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보기

미국에서 중고차 팔기

by



얼마 전 저는 1년 가까이 타고 다니던 중고차를 팔았습니다. 처음엔 한국인에게 파는 게 여러모로 편리할 것 같아 한인 연수생들이 주축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려봤는데 생각보다 연락이 별로 오지 않았습니다. 제 차는 2005년식 일본산 중형 세단으로 미국에서 매우 인기가 높은 차종인데, 제 생각엔 차가 연식이 오래됐고 연식에 비해선 사양이 최고급이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좀 비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저에게 차를 팔았던 딜러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딜러는 차를 한국인에게만 팔 생각을 하지 말고 현지인에게 팔아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에선 중고차를 개인끼리 거래하는 일이 흔하기 때문에 온라인 벼룩시장인 크레이그리스트(craigslist)에 올리면 아마 차를 사겠다는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쇄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엔 조금 망설였습니다. ‘자동차에 문외한인 내가 과연 미국인들을 상대로 차를 잘 팔 수 있을까’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귀국 전에 차를 처분해야 했기에 크레이그리스트에 제 차를 매물로 올렸습니다. 딜러의 말대로 매물을 올리자마자 연락이 쇄도했습니다. 약 50여명으로부터 전화 혹은 이메일로 연락이 왔고 이 가운데 7명을 실제로 만나 차를 보여줬으며, 결국 2주일 만에 차를 팔았습니다. 2주일 간 겪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몇 가지 포인트를 정리해 봤습니다.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크레이그리스트에 중고차를 매물로 올리면 구매 희망자들로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업자’로 추정되는 사람들로부터 전화가 많이 오는데 이런 사람들은 가급적 상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차량 사양에 대해 많은 질문을 쏟아붓고 전화를 끊은 뒤 나중에 문자메세지로 터무니 없이 낮은 가격을 제시한다면 ‘업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상대방이 진지한 구매 의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만날 약속을 잡습니다. 이 때 약속 장소는 가급적 자신의 집으로 정하지 말고 제3의 장소를 택하는 게 좋습니다. (크레이그리스트를 통한 거래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구매 희망자를 만나면 대부분 차량의 외관 등을 살핀 뒤 시운전을 원할 것입니다. 시운전을 하게 하되, 반드시 조수석에 동석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야 합니다. 구매 희망자가 시운전을 마친 뒤 차가 마음에 들면 가격 얘기를 꺼낼 것입니다. 이때 서로 간에 생각하는 가격에 큰 차이가 없으면 상대방은 정비소에 함께 가서 차량 검사(inspection)를 받아보자고 할 것입니다. 이 경우 검사 비용은 대략 20~30 달러 정도 나오는데 구매 희망자가 부담하도록 돼 있습니다. 만약 검사 결과 차량에 하자가 발견될 경우 구매 희망자는 구매를 아예 포기하거나 수리 비용 등을 감안해 가격을 더 깎아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차량 검사를 마치고 가격 협상까지 타결되면 남은 거래 절차는 간단합니다. 상대방으로부터 수표 혹은 현금을 받은 뒤 차량과 함께 차량등록증을 넘겨주면 됩니다. 수표를 받는 경우 주의할 점은 반드시 개인 수표가 아니라 ‘지불 보증 수표'(Certified check)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불 보증 수표’는 은행이 직접 지불을 보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지만 개인 수표는 상대방의 계좌 잔고가 부족할 경우 은행측으로부터 지급 거절을 당할 수 있습니다. 만약 상대방이 미처 ‘지불 보증 수표’를 준비하지 못했다고 하면 함께 은행을 방문해 ‘지불 보증 수표’를 받아야 합니다.


<'Bottom Price'를 정하라>

저의 경우 크레이그리스트에 차를 매물로 올릴 때 가격을 어느 정도로 해야 할 지 고민이 됐습니다. 그래서 처음 조언을 구했던 딜러에게 물어봤더니 매물을 올릴 때 제시하는 가격은 큰 의미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가격에서 최소한 1천 달러에서 2천 달러 정도 깎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음 속으로 정한 가격에서 1천 달러 정도 높게 올리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매물을 올리고 보니 그 딜러의 말이 맞았습니다. 차를 구매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애초에 제가 그 차를 얼마에 올렸는지에 대해선 거의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신 그들이 관심을 갖는 건 판매자인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가격의 하한선, 바로 최저가(bottom price)였습니다.

저에게 처음으로 전화 연락을 해온 사람도 차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대뜸 가격 하한선(bottom price)이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저는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음 속으로 ‘대략 이 정도 금액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적정 가격을 생각했을 뿐, 제가 받아 들일 수 있는 가격의 하한선은 설정해 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 예산이 어느 정도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금액은 얘기하지 않고 계속 가격 하한선을 물었습니다. 그래서 하한선이 아닌 제가 원하는 적정 가격을 말했더니 알았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제가 수십 명의 미국인과 전화 혹은 문자메세지, 이메일 등으로 협상을 진행해본 결과, ‘업자’가 아닌 한 구매를 희망하는 쪽에서 가격을 제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판매자에게 구매 희망 가격을 제시하는 대신 가격 하한선(bottom price)이 얼마야? 그거 들어보고 살지 말지 결정할게하는 식이었습니다. 따라서 차를 매물로 올리기 전에 미리 마음 속으로 하한선을 정해 놓는 게 좋습니다. 물론 하한선을 정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하한선을 너무 낮게 정할 필요는 없고 내가 제시한 가격에 구매 희망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 지에 따라 하한선을 조금씩 조정하는 게 좋습니다.


<'일관된 관리'가 중요하다>

구매 희망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당신이 몇 번째 차주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차주가 자주 바뀌는 차량을 꺼리기 때문입니다. 차주가 자주 바뀐다는 것은 일단 차량 자체에 어떤 결함이 있을 가능성도 있고 설령 결함이 없더라도 여러 사람의 손길을 거치면서 이른바 ‘일관된 관리’를 받지 못했을 거라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제가 세 번째 차주였는데, 10년 간 차주가 많이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구매 희망자들은 비교적 높은 점수를 줬던 것 같습니다.

구매 희망자들이 자주 하는 또 한 가지 질문은 정비 이력을 모두 보관하고 있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경우 차량 운행 중 특별한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엔진오일 두 차례 교환한 게 정비 이력의 전부였는데, 엔진오일 교환 영수증을 모두 보관해 둔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런데 구매 희망자들을 만났을 때 그들이 정비 이력을 보여달라고 해서 막상 영수증을 보여주면 대부분 그 내용은 제대로 들여다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차량으 ㅣ상세한 관리 내역을 알고 싶어 한다기보다는 ‘차주가 차량을 얼마나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는가’하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팔릴 때까지 팔린 게 아니다>

한 번은 구매 희망자와 전화로 시간 약속을 잡은 뒤 약속 장소에 나갔습니다. 구매 희망자는 젊은 여성이었고 남자 친구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남자 친구가 차를 여기저기 살펴보더니 시운전을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남자친구가 운전대를 잡았고 저는 조수석에 타고 그 여성은 뒷좌석에 앉았습니다. 시운전을 하는 내내 두 사람은 Nice, Very good을 연발하며 차의 성능과 승차감에 만족감을 표시했습니다. 시운전을 마친 뒤 두 사람은 차가 아주 마음에 든다. 이틀 뒤 정비소에 함께 가서 차량 검사를 해보자며 그날 검사에서 특별한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면 곧바로 차를 사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간 약속을 잡은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뒤로도 차를 사겠다는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이어졌지만 일단 더 이상 약속을 잡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틀 뒤 그 여성으로부터 약속을 취소해야겠다는 문자메세지가 왔습니다. 다른 차를 사기로 했다는 겁니다. 순간 배신감이 들었습니다. 나는 다른 약속도 잡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사이 그 여성은 다른 차를 보러 다녔던 것이었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일찍 한 남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차를 보고 싶다고 하기에 언제 보겠냐고 했더니 지금 당장 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약속을 잡고 30분 뒤 만났습니다. 그 남성은 차를 한 번 몰아보더니 마음에 든다며 가격을 물었습니다. 가격을 얘기했더니 깎을 생각도 하지 않고 흔쾌히 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요일이라 은행에서 돈을 찾을 수 없으니 내일 아침 은행 앞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갑을 뒤적이더니 지금 갖고 있는 돈이 40달러 밖에 없는데 이거라도 일단 줄 테니 계약금이라고 생각하고 내일 아침까지만 다른 사람에게 팔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40달러를 받고 다음 날 아침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그 남성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자신의 아내가 차 색깔이 검정색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사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중고차를 판매하면서 느낀 점 가운데 하나는 상대방으로부터 돈을 받고 차량등록증을 넘기기 전까지는 절대로 방심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중고차를 사려는 사람들도 많지만 중고차를 판매하려고 매물을 내놓는 사람 역시 많기 떄문에, 구매 희망자들은 언제든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매물을 언제 올릴 것인가?>

크레이그리스트를 통해 중고차를 판매하는 것의 가장 큰 단점은 차가 언제 팔릴 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매물을 올린 지 하루 만에 팔릴 수도 있고 한 달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너무 일찍 팔려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출국 한 달 전에 차를 매물로 올렸는데 곧바로 차가 팔리면 한 달 가량 렌트카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매물을 올리기 전에 기회비용 등을 잘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엔 판매 시한을 정해 두고 시한 3주 전에 매물을 올렸고 결국 시한 1주일을 앞두고 차를 팔았습니다.

만약 마음 속으로 정한 판매 시한까지 차를 팔지 못했다면 중고차 매매업체인 카맥스(Carmax)를 찾아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카맥스에 중고차를 가져 가면 간단한 검사를 거쳐 무료 견적을 내줍니다. 예를 들어 견적 가격이 1만 달러라고 하면, 7일 이내에 카맥스로 찾아 오면 그 차를 1만 달러에 매입하겠다는 뜻입니다. 또 카맥스가 발급한 견적서는 신뢰도가 높기 떄문에 이 견적서를 들고 자동차 딜러 매장을 찾아가면 카맥스 견적가보다 약간 더 높은 가격에 팔 수도 있다고 합니다.

크레이그리스트를 통해 중고차를 판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낯선 사람, 그것도 낯선 외국인을 상대로 흥정을 해야 하고,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었고 이 경험을 통해 미국 생활의 또 다른 일면을 엿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