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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가족들이 살 집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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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생활을 시작한지도 어언 8개월이 흘러 이제는 종반기로 치닫고 있다. 그 동안 많은 일들
이 있었고 가족여행을 떠나기도 했지만, 공부한답시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는 힘들었던 것이 사실
이다. 내가 다니는 런던대 골드스미스의 봄 학기가 마무리된 지금에서야 Colledge Green(대학
캠퍼스 정원)에 찾아온 푸르름과 노란 야생화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직도 석사 과정을
마치려면 논문을 본격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여름 학기가 남았지만, 조금은 한숨을 돌려도 되는 시기
를 맞아 그간의 일들을 돌아보려 한다.




일단 우리 가족의 런던 정착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빼놓을 순 없을 것 같다. 영국으로 해외연수를
오는 경우는 1년 과정으로 마무리되는 석사과정이 대부분이다. 자연히 가족들과의 연수보다는 ‘나홀
로 연수’를 오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의 연수기를 살펴봐도 가족들이 영국에 왔다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혼자 연수를 오는 경우와 가족 단위로 연수를 오는 경우는 경험의 차원이 상당
히 다른것 같다는 게 지금까지의 생각이다.


‘나홀로 연수’의 경우에는 혼자 살 집을 구하기 때문에 ‘영사UK’(http://04uk.com)라는 한인 커뮤
니티 사이트를 통해 글을 올리면 대부분 카톡으로 한인 주인과 연락을 해서 계약조건에 맞는 집을
구하면 된다. 이 경우 계약서를 따로 쓰지는 않는데 중고시장에서 물건 사고 팔 듯이 서로 믿고
거래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 경우 집주인과 분쟁이 발생하거나 끝이 안 좋은 경우가
종종 있다. 보통 렌트비의 한달 치를 보증금으로 내는데 마지막에 분쟁이 발생하면 보증금을 떼이
는 경우도 더러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집을 구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을 상당히 아낄 수 있고,
그리 까다롭지 않은 편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가족 단위로 영국에 연수를 온 경우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내 한 몸 누일 방 한 칸이 필요
한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실제로 삶을 영위할 생활공간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 한 칸에서
나와 아내와 딸 아이가 1년 동안 함께 생활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결국 영국 현지 부동산을 통해
정식으로 렌트 계약을 하는 쪽을 선택했다. 하지만 영국 부동산 계약에 대해 잘 모르고 정보도
부족하다보니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서류 준비부터 한달 간 고생한 걸 생각하면 지금 별 탈
없이 지내고 있는 게 감사할 정도다.


내가 다니는 런던대 골드스미스에서 Overground로 두 정거장 떨어진 캐나다워터역 근처가 우리
가족이 정착하겠다고 마음 먹은 곳이었다. 처음에 아무 것도 모르고 부동산을 찾아 다닐 때,대부
분의 부동산 딜러들은 우리 가족에게 맞는 집을 추천해 주겠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집들을 보여주
었다. 우리 가족은 심사숙고 끝에 캐나다워터역 가까운 2bed room 가운데 가격도 적당한 한 군데
를 골랐다. 하지만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다른 사람이 이미 offer를 넣은 상태였다. 부동산에서는
집주인이 누구를 고를지 모른다고 했다. 그래도 설마했는데…… 맙소사! 얼마 지나지 않아 부동산
에서 반갑지 않은 소식이 날아왔다. 천신만고 끝에 고른 집인데, 집주인이 다른 사람을 tenant
(세입자)로 택했다는 것이다!!


한동안 전화기를 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결론은 경쟁
입찰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한국에서 우리도 집을 사본 경험이 있지만, 집주인에게 offer를
복수의 경쟁자가 넣고 간택을 기다리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영국은 달랐다. 집이 시장에
나오면 즉시 경쟁 체제로 바뀌고, offer를 넣은 사람이 많을 경우 집주인의 의사에 따라 tenant
가 결정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단독일 경우는 집주인과 곧바로 협상이 가능하다.


부동산을 돌아다녀보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집이 꼭 마음에 들어 계약을 해야 할 경우를 대비
해서 reservation fee(holding fee)가 존재했다. 400~500 파운드 정도를 미리 내면 집주인은
우리와만 협상을 해야 한다. 그러면 시장에서는 이미 락(lock)이 걸린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
돈은 중간에 집주인이 마음이 바뀌거나 계약이 틀어질 경우 돌려받는 금액이다. 이 돈은 총금액
에서는 제외되는 금액이므로 나름 합리적인 제도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우리는 집이 마음에 든
다고 해서 덜컥 400~500파운드나 되는 금액을 낼 수는 없었다. 집을 더 보고나서 결정하는 수
밖에 없었다. 하루에도 4~5차례나 집을 보러 다니는 수고를 감내해야 했다.


그러던 중 다행히 우리가 두번째 정도 순위로 마음에 들어했던 집에 offer를 냈던 사람들이 모두
취소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다시 계약을 진행하려고 하자 두 번째 복병이 나타
났다. 부동산에서 요구하는대로 여권과 영문재직증명서, 런던대 학생임을 입증하는 서류 등을
모두 보여주고 딜러가 복사까지 해갔다. 그런데도 1년 계약 가운데 6개월 간의 렌트비를 한꺼번
에 내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직장인이지만, 영국에서는 학생 신분이라는 게 이유였다. 신원이
확실한 기자라고 아무리 우겨도 소용 없었다. 영국에서 집을 구하려면 거액을 한국에서 들고 오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얘기인가!! 결국 부모님께 양해를 구하고 6개월치의 렌트비를 빌려 송금
받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유학생 부부들은 어떻게 집을 구할 수 있다
는 것인지 어이가 없었다.


송금을 받고도 부동산의 횡포(?)는 계속 됐다. 한국에서 살던 집의 관리비 영수증이 추가로 필요
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외국인이라도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살던
아파트에서는 이미 이사를 했고, 관리비 영수증은 이메일로 받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국 한국에서 같은 동네에 살던 처남에게 부탁했다. 처남은 우리 가족이 전에 살
던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부탁해 관리비 영수증을 받은 뒤 사진으로 찍어서 카톡으로 전달해줬다.
본인들이 읽지도 못하는 한국말로 쓰여진 관리비 영수증이 대체 왜 필요하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어이없게도 부동산 딜러는 관리비를 냈다는 숫자만 볼 수 있으면 된다고 했다.
속으로는 ‘렌트비를 낼 능력이 없어서 도망이라도 갈까봐 이렇게 까다롭게 구는 걸까?’ 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 이후에도 부동산은 보증인까지 요구했다. 다행스럽게도 임시로 거주
하던 곳의 주인 아주머니께서 보증을 서 주셨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그것도 숱한 우여곡절을
겪을 뻔했다.


런던에서 집 구하기란… 당시에는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
게 우여곡절 끝에 집을 구한 뒤에도 모든 것이 느리고 후진 영국 시스템 탓에 가스, 전기, 인터
넷 설치 문제 등을 놓고 한동안 씨름했다. 정착 과정의 어려움 뒤에도 영국의 후진적 시스템(?)
탓에 이만저만 고생을 한 게 아니다. 물론 이 과정을 당연한 과정으로 생각하는 연수자들도 있을
수 있고, 나와 다른 경험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과 같은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나중에 런던으로 올 연수자들은 좀더 편하게 정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