제대로 해동시키지 않아 얼음이 그대로 씹히는 경우가 많아서 다른 아이들도 제대로 먹지도 않고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도 때가 되면 꼬박꼬박 급식비로 $100씩 학교에 내는데 아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서 없이 생각나는대로 열거해봤는데 겨우 7개월 남짓 보고 느낀 것이 얼마나 정확한 지는 알 수 없습니다. 더구나 미국 교육에 대한 평가는 물론이고 한국 교육과 미국 교육에 대한 비교는 어불성설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미국 초중등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이 건질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세계, 새로운 문화에 대한 경험과 영어 정도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곳에서도 가장 들어가기 어렵다는 과학고등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는 한국 학생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높은 난이도와 강도로 공부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교육의 질 저하 문제는 피하기 어려운 것 같고 이른 시일 내에 나아질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KBS 이웅수 기자는 2010년 8월부터 미국 워싱턴DC 존습홉킨스대 SAIS에서 연수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