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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 북경의 스모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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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동쪽 오랑캐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말한 이유는?”
  …


“베이징의 스모그 때문이다.”



지난해 런민대에서 <논어>를 교재로 한 중국어 수업을 함께 듣던 독일인 친구가 던진 썰렁한
농담이다. 베이징의 한 대학에서 독일어를 가르치는 그는 여행차 들른 베이징의 매력에 푹 빠져
그냥 이곳에 눌러앉은 지 벌써 12년이 됐다. 하지만 최근  심각해진 대기오염 때문에 진지하게
완전 귀국을 고민하고 있다는 그는 “그나마 공기가 좋았던 가을까지 요즘엔 스모그가 나타난다”
라며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중국에 올 분들을 위해 내가 경험한 ‘명불허전(명성이 헛되이 퍼진 것이 아님)’베이징의
스모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중앙집중식 난방공급이 끝나고 이제 공기가 좀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를 비웃듯 3월의 베이징은
다시 짙은 스모그에 휩싸였다. 하루는 잠을 자다 목이 칼칼해 공기질량지수(AQI)를 확인해보니
자그마치 477(300이상 위험)에 이르렀고 0.25PM이하의 초미세먼지 농도도 465㎍/㎥까지 치솟아
있었다. 이는 세계보건기구 기준치 25㎍/㎥의 근 20배에 가까운 농도다.


방학이 끝나고 기다리던 대학의 신학기가 시작되던 지난 2월말에는 수도 베이징이 일주일이 넘도록
미세먼지 농도가 200-500㎍/㎥대를 오르내리는 최악의 스모그에 잠겼다. 수백미터 앞의 고층 건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뿌연 연무와 80년대 한국의 공단지대에서나 맡을 수 있던 매캐한 냄새가
하루종일 도시를 뒤덮었다. 미세먼지 농도가 500㎍/㎥이 넘던 날 창을 통해 태양도 빛을 잃은
무채색의 도시를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 마치 재난영화 속 미래도시에 온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이런 날은 수업이고 뭐고 집에 가만히 엎드려 있어야 한다. 겁없이 외출하면 여지없이 목감기가
찾아온다.


지난해 여름 베이징에서 처음 대면한 스모그는 참 낯선 것이었다. 그나마 비가 많이 내려 상대적
으로 공기가 좋은 편이라고 하는데도 보슬비가 내린 뒤 피어나는 뿌연 비안개와 스모그가 뒤섞인
연무는, 마치 사우나안에서 누가 줄담배를 피워대는 것처럼 참 불쾌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미세먼지 농도가 85㎍/㎥를 넘자 서울시가 주의보를 발령했다는 둥 호들갑을 떠는
한국 언론을 보면 웃음이 나왔다. 오래전 유행했던 한 개그맨의 우스개 소리 ‘옌볜 버전’을 빌려
말한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


“우리 베이징에서는 100㎍/㎥가지고는 스모그 축에도 못낍네다, 고저 300㎍/㎥은 넘어야 아 오늘
공기가 좀 나쁘구나 기러지….”


스모그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되다 보니 북경의 한국인들 사이에선 ‘3한 4온’대신, 3일
스모그에 하루 맑은 날이 반복된다는 ‘3우(汚)1칭(淸)’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까지 돌았다.
또 베이징에서 하룻밤 자는 게 담배 한 갑 피는 것과 맞먹는다는 그럴듯한 우스개 소리도 나왔다.


덕분에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당일 그날의 대기오염질량지수(AQI)를 알려주는 스마트폰앱을
확인하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학교 수업등 피치 못할 상황을 제외한 나들이, 외출 등 모든
일상계획은 이 공기질량지수와 미세먼지농도에 의해 결정된다. 공기가 좋은 날은 기분이 상쾌하고,
의욕이 충만하지만 공기가 나쁜 날은 몸도 찌뿌드드하고 기분도 우울하고, 매사에 의욕이 떨어진다.


남들처럼 산업용 분진마스크를 사고, 인터넷카페를 통해 헐값에 중고 공기청정기도 한대 장만했지만
심리적 안정감을 줄 뿐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들의 학교에는 아예 진짜
방독면을 쓰고 등교한 학생까지 있다고 한다. 나는 처음엔 스모그 무서운 줄 모르고 겁 없이 다니다
한국선 좀처럼 걸리지 않던 목감기로 큰 고생을 한 뒤 스모그가 있는 날은 반드시 마스크를 썼다.
하지만 분진마스크를 쓰면 너무 답답해 아주 심한 날은 1회용 마스크와 일반 마스크를 겹쳐 쓰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것도 겨울에나 가능할 뿐 봄이 오고 날이 더워지면서 마스크 쓰는 게 고역이
되고 있다. 더운 날은 아무리 스모그가 심해도 상당수 중국인들은 그냥 맨 언굴로 다닌다.
  
스모그 문제의 해결이 어려운 것은 이것이 북경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중국인 친구에게
“중국이 세계 1위 무역대국이 됐다는 데 수도 베이징의 스모그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올림픽을 전후해 베이징 주변의 유해공장은 대부분
허베이성으로 옮기거나 철거했지만 베이징 주변 7개 도시가 모두 이런 상황이어서 근본 해결이
어렵다고 들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중국 북방을 뒤덮은 스모그의 위력은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가족들과 함께 침대열차를 타고 떠난
시안여행길에서 직접 체험한 적이 있다. 베이징서역을 출발할 때 ‘베이징 대기오염 질량 지수(AQI)’
가 최고단계인 ‘위험’(hazard)에 해당하는 300을 넘었다. 공기가 안좋을 때 베이징을 잘 탈출
했다는 생각에 안도했는데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스모그의 매캐한 냄새 때문에 숨쉬기가 어려웠고,
눈이 따끔거렸다. 서안까지 자다깨다를 반복하는 동안 창밖에 펼쳐지는 수천킬로미터의 풍경이 뿌연
안개에 잠겨있었다. 북경은 대도시니까 그런가 보다 할 수 있는데 북경과 아주 멀리 떨어진 시골
소도시에서 조차 연무가 자욱한 것을 보며 ‘대재앙(catastophe)’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혹시나
해서 목적지인 시안의 AQI를 검색해보니 자그마치 720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북부지방은 물론 상하이와 저장 지역 등 남부지방까지 스모그 띠가 남하하여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중국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최악의 대기오염이 발생했던 2013년에 스모그는
중국의 25개 성의 100여 도시에서 나타났다.


스모그는 이제 중국인들의 삶의 질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한 국제환경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2013년 베이징시의 폐암 사망율이 10년전에 비해 60%나 증가하고 중국의 폐암사망율은 최근 30년간
456%나 증가했다고 한다. 시민들이 “우리가 미세먼지를 빨아들이는 살아있는 진공청소기냐”며
분통을 터뜨리는 상황이 되자 중국정부도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지난해 9월에는 중국 국무원에서 중국역사상 가장 강력한 대기오염대책으로 평가되는 <대기오염
방지 해결을 위한 행동계획>을 내놓았다. 중화전국공상업연합회에서는 이번 행동계획에 따른 총
투자금액이 2017년까지 무려 1.7조위안(약 3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올 3월에는 리커창
국무원 총리가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식 업무보고에서‘스모그와의 전쟁’을 선포하기까지 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정부가 이만큼 강력한 의지를 밝힌 이상 선진국이나 일본, 그리고 우리가
그랬듯이 중국의 스모그도 언젠가는 잡힐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강력한 대책이 단기간에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중국 정부는 석탄 난방과 경제성장으로 급증한 자동차 매연,그리고 산업화에 따른 공장의 오염물질
등 세가지를 스모그의 근본원인으로 꼽고 있다. 베이징시 환경보호국의 발표에 따르면 베이징
지역의 공기오염의 가장 큰 원인은 주변지역 오염물질의 유입으로 전체의 25.4%에 이른다. 허베이
지역의 공업도시들로부터 날아온 오염물질로 베이징이 휩싸이는 현상이 연중 반복되고 있다.


자동차 배기가스도 주요 원인이다. 중국 자동차시장은 2013년에만 13.9% 성장하면서 연간 판매량이
2198만대에 이르렀다. 베이징에서는 이미 한국의 90년대처럼 너도 나도 경쟁적으로 차를 가지는
마이카 시대로 접었는데, 연료의 품질기준이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아 오염물질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실정이다. 석탄을 위주로 하는 중국의 에너지 소비구조 역시 스모그와 공기오염의 주범이다.
이 모두가 중국 경제의 경제발전단계및 경제성장 모델 즉 구조적 문제와 관련된 문제여서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산업설비에서 나오는 오염은 낙후산업 도태와 산업구조 업그레이드가 이뤄져야 하는데 가뜩이나
떨어지고 있는 경제성장률의 추가 희생을 필요로 한다. 대중교통이 열악한 상황에서 보급단계에
접어든 자동차 구매제한은 한계가 있다. 석탄 의존도를 낮추는 것은 에너지 소비구조의 전환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시진핑 시대의 중국이 가야할 길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성장의 속도를 다소 늦추더라도 사람이 있는 성장, 삶의 질을 보장하는 성장으로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