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보기

‘마름 제국주의’와 정저지와

by

미국 작가 마거릿 미첼이 남긴 평생의 역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배경이 조지아주 아틀란타
일대라는 건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요즘 영어 원작으로 이 작품을 읽고 있는데, ‘한시적 조지아
주민’으로 살고 있는 저로서는 무엇보다 지명이 친숙해서 반가운 작품입니다. 더불어, 전에 번역
본으로 읽을 때는 무심코 지나쳤던 사실들을 새삼스럽게 발견하는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의 아버지 제럴드 오하라는 아일랜드에서 온 이민자인데 그가 아틀란타에서
남쪽으로 30km 가량 떨어진 존스보로(Jonesboro)의 ‘타라’ 농장 소유주가 된 사연은 미국 역사
초기 생활상을 잘 보여줍니다. 술과 내기를 좋아했던 제럴드 오하라는 어느날 서배너(Savannah)
의 한 술집에서 존스보로 사람과 내기 도박을 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판돈으로 땅을 걸었던
겁니다. 주 정부로부터 땅을 불하받았으나 세금 내는 걸 아까워했던 이 존스보로 사람은 내기에
지자 미련없이 땅을 포기합니다. 당시 미국에서 토지가 얼마나 흔한 재산이었는지 엿볼 수 있는
일화입니다. 또한 미국 지배계급으로서 백인들의 사회적 자본이 형성되는 과정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흑인들이 노예 신분에서 벗어났을 때는 이미 토지 분할이 끝난 상황이었죠.
흑인들은 토지를 비롯한 재산이나 인맥, 교육 등 일체의 사회적 자본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고,
150년이 지난 지금도 별로 나아진 게 없는 상황입니다. 역시 미국은 백인들이 세운 백인들의 나
라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애띤스(Athens, 그리스의 유서깊은 도시 아테네와 철자가 같습니다)라는
대학도시 부근의 오코니(Oconee) 카운티라는 곳입니다. 조지아대학교(University of Georgia)를
끼고 있는 애띤스는 클라크(Clarke) 카운티에 속해 있는데 오코니와 달리 흑인들이 많은 편입니다.
교외 지역인 오코니에서는 흑인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흑인들이 주로 도시에 사는 이유는
아시다시피 경제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도시 지역에 집세가 싼 주택이 많고,
차 없이도 다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구 구성의 차이는 정치 성향에서도 차이를 보입니다. 구글에서 선거 결과를 찾아보면 조지아주는
대부분 빨간색(공화당)이고, 애띤스-클라크는 조지아에서 몇 안되는 파란색(민주당) 중 하나입니다.
오코니는 당연히 빨간색이죠. 예를 들어 2012년 대선의 경우 클라크 카운티에서는 오바마와 롬니의
지지율이 62.77% : 34.10%로 오바마 지지가 훨씬 높았는데, 오코니 카운티에서는 24.76% : 73.34%로
정확히 반대였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얼마 전 학교에서 대통령 선거 모의 투표를 했는데 도널드 트럼프가 압도
적으로 1위를 했다더군요. 모의 투표 결과가 나오자 트럼프를 지지했던 아이들이 교실 앞으로 뛰어
나와 ‘트럼프’를 외치며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정치적으로 백지상태나 다름없을 아이들의 지지
후보는 전적으로 부모들의 그것을 반영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집이나 차에 남부연합기를 걸어놓은 경우도 가끔 눈에 띕니다.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를 지지했던
13개주를 나타낸 남부연합기가 인종차별을 상징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아실 겁니다.
2015년 6월 발생한 찰스턴 교회 총기 난사사건의 범인 딜런 루프가 남부연합기를 들고 있는 사진이
공개된 뒤 남부연합기 퇴출 운동이 일어났을 때 아틀란타 부근에서는 퇴출 반대 시위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10개월 가량 살다보니 이곳 사람들이 보수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대규모 플랜
테이션 농장 지역인 이곳은 낯선 사람이 출현하면 당장 눈에 띄는 곳입니다. 마트 같은 곳을 가지
않는 한 100m 안쪽에서 모르는 사람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습니다. 타운하우스도 널찍널찍해서 거의
실루엣만으로 다른 사람을 식별합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 보수주의 전통이
이런 주거 환경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이에 반해 번잡한 도시는 좋든 싫든 다른 사람과
근접해서 살 수밖에 없고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곳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
면 도시는 확실히 리버럴이 강한 곳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곳 백인들은 낯선 사람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같은 동양인들에게 인사도 잘 합니다. 백인들은 자신들이 이 땅에서 몰아낸 인디언과 노예로 부
려먹었던 흑인들에 대해 일종의 미안함 같은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백인들이 상대적으로 인종차별을
덜 하는 듯 느껴지는 건 바로 이런 정서적 바탕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자부심에서 비롯한 여유와 관용 같은 게 백인들에게서 느껴집니다.(적극적 이민
정책이 경제발전의 주요한 동력이었다는 사실이 낯선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백인보다는 흑인이 동양인을 무시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저도 미국 생활 초기 사바나의 한
아웃렛에서 한 흑인 여학생으로부터 수모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클라크 카운티에 살다가 흑인 아이
들이 괴롭혀서 오코니로 이사온 한국인 가족도 보았습니다. 1992년 LA 흑인 폭동 당시 백인들에 대한
분노가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에게 번졌던 사례도 있었죠.


동양인에 대한 흑인들의 태도는 일종의 ‘마름 신드롬’입니다. 주인보다 그 밑에서 일하는 마름이 더
악독하기 마련이지요. 재량권이 많은 주인은 그렇게 심하게 굴지 않는데 마름은 자신의 얼마 안되는
권한을 이용해 농민들을 괴롭히고 수탈합니다. 백인 위주 사회에서 소외계층에 속하는 인종끼리 서로
물어뜯는 모습은 참 어리석게 느껴집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떨까요. 우리가 동남아시아인을 대하는 태도와 흑인들이 동양인을 대하는 태도가
닮았다고 하면 지나친 주장일까요.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을 보는 우월적 시선
이나 태도가 아류(마름)제국주의의 소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중국을 무시하는 경향
도 남아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뒤떨어진다는 게-더럽다거나 안 씻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표현되기도 하
지만-주요한 이유겠지요. 우리가 이런 알량한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때 중국은 이미 미국을 앞질러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 되었습니다. 인종적 선입견이나 경제적 우월의식은 우리가 여전히 정저지와
(井底之蛙)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글로벌 사회를 살아가는 세계 시민으로서 성숙하고
열린 자세를 가질 때 우리의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