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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의료보험과 한국의 여행자보험이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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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정권의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의료보험 개혁을 보면서 한국의 의료보험제도가 얼마나 보편적이고, 공익적인지 새삼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특히 미국의 의료보험 개혁이 중산층에 증세 논란을 야기하며 미국 내 인종 편견으로 불똥이 튀는 것을 보면 한국의 의료보험제도가 ‘복지 히트상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는 미국인들도 인정하고 부러워하더군요. 조지아대 영어 강사인 한 백인은 한국의 의료보험제도를 롤 모델로 보더군요. 물론 이 강사는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하는 열혈 팬인 데다 한국에 관심이 많은 분입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동네병원에 가면 진료비로 10~20달러 안팎의 돈을 낸다는 것까지 알더군요. 그러면서 자신은 보험료로 목돈을 낼 뿐 아니라 병원에 갈 때마다 진료비의 일정액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큰 돈을 내는 의료보험도 자신의 진료비 전액을 커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분은 팍팍해진 살림살이의 한 요인으로 의료보험료를 꼽았습니다. 4인 가족이 월 2000달러(치과 보험 포함)에 가까운 돈을 지불하니 생활비가 빠듯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물론 보험료를 더 낮출 수 있지만 의료 커버리지가 좋지 않아 큰 병이라도 생기면 답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중산층은 요즘 자신 스스로를 ‘할부 인생’이라고 합니다. 정부 보조와 세금 환급을 받을 수 있는 연간소득 5만 달러 미만의 저소득층 가구와 달리 연간소득 5만~10만 달러의 중산층은 의료보험료를 비롯해 차 할부금, 주택 모기지, 정부 세금까지 다 내면 그야말로 빈 손만 남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내에서 가장 고통을 받고 있는 계층이며, 저소득층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기의 가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백인 중산층 가운데 일부는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보험 개혁을 마뜩찮아 합니다. 이 같은 개혁의 혜택이 일하지 않는 흑인들에게 대부분 돌아가고, 자신들은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걱정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연수자들은 미국 입국을 위해 반드시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하는데요. 대부분 1인당 60만~70만원대의 1년짜리 여행자보험에 가입합니다.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사망사고 보험금 최저 한도액인 5만 달러를 충족시키는 상품인데요. 그래도 미국인들 입장에서 보면 값싸면서 의료 커버리지가 큰 꿈의 보험 상품으로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장기간 미국에 거주하며 미국보험에 가입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람들은 1년 연수자의 여행자 보험을 정말 부러워합니다. 이 정도 가격의 여행자 보험 상품은 5만 달러 한도 내에서 본인 부담액 없이 진료비 전액을 보험사가 책임집니다. 그리고 연수자 대부분은 미국 내에서 보험 처리를 원해 국내 보험사보다 미국계 보험사를 선호합니다.

그럼 미국의 의료시스템과 그 좋다던 한국의 여행자보험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저만의 경험이어서 일반화시킬 수 없지만 보험사가 가입 전 고객에게 말했던 호언장담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보험금 받을 때와 진료비 내줄 때가 다르다는 진리는 어느 나라든 같다는 생각입니다. 병원의 진료비 청구에 보험사는 황당한 이유로 지급을 거부하고, 그 병원은 다시 환자 본인에게 진료비를 청구하는 ‘핑퐁 게임’이 진행됐었습니다. 나중엔 아프더라도 병원에 가지 않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심지어 보험사가 일부러 지급을 거부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마저 들더군요. 왜냐하면 보험사가 고객의 진료비를 쉽게 내주면 병원을 찾는 횟수가 늘고, 이는 보험사의 수익 구조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지급 승인을 까다롭게 하면 할수록 고객이 알아서 지칠 것이라는 추측이 들었습니다.

진료 병원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보험사가 지급을 거부하자 환자에게 진료비를 청구했는데, 환자 본인이 내면 진료비의 90%를 할인해 주겠다고 하더군요. 예컨대 보험사에 진료비 1000달러를 청구했다면 환자에게는 100달러만 받고 나머지를 깎아주겠다는 것입니다. 병원이 보험사를 ‘봉’으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미국의 의료시스템 전반이 이런 것인지 참으로 애매했습니다. 모든 연수자 가족이 연수 기간 동안 병원을 가까이 할 일이 없어야겠지만 혹시라도 병원에 간다면 이런 불편함이 있다는 것을 한번쯤 생각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