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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자부심이 동성애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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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don Pride Parade”


6월부터 런던 지하철 역엔 7월 8일 런던프라이드 퍼레이드가 열린다는 포스터가 나붙었다. 알록달록한
색깔 때문에 어렴풋이 짐작은 갔지만 LGBT의 L자도 안 들어가 있는 데다가, 런던의 자부심을 강조한
이 포스터가 뜻하는 행사가 무엇인지 긴가민가했다. 결국 LGBT페레이드임을 알고 나서는 ‘작명도 참
멋있게 하는구나’ 싶었다. 유럽에서는 파리를 시작으로 런던, 베를린, 암스테르담 등 주요 도시에서
6월말~8월초 게이퍼레이드가 열린다. 이 행사들 역시 “Pride”라는 명칭이 붙는다. 


LGBT퍼레이드를 한번도 본 적이 없어 호기심에 구경에 나섰다. 화려하게 치장한 드래그퀸들이 무더기
로 나오는 신기한 구경거리 정도가 아닐까 하는 ‘선입견’을 갖고 출발했다. 퍼레이드가 시작되자 참가
단체별로 알록달록하고 발랄할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NGO나 학교뿐 아니라 기업들의 참여도 높았
다. 예컨대, 테스코, 웨이트로즈, 바클레이즈, 페이스북 등과 같은 회사의 직원들은 대형스피커가 달린
트럭이나 버스를 타고 신나는 음악에 몸을 흔들며 행진했다. 기업들은 ‘열린’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홍보
하기 위해 자사 직원들이 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후원을 해주고 있었다. 게이퍼레이드에 빠질 수 없는
퀴어 복장을 한 참가자들도 인기였다. 게이합창단은 멋진 화모니의 노래를 하며 거리를 걸었다. 


그러나 모든 단체가 화려하거나 파격적인 복장을 하고 나온 것은 아니다. 본인의 성정체성을 떠나 LGBT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해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등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할 뿐
이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퍼레이드가 아니라 자신들이 즐기기 위한 행사였다.  참여 단체 중엔 영국
중앙은행, 경찰, 군, 지방자치단체, BBC, 기독교단체 등도 포함돼 있었다. 군인들은 제복을 입고 절도
있는 행진을 할 뿐이었지만 역시 큰 박수를 받았다.


누구보다 이날 가장 많이 박수를 받은 이들은 그저 밋밋한 티셔츠를 맞춰 입고 나온 LGBT 부모연합과
청소년 LGBT단체였다. 아이를 안은 게이커플들은 “우리도 평범한 부모처럼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팻말을 든 게 다였다. 하지만 LGBT 들에게 가장 큰 장벽인 ‘평범한 가정 꾸리기’에 도전한 이들에게
보내는 박수가 가장 컸다.   


런던 살아보니 이 도시의 가장 큰 자산은 문화적, 인종적 다양성이다. 이곳은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의
수도, 뉴욕을 제외하고는 가장 다양한 이들이 섞여 사는 도시가 아닐까 싶다. 다양성이 뿜어내는 역동
성과 문화, 사회, 경제적 잠재력에 런던은 기반하고 있다. 이 정도면 자부심을 가지는 게 마땅할 정도의
열린 사회다.  


런던에서도 게이퍼레이드가 오늘날처럼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축제가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
이 걸렸다고 한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사는 것이 하루아침에 조화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행사를 꾸준히 함으로써 “나와 다른 사람도 이렇게 많구나, 그리고 같이 즐길 수 있구나”라는 걸
오랜 시간 서로 체험하면서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을 키워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이날 행사를 보면서
들었다.  


익숙한 획일성  VS 불편한 다양성


런던 연수의 장점 중 하나 역시 학교에서 다양한 국적, 문화, 인종의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듣는 프로그램 역시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로 구성돼 있다. 대략 영국인이 20%, 미국인 15%, 나머지
가 65% 정도다. 나머지 국가에서 온 친구들 중 상당수는 셰브닝 장학생들로, 남미, 코소보, 터키 등등
출신이다. 영국인과 미국인이라고 해서 백인을 상상했다거나 터키인이라고 해서 거뭇한 이슬람 교도를
떠올렸다면 실수다. 2011년 인구 센서스 기준, 런던 인구의 44.9%만 백인이다. 우리 반의 영국인 구성
역시 이와 비슷하다. 5명의 영국인 중 3명은 백인이지만 나머지 2명은 인도, 파키스탄계 이민자들의 후손
이다. 터키 친구는 빨간 머리의 백인이다. 


외국 친구들을 만나는 일은 즐거움이자 어떤 면에서는 도전이기도 하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흥미롭지만
불편할 때도 있다. 생활은 즐거운 일회성 퍼레이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주 어울렸던 친구 중 하나는
이집트에서 온 이만이라는 친구다. 그룹숙제 할 때 말썽쟁이 조원 때문에 딱 한번 언성을 높인 적 빼고는
항상 보조개를 얼굴에 파고 다니는, 명랑한(내 기준엔 ‘너무’ 명랑한) 방송기자 출신 아가씨다.  히잡을
쓰고 다녔기에 종교가 이슬람이라고 인지는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유럽에는 워낙 이슬람들이 많고,
우리 반에도 여럿 있었지만 크게 다른 점을 학교 다닐 때는 느끼지 못했다.    


같이 학교에서 필드트립을 가면서 한 방을 쓰게 됐는데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이렇게 다르구나’라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매일 새벽 4시반이면 일어나 기도를 하고, 저녁에 고된 일정을 마치고 들어와서도
방 한쪽 구석에서 혼자 절을 한다. 가뜩이나 잠귀가 밝은 나는 새벽부터 그녀의 알람소리에 깨서 새벽잠
을 못 자기 일쑤였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식사였다. 이만은 끼니때마다 은근 슬쩍 사라지고, 군것질거리를 권하면 받아 들고
선 먹지를 않았는데 알고 보니 라마단 때문이었다. 국제뉴스를 통해 라마단에 대해 들어는 봤지만 실제
옆에서 보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해가 떠 있는 동안은 물도 먹지 않고, 해가 지고 나서야 금식이 풀린다.
해가 긴 여름을 어떻게 물도 안 먹고 하루에 14~15시간씩 견디는 것인지 놀라웠다. 금식중인 줄도 모르고
무신경하게 굴었던 것이 미안해서 이후에는 가급적 일몰 후에 저녁을 같이 먹으려 했으나 배가 고파질
때면 슬쩍 짜증이 나기도 했다. 물론 그 친구는 항상 우리더러 먼저 먹으라고 했지만, 그러기도 미안하고
기다리자니 배가 고프고, 어느 쪽도 편하지 않았다. 게다가 금식이 풀려도 할랄 고기 아니면 육식을 못하
니 식당 선택도 피곤한 일이었다. 난 결국 식성이 비슷한 아시아 친구와 식당을 자주 같이 가게 되었다.


이는 내가 다른 나라 학생들과 섞여 학교를 다니면서 겪었던 다양한 에피소드 중 하나다.  다양성은 사회
를, 인생을 풍요롭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익숙하지 않은 데서 오는 불편함을 동반한다. 영국이나 미국과
같이 다민족이 모여 사는 나라들에서는 이런 불편함과 서로에 대한 무지가 자칫 적대감으로 번지지 않도
록 하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해왔다. 내가 다닌 학교 프리세션의 첫 수업도 인종, 성, 종교에 따른 차별의
부당성을 환기시키는 내용이었다. 


한국에서 나와보니 한국이 얼마나 인종적, 문화적으로 닫힌 국가인지 느끼게 된다. 물론 이곳에도 인종
차별, 성차별 등이 존재하지만 일단 이를 겉으로 드러내는 순간, racist, sexist로 낙인 찍히고 직장,
학교 등 공적인 공간에서 이런 행동을 할 경우 처벌을 받게 된다.  민족, 종교, 성정체성이 다른 이들과
의 공존에서 비롯된 혜택을 누리려면 법적인 강제력과 성숙한 포용력이 동시에 필요하다.  아시아인, 흑인
들, 심지어 같은 민족인 탈북자들에 대한 편견 섞인 말을 인터넷에서 아무렇게나 쏟아내는 우리 사회에서
문화적 다양성의 풍요로움을 기대하는 것은 아직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인 듯싶다, 아쉽게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