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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미국생활 – 망원경을 놓고 현미경을 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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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미국생활 – 망원경을 놓고 현미경을 줍다 ; 나무에서 숲이 보일까…

#에스퍄뇰과 맨더린, 캘리포니아 또는 미국의 미래(?)
10년 만에 두 번째 미국 생활을 하면서 ‘미국 물’을 실컷 먹고 있습니다. (참고로 1갤론에 35센트입니다.)
LG상남언론재단 해외연수 기수가 올해로 두자리 숫자인 10회로 올라섰는데, 연수 기자 중에서 두 번째 미국 생활을 하거나 90년대 학번은 처음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1996년 콜로라도와 2005년 캘리포니아, 두 개의 점을 찍어봅니다.

1990년대 중반. 어학연수 열풍이 불기 시작할 때 쯤 군대를 제대하고, 일주일 만에 샌프란시스코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씩씩한 군인정신(?)으로 무장돼 있었기 때문에 영어ㆍ흑인ㆍ백인 등 어떤 낯선 것도 두려운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텔레비전을 보다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텔레비전 광고의 절반 이상이 자동차 광고였고, 그 중 대부분을 일본차가 차지했습니다. 미국인에게 차는 중요한 생필품 중 하나인데, 그걸 일본제품이 독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한국차만 보고, 한국이 최고라는 얘기만 들으면서 일본은 ‘쪽발이 나라’라는 고정관념만 갖고 있다가 막상 미국에 갔더니 일본은 세계 최고였습니다.
도서관에서 매주 구매하는 신간 목록 중에서 ‘JAPAN’이란 제목이 달린 일본의 경제ㆍ문화ㆍ역사를 연구한 책들은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한국에 대한 책은 단 한권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에 대한 틀에 박힌 접근이라는 어둠 속에 있다가 세상의 빛을 보면서 현기증이 났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지난 7월 중순, 6번째 미국 방문을 하면서 두번째 미국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미국이란 나라를 망원경으로 힐끔힐끔 쳐다만 보다가, 다시 현미경을 집어들고 들여다 보다가 또 깜짝 놀랐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라고 쓰여진 현미경의 왼쪽에는 ‘라티노’(Latinoㆍ멕시코 등 스페인어를 쓰는 라틴 아메리카 사람), 오른쪽에는 맨더린(Mandarinㆍ중국 표준어)이 꽉 차 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 정착을 위해 은행ㆍ아파트ㆍ상점 등을 가거나, DMV(교통국)ㆍSBC(전화회사)ㆍGE&E(전기회사) 등을 찾을 때면 라티노가 너무 많고, 스페인어가 공용어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우체국ㆍ은행ㆍ휴대폰 회사, 심지어 장난감 회사 등 어떤 곳에 전화를 하든 ‘영어는 1번, 스페인어는 2번‘이라는 안내방송을 듣게 됩니다. 심지어 길거리 분리수거 쓰레기 통의 CAN, PAPER 라는 간단한 단어마저도 영어와 스페인어가 나란히 써 있습니다.
아파트나 학교 등에서 잔디깎기ㆍ청소 등 허드렛 일을 하는 노동자의 90% 이상이 라티노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미국 정부가 라티노의 불법 이민을 묵인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 정도로 라티노가 커져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숫자들을 보면 백인이 인디안에게서 뺏은 땅덩어리를 라티노가 다시 점령하는 날도 멀지 않다고 나옵니다.
지난 달 말에 캘리포니아 공공정책 연구소(Publci Policy Institute of California)의 엘렌 하낙(Ellen Hanak) 연구위원이 ‘캘리포니아 2025:미래를 잡아라(Taking on the Future)’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었습니다.
그 중 캘리포니아의 인구 예측 자료를 보면 실감이 납니다.
캘리포니아 인구는 2005년 3,700만명에서 20년 후인 2025년에는 4,400만명에서 4,800만명 사이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백인종은 아주 조금 늘거나 줄어드는 반면, 라티노와 아시아계의 인구 증가 속도는 계속 될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특히, 2011년 라티노는 가장 큰 인종 또는 민족이 되고, 2040년에는 과반수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이미 30대 이하 중에 라티노는 가장 큰 그룹이 됐고, 새로 태어나는 신생상의 절반 이상이 라티노 여성의 자녀들이라고 합니다.
아직은 백인이 유권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조만간 라티노가 유권자의 과반수를 넘어서면 미국의 운명은 또 한번 변화의 시기를 겪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라티노가 잡일을 점령했다면, 맨더린을 쓰는 중국계(타이완ㆍ홍콩 포함)들은 학교를 점령했습니다.
학교에서 마주치는 학생의 절반 이상은 아시아인이지만, 혹시나 ‘한국인’인가 하면 역시나 ‘중국계’인 경우가 많습니다. 도서관에서도 가운데 자리를 점령하고 왔다갔다하면서 쉴새 없이 떠드는 소리는 중국어가 대부분입니다.
중국 학생 수는 중국 경제와 함께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컴퓨터 싸이언스(CS) 등 IT 계열 대학원생의 절반 이상을 중국계와 인도계 학생이 차지하면서, IT강국 한국의 위상도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우려 섞인 목소리도 들립니다.

중국 경제가 발전하고 학생 수가 늘면서 중국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고 합니다.
UC Davis에서 국제 농경제를 전공하는 한 흑인 여학생은 정치학과 백인 여교수가 “중국은 유교라는 훌륭한 문화에 힘입어 경제가 발전했지만, 아프리카는 문화가 형편없어서 발전을 못했다”는 말을 했다며 흥분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ㆍ유럽 그리고 일본이 문화선진국이고 중국ㆍ한국 문화는 아프리카와 같은 수준이었는데, 경제가 나아지고 유학생이 많아지면서 중국 문화가 유럽ㆍ미국에 버금가는 훌륭한 문화가 됐고, 아프리카만 문화 후진국으로 남았다”며 “미국의 부는 훌륭한 문화가 아니라 노예제도와 총ㆍ칼ㆍ힘을 앞세운 전쟁이라는 저급한 문화로 세운 것”이라고 강변했습니다.
역사학과를 졸업한 백인 여학생도 “미국 백인들 중 미국이 문화ㆍ경제ㆍ역사 등 모든 면에서 최고라는 우월주의가 만연해 있다”며 “유럽 역사는 미국이 탄생한 순간 멈췄다”고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미국의 변화된 모습에 대해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막상 실제로 부닥치면서 느끼는 충격은 더 컸습니다. 또 한국 지도에서 서울을 찾고 있을 때는 몰랐지만, 세계 지도에서 한국을 찾아 보여줄 때의 그 안타까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작은 땅덩어리의 아쉬움이란 태생적인 자격지심인가 봅니다.

어떻게 보면 라티노와 맨더린에 대한 충격은 멕시코 국경과 접해있고, 골드러쉬 시절부터 중국인들이 진출했던 캘리포니아에 머물고 있어서 한층 더 강조된 것일 수 있습니다.

# 여기가 지옥인가, 지옥이 여긴가… 칼빈이즘의 결론(?)
최근 미국 뉴스는 허리케인(KatrinaㆍRita) 얘기로 도배되고 있습니다. (물론 채널이 900개가 넘기 때문에 선택의 폭은 넓습니다.) 북한의 6자 회담 소식 등이 잠깐 잠깐 비칠 뿐 다른 나라 돌아가는 소식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인터넷에도 Katrina 관련된 갖가지 소식들이 전해져 옵니다. 그 중 흥미로운 것은 유럽 여행객이 지적한 미국 정부의 흑인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인종차별적 행태들입니다. 내용 중 하나는 ‘경찰들이 뉴올리언즈에서 텍사스로 넘어가는 다리를 봉쇄하고, 흑인과 가난한 자들의 진입을 총으로 막았다’는 것입니다.

한국과 다른 미국사람들의 생각이 엿보이는 부분입니다.
한국에서 ‘미국인들은 부자를 인정하고 존경한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그렇습니다.
동시에 ‘미국인들은 가난을 인정하고 내버려둔다’는 것도 사실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교과서에서 읽었던 칼빈이즘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칼빈(Calvin)이 주창했던 예정설과 프로테스탄티즘 윤리는 “인간은 태어날 때 이미 신의 구원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눠져 있다. 그건 현세에서 잘 사는 것으로 보여진다. 열심히 일하고 근검절약해서 부자가 되서 구원을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이 유교가 뭔지 몰라도 효도와 우애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미국인들도 칼빈이즘을 믿지 않아도 ‘부자나 가난한 자나 다 자기가 타고나고 노력해야 하는 것으로 자기 복’이라고 생각하면서, 가난한 사람이 힘들게 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앞서 언급한 정치학과 백인 여교수의 생각 -잘 사는 결과로서 원인과 과정을 설명하는 것- 도 칼빈이즘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1929년 대공황(Great Depression)을 겪고, 2차 세계대전에 차출돼 해군으로 참전했던 한 백인 할아버지는 “미국은 계속되는 전쟁과 부자들을 위한 정책, 엄청난 국가 부채, 국민들의 엄청난 과소비 등으로 점점 지옥(Hell)으로 가고 있다”며 “내가 지옥을 믿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대공황 직후인 2차 대전 때 군대에서는 ‘원하는 만큼 음식을 가져가라, 대신 다 먹어라.’고 했다”며 “나는 아직도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 초등학교 여 선생님도 “미국인들의 과식과 물질에 대한 욕심은 대공황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당시에는 내일 어떻게 될 지 모르기 때문에 오늘 많이 먹고, 사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미국인들의 과소비는 세계적인 재앙이 되고 있습니다. 한 연구조사에 의하면 미국인 어린아이 한 명이 인도 어린아이 60명 분의 음식과 에너지 등을 소비를 하면서 공해와 쓰레기를 배출한다고 합니다. 한 여대생은 “우리는 미국 경제가 소비자들의 소비에 의해 발전한다고 교육받았다”며 “소비는 아직도 미덕이지만, 환경오염이나 빈부격차 등의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말했습니다.

하나의 곁가지를 덧붙이면, 미국은 태생적으로 가족에 대한 개념이 우리와 다릅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초기 미국 이주민들은 가족을 버리고 일확천금을 찾아 온 사람들로 가족ㆍ뿌리에 대한 개념이 근본적으로 약하다”며 “세대간의 단절도 태생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결국, 미국인들이 새로운 부자의 기회를 찾아 가족을 버리고 칼빈이즘을 택해 부자라는 결과를 얻었지만, 그 과정에서 파생된 부작용들로 인해 무한 악순환에 빠져드는 것은 아닌가 우려됩니다.

# 미국인들의 영어하기
“부시는 일렉트 된 것이 아니라 실렉트 됐다.”
미국 얘기를 하면서 영어 얘기를 빼놓으면 섭섭해(?) 할 것 같아서 한 마디 덧붙이고자 합니다.
영어에서 느끼는 문화적 충격도 적지 않습니다.
20대 중반부터 생활영어를 구사한 저로써는 지금 넘기 힘든 벽 앞에 서 있습니다.
액센트(강세)와 인토네이션(억양), 리듬이 그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왜 정확히 발음했는데, 미국 사람들이 못 알아 들을까”라고 말합니다.
그건 영어는 스펠링대로 발음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인은 스펠링 대로 발음하면 못 알아듣고, 발음기호대로 액센트를 넣어서 발음해야 알아 듣는다는 겁니다.
문제는 발음에는 예외가 많아서 영어는 스펠링과 발음기호ㆍ액센트를 따로 따로 다 외워야 합니다. 거기다 우리 말에는 없는 발음을 흉내까지 내야 하고, 단어가 아닌 문장으로 이어지면 인토네이션과 리듬까지 덧붙여야 합니다. 단어와 구문을 생각하기도 힘든데, 거기다 액센트와 인토네이션, 리듬까지 넣으려고 하니까 첩첩산중이 되는 거죠.

한 가지 구급책은 일음절, 관사 등은 대충 넘어가고, 2음절 이상 동사나 명사에 액센트를 넣어서(동시에 액센트 없는 모음은 대충 약하게) 발음하면 오히려 더 잘 알아듣는다는 겁니다.
한국에서야 가끔씩 영어를 쓰기 때문에 스펠링데로 발음을 안 하거나, 연음으로 발음하면 “혓바닥에 빠다를 발랐다”거나 “너무 굴린다”는 말을 듣지만, 실제로 매일 영어를 쓰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겁니다. 미국인들이 2음절 이상 되는 단어 중 강세가 없는 모음을 약하게 발음하고 넘어가는 것은 멋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입니다.

스펠링과 발음이 다르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겪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네들도 글쓰기보다 말하기를 많이 하기 때문에 발음과 뜻은 알지만, 스펠링은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고, 스펠링을 보고는 무슨 뜻인지 모르다가도 발음을 이러저리 해 보고는 뜻을 기억해 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태리 친구는 “미국 영어는 아주 비합리적이다. 이태리어는 모음 하나에 하나의 소리가 나는데, 영어는 모음 하나가 세내개의 소리를 내니 어떤 게 어떤 건지 어떻게 아냐”고 한참 동안 투덜댔습니다. 또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는 스펠링을 물어보면 a-b-c 이렇게 불러주는 것이 아니라, 발음을 한번 더 해준답니다. 스펠링 그대로 발음이 되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죠.
(첫 문장 실렉트의 스펠링은 select 입니다. 우리야 스펠링이 select이니까 셀렉트라고 발음하지만, 강세가 2음절에 있기 때문에 발음은 ‘렉’이 강조되고 올라간 실렉트가 됩니다. )

#작은 도시 큰 공원, 데이비스 (Davis)
데이비스(Davis)에 사는 사람들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다른 사람들한테 데이비스에 대해 얘기하지 말라”고 합니다. 데이비스가 이렇게 좋은 걸 알면 사람들이 몰려들까봐 걱정이 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데이비스의 인구밀도는 미국 도시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답니다. 집값도 매년 올라서(half million dollars 5억원 안팎) 이곳에 집을 갖고 사는 사람들은 준 백만장자들 입니다. 한 학부형은 “이곳 학부형 중에는 학력은 높지만, 돈이 많아 직장이 없는 주부들이 많다”며 “그들이 학교 봉사활동을 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최고의 교육여건이 되고 있다”고 자랑합니다.
데이비스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캠퍼스 또는 공원이라고 보면 되기 때문에 도시로 보면 아주 작고, 캠퍼스나 공원으로 아주 큰 편입니다. 그래서 다른 미국 소도시와 달리 자전거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구조로 돼 있습니다. 가령 제가 살고 있는 집에서 자전거로 5분만 가면 공원ㆍ수영장ㆍ야구장ㆍ축구장ㆍ어린이 야구장ㆍ공공 도서관ㆍ초중고등학교, 10분 정도만 가면 영화관ㆍ소방서ㆍ경찰서ㆍ시청 등 전부 다 있습니다. 골프장은 자동차로 15분 정도 가면 세 곳 정도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샌프란시스코는 한시간 반, 새크라멘토는 20분 등 가깝기 때문에 매일 주변 대도시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이 많답니다.

10년 전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을 때는 문화적 다양성과 밤(?)의 화려함 등에 매료돼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한달 전 샌프란시스코를 다시 방문했을 때는 지저분한 거리와 불쾌한 냄새, 상가와 집에 쳐져 있는 철창, 거리를 배회하는 불량배들, 많은 차와 소음, 작은 공원과 좁은 놀이터가 눈에 밟히면서 아이들과 함께 머물 곳이 못된다는 생각으로 바뀌더군요.

저도 점점 데이비스 예찬론자가 돼 가나 봅니다. ^^”