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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방송사를 가다(7) – 원 맨 밴드 그리고 가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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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만다와 취재현장을 동행한 다음날, WRAL을 방문한 이후 세번째로 미국 기자와 동행하게 됐다. 바로 이 기자다.

이름은 마이클 셔비(Michael Charbonneau-퍼스트 네임 발음이 어려워서 모두 ‘셔비’라고 발음한다.) 동료들은 그냥 ‘마이크’라고 부른다. 우리 나이로 35살. 방송기자 경력은 2001년부터 시작해서 벌써 10년째인 중견 기자다.

WRAL에서는 마이크를 모두 ‘원 맨 밴드'(One Man Band)라고 부른다.
‘원 맨 밴드’라는게 뭐냐? 혼자서 북치고, 나팔 불고, 노래하는 사람을 떠올리면 될 것 같다. 다시 말해서 혼자서 취재도 하고, 촬영도 하고, 편집도 하고, 뉴스리포트도 하는 기자다.

음악 쪽에 식견은 부족지만, 그룹이 아닌 혼자서 여러 악기도 다루고 노래도 하는 사람, 그러니까 ‘1인 밴드’를 ‘원 맨 밴드’라고 부르는데, 거기에서 나온 말인 것 같다.

마이크는 대학시절 방송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 카메라 조작법과 편집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이후 대학을 졸업한 뒤, 일부 방송사들이 효율적 인력운영을 위해 ‘원 맨 밴드’를 모집하자, 곧바로 지원해 ‘원 맨 밴드’기자가 됐다고 한다.

마이크가 오늘 현장에 나가 취재할 아이템은 ‘동물 보호소’와 관련된 것이었다.

취재 내용은 동물 보호소의 ‘가스실’에 대한 것이었다.

미국의 동물 보호소는 대부분 학대받고 버려진 애완 동물들을 데려다가 보호해 주는 곳이다. 보호소로 오게된 동물들 가운데 일부는 사람들이 집으로 데려가 기르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지 못하고 보호소에서 계속 살아야하는 동물들의 경우, 일정 기간이 지나면 ‘가스실’에서 안락사를 시킨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가스실 안락사’가 너무 잔인하다는 여론이 일부 지역에서 일었고, ‘가스실 안락사’ 대신, 동물에 ‘약물’을 주사해서 보다 품위있는 죽음을 맞도록 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는 것이다.

제보자와 인터뷰를 마친 뒤, 함께 동물 보호소로 갔다.
(**위 사진에서 제보자와 함께 있는 개는 보호소에서 가져와 키우는 개라고 한다.)



동물 보호소 내부는 생각보다 깨끗했다. 1평 남짓한 공간에 개들이 1마리씩 수용돼 있었고, 배설물들의 경우 곧바로 청소가 되는지, 역겨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아래 사진은 동물 보호소 한켠에 있는 문제의 가스실이다.

가스실을 확대해서 찍어봤다.

우리 같으면 크게 문제 삼을 만한 것도 아닐 것으로 보이는데, 동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나라여서인지 별 것을 다 문제삼는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도 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가스실 학살을 떠올린 건 아닐까?

동물 보호소 촬영을 마치고, 해당 지역 담당 공무원과 만나 인터뷰를 했다. 시민들의 주장을 잘 검토해 보겠다는 긍정적 답변이었다.


현장 동행을 하면서 마이크의 경우 어떻게 ‘스탠딩 샷(방송기자들이 화면에 나와 말하는 장면)’을 혼자서 찍을까하는게 내내 궁금했다. ‘스탠딩 샷’이라는게 기자들이 직접 화면에 나오는 만큼 대단히 신경 쓰이는 촬영인데다가, 가만히 서있지 않고 움직이면서 말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장이 방송사에 1시간이나 떨어진 거리이기 때문에, 오후 5시 뉴스시간에 맞추려면 오늘은 ‘스탠딩 샷’을 찍을 시간이 없단다.

대신 말로만 설명해줬다. 위 사진처럼 카메라를 세워놓고, 배경화면을 잡은 뒤 그냥 카메라 앞에가서 할 말을 하고 확인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움직이면서 말할 때는 어떻게 찍느냐고 물었더니, 좌우로는 화면바깥으로 나가기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앞뒤로 움직이면서 말할 수 있다고 한다. 또 화면 바깥에서 화면 안으로 자연스럽게 걸어들어오면서 말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현장에 돌아다니는 동안 차량 운전은 누가 했을까? 당연히 마이크가 직접 했다.
혼자서 장시간 운전도 해야하니, 보통 바쁠 것 같지가 않다. 그렇다보니 점심도 대부분 운전하면서 집에서 싸 온 샌드위치로 때운다고 한다.

회사로 돌아온 뒤, 뉴스를 제작하는 과정은 거의 비슷했다.




위 사진에서 보이는 앉아있는 여성은 1편 글에서 소개한 Aysu(Assistant News Director)이다.

옆에서 지켜보니 기사 검열은 5분만에 끝났다. 여기서는 기사 검열을 할 때, 데스크가 기사를 한번 쭉 읽어본 뒤, 중요한 팩트가 잘못된 것은 없는지, 나중에 법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것은 없는지만 확인하고 대부분 곧바로 OK를 한다고 한다.
(**한국 언론사는 데스크 검열과정이 까다로와서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린다)

기사검열이 끝난 뒤엔, 오디오 부스로 가서 오디오를 녹음한 뒤, 뉴스용 화면을 직접 편집했다.



마이크와 동행해보니, 다른 ‘뉴스리포터’에 비해 ‘원 맨 밴드’의 경우, 업무 부담이 더 많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연봉은 어떨까? 궁금해서 물어보니 차이가 없다고 한다. 여기서도 자기가 일한 경력에 따라 회사와 시간제로 계약을 할 뿐, 업무부담이 많다고 해서 더 받는 것은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원 맨 밴드’를 ‘비디오 저널리스트’ 줄여서 ‘VJ’라고 한다.
물론 일부 방송사에서 ‘원 맨 밴드’를 도입한 적이 있다. 카메라기자가 취재기자처럼 취재도 하고 촬영도 하고, 편집도 하고, 뉴스 리포트도 하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활성화되지 못했다. 촬영만 해도 벅차는데, 거기에 취재까지하고 돌아와서 뉴스시간에 맞춰 편집까지 하려면 이만저만 힘든게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일이 많다보니, 취재가 부실해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VJ’들이 주로 뉴스가 아닌, ‘교양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곳 미국에서도 ‘원 맨 밴드’들의 경우, 사건.사고나 고발뉴스 보다는 주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기획뉴스를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WRAL에서도 뉴스리포터 20명 가운데 ‘원 맨 밴드’는 마이크 1명 뿐이었다.
앞서 글에 소개한 ‘댄’과 ‘아만다’에게 원 맨 밴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역시 방송기자로서 현장 취재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며 부정적 입장을 내보였다.

아무튼, 이른바 멀티미디어 시대, ‘1인 다역’을 해야하는 기자가 돼야만 하는 시대를 맞아 마이크와의 동행은 방송기자의 미래를 한번 더 생각케 하는 기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