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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겪은 황당한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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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든 싫든 미국은 세계를 주무르는 수퍼 파워다. 그런 나라는 뭐가 달라도 다를 것이다. 연수를 떠나기전 초강대국 미국에 대한 선입견은 이런 것이었다. 그러나 1년을 살아보니 이는 지나친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미국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있을 합리적 사고와 시스템들에 대한 과신이었다. 합리적 시스템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실생활에서 그런 믿음에 부응하지 못하는 허점들도 적잖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진정한 만만디의 나라

‘만만디’하면 중국이다. 하지만 미국이야말로 진정한 만만디의 나라가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 하루, 늦어도 2~3일이면 될 것 같은 일들이 미국에서는 1~2주, 길게는 한두달 걸린다.

지난 봄 아내가 넘어지면서 무릎에 타박상을 입어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여느 한국 병원의 응급실과 달리 한산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도 진료 대기 시간은 꽤나 길었다. 세 시간 여에 걸쳐 한 일이라곤 엑스레이 한번 찍고 의사 얼굴 잠깐 본 게 전부다. 별도 처방도 없었다. 의사는 심하지 않은 타박상이니 며칠간 무릎 사용에 조심하면 괜찮을 것이라는 말만하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두 달쯤 지났을까. 언제 병원에 갔었는지도 가물가물해질 즈음 병원에서 진료비 청구서가 날아왔다. 500달러를 훌쩍 넘었다. 엑스레이 한번 찍고 의사 면담 잠깐 한 것 치고는 엄청났다.

전화를 걸어 진료 당시 보험증서를 제출했으니 보험사에 청구하라고 말했다. “알았다”는 답변이었으나 다시 보름 뒤 청구서가 다시 날아왔다. 이에 뉴욕에 있는 보험사 사무실 전화번호와 이메일 어드레스까지 친절히 알려줬으나 허사였다. 역시 보름 뒤 다시 청구서가 날아왔다. 더 이상 답답함을 견디지 못해 보험사에 문의하니 해당 병원에서 청구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보험사측에 “먼저 병원에 연락해 진료비를 결제해줄 수 없느냐”고 문의했다. 바로 다음날 보험사의 한국인 직원에게서 “어제 수표를 보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로써 진료비 결제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보험사에서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줄다리기가 계속되지 않았을까 싶다.

-직업 현장의 아마추어리즘.

늦더라도 정확하다면 나쁠 것은 없다. 문제는 가끔 더디면서도 정확하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미국에 오자마자 한 일중 하나는 골프장 회원권을 끊는 일이었다. 시가 운영하는 퍼블릭 골프장 1년 회원권이 3인 가족 기준 790달러에 불과하니 한국과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쌌다. 내친 김에 전동 카트 패밀리 회원권(1000달러)도 끊었다. 하지만 이는 굳이 필요할 것 같지 않아 며칠 뒤 취소하고 개인 카트 회원권(600달러)으로 바꿨다.

당연히 1000달러는 환불이 됐을 줄 알았다. 한국에서 사용하던 신용카드로 결제한 탓에 대금 결제 확인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그렇게 거의 일년을 보냈다. 그런데 얼마전 골프장 체크인을 하면서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클럽하우스 데스크탑 컴퓨터를 우연히 보니 내 계좌에 ‘패밀리 카트 패스’가 그대로 기록돼 있지 않은가. 그럼 600달러만 받고 패밀리 회원권을 끊어줬다는 것인가.

허나 실상은 반대였다. 신용카드 대금 결제 내역을 확인해보니 골프장측은 1000달러와 600달러를 모두 청구해 빼갔다. 패밀리 카트 회원권을 취소하지 않은 채 개인 카트 회원권을 다시 발급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한국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 아닐까 싶다.

한국 신용카드 회사로부터 지난 1년치 영문 청구 기록을 이메일로 받아 퍼블릭 골프장 운영을 책임진 시 해당부서를 찾아갔다. 책임자는 “아임 소리”를 연발했다. 이렇게 1000달러를 돌려받기는 했으나 이를 돌려받는데도 3주일이 걸렸다.

이밖에도 유사 사례는 많다. 1년 이상 미국에 머물면서 심심찮게 만나게 되는 만만디와 아마추어리즘. 성질 급한 한국 사람을 견디기 힘들게 하는 미국 사회의 이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