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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미국 경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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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미국 경찰 2

외국인이 낯선 나라에서 살려면 어느 정도의 수업료가 필요하다. 손해를 보지 않고 살기는 어렵다. 모든 문화가 새롭고, 현지 국가의 언어 실력 또한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맥도널드 같은 패스트푸드 가게에서도 ‘수업료’를 내게 된다. 점원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서 의도치 않게 추가 메뉴나 ‘업그레이드’된 음식과 함께 예상보다 비싸게 계산된 영수증을 받고 나면 아이들 보기가 부끄럽다. 이 정도의 수업료는 애교다. 나에게 가장 값비싸고 쓰라렸던 경험은 도로 위에서 있었다.

미국에 온 지 100일쯤 되던 지난해 10월의 어느 주말 오후 나는 자동차로 3시간 정도 떨어진 해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가족들과 주말여행 중이었다. 기분 좋게 왕복 5차선(미국은 쌍방향 유턴이 가능한 중앙 차선이 있는 도로가 있다) 도로의 한 차선을 달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경찰차가 보였다. 5차선 도로 중앙, 일종의 가변 차선에서 경찰차가 서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중앙차선 옆 차선을 달리고 있었지만, 차선을 옮기지 않고 그대로 옆 차선을 지나쳤다. 과속은 아니었다. 규정 속도 25마일 아래로 비교적 서행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경찰차가 호른을 울리더니 나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흥분한 경찰은 영화 속 미군 훈련소 교관과 같은 자세로 “노스캐롤라이나 법에 따라 너는 차선을 옮겨서 주행하거나 속도를 완전히 줄여 서행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넌 나의 일을 방해했고 고의로 나의 생명을 위협했다”며 즉석에서 나를 기소했다. 그 경찰이 발부한 법원 출석 요구서엔 3개월 뒤에 자신의 관할 지역 법원으로 오전 8시까지 나오라는 내용과 함께, 벌금액과 법정 수수료를 포함해 내야 할 돈이 무려 ‘435달러’라고 적혀있었다. 할 말이 많았다. 하지만, 당시 분위기가 워낙 위협적이라 “미안하다. 몰랐다”는 말만 했다. 뒷자리 아이들도 빤히 보는 상황에서 내가 경찰의 목숨을 고의로 위협할 이유가 없는데도 경찰은 자기 감정 대로 법원 출석 요구를 한 것이다. 난 그저 미국에 온 지 3개월하고 10일밖에 안돼, 미국의 교통법규를 잘 몰랐던 외국인일 뿐이었다. 경찰이 잠시 자기 차로 돌아간 사이 뒷자리 아이들을 돌아봤다.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아빠가 무슨 잘못을 해서 미국인이 저렇게 화를 내나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집에 와서 곰곰히 생각하니 정말 간단한 일이 아니다. 방법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나의 유죄를 인정하고 435달러를 온라인으로 내는 것이다. 둘째, 직접 법원에 출석해 억울함과 온정을 호소하는 것이다. 셋째, 현지 변호사를 고용하는 길도 있다. 벌금을 내고 깔끔하게 끝내면 좋지만, 이 또한 쉬운 결정이 아니다. 벌금을 낸다는 것은 해당 경찰의 기소 내용이 100% 옳다는 것, 즉 나의 유죄를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후폭풍도 내가 고스란히 책임을 지게 된다. 추후 또 다른 실수로 추가 벌점을 받게 되면 면허 정지에 이르게 된다. 교통법 위반은 곧 자동차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진다. 보험사에 문의했더니 나와 같은 사례의 경우 추후 3개년간 자동차 보험료가 80% 가량 오른다고 한다. 올해 1000달러를 냈다면 1800달러로 수직 상승하는 셈이다. 직접 법원을 출석하는 것도 난감한 일이다. 출석 요구일은 한겨울인 1월 31일 금요일 오전 8시. 편도 3시간이다. 그것도 아이들이 등교해야 하는 평일 아침. 내가 가지고 있는 차량은 단 한 대다. 내가 영어가 유창한 것이 아니니 법정에서 내 억울함을 온전히 설명하기도 쉽지 않고 자칫 말실수 한번 했다가 판사에게 찍혀 내 보험료만 껑충 뛰거나 면허정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의 여러 지인은 “판사 중엔 너 같은 동양인을 싫어하거나 인종차별주의자가 있을지 모를 일이다. 변호사를 고용하는 게 좋다”고 권유했다. 변호사를 고용하게 되면 내가 직접 법원에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 벌점과 보험료 인상은 막을 수 있다. 내 개인 정보를 어떻게 알았는지 그 이후 사건이 벌어졌던 해당 지역 변호사들이 자기를 고용하라며 편지들을 대거 보내왔다. 경찰과 지역 판사, 변호사가 어떻게 협력해 먹고 사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 같다. 경찰은 이런 기소에 따른 벌금으로 수당을 챙긴다고 한다. 판사는 재판 수수료로 수입을 챙기고 변호사는 의뢰인이 내는 수임료로 돈을 버는 구조다. 변호사, 경찰, 판사가 서로 친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변호사 선임 비용이 또 문제다. 이들은 고작 하루 일하는 조건으로 최소 200달러, 최대 400달러를 요구했다. 물론 판사가 결정할 벌금과 재판이 열린 데 따른 법정 수수료는 별도로 내야 한다. 나는 두 달을 고민한 끝에 435달러를 내고 지긋지긋한 고민에서 빠져나왔다. 앞으로 안전운전을 할 테니 벌점은 받지 않을 것이며 미국 특파원으로 다시 오지 않는 한 미국 자동차 보험을 장기간 가입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이 사건이 벌어진 이후 난 한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안전 운전을 하고 있다. 멀리 경찰차가 보이면 일단 속도부터 낮추고 한 차선을 옆으로 옮긴다. 혹시나 내가 모르는 교통법이 있을지 모르니 최대한 몸을 사리고 보는 것이다. 운전면허 교재도 다시 읽어봤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선 공권력이 무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미국 같은 강력한 무엇인가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봤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경찰력과 절대적 파워는 다소 지나친 점이 없지 않다. 미국인들 내부에서도 위압적 경찰을 종종 도마 위에 올린다. 나의 사연을 들은 미국인들도 해당 경찰을 욕하며 과했다고 감싸줬지만, 결국 이들은 “어쩔 수 없다. 이게 미국이다. 당신이 운이 없었다. 따르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경찰 단속에서부터 재판 출석을 요구받고, 변호사와 접촉하며 벌금을 내거나 실제 법정에 출석하는 과정은 매우 미국적이다. 논리적이고 귀찮지만 돈이 있으면 편하게 해결된다. 온정적이고 감성이 앞서는 한국에서 평생을 생활해 온 나로서는 참 난감한 일이다. 하지만 지인들 말대로 미국에 왔으니 미국의 법을 따라야 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