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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김은선 오페라 감독 만난 뒷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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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김은선 오페라 감독 만난 뒷 얘기

해외에 거주하다 보면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또는 현지 한인들의 활동을 한국에 좀 더 자세히 소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이제 그들의 꿈을 한국 내에서만 가둘게 아니라 세계 무대로 향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많은 한국인과 한인들이 세계 정상의 무대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만나게 된 지휘자 김은선씨도 그런 ‘롤모델’ 중 한 명입니다. 1980년 생인 김은선씨는 연대에서 학사, 석사를 하고 현재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 입니다.

다음은 제가 김 감독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데뷔 무대에 갔다 와서 흥에 겨워 쓴 글입니다. 시간이 꽤 지난 후에 다시 읽어보니 한껏 오른 감흥에 얼굴이 붉어집니다마는 그래도 그날 김은선 감독을 발견(?)한 기쁨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지난 11월 9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린 오페라 ‘라보엠’ 공연.

이날은 김은선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이 세계 최고 수준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지휘자로 데뷔한 날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의 첫 여성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그를 ‘오페라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라보엠’ 공연 안내책자(Playbill)도 김 감독을 남성중심의 ‘지휘자’ 세계에서 유리천장을 깨고 있는 여성 지휘자라고 소개했다. .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코로나로 1년 6개월 이상 공연이 중단되었던 터라 관객들의 기대는 더욱 컸다. 많은 뉴요커들이 김 감독의 데뷔 무대를 숨죽이며 지켜봤다.

김은선의 지휘와 아리아의 영어 자막을 번갈아 보느라 정작 공연은 놓치고 있는 사이 푸치니의 오페라는 절정을 지나 결말로 치닫고 있었다. 죽음을 앞둔 여주인공 ‘미미’는 연인 ‘로돌포’의 품에 안겨 마지막 숨을 고르며 과거를 회상한다.

“사람들은 나를 미미라고 불러요. 왜 그렇게 부르는 지는 모르겠어요. 내 이름은 루치아인데요.”

폭풍처럼 휘몰아쳤던 김은선의 움직임도 애잔함으로 바뀐다.

죽음의 순간에서 행복했던 과거를 떠올리는 미미의 아리아에선 달콤함이 묻어난다.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겨 죽어가는 건 그 자체가 행복이란 듯.

막이 내리고 숨을 죽였던 관객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누군가 김은선 감독을 향해 브라바(Brava)를 외쳤다. 서툰 한국어 발음으로 “캄~사합니다~”도 터져 나왔다 > >

사실 저는 김은선 감독이 누구인지 잘 몰랐습니다. 우연히 오페라를 보러 갔다가 프로그램 안내책자에서 지휘자 김은선 데뷔(Conductor Eun Sun Kim DEBUT)라고 적혀있는 문구를 발견하곤 김 감독에 대해서 좀 더 꼼꼼하게 찾아보기 시작했죠.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한국에서 대학과 대학원까지 마친 소위 ‘토종’인 그가 남성들의 세계에서 글로벌 스타 지휘자로 맹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문득 공연이 끝난 후 인사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취재를 하러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프레스패스도 없었고, 오페라 하우스가 위치한 링컨센터의 어느 쪽에 백스테이지가 위치해 있는 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행사 직원이 알려준 길을 따라 겨우겨우 지하 주차장 쪽으로 나가 보니 출연자 출입구 앞에 수 십명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그 앞에서 무작정 김은선 감독이 나오길 기다렸지요.

얼마 후 김은선 감독이 큰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김 감독의 홍보 책임자가 인터뷰 질문지는 이메일로 달라고 막아섰는데 ‘미국으로 연수나온 매일경제신문 기자’라고 소개하자 김 감독과 간단히 질의 응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여성 지휘자’로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데뷔한 소감을 물었는데 김 감독은 ‘여성’ 지휘자로만 기억되길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동시에 많은 여성 후배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기 �문에 ‘여성 지휘자’라는 롤모델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다음은 김 감독의 답변입니다,

“여성이어서 특별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관객들이 여성 지휘자를 특별하게 바라보고, 여성 후배들이 나를 보고 동기 부여가 되니까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소 상투적인 질문에 멋있게 답한 김은선 감독이 더욱 크게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