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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트 버논, 몬티첼로, 그리고 캠프 데이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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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주는 미국 안에서도 캘리포니아주, 워싱턴주, 뉴욕주와 뉴저지주와 함께 한인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버지니아주 가운데서도 특히 북부의 페어팩스(Fairfax) 카운티는 한인들이 밀집해 있습니다. 수도인 워싱턴 DC와 인접한 덕분에 여러 가지 편의시설이 발달한 것과 미국 내에서 교육열이 높은 곳이기 때문일 겁니다. 지난해 말 ‘유에스뉴스 앤 월드 리포트’가 선정한 ‘미국 100대 고교’에 따르면 버지니아주에서 3곳을 배출했는데, 모두 페어팩스 카운티에 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납니다. 토머스 제퍼슨 과학기술고교와 랭리 고교, 오크튼 고교인데, 우리로 치면 과학고와 비슷한 토머스 제퍼슨 고교는 수년 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최고의 명문 고교입니다.

버지니아주는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곳입니다. 바로 미합중국이 태어난 곳이지요. 최초의 영국 식민지인 제임스타운(Jamestown)이 이곳에 있습니다. 지난해 5월 북미 최초의 식민지인 제임스타운 건설 400주년을 맞아 미국을 방문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백악관보다도 먼저 방문한 곳입니다. 버지니아주는 또한 미국 대통령 역사에서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곳입니다. 지금까지 배출된 43명의 대통령 가운데 단일주로는 가장 많은 8명이 이곳 출신입니다. 초대 조지 워싱턴, 3대 토머스 제퍼슨, 4대 제임스 매디슨, 5대 제임스 먼로, 9대 윌리엄 핸리 해리슨, 10대 존 타일러, 12대 재커리 테일러, 28대 우드로 윌슨 등입니다. 최초 5명의 대통령 가운데 4명이 이곳 출신이다 보니 버지니아주는 ‘미국 대통령의 배출지(the mother of presidents)’라는 별칭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하려는 것은 대통령의 배출지로서의 버지니아주입니다. 대통령의 고장이다 보니 대통령과 관련한 유적지가 곳곳에 산재돼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초대 워싱턴 대통령이 살다가 묻힌 마운트 버논(Mount Vernon)과 3대 제퍼슨이 살았던 몬티첼로(Monticello)가 대표적입니다. 이 두 곳은 미국인들에겐 역사공부의 현장임은 말할 것도 없고, 버지니아를 찾는 한국인들에게도 한번 가볼만한 관광지입니다.

사실 국내에선 역대 대통령의 생가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제가 다른 나라의 대통령 사저를 소개한다는 것은 저로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버지니아가 내세울 만한 것이 특별히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퇴임한 노무현 대통령이 낙향해 살고 있는 경남 김해의 사저가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는 소식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치적에 대한 평가나 대통령 기념관 건립 논란과 별도로 재미있는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째는 우연한 기회에 읽은 ‘마운트 버논에서 크로퍼드까지(From Mount Vernon To Crawford)’라는 책 때문입니다. 1986년부터 22년째 `유에스 앤 월드 리포트` 백악관 출입기자로 있는 케네스 월시(Kenneth Walsh)가 초대 워싱턴부터 현직 조지 W 부시 등 미국 대통령의 사저와 별장을 소개한 것인데, 미국 대통령들의 이면사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가 있었습니다.

먼저 초대 대통령이자 국부(Father of His Country)로 추앙받고 있는 조지 워싱턴의 사저였던 마운트 버논으로 가보겠습니다. 마운트 버논은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차를 타고 남동쪽으로 25분쯤 가면 나옵니다. 포토맥 강변에 위치한 마운트 버논은 워싱턴의 사저와 정원, 농장, 무덤, 오리엔테이션 센터, 박물관과 교육관 등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입구에서 표를 사면 곧바로 오리엔테이션 센터로 연결돼 사저로 가기 전까지 각종 사전 교육(?)을 받게 됩니다. 이 센터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워싱턴과 그의 가족들의 입상(立像)입니다. 실물 크기와 같게 만들어진 입상은 기념사진 촬영 장소입니다. 이곳을 지나면 워싱턴의 업적을 요약해놓은 ‘스테인드 글래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관에서는 독립전쟁 당시 워싱턴의 활약을 그린 영화가 15분 정도 상영됩니다. 영화를 보고나서야 비로소 사저 구경을 할 수 있습니다. 사저 구경은 방마다 배치된 안내인의 설명을 듣도록 돼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정원, 농장, 그의 무덤 등을 차례로 볼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집니다. 하지만 나오는 길엔 박물관과 교육관을 거치게 돼 있습니다. 물론 관람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박물관과 교육관을 그냥 지나칠 순 없을 겁니다. 결국 마운트 버논 관람이 다 끝나면 동선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면밀하게 짜여있다는 생각에 두 손 들 수밖에 없지요. 실제로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다는 점에서 교육의 장으로도 제몫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면 조지 워싱턴이 국부로 추앙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두 가지 사실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나는 워싱턴이 제왕적 군주가 될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권력을 뿌리쳤으며, 대통령 임기에 대한 전통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워싱턴은 첫 대통령으로 4년 임기의 대통령을 두 번 했습니다. 미국 헌법에는 대통령의 임기를 제한하는 조항이 없습니다. 당시 미국은 갓 태어나 모든 것이 어지럽고 미흡했던 상황이었기에 워싱턴이 원하기만 했다면 8년이 아니라 12년, 아니 20년을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8년으로 자신의 역할을 마무리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한 번의 예외적인 경우(프랭클린 루즈벨트)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습니다. 둘째, 그의 퇴임사에서 대외정책의 큰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그의 퇴임사 초안은 미국 헌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2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이 작성했고 마지막 정리는 당대 최고 문필가였으며 그의 충복인 알렉산더 해밀턴이 담당했습니다. 워싱턴 퇴임사는 연설을 통해 국민들에게 전달된 것이 아니라 신문에 게재됐습니다. 퇴임사에서 그는 연방제를 선택한 미국이기에 당파를 떠난 초당적인 협력을 설파하면서 미국의 대외정책은 중립주의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의 중립주의는 유명한 ‘먼로주의’로 발전돼 1차 세계대전 전까지 미국의 대외정책으로 자리잡게 됐습니다. ‘카우보이들의 외교사’를 쓴 전남대 김봉중 교수는 “워싱턴은 미국 외교 정책이 반드시 중립노선을 따라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면서 “매디슨의 초안에 워싱턴이 첨부한 메모에는 그런 의지가 곳곳에 나타난다”고 썼습니다.

마운트 버논은 미국인들이나 이방인들에겐 워싱턴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제겐 무엇보다도 풍광이 아주 뛰어난 곳으로 각인돼 있습니다. 특히 뒤뜰에 서서 발밑으로 유유히 흐르는 포토맥강과 그 너머 펼쳐진 메릴랜드의 숲을 바라보는 것은 압권입니다. 세상의 온갖 시름을 다 잊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워싱턴은 스스로 자신의 저택을 두고 “미국에서 이보다 더 즐거운 곳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가 독립전쟁 이후 군사령관직을 사임한 후, 그리고 대통령에서 퇴임한 후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아마도 그런 기분을 느꼈을 법 합니다. 마운트 버논은 워싱턴이 대통령으로 퇴임한 이후에도 정치인과 친구들의 사랑방처럼 활용됐습니다. 안내인에 따르면 대통령에 물러난 해만 677명의 손님이 묵고 갔다고 합니다.

저는 지난 2월18일 ‘프레지던트 데이’ 공휴일 때 마운트 버논을 방문하기로 하고 차를 몰고 갔습니다. 복잡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미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공식행사를 볼 수 있거니와 무엇보다도 입장료가 공짜라는 유혹 때문이었습니다. 설마 하면서 갔지만 역시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운트 버논으로 가는 좁은 도로는 차량행렬로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부득불 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고, 며칠 후 다시 찾았습니다.

참고로 실제로 워싱턴의 생일은 2월22일로, 1879년부터 미 의회가 그날을 공휴일 정했습니다. 그러나 1971년 미국 의회가 연휴로 만들기 위해 2월 셋째 월요일을 프레지던트 데이로 정하면서 바뀌었습니다. 어쨌든 화창한 봄에 연중 입장권을 활용할 겸 산책도 할 겸 다시 한번 다녀올 생각입니다.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의 사저인 몬티첼로는 제가 사는 곳에서 남서쪽으로 차로 1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샬롯츠빌(Charlottesville)에 있습니다. 샬롯츠빌은 버지니아 주립대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지요. 버지나아 주립대는 물론 제퍼슨이 세운 대학이지요.

제가 몬티첼로를 찾은 지난 1월 중순 때는 안내소 및 주차장 확장 공사가 한창이던군요. 그래서인지 사저로 가기까지 다양한 교육을 받아야 하는 마운트 버논과 달리 제퍼슨에 대한 공부는 안내문이나 안내인들의 설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요. 나중에 보니 몬티첼로로 오기 전 3킬로미터 지점에 비지터스 센터가 있더군요. 이곳에서 제퍼슨의 사생활과 관련한 전시물은 물론 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도 볼 수 있습니다. 사저 구경을 위해 사전 교육을 철저히 받아야 하는 마운트 버논에 비해 자유롭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언덕이라고 하기에는 높고, 산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낮은 곳에 위치한 몬티첼로도 마운트 버논과 마찬가지로 풍광이 아주 뛰어납니다. 건물 앞으로는 언덕이, 뒤편으로는 경작지가 발 아래로 쫙 펼쳐져 있는 게 정말 시원합니다. 주차장에서 건너편 사유지 언덕까지 조성된 나무산책로도 일품입니다. 사저 가운데는 지하에 ‘ㄷ`자 모양으로 회랑처럼 늘어진 건물이 눈길을 끕니다. 이곳에는 다양한 용도의 방들이 배치돼 있는데, 당시 제퍼슨의 지위와 관심사를 잘 보여줍니다. 안내인에 따르면 몬티첼로를 운영하기 위해서 60여명의 노예가 활용됐을 것이라고 합니다. 지하 회랑 한쪽 끝에는 실제로 노예들이 사용했던 방이 두 곳 있습니다.

사실 워싱턴과 제퍼슨을 논할 때 노예제도와 관련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운트 버논과 몬티첼로와 같은 넓은 영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노예제도가 불가피하지만,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는 워싱턴과 제퍼슨이 노예소유주이자 노예주의 옹호자였다는 점에서 후대의 사가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워싱턴은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 가운데 유일하게 노예를 해방시킨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유서에 따라 사후에 이뤄진 일입니다. 마운트 버논을 운영하기 위해 300명이 넘는 노예가 활용됐으며, 일부 여성 노예는 그의 정부로 활용됐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제퍼슨의 경우 어린 시절 노예제도의 도움을 받아서인지 노예를 해방하는 것은 버지니아의 불안을 가속시킬 것으로 우려해 반대했습니다. 그는 또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흑인을 인류 가운데 가장 열등한 것으로 비유했으며, 노예를 ‘사악한 악’으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또 흑인 남자가 백인 여자에게 성욕을 더 느낀다고 언급했는 데, 이는 백인 여자가 흑인 여자보다 더 매혹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당시 버지니아의 사회상을 감안한다면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기는 하지만 계몽주의 사상을 공부하고 다양한 학문을 접해 ‘몬티첼로의 현인’으로 존경받고 있는 제퍼슨에게는 ‘옥의 티’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이밖에도 버지니아주에는 몬티첼로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는 먼로 대통령의 애쉬론 하일랜드, 제임스 매디슨의 집이 있는 몽펠리어, 윌리엄 해리 해리슨의 생가인 버클리 플란테이션, 존 테일러 대통령의 셔우드 포리스트, 우드로 윌슨의 박물관이 있는 스탠튼 등이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고 합니다.

비록 버지니아주는 아니지만 인접한 워싱턴 DC와 메릴랜드주, 그리고 펜실베이니아주에도 대통령과 관련한 유적들이 있습니다.

워싱턴DC는 링컨 대통령이 사저로 사용한 ‘솔저스 홈(Soldier`s Home)’이 있습니다. 링컨 대통령 시절만 해도 ‘이크제큐티브 맨션’으로 불린 백악관은 좁고 항상 사람들로 북적여 쉴 공간은 물론 살 곳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월시가 쓴 책에 보면 “별장이 필요한 대통령이 있다면 링컨이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어린 나이에 잃고 그 여파로 정신이상이 생긴 아내 탓에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린 링컨으로서는 휴식공간이 누구보다도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옮긴 곳이 솔저스 홈입니다. 백악관으로부터 3마일 북쪽에 위치한 이곳은 언덕배기에 위치해 전망이 좋았다고 합니다. 링컨의 전임인 부캐넌 대통령이 처음으로 휴식처로 사용했습니다. 링컨은 49개월간 재직 기간 중 13개월을 솔저스 홈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이름이 붙은 내력은 남북전쟁 때 부상당한 병사들의 병원으로 활용됐기 때문입니다. 링컨은 역사적으로 백악관으로 출퇴근한 첫 대통령으로 꼽힙니다. 당시가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때라 출퇴근길에 호시탐탐 링컨의 목숨을 노린 저격수들이 횡행해 경호에 여간 신경이 쓰인 게 아니었다고 합니다. 링컨은 그러나 1865년 4월14일 삼엄한 경호에도 불구하고 위험이 노출됐던 거리나 집이 아닌 포드극장에서 연극을 보다 존 윌크스 부스에게 암살되는 운명을 맞습니다.

인근 펜실베이니아주의 게티스버그(Gettysburg)에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직전에 구입한 뒤 주말에 활용한 농장이 있습니다.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온 아이젠하워는 자신의 명의로 된 집을 가져보지 못하던 차에 대통령에 당선되기 2년 전인 1950년 당시 4만 달러를 들여 이 농장을 샀다고 합니다. 텍사스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캔자스주 농장에서 보낸 아이젠하워가 게티스버그에 있는 농장을 산 것은 어릴 때 농장에서 자란 경험과 웨스트포인트 시절 남북전쟁의 격전지 게티스버그를 방문한 경험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대통령이 된 이후 아이젠하워는 게티스버그 농장을 아래에서 언급할 인근 캠프 데이비드와 더불어 주말에 별장으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사저는 아니지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캠프 데이비드(Camp David)입니다. 워싱턴DC에서 북서쪽으로 60마일 정도 떨어진 메릴랜드주 커톡틴 마운튼스(Catoctin Mountains)에 위치한 캠프 데이비드는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휴식을 위한 별장입니다. 격무에 지친 대통령이 주말에 쉴 수 있도록 만든 곳이지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1942년 별장으로 선정한 곳으로, 처음엔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이름 따 ‘샹그리라’로 불렸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자신의 손자 이름을 따 캠프 데이비드로 개명한 뒤 많은 대통령의 별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캠프 데이비드는 대통령의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제2의 백악관으로도, 전적인 휴식공간으로 활용됐습니다.

캠프 데이비드라는 이름이 일반에게 잘 알려지게 된 계기는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 이곳에서 중동평화협정이 체결됐기 때문일 겁니다. 1978년 가을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가 이곳에서 역사적인 평화협정을 이뤄내면서 캠프 데이비드는 백악관보다 더 극적인 정상회담 장소로 각인됐습니다. 하지만 캠프 데이비드가 제2의 백악관으로 활용된 것은 이보다 훨씬 전부터입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60년 이곳에서 흐루시쵸프 소련 서기장과 정상회담을 했고,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에는 퐁피두 프랑스 대통령, 티토 유고 대통령, 브레즈네프 소련 총서기 등이 이곳을 방문했습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를 언론에 최초로 공개한 대통령이었습니다. 이곳을 가장 활용하지 않은 대통령은 해리 투루먼으로 약 8년 재임기간 동안 9차례, 총 27일밖에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가장 자주 활용한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으로 8년 동안 187회, 총 571일이나 보냈습니다. 그러나 레이건은 대개 개인 휴식 공간으로 사용했습니다. 부시 부자 대통령에겐 이곳이 걸프전쟁과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곳으로, 전쟁광의 이미지가 덧칠해지기도 합니다.

지난 주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친밀감을 강조하듯 건국 이래 처음으로 캠프 데이비드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휴식 기간 중의 대통령의 일정에 불과할 수도 있지요. 더욱이 부시 입장에서 본다면 친밀감의 표현이라면 캠프 데이비드보다는 크로퍼드 목장이나 메인주의 커네벙크포트 가족별장이 한 수 위이지요. 일본 고이즈미 전 총리가 크로퍼드 목장에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커네벙크포트에서 보낸 것과는 비교가 되겠지요.

어쨌든 대통령의 사저나 별장이 단순히 별장 역할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현대사의 주요 무대가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차기 미국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를 정상회담의 장소로 얼마나 활용할지 궁금해집니다.

대통령의 배출지라는 주제로 버지니아주를 소개하려다가 그만 주 경계도 넘어버리고 글마저 길어져버렸습니다. 비록 가본 곳은 두 곳밖에 없지만, 글을 쓰면서 저 자신이 많은 곳을 가본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대통령을 정치적인 접근이 아닌 정치외적인 접근으로, 바깥에서 보는 풍경도 색다른 맛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마운트 버논이나 몬티첼로를 거닐다보면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지면서도 두 대통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되긴 하지만 말입니다.

이왕 길어진 김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쉬웠던 기억을 첨언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지난해 11월 하순 추수감사절(Thanks Giving Day) 연휴를 맞아 플로리다를 여행하면서 미국 최남단 키웨스트(Key West)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해리 트루먼 거리가 있는 것을 보고 트루먼 대통령과 관계가 있나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에 트루먼 대통령이 별장이 있더군요. 미리 알았다면 별장 구경도 덤으로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다음번에 미국 대선에 대해 한번 써볼까 합니다. 마침 민주당 대선 레이스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이는 펜실베이니아 예비선거도 임박해오니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