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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료비 체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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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블런스에 한번 실려가면 수천달러가 청구된다?’
`중요한 수술을 받으면 수만달러는 기본으로 청구된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막연히 듣고 있는 미국의 의료비 수준입니다.


일부는 사실이고 일부는 사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 소득에 따라 보험 종류에 따라 사실일 수도 있고
전혀 사실 무근일 수도 있습니다. 짧은 경험으로 미국의 의료제도를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제 개인적
인 경험이 조금이나마 미국 의료 현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소개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담이라 이 사례를 극단화해서 미국 의료제도를 비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족들과 함께 미국에 정착하면서 가장 바랬던 것은 건강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건강까지 부모
가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죠. 미국에 도착한지 얼마 안돼 아이가 응급실 신세를 지면서 귀중한 경험을
했기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일요일 오후부터 아이가 열이 나고 호흡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주말 심야시간이라
마땅히 주변에 문을 연 병원도 없었고,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일단 경과를 보기로 했습니다. 한국
에서는 별 걱정을 안했겠지만 미국에서는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을 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미국 뉴저지주(州)에는 다행히 한국인 의사가 있는 병원들이 있어서 월요일 아침에 무작정 예약
없이 진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갔습니다. 사실 미국에서는 예약없이 병원을 가는 것도 쉽지 않은 경우
가 많습니다. 동네 병원 의사 소견은 보다 정밀한 진단이 필요하다며 당장 대형병원 응급실로 가라는
것 이었습니다.


의사가 소개해준 뉴저지의 한 대형병원으로 아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몇 가지 간단한 검사를 하고 병명
을 진단받았습니다. 다행히 입원까지 할 상황은 아니라고 하고 회복기가 있어서 응급실에 간지 3시간
만에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갈 때까지 잔료비 청구서를 주지 않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한국에서는 퇴원하는 즉시 청구
서가 나오고 결제를 해야하지만 현지 보험카드가 있는지를 물어보고, 주소와 이름만 적으라고 하더군요.


아이는 다행히 약을 먹고 며칠 새 회복됐지만, 진료비가 내심 찜찜해졌습니다.
3주가 지나도록 집으로 우편물도 오는 것이 없어서 이상하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4주가 지나자 우편
물이 하나 날아왔습니다. 응급실 내과의사 진료 비용이었고 약 70만원 정도가 청구됐습니다. 미국 의료
비 수준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말을 들어왔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이 나오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며칠 뒤 180만원 정도(할인 전 기준) 청구서가 추가로 날아오더군요.
또 며칠이 지나자 몇 만원짜리 청구서가 별도로 왔습니다. 분야별로 제각각 청구서를  보내는 방식이라
당일 진료에 대한 청구서가 다 발송됐는지 병원 측에서 확인을 받기가 어려웠습니다. 같은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지만 청구 주체는 다 제각각이었습니다. 한 영수증은 방사선과 명의로 왔고, 또 다른 영수증
은 응급실 의사를 관리하는 한 외부 회사 명의였고, 또 다른 영수증은 병원 전체 명의로 왔습니다.


유학생 가족이고, 미국 현지 보험카드가 없다는 것을 감안했는지 친절하게 150만원을 자체 할인(?)해
주더군요. 미국에서는 의료 진료의 적정 가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내과의사가 잠시 진단을 하고 70만원
을 청구하고, 간단한 호흡 테스트를 하고 30만원이 넘게 청구를 한 것 등은 솔직히 잘 이해가 가질 않더
군요. 의사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금액을 청구할 재량의 여지가 상당히 크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됐습
니다. 병원마다 `소셜워커’가 있기 때문에 유학생이나 연수자는 소득이 없다는 점을 강조해, 이들과 의료
비 네고를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지 보험이 없는 유학생 가족이나 무보험자는 감기 등으로 동네 병원에 한 번 갈 때 마다 100~150달러를
냅니다. 그러나 현지 보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15~20달러만 `코페이'(co-pay:일종의 자기부담금) 내고
살고 있습니다. 대형병원을 이용할 때 그 차이는 훨씬 더 커지죠. 같은 15~20달러를 내더라도 체감 의료
비는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회사 지원이 큰 직장인은 의료비에 큰 부담이 없지만 회사지원이 없는 자영업
자나 무직자는 3~4인 가족의 경우 월 건강보험료가 1000~2000달러에 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가
입한 보험 종류에 따라 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병원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같은 병원의 특정 의사, 간호사
가 한 진료 행위는 보험에서 커버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수술을 받을 때는 자신의 치료를 담당할 의료
진이 보험적용이 되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것이 미국입니다.



미국 의료비 수준의 적정성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의 의료보험
시스템 개혁법안인 `오바마 케어’ 를 놓고 수년째 미국에서는 논란이 한창인 것을 봐도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미국 의료비의 전반적인 수준이 한국보다 높은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지만 체감 의료비는 개인별로 지극히
다르다는 것이 보다 객관적인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일단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는 아무런 조건을
따지지 않고 국적, 소득, 신분에 관계없이 치료해야 할 `인간’으로 대한다는 점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의료비 수준을 떠나 재정보증 서류부터 따지는 한국과 가장 큰 차이가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