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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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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자동차가 발이다. 차 없이는 생활이 안된다. 땅이 넓다 보니 한국처럼 오밀조밀하게 관공서나 건물들이 밀집해 있어서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채플힐에서 듀크대까지가 15마일(25km) 정도다. 미국에선 이 정도면 운전이라고도 볼 수 없는 짧은 거리다. 대신 내가 살고 있는 채플힐에선 교통 체증이 거의 없어 여유롭게 달릴 수는 있다. 넓게 퍼진 공간을 시간으로 메꾸는 교통 문화다.

교통 체증에 대해서 기억에서 지우고 있다가 지난 11월 추수감사절 연휴 때 플로리다에 있는 올란도 디즈니월드를 다녀오면서 정통으로 교통 체증을 경험했다. 올란도에서 채플힐까지 자동차로 꼬박 하루가 걸린다. 600마일(960km)이 넘는 거리라 차로 10시간에서 11시간을 내리 달려야 한다.

추수감사절 연휴 마지막날 새벽부터 짐을 챙겨 올란도에서 올라오는데 중간에 세차례나 교통 정체를 겪었다. 첫 정체는 도로 확장 공사 구간을 만나 차선이 줄면서 생긴 것이라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었다. 평소에는 그리 막히지 않는 구간이었는데 연휴 기간 차량 운행이 늘면서 불가피하게 생긴 정체로 보였다. 그러나 플로리다주를 빠져 나와 조지아주를 지나 사우스캐롤라이나주로 들어설 무렵 신나게 달리던 차들이 갑자기 줄지어 멈춰 섰다.

그렇게 2시간 가까이를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마침내 이유를 알았다. 한참을 가다 보니 경광등을 번쩍거리는 경찰차들과 경찰들이 늘어서 있고 자동차 한대가 도로 진행 방향의 역방향으로 멈춰 서 있는게 아닌가. 앞 유리는 완전히 깨져 있어 유리 파편과 플라스틱 조각들이 도로에 흩뜨려져 있었고 운전석도 짓눌려 있었다. 머리 속에서 더는 상상을 진행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었다. 교통사고 지점을 지난 뒤엔 다음날 나도, 애도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 액셀레이터를 밟으며 올라오는데 노스캐롤라이나에 들어서니 다시 정체다. 이번엔 아예 임시 전광판이 도로 옆에 세워져 있었다. ‘전방에 사고가 났으니 차를 멈출 준비를 하라’는 안내문이 쓰여 있었다. 그렇게 또 1시간 넘게 도로에서 허비하다 결국 집에는 밤이 늦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날 듀크대 강의에 들어갔더니 교수가 연휴 기간 중 도로(주와 주를 연결하는 우리의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갑자기 자신이 몰던 혼다 밴이 퍼져 버려 긴급 출동 서비스를 부른 뒤 도로에서 몇시간을 기다리다가 결국 친구의 차를 빌려야 했다는 얘기를 들려 줬다.

연수를 오실 분들은 이런 점을 감안해서 장기 주행 때는, 특히 미국인들이 대거 이동한다는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연휴 때에는 교통 정체나 교통 사고와 같은 예상치 못한 변수도 염두에 둬서 저처럼 당황하지 않는게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미국에선 뉴욕 같은 대도시를 제외하면 교통 정체를 경험하기 힘들다. 적어도 내가 사는 시골 소도시에선 그렇다. 하지만 정체가 일단 생기면 생활에 차질을 빚는다. 보통 매일같이 최소 수십 마일을 달려야 하고, 자동차를 대신할 교통수단이 없는데 예상치 못한 교통 정체가 자주 발생한다면 하루 하루 일정 잡기가 여간 어려울 것이다. 내가 사는 채플힐에는 버스도 있지만 서울의 버스를 생각했다간 오산이다. 배차 간격이 아침 저녁 출퇴근 시간대에나 15분 안팎이고, 보통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을 기다려야 하니 속도전에 숙달된 한국인들에게 버스는 인내심을 시험하는 곳이다. 흔치는 않지만 배차 간격을 빼먹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 와 보니 대한민국의 버스는 대중교통 수단으로 제 몫을 잘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게다가 한국에서 온 이방인이니 골목 지리에 낯 설어 샛길로 빠지는 수를 내 정체 구간을 피할 방법도 없다.

글을 쓰면서 인터넷으로 한국 도로교통공단 자료를 뒤져보니 미국을 무조건 ‘교통 문화 선진국’으로 간주할 것은 아닌 듯 싶다. 2006년 현재 인구 10만명당 교통사고 사망자가 미국이 14.3명으로 다른 OECD 선진국들에 비해 상당히 높다. OECD 평균이 5.3명이다. ‘교통 문화 후진국’인 우리나라(10.7명)보다 더 높다. 반면 자동차 1만명당 사망자 수로 보면 미국이 1.7명으로 한국의 3.2명에 비해선 낮다. 종합해서 해석하면 땅이 워낙 넓어 좁은 국토에 자동차가 가득 찬 한국에서처럼 차가 서로 충돌할 확률은 낮지만, 거꾸로 장거리를 고속으로 달릴 일이 많아 사고가 한 번 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가능성이 높은 때문 아니겠냐는 생각이 든다.

사족을 덧붙이면 차가 곧 생활인 미국에선 교통 법규 준수도 엄격하다. 통행이 뜸한 한적한 사거리에서도 차들이 정확하게 신호를 지켜 정차하고 출발한다. 채플힐에 사는 동안 지금까지 한번도 교통 신호를 어기는 차량을 본 적이 없다.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미국에선 신호 위반은 그 자리에서 연행된다는 얘기도 어디에선가 들었다. 신호를 어기며 얻는 시간 단축의 효과에 비해 신호 위반으로 걸려 물어야 하는 위험 비용이 너무 크다는 얘기다. 어쨌든 ‘잠복 근무 경찰차’는 수없이 마주 쳤다. 일반 승용차인데 갑자기 차량 내부에 숨겨져 있는 경광등을 번쩍거리며 튀어 나오는 ‘사복 차량’이 도로 곳곳에 숨어 있다.

특히 과속은 미국 교통 문화에 익숙치 않은 분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이다. 미국의 도로에는 한국에서처럼 무인 속도 카메라가 설치돼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긴장을 풀고 속도계에서 눈을 떼고 기분을 내서 달리다 보면 갑자기 번쩍거리는 사복 차량의 ‘안내’를 받아야 하는 일을 겪을 수 있다.

두 달 전 집에서 30마일 가량 떨어진 한국 마켓으로 달리다가 갑자기 한 승용차가 내가 모는 자동차 앞으로 불쑥 끼어든 일이 있었다. 내 차와 앞 차의 간격이 그리 넓지도 않았는데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더구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좌우의 백미러나 후시경에는 보이지 않았던 자동차였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느닷없이 끼어들어 깜짝 놀랐다. 더욱 놀란 것은 다음이었다. 끼어든 차량이 갑자기 경광등을 요란스럽게 울리며 번쩍거리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상황 파악을 위해 머리 속이 바쁘게 돌아가는 사이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됐다. 이 사복 차량 앞에 있던 승용차가 조용히 속도를 줄이며 오른쪽 깜박이를 킨 채 갓길로 이동하고 그 뒤를 사복 차량이 바짝 쫓아 가는 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휴 하고 한 숨을 내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