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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수에서 처음 해 본 10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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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어폐가 있다. 사실 미국으로 연수를 온 뒤 처음 경험해본 것은 그 수를 꼽기 어렵다. 여행이나
취재를 제외하고는 해외 체류 자체가 처음이었고, 이곳에서 누군가와 말하고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가본
모든 일들이 모두 낯선 체험이었다. 하지만 꼭 미국이어서 가능한 독특한 일들만 이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에서도 할 수 있었지만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할 수 있던 경험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 열 가지를 꼽아보았다.


(1)테니스


운동이라고는 제대로 배워본 적도 즐겨본 적도 없는 내가 테니스에 흠뻑 빠졌다. 연수를 준비하는 과정
에서 ‘미국에서 테니스 한번 쳐보겠느냐’는 가벼운 제의를 받았지만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다. 배드민턴
도 제대로 못 치는 내가 테니스라니. 도착 뒤에야 ‘뭐라도 운동을 하긴 해야 겠다’는 마음에 라켓을 구입
했고 코트에 나섰다.




연수 대학에 비슷한 연배의 교수들과 연습을 거듭했고, 조금씩 허리로부터 어깨와 팔뚝을 거쳐 라켓에서
폭발하는 짜릿한 손맛을 알게 됐다. 동네 곳곳에 마련된 테니스장을 돌며 이제는 내가 먼저 한판 붙자고
안달하는 단계다.


(2)라켓볼


겨울 눈이 쌓이며 테니스 코트가 문을 닫자 어쩔 수 없이 택했던 게 라켓볼이다. 돈 꽤나 있는 스포츠
맨들의 전유물로만 알았던 라켓볼은 테니스와는 다른 스피드와 팀워크를 필요로 했다. 같은 시간에 흘
리는 땀의 양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라켓에서 벗어난 공이 ‘빠쓩’ 소리를 내며 육면체 경기장
벽에 강하게 부딪칠 때는, 몸 안의 스트레스 찌꺼기가 밖으로 끄집어내지는 듯했다. 안타까운 건 수치
상으로는 스트레스만 빠졌다는 점이다. 체지방이 아니라.


(3)탁구


라켓볼에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되자 함께 운동을 다니던 우리는 또다른 대안을 찾았다. 왕년에 한번쯤
은 해봤다는 탁구다. 대개 탁구장을 찾았던 때는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 즈음으로 일치했는데, 나는
그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이미 테니스와 라켓볼을 섭렵한 까닭에 조그만 테이블 위에서 오고가는 가벼운
공의 움직임은 가소롭게 보였다.


하지만 막상 복식 경기가 이어지자 현정화 유남규는 내 안의 20세기 영웅으로 급부상했다. 한시도 집중
을 풀지 못한 채 발끝부터 머리까지 쉴새없이 움직이다 보면 티셔츠는 금세 흥건해졌다. 시간, 공간,
비용을 감안하면 최고의 운동이 아닐까 한다.


(4)골프-버디


골프 얘기가 빠질 수는 없다. 한국에선 캐디분께도 핀잔을 들을 정도의 실력이었고 재미도 나지 않아
미국에 와서도 굳이 골프장을 갈 마음이 없었다. 그러다 워낙 저렴하기에(비수기엔 9홀 경기가 1인당
10불 정도) 두어차례 퍼블릭 경기장을 찾았고 거기서 ‘사고’를 냈다. 파(par)는커녕 타수를 정확히 세
지도 않았던 내가 한 경기에서 두번이나 버디(birdie)를 기록한 것이다. 멀리건(mulligan)과 컨시드
(concede) 없이! 편한 지인과의 부담없는 경기였던 탓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후에도 골프에 대한
재미가 붙지는 않았지만 내 인생의 최고를 기록한 그때의 흥분은 아직 뚜렷하다.


(5)포커(pocker)


믿거나 말거나, 도박 역시 내 전공이 아니어서 한국에선 화투패를 만저본 일도 드물다. 얼마전 이곳의
한 지인이 포커를 가르쳐주겠다고 제안했다. 색색의 동전 모양 칩들이 테이블 위로 올려지고 포커의
규칙이 설명됐다. 4,5명이 연습 게임을 거쳐 포커 칩을 따거나 잃으며 진짜 게임으로 들어서자 유쾌한
긴장감이 우리를 덮쳤다. 먼저 파산한 사람이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사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포커페이스를 짓느라 애쓰고, 베팅에 성공하기도 실패하기도 하면서 포커의 진수를 맛보았다. 늦게 배운
 ‘도박’에 날이 새는 줄 몰랐던 경험이다. 이후 중고매장에서 포커 칩을 구입해 아내와 둘이 즐길 정도
가 됐고, 지금은 제대로 된 포커 칩을 한번 사볼까 고민중이다.




(6)캠핑


미국에 도착한 뒤 보름만에 우리 가족은 다른 두 가족과 함께 캠핑을 떠났다. 내가 사는 밀워키에서
북쪽으로 6시간 정도 올라간 캠핑장이다. 그때만 해도 정착을 위한 숙제들이 다 끝나지 않은 터라 머
리가 복잡했고 캠핑장 텐트에서 친숙하지 않은 이들과 3박4일을 지낸다는 게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온갖 별자리들이 쏟아지던 밤하늘, 블루 크리스탈 같던 슈페리어 호수, 그릴로 구워먹던 햄버
거의 깜짝 놀랄만한 맛이 기억 속에 물들어있다. 미국 생활에도, 이곳 지인들과도 익숙해진 지금은?
더 많이 못가는 상황이 아쉬울 뿐이어서 우리는 5월 또다른 캠핑을 예약해놓은 상태다.




(7)장시간 운전


미 대륙을 횡단했다는 사람도 적지는 않아서 자랑할 것까지는 아니어도, 나 역시 미국에서 하루 10시간
이 넘는 운전을 해 보았다. 미국을 찾은 부모님과 함께 미니밴을 타고 밀워키에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거쳐 캐나다 토론토까지 여행한 경험이다. 갈 때는 중간에서 하룻밤 쉬다 목적지로 향했지만, 돌아올
때는 토론토에서 밀워키까지 한번에 왔다. 620마일, 자그마치 1000킬로미터에 달한다. 차에 기름을 채우
거나 내려서 잠시 식사를 하는 시간까지 합해 12시간이 걸린 것 같다. 그 장시간 운전에도 허리나 눈은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그러나 내 몸보다, 그 거리를 무탈하게 잘 달려준 나의 중고 미니밴이 더욱 기특
했다.




(8)부모님과의 동거


앞서 말한 대로 연수 기간중 부모님을 초대해 2주간 함께 지냈다. 20대 후반 결혼한 뒤 부모님과 처음
으로 잠을 같이 잔 것이었고, 아내 역시 시부모님과 동거한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후엔 같은
기간만큼 장인 장모님도 초대했다. 그 기간 동안 갈등이 없었을 리 없는데 식습관과 생활방식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그렇게 좌충우돌하다 귀국 날짜가 다가와 공항에서 환송할 때면 어김없이 눈시울이 붉
어진다. 더 잘해드리지 못한 점, 괜한 투정을 부렸던 일들이 뒤늦게 가슴팍을 때리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카톡으로 무덤덤한 안부를 여쭙는 게, 군입대 후 부모님을 그리다 제대한 뒤엔 불효자로 돌아간
과거 내 모습과 같다.


(9)숙제 봐주기


아들과 딸은 미국에 와서야 본격적인 초등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자연히 아이들 숙제를 봐주는 경험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이니 모르면 알 때까지 가르쳐야 했다. 가르치고 배우는 궁
합이 아들과는 그나마 조금 나았는데 딸과는 영 맞지 않아서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내가 뭔가를 가르
치는 일에 적합하지는 않구나 하는 반성을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넉넉한 시간이 허락돼 이후 서로의 방
식을 알아가는 데 귀중한 경험이 됐다. 연수 기회를 얻지 못했다면 갖기 어려운 성과다.


(10)파티


미국에선 가족간 모임이 대부분이다. 우리 경우에, 친한 가족 서넛이 각 집을 돌아가며 한주에 두세번
씩 얼굴을 봐왔다. 남자들끼리만 밖에서 술잔을 돌리는 일 자체가 드물다. 매번 온가족이 총출동하다
보니 집주인 입장에서는 음식 준비가 만만치 않다. 한국에서 맞벌이였던 아내는 자연히 요리에 서툴었
는데 초기엔 그점이 꽤 부담이었다고 한다. 경험이 쌓이면서는 실력도 늘었고 이제는 한식과 양식을
넘나들며 10여명의 손님 접대쯤은 그런대로 선방하는 편이다. 연수 전 칼을 들어본 적이 없던 나 역시
썰고 볶는 데는 거침이 없어졌다.


열거하다 보니 서글픔이 생겨난다. 이런 경험이 뭐라고 이리 소중하게 여겨질까.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들을 왜 해보지 못했을까. 그러면서도 자신감이 크진 않다. 이 소중한 일상들을, 이 소박한
행복들을 한국에서도 이어갈 수 있을까.


다행히 확실하게 깨달은 한 가지는 있다. 한국에서 수십년 전 자취를 감췄다는 파랑새가 죄다 미국이
나 유럽땅에 집결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가 살던 집과 골목에, 심지어 회사나 출입처 한구석
에도 분명히 번식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부질없는 욕심을 접을 그날만 기다리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