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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엿보기 (3) ‘목소리를 내야 대접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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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엿보기>



3)목소리를 내야 대접받는다




미국인들은 대체로 서두르는 법이 없다. ‘만만디‘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을 처리하는 속도나 솜씨를 보면 한국식 사고방식으로는 답답하리 만큼 더디고 못마땅할 때가 많다. 상대적으로 일 마무리가 확실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집 근처에 살던 한 한국인 연수생 H씨는 작년에 기막힌 일을 당했다. 인터넷을 통해 국립공원 1년 이용권을 카드로 샀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이중으로 돈이 빠져 나갔다. 환불을 받으려고 이용권을 팔았던 곳에 여러차례 이메일도 보냈지만 느릿느릿 돌아오는 회신 이메일에는 담당부서에 이메일을 넘겼다, 해당부서는 담당직원이 자리를 비웠다, 구매기록을 찾지 못했다는 식의 응답뿐이었다. 화가 난 H씨는 상급기관인 한국식으로 말하면 산림청을 인터넷으로 연결해 항의 이메일을 보냈지만 이 역시 이메일을 해당부서로 넘겨줬다는 회신만 돌아오고 별무 효과였다. H씨는 3개월여를 기다린 끝에 산림청 담당직원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아내 강경하게 항의했다. 그 직원으로부터 ‘알아보고 조치하겠다’는 대답을 들은 후 2주일쯤 지나 돈을 돌려받았는데 이번에는 또 금액이 모자랐다. H씨는 다시 이메일을 보냈지만 또 ‘알아보겠다’는 식의 성의없는 회신만 받았다. 급기야 H씨는 그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여름에 그곳(워싱턴)으로 가는데 그동안 주고받은 이메일을 갖고 당신을 방문하겠다. 지금 굉장히 불쾌한데 정식으로 항의하고 잘잘못을 가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것이 즉효였다. 1주일도 못돼 못받았던 돈이 돌아왔다.



미국인들은 자기와 관계가 없는 일에는 대체로 신경을 끄고 가급적 책임을 피하려 든다. 반면 자기에게 책임이 돌아오는 일에는 안색이 달라질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문제의 산림청 직원도 자기에게 책임이 돌아올 것을 꺼려 일을 서둘러 마무리했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일을 빨리 처리하려면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기록을 챙겨두는게 요령이다. 나중에 할인받는 조건으로 물건을 샀거나 예약했다가 취소하는 등의 경우에는 영수증이든 이메일이든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록을 갖고 있는게 뒷탈이 없다.



그리고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목소리를 높이는게 아주 효과적이다. 나는 작년 8월께 yellow stone 가는 길에 KOA 1년 이용권을 샀다. 당장 그 자리에서는 카드발급이 안돼 영수증에 구매코드만 기재한 채 5개월간 이용할 수 있는 임시사용 기록만 받아 이용했다. 그런데 이 임시기록의 유효기간이 지났는데도 카드가 집으로 오지않아 H씨에게 배운 대로 강경한 어조로 불편하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이것이 역시 효과가 있어 1주일만에 카드가 도착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골프 1년 회원권을 샀는데 임이 종이회원권 유효기간(한달)이 지났는데도 카드가 오지않아 골프샵에 물어봤더니 그곳 직원이 하는 말이 ‘협회(AGPA)에다 목소리를 높여 왜 빨리 안 주느냐고 항의하는게 지름길’이라고 한다. 당장 이메일을 보내 ‘지금 굉장히 불편하다. 앞으로 플라스틱 카드가 없어 문제가 생기면 당신들이 책임져라’고 항의했더니 ‘늦어서 미안하다’는 이메일및 편지와 함께 1주일도 안돼 카드가 도착했다.



사소한 일에 뭐 그리 열을 낼 필요가 있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건데 부당한 일에는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게 미국에서 지내는데 도움이 된다. 공공연하거나 가시적이지는 않지만 미국에 사는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무시 내지 차별적인 눈초리를 감안하면 부당한 일에는 그에 맞게 대응하는 것이 제대로 대접을 받고 사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한번은 덴버 시내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는데 남미사람으로 보이는 임시직 embassador가 빨리 치라고 계속 성화를 부렸다. 애당초 앞에 두팀이나 빈 시간을 잡아 두명이 플레이한데다 뒷팀과도 거리가 떨어져 있었는데도 한 두 번이 아니고 전반 8홀을 치기까지 세 번이나 와서 독촉했다. 급기야는 영어를 잘못한다고 생각했는지 ‘계속 늦으면 나가게 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늦어서 앞팀과의 간격이 벌어진게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막무가내여서 못하는 영어로 5분이상 싸웠다(그러니 공이 잘 맞을 리가 있었겠는가). 분이 덜 풀려 공을 치는지 마는지 서둘러 플레이를 마치고 오피스 데스크에 찾아가 강경하게 항의했다. 흑인 데스크는 우리 사정을 아는지라 정황설명을 듣고는 ‘미안하다’고 대신 사과했다. 나중에 들은 것이지만 그동안 이 골프장을 찾은 한국인들이 다른 사람의 회원권을 몰래 쓰다가 걸려 망신을 당하는 등 불미스러운 일이 여러번 있어 한국인에 대한 그 흑인 데스크의 인식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든말든 부당한 대접을 받은데 대해서는 항의해서 사과를 받았고 그후에도 그 데스크가 만날 때마다 아는체를 하니 한국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어느 정도 기여를 했다면 한 셈일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문희수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