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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의 생활 속 자원봉사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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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t is not American way.”

Allen Tacker 미주리대학(MU) 정치학과 교수는 2018년 가을학기 Global Leadership Program의 ‘Politics in the news’ 수업시간 중 이렇게 말했다. 순간 교실에 정적이 흘렀다. 나의 얼굴도 부끄러움에 불거지는 것을 느꼈다. 수업을 함께 듣던 한국 학생들의 얼굴에서도 당황스런 모습이 스쳐갔다.

Allen Tacker 교수는 학생들이 스스로 수업시간에 토론할 기사를 찾고, 주제를 제안할 것을 요청했다. 한국 학생이 대부분이었던 이 수업에서 학생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선뜻 나서지 않았다. 그때 한 한국 학생이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진 사람이 과제를 맡자고 제안했다. 한국 학생들은 곧바로 모두 찬성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Allen Tacker 교수가 제동을 걸었다. 그는 운이 없는 누군가가 떠맡는 방식 보다 스스로 자원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원했다. 한참을 더 눈치를 보던 학생들 중 필자와 다른 한 학생이 자원해 과제를 맡았다.

이 경험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가위 바위 보’와 자원봉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철학이 크게 다르다. ‘가위 바위 보’는 그저 운이 없는 사람이 결과를 감당하는 부정적인 방식인 반면 지원하는 방식은 스스로 문제해결에 나서는 긍정적인 방법이다. ‘가위 바위 보’는 수동적이며, 자원봉사는 능동적이다. ‘가위 바위 보’는 동기부여가 쉽지 않지만, 자원봉사는 시작부터 동기가 부여된다. 비록 결과는 큰 차이가 없을지라도, 그것을 해내는 과정에 큰 차이가 있다. 미국인들의 자원봉사에 대한 관심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미주리주 콜럼비아의 초대형 스포츠공원 ‘KOSMO PARK’에서 어린이들이 축구게임을 하고 있다. 가을과 봄 매주 주말 열리는 주말 축구리그에는 적어도 수백명이 참여하며 코치, 심판, 경기진행요원 등은 모두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다. 이 덕분에 축구리그 참가비가 매우 저렴하다.

미국 미주리주 콜럼비아에서 3개월 동안 생활하면서 자원봉사자들을 자주 만났다. 필자의 자녀들이 다니는 ‘Paxton keeley elementary school’에서 열린 ‘Comet Festival’은 학부모들의 자원봉사로 진행됐다. 행사가 열리기 몇 주 전부터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했고, 행사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지난 9월부터 매주 주말 열렸던 ‘Sporting Columbia Club’ 주최 축구경기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코치, 경기를 진행하는 심판과 경기진행요원 등 모두가 자원봉사자들이다. 매주 주말 적어도 수백명이 참여해 한꺼번에 열리는 대규모 축구리그를 자원봉사자들의 헌신과 노력으로만 운영된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웠다. 라디오에서는 심심찮게 지역행사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광고와 아나운서의 멘트가 들려온다. 또 학생들과의 대화 중에 미국 소방관들의 60% 가량은 자원봉사자들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자원봉사는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힘이 분명하다. 미국 내 자원봉사 통계를 집계하는 내셔널&커뮤니티서비스에 따르면 지난 2015년 미국 인구의 25% 가량인 6,260만명이 70억.8,000만 동안 자원봉사를 했다. 자원봉사의 경제적 가치는 1,840억 달러에 달했다. 대한민국의 1년 예산이 400조 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 예산의 절반 정도가 미국 내 자원봉사의 경제적 가치인 셈이다. 자원봉사를 한 집단은 종교단체가 34%로 가장 많았고 교육기관(26%), 지역사회(14%) 순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의 연령은 다양했다. 10대부터 70대까지 고르게 10~15%를 차지했다. 필자가 사는 미주리주는 전체 거주자의 27.5%가 25.6시간 자원봉사를 해 50개 주 중에 25위에 올랐다. 미국 사회에서는 민간 자원봉사가 정부의 영역이 미치지 못하는 분야에서 한 몫을 맡고 있다.

미국인들은 왜 자원봉사에 헌신하는 것일까. 필자는 미국의 국가 설립과 유지 발전과 관련한 역사적, 종교적, 정치적 배경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초기 미국대륙 이민자들의 생활은 처참했다. 많은 이들이 굶어 죽었고 병들어 죽었다. 당시 미국 식민지 소유국이던 영국은 허술한 국방서비스만 제공했다. 그들은 스스로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만 거친 환경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미국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종교적 자유와 새로운 정치체계의 실험을 위해 이주해 온 개척자들이 세운 나라다. 1600년대부터 미국 대륙으로 넘어오기 시작한 유럽인들은 험난한 자연환경 속에서 굶어 죽기도 했고, 인디언들에게 살육 당하기도 했고, 동물들에게 잡아 먹히기도 했다. 또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사들인 이후 서부 지역으로 확장해 나갈 때는 민간인들이 금을 찾아 서부로 나아가면서 영토를 넓혀갔다. 국가의 설립 과정에서 정부보다 공동체가 먼저 있었고 공동체가 안전과 복지, 정체성과 귀속감 등을 주었다. 치안, 사법, 정치, 교육 등 현대 국가에서는 국가가 제공하는 대부분의 서비스들을 그들 공동체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농부가 농사만 지어서는 그 사회를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농부는 때로 경찰이 되어야 하기도 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도 되어야 했다. 연륜과 경험이 쌓여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면 그 지역의 판사로도 일을 해야 했다. 자연환경은 척박하고, 국가가 제공하는 인프라는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고 발전하려면 한 명이 다양한 일을 하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 개념이 현재는 자원봉사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미국인들에게는 이런 철학에 삶 속에 스며들어 있다. 미국인들에게 자원봉사를 왜 하냐고 물으면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일” 혹은 “시민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필자가 사는 듀플렉스 옆집의 60대 여성 줄리는 장애인들을 위한 스쿨버스를 운전한다. 그녀에게 자원봉사의 의미를 묻자 “할 수 있다면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MU에서 비지팅스칼라들의 영어능력을 높이기 위해 매칭해 준 미국 학생 Ryan Bolden은 “특별히 왜 해야 하는 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보고 배웠다”고 전했다. 미국 사회에서 자원봉사는 부모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관습 같은 것이며, 사회의 일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미국인들은 인식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화합과 자선 등을 중요시 여기는 기독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유럽에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 대륙으로 이주해 온 초기 정착자들은 ‘언덕 위의 도시’(the city up on a hill)을 건설하고자 했다. 언덕 위의 도시란 기독교의 박애주의와 자선정신을 현실에서 실현해 모든 이들의 모범이 되는 도시를 말한다. 미국 대륙에 기독교적인 이상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목표였던 것이다. 청교도 이민자들이 공동체를 위해 만든 ‘선상규약’, ‘기독교인의 자선모델’, 그리고 ‘마을회의’는 프론티어에서 프론티어로 19세기말까지 미국의 방방곡곡으로 전파되어 왔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클린도 “자원봉사는 신으로부터 받은 빚을 갚은 행위이다”라며 가난한 사람이 없는 사회를 꿈꾸며 그 실현을 위한 활동을 했다.

콜롬비아의 한국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은 매주 식사 봉사를 한다. 아울러 이곳에 머물고 있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비지팅스칼라들은 현지 교민 등을 위한 무료 한국어 수업, 진로교육, 음악교육 등을 제공한다.

기독교적 공동체는 이질적 사람들로 구성되었으면서도, 서로에게 위협적이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풍요로움을 제공해 주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실제로 콜럼비아에서도 여러 교회들이 교육, 자선바자 등 다양한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한다. 할로윈을 비롯한 각종 축제기간에 미국인들은 교회로 놀러 간다. 한가로운 농촌지역의 주민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축제와 음식 등을 제공한다. 한국 교회들에서도 교인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한인 청소년들에게 한국어, 악기, 논술 등 다양한 교육을 제공한다. 연수를 나와있는 비지팅스칼라들의 직업이 교수, 교사, 공무원 등 비교적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인 만큼 이곳 한인들 사이에서는 “청소년 수준에서는 듣기 힘든 최고 수준의 강의”라고 말하기도 한다. 지난 1년간 매주 한국 학생들을 가르쳤던 한 교육학 박사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행복했다. 이곳 미국에서 이런 봉사를 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했다. Ryan Bolden 역시 “미국 사회에서 종교단체가 자원봉사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라며 “자신이 주로 다니는 교회를 비롯한 종교단체가 자원봉사를 배우고 실현하는 첫 장소가 된다”고 말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61년 8월28일 자원봉사단체인 ‘평화봉사단’ 단원들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은 재임기간 중 자원봉사와 관련한 다양한 법안을 통과시키고 자금을 지원해왔다.

미국 사회의 자원봉사가 활성화된 또 다른 이유는 위기 때 마다 빛을 발한 성숙한 민주주의 정신이다. 미국은 독립전쟁, 남북전쟁, 세계대전, 경제대공황 등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자신들이 만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나선 국민들이 정부의 역할을 대신해왔다. 보이스카웃, 적십자를 비롯한 다양한 민간 단체들이 복지정책이 미치지 못하는 빈곤자들을 도왔다. 정부가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펴기 힘든 시기에는 국민이 직접 나서 빈곤층을 도왔던 것이다. 특히 이 같은 전통은 개인의 자유를 위해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 하고자 하는 미국인들의 성향이 기반이 됐다. 정부에 모든 것을 기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 스스로가 나서 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함으로써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GLP 코스에서 ‘Intro to American life’ 수업을 맡았던 Ammanda는 미국 법원에서 배심원으로 약 일주일 간 참여했던 경험을 전해줬다.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재판에 참여하고, 배심원들끼리 치열한 토론을 벌여 유무죄를 판단하는 일이지만 하루 일당은 21달러에 불과했다. 미국은 무작위로 배심원을 선정해 참여할 수 있는지를 묻고, 참여하겠다고 결정한 사람들만 배심원으로 배정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배심원 요청이 들어왔을 때 흔쾌히 받아들인 이유를 “시민의 의무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녀는 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배심원으로 참여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지만 나는 꼭 참여하고 싶었다”며 “앞으로 또 다시 배심원을 해야 할 기회가 생긴다면 다시 참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인들은 이처럼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자원봉사에 나서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존경한다.지난달에 열렸던 ‘미주리대학 20주년 기념 퍼레이드’가 단편적인 사례다.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던 거리 퍼레이드의 맨 앞줄은 학생군인들인 ROTC가 차지했다. 길거리에 도열해 퍼레이드를 즐기는 주민들은 ROTC 학생들이 지나가자 모두 박수를 보냈다. 이날 2시간 동안 이어진 퍼레이드 전체를 통틀어 구경꾼들이 존경을 담아 박수를 보낸 행렬은 이들이 유일했다. Ryan Bolden은 “미국인들은 과거 1,2차 세계대전을 비롯해 전장에 군인으로 복무하는 것도 자원봉사의 한 형태라고 생각한다”며 “적은 돈을 받으면서 국가를 지키는 위험한 일을 하는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들을 존경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기업들 역시 직원을 채용할 때 인턴경력도 중요하지만 자원봉사 경력을 중요한 기준으로 적용한다. 미국에서는 기업에 이력서를 제출할 때 자원봉사 활동은 필수다. 미국 정부 역시 다양한 자원봉사 기구를 조직하고,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교육현장도 자원봉사 정신을 갖춘 시민을 길러내는 데 동참한다. 대부분의 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려면 일정 시간의 자원봉사를 해야 하고, 좋은 대학에 진학하려면 의미있는 자원봉사 경력은 필수다.

한국은 미국과 역사적, 종교적, 정치적 배경이 다르다. 5,000년의 역사를 통해 조직된 국가가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존재해왔다. 왕, 귀족, 노비가 있었고 사회적으로 직업의 귀천이 있었다. 형식적으로나마 이런 차별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불과 100년도 되지 않는다. 한국사회의 종교문화 역시 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이 비슷한 비율로 섞여 있어 하나의 종교 아래 힘을 모으기도 어렵다. 아울러 국민들의 성숙한 민주주의는 1980년대 후반에서야 시작됐으며 최근에야 본격적으로 발화하고 있다. 실질적인 민주주의 경험은 고작 40년에 불과해 성숙한 민주시민의식을 국민들에게 기대하기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평창동계올림픽 자원봉사단 출범식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성공적인 대회개최를 기원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는 미국과는 다른 방식의 자원봉사가 역사적으로 존재했다. 농경사회의 고된 노동을 함께 나누는 두레, 품앗이 같은 형태의 공동노동작업이다. 종교적 규범은 아니지만 ‘정’이라는 선한 마음이 오랜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한 지역공동체 문화의 동력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최근 대통령 탄핵을 거치면서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크게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점들은 한국의 자원봉사의 미래를 밝게 한다. 실제 올해 한국에서 열렸던 ‘평창동계올림픽’에는 1만7,0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했다. 외신들도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의 비결로 자원봉사자들을 꼽았을 정도다. 특히 젊은 청년인 20대가 전체 자원봉사자의 80%가 넘었다는 점은 미래를 더욱 밝게 한다.

자원봉사는 그 사회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과정이며, 봉사를 통한 행복을 알게 해주는 선물이다. 세계적인 자원봉사 선진국인 미국에서의 미국인들의 생활화된 자원봉사를 경험하며 이런 점을 더욱 절감하고 있다.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한국에서도 자원봉사정신이 꽃피길 기대한다. 다만 민간이 중심이 된 자원봉사 조직을 만들기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는 만큼, 미국처럼 정부가 적극적으로 자금과 조직을 지원하는 방식의 자원봉사단체 조직을 고려해야 한다. 정치적 개입 원천금지는 당연히 필수다. 정치 색깔을 내는 순간 그 단체는 ‘자원’이 아니며 영속할 수 없다.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 교수는 “21세기에는 자원봉사가 가장 중요한 인류의 미래 활동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중요한 인류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