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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관전평(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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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주 관심사중 하나는 환율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환율 움직임은 기사의 소재일 뿐 개인 관심사는 아니었는데, 이젠 환율은 나의 생존 문제다. 연수와보신 분은 알겠지만, 그야말로 구멍 뚫린 장독대에 물새듯 돈이 빠져나간다. 연수전 송금했던 상당금액의 돈은 이미 바닥이 난지 오래고, 두달전 채워놓은 계좌도 벌써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3차 송금을 해야 하는데, 환율이 불안해 걱정이다. 벌써 1년 연봉에 준하는 금액을 써버린 것 같다. 어차피 연수는 돈쓰러 온 것이라고 작정했지만, 이러다간 한국에 돌아갈 때 빈털터리 신세가 될까 두렵다.

이번에는 최근 워싱턴 정가를 달구고 있는 미 대선 얘기를 해볼까 한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도 요즘 한창 정치의 계절이다. 특히나 정치 행정 중심지인 워싱턴DC에 있다보니 매일 접하는 뉴스의 대부분이 내년 대선 관련 소식이다.

기자가 비지팅 등록을 한 존스홉킨스 SAIS(국제관계대학원)는 DC 중심부에 있는데, 근처 메트로역에서 내려 학교로 걸어가는 도중 18번가와 N스트리트가 만나는 지점에 National Restaurant Association이란 건물이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전국요식업협회쯤 되는데, 이곳을 지날 때마다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주자중 한명인 허먼 케인이 생각난다. 케인은 Godfather라는 피자 체인점 사장 출신의 유일한 흑인후보로 한창 주가를 날리다 성추문 의혹에 휩싸여 지난주말 결국 중도 하차했다. 문제의 성추문은 그가 National Restaurant Association 회장으로 있을 당시 벌어졌다는 것인데, 케인이 선거운동을 중단하자 건물에 걸려진 케인 지지 포스터도 어느날 감쪽같이 사라졌다.

케인이 탈락하고 7명이 남은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을 지켜보면, 후보들간 서로 헐뜯고 약점을 들춰내고 때로는 인신공격까지 불사하는 정치적 행태에선 한국과 그다지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케인을 몰락시킨 성추문도 경쟁자인 닉 페리 전 텍사스 주지사측에서 언론에 흘려 외부로 불거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와 달라보이는 것은 미국 정치는 확실히 이념(ideology)이 기본 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포퓰리즘만 있을 뿐 이념과는 무관한, 다시말해 진정한 보수, 진정한 진보가 없는 한국의 정당 정치하고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물론 반론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생각에는 보수와 진보간의 치열한 대결은 우리 정치에는 없다, 특히나 이념에 따라 노선의 차이가 확연한 경제문제와 관련,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접근 방식과 시각에서 본질적 차이를 느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미국 공화당 후보 경선 과정을 들여다보면 철저히 이념이 지배하고 있다. 현재 7명의 후보가 경쟁하고 있지만 누가 미국 보수주의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느냐에 따라 인기 판도가 달라지는 양상이다. 당초 줄곧 선두를 달리던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경우 보수주의자들로부터 끊임없는 사상 검증 과정에서 사실상 탈락했다는 게 이곳 정치분석 기사들의 주 논조다. 롬니의 경우 종교가 몰몬교로 미국 정통 보수 주류사회를 지배하는 와스프(WASF)들한테는 이단아처럼 비쳐진다는 점도 큰 단점으로 꼽히는 분위기다. 심지어 롬니가 민주당 색채가 강한 매사추세츠주 주지사 출신이라는 점도 보수파들한테는 마음에 걸리는 점이다.

이에 비해 최근 인기가 치솟는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 의원의 경우 여러차례 후보간 토론회 과정에서 그의 정치적인 노선과 경제 외교 복지 등에 대한 각종 이슈에 대한 일관되고 명확한 주장이 보수주의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으면서 롬니를 제치고 1위로 부상했다. 극우 보수주의자들인 워싱턴DC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깅그리치 인기는 압도적이다. 며칠전 워싱턴DC에 있는 공화당 유대인 연합(Republican Jewish Coalition)이란 단체가 대선후보 경선주자를 모두 불러 1명씩 청문회 형태로 소위 사상검증 절차를 거치는 토론회가 열렸는데, 깅그리치 후보 순서에서는 모두가 기립박수를 칠 정도로 호응이 높았다. 반면 롬니는 물론 닉 페리 전 텍사스주지사 순서에서는 호응도 낮고 오히려 공격적인 질문이 주로 나왔다. 내년 1월3일부터 아이오와주를 시작으로 본격 막이 오르는 공화당 코커스(Caucus, 전당대회에 내보낼 대의원을 뽑는 일종의 지구당 대회)에서도 깅그리치가 승기를 잡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미국 전역 50개주를 보더라도 보수와 진보의 구분히 확연히 나뉜다. SAIS 한 대학원생과 대선을 주제로 얘기하던 중 이 학생이 지난 2008년 대선 당시 공화당 맥케인 후보와 민주당 오바마 후보간 지지도를 나타내는 지도로 보여준 적이 있는데,공화당의 상징인 붉은 색은 미국 중부와 플로리다를 제외한 남부일대에 몰려있고, 서부와 동부 쪽은 온통 민주당 상징인 파란색이었다. 재밌는 점은 뉴욕과 워싱턴DC,샌프란시스코(캘리포니아) 등 부자들 도시의 경우 보수파인 공화당 지지도가 더 높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사실은 반대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 지역이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텃밭으로 자리잡아왔다고 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대학원생 분석으로는 미국의 중소 자본가들이나 엘리트들은 현상유지보다는 항상 변화를 선호하기 때문에 공화당보다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속성이 강하다고 한다. 반면 오히려 상대적으로 못사는 동네인 텍사스와 캔자스 아리조나 루이지애나 등 중부와 남부 지역이 전통적으로 고집스러운 공화당 정통 보수파들의 근거지라고 한다.

미국 정치가 이념에 의해 이뤄지는 대표적인 사례는 또 있다. 얼마전 미국의 천문학적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회에 구성된 슈퍼커미티가 두달여간 내부 논쟁을 벌이는 과정을 유심히 지켜봤는데, 공화당과 민주당간 노선차이가 너무나도 뚜렷했다. 다시 말해 재정적자 해결 방안에 대한 양당의 접근방식이 180도로 달랐는데, 공화당은 부자와 기업들에 대한 세금을 깎아주고 정부 지출을 줄이는 것이 일자리를 만들고 나아가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다는 시각인 반면, 민주당은 세금을 늘려야 하고 경제가 침체된 마당에 정부 지출마저 줄이면 오히려 실업도 늘고 경제가 나빠져 장기적으로 재정에 마이너스 효과를 낳는다는 입장이었다.

슈퍼커미티는 결국 아무런 결론을 못내고 실패로 돌아갔는데, 슈퍼커미티가 해체를 선언하기 전 날, 대표적인 케인지안으로 꼽히는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뉴욕타임즈 칼럼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은 세계관부터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애시당초부터 슈퍼커미티는 실패로 돌아갈 운명이었다”고 예견하기도 했다.

공화당 경선 과정을 보고 있으면 흥미로운 점이 또 있다. 선거자금 관련인데,한국과 다른 점은 누가(개인이든 기업이든) 얼마만큼의 선거자금을 어느 후보한테 냈는 지가 공개된다는 점이다. 얼마전 워싱턴포스트는 2면 정치기사에서 당시 공화당 후보 1위를 달리던 미트 롬니의 선거자금을 분석하면서, 누가 얼마를 기부했는지를 도표로 실은 적이 있다. SAIS 한미연구소장인 구재회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치도 비슷하겠지만 미국 정치야말로 철저히 ‘머니 폴리틱’이라고 한다. 다시말해 누가 선거자금을 더 많이 걷느냐에 따라 당락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선거기간 내내 후보자들의 최대 관심은 기부금을 많이 걷는 것인데, 기부금을 많이 낸 개인들의 경우 나중에 선거에 이긴 후 만찬에 별도로 초청받는 영광을 얻기도 한다고 한다.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는 깅그리치 전 하원의원도 선거자금 부족에 시달려 벌써 부채가 수백만달러에 달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때문에 공개적인 선거일정 외에 수시로 비공개 펀드레이징(fundraising) 행사를 연다. 며칠전에는 워싱턴 K스트리트에서 깅그리치를 지지하는 로비스트들 끼리 유명한 고급식당에서 모여 펀드레이징 행사를 열었는데, 만찬 가격이 1인당 1000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은 내년초부터 본격 막이 오르는데, 8-9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최종 후보자를 지명하기 전까지 상당히 흥미진진한 게임이 벌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