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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엿보기 (8) ‘영어 이야기1 아빠 발음은 엉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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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영어 이야기1 아빠 발음은 엉터리





아이들은 역시 적응을 잘 한다. 연수를 준비중인 기자들은 거의 예외없이 아이들이 잘 적응할까 걱정들을 하지만 막상 이곳에 오면 조금만 지나면 ‘기우’였음을 깨닫게 된다. 얘들 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걱정하면 된다.



내 경우를 들어보겠다(결코 아이들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만 아니라 대부분의 연수생 가족들이 그렇다). 나는 아이들이 6학년(중1에 해당)과 3학년 두명이다. 큰 애는 한국에서 영어를 몇마디 듣고 말하고 읽고 하다가 왔는데 지금은 ESL 수업을 받지 않고 미국 애들과 똑같이 정상적인 수업을 받는 정도가 됐다(ESL 코스는 모두 4단계로 돼있는데 학교 선생들이 아이들의 영어 실력을 학기중에 수시로 체크해서 그때그때 승급시킨다).



더 놀라운 것은 3학년짜리다. 작은 아이는 단어라곤 mother, father 정도 밖에 모르고 이곳에 와 초반에는 말하는 것은 고사하고 듣기와 읽기가 안돼 상당히 고전했다. 지금도 정규 수업시간 외에 하루 1시간씩 주2회 영어수업을 받고 있지만 말하기와 듣기에서 생활하는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가 됐다.



아이들은 심지어 TV를 보면서 웃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의 주제가를 따라 부르고 한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도 종종 보러 간다. 얼마나 알아들었냐고 물어보면 70-80%쯤, 어떤 때는 90% 정도나 된다고 말한다. 특히 발음에 관한 한 아이들은 미국 아이들과 거의 비슷한 정도가 되는 것같다.



그러다 보니 얼마 전부터는 “아빠 발음은 이상해, 발음이 틀려요” 등의 말을 들으며 시달리고 있다. 특히 R과 L 구분을 못한다고 놀림을 당한다(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학원 선생한테 R과 L을 잘 구분한다고 칭찬도 들었는데..). Z 발음도 자주 지적받는다. 하필 내 집주소에 이 Z가 들어있어 예약을 하든가 하는 때엔 상대방이 G나 J로 알아듣는 통에 맘 고생이 심하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두세번 말해야 통한다.



사실 이곳에 와서 미국사람과 얘기하다가 상대방이 내 말을 못 알아들어 “Sorry?”라고 되물어오는 경우를 많이 겪었다. R과 L, P와 F, B와 V 발음을 정확히 구분해줘야 상대방에서 이해한다. 장음과 단음 구분도 명확하게 해줘야 얘기가 통한다. T는 한국에서 배운대로 진짜 ‘티’로 발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혀를 굴리는 것같아 R이나 ’디‘ 소리로 읽으면 쑥스럽게 느껴지지만 여기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금방 ’Sorry?’가 나올 정도니 도리가 없다(그래서 캐나다의 Toronto는 ‘토로노’다).



또 이미 그렇게 알고 있던 단어의 발음이 틀린 경우도 많아 당황할 때가 많다. 예컨대 Sega는 우리가 아는 대로 ‘쎄가’가 아니라 ‘씨가’이고 문구류를 파는 ‘office depot’의 depot는 ’데포‘가 아니라 ’디포‘다. e를 ’이‘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미국사람에게 물어보니 특히 고유명사의 경우에는 자기들도 틀릴 경우가 있을 정도로 발음이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른 사례가 많다고 한다.



더욱이 한국에서는 잘 안 쓰는 단어들, 예컨대 cheyenne은 놀랍게도 ‘샤이엔’으로 발음해야 얘기가 되고 coyote는 ‘코요테’가 아니라 ‘카이오우트’로 읽어야 통한다. 우리네들은 직업상 외국어를 한국어로 표기할 때가 많은데 현지 발음대로 표기하는 것을 진지하게 연구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특히 신문의 경우에는 외국어 표기를 해야할 때가 더 많은데 내가 아는 바로는 현지 발음과 외래어 표준표기법이 차이가 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 애를 먹곤 한다(예컨대 buffet는 ‘부페’가 아니라 ‘버페이’고 ounce는 ‘온스’가 아니고 ‘아운스’인데 이같은 차이를 계속 방치해둬야 하는 것인지..).



차제에 한국의 영어 교육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같다. 이곳에 와서 새삼 느낀 것이지만 우리 영어 교육은 발음 문제말고도 생활영어에서 너무 벗어나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곳 사람들이 생활에서 쓰는 영어는 아주 익숙한 단어 예컨대 get이나 make go 같은 단어를 활용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아는 단어는 말하자면 아주 고급영어로 생활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다. 오히려 잘 안다고 생각했던 ‘go’ 등을 활용해 쓰는 생활영어에 익숙치 않아 대화에 어려움이 컸다는 점은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생활영어는 잘못하면서 어떤 때는 미국인들조차 깜짝 깜짝 놀라게 할 만큼 어려운 단어를 쓰는 한국인에 대해 미국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이왕 영어를 가르치고 배우게 한다면 이런 영어의 ’가분수‘ 현상을 더 이상 만들지 않게 중.고교 영어교육을 쉬운 단어를 갖고 실제 생활에서 쓰이는 영어로 듣고 말하게 하는 방향으로 서둘러 바꿔야한다는 생각이다.



<한국경제신문 문희수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